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75
75화
토와파는 최강이 떠난 날 새벽 시바사키파를 공격했다. 그리고 무사히 거점 하나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빼앗겼던 2개의 거점을 전부 다 되찾으려는 작전이었지만 적의 저항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총공세를 펼친 것치고는 솔직히 아쉬운 전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고착화되어 가던 거점 하나를 되찾아 분위기를 되돌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설까?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당사자 토와 후미토는 지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넓은 방에서 혼자서 무언가 생각하고 있던 후미토가 말했다.
“알아낸 게 있느냐?”
후미토의 목소리가 빈방을 가득 울릴 때쯤 방 위로 그림자가 새겨졌다. 지시한 것을 마치고 돌아온 부하의 그림자였다.
“송구스럽지만…… 단서가 될 만한 건 없었습니다.”
“그런가……?”
무인은 지금 자신의 지시로 S급 균열 안에 다녀온 참이었다. S급 균열에서 불상사가 벌어졌으니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클리어된 균열 안에서 정체 모를 무리와 조우했다.’ 생존해서 도망 온 무인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후미토가 말했다.
“혹시 녀석들의 말대로 몬스터일 가능성은 없느냐?”
분명히 사람의 외관은 하고 있었지만 몬스터 특유의 사특한 오라를 감지했었다는 주장 역시 도망자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깊이 생각하던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아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S급 균열은 클리어됐었다. 균열에서 복귀한 나미사와 하야토가 그 증거였고, 지금은 거의 다 아물어 가 3분의 1 남짓밖에 남지 않은 균열이 그 증거였다.
‘혹시 외부에서?’
후미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이 말하는 무리는 총 여섯 명이었다.
사람의 외관이었다면 엘리트 몬스터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데 출몰이 드문 엘리트 몬스터 여섯 마리가 동시에 외부에서 진입한다?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이야기였다.
“감이 잡히질 않는군.”
한참을 홀로 생각하던 후미토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을 때였다.
“당주님.”
“뭐냐?”
좀처럼 말이 없던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후미토가 말했다.
“이상한 점?”
“그렇습니다.”
“어떤 점이 이상하더냐?”
무인이 말했다.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거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 않느냐?”
후미토의 표정이 구겨졌다. 무인들의 시체가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들의 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몬스터들의 시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무인의 시체가 아니라니?
당연하지만 토와파에서는 몬스터의 사흔을 수습하지 않았다. 그럼 누군가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확실한 것이냐?”
“물론입니다. 맨 끝 층까지 살펴본바, 전투의 흔적이나 혈흔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시체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표정이 심각해진 후미토가 말했다.
“그 외에 이상한 점은 없었느냐? 말해 보거라.”
골똘히 생각하던 무인이 말했다.
“비늘…….”
“비늘?”
“비늘 같은 것이 시체가 있어야 할 곳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후미토가 말했다.
“챙겨 왔느냐?”
“물론입니다.”
조용히 방문을 연 무인이 천천히 다가와 비늘을 후미토의 앞에 내려 두고 물러나 앉았다.
건네받은 비늘을 후미토가 살폈다.
‘파충류……인가?’
고개를 든 후미토가 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 외에 다른 점은 없느냐? 작은 것이어도 좋다.”
“괴이한 곳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괴이한 곳이라면 어떤 곳이냐?”
무인이 그곳에 들어선 순간 달리던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그 상황을 되새겼다.
좀처럼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무인의 얼굴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무인이 말했다.
“층 하나가 전부 다 피로 젖어 있었습니다.”
***
무인을 돌려보낸 후미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새벽까지 쭉 앉은자리에서 계속되었다.
‘골치 아프군.’
목격되었던 무리가 사라졌다.
자칫 그것이 몬스터라면 민간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한창 사심에 잠겨 깨어날 줄 모르던 후미토의 표정에 돌연 변화가 생겼다.
생각에서 깨어난 후미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닥에 내려 둔 검을 집어 드는 일이었다.
후미토가 열린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바사키에서 부탁하더냐?”
“아니. 그럴 리가.”
신기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창가에 팔짱을 낀 채 기대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야행복 차림의 쿠미치 마시모토였다.
“토와파에도 빚이 있지.”
“빚?”
나미사가 쿠미치와 얽혔던 일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독단이었다. 후미토는 모르는 일이었다.
“뭐 모르는 눈치니까 설명하는 건 됐고, 다른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지.”
“까마귀가 사람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가? 흥미롭군.”
비아냥대는 듯한 후미토의 목소리를 들은 마시모토가 등을 떼고 후미토를 바라봤다.
“뭐냐? 한판 해 볼 텐가?”
후미토가 검 끝을 살짝 뽑아 들며 말했다.
“별로 비추천 하는데? 암살자인 네가 정면으로 내게 될까?”
기 싸움을 벌이던 마시모토가 말했다.
“S급 균열.”
마시모토의 발언에 후미토의 얼굴이 굳었다.
당연하지만 아직까지 토와파 내부만의 기밀인 일이었다. 때문에 여차하면 덮을 생각도 하고 있던 후미토의 입장에서 보면 알고 있는 외부인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후미토가 능청 떨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인가?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조용히 입꼬리를 올린 마시모토가 말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싶지 않나?”
마시모토의 복면 위로 유일하게 드러난 눈을 확인한 후미토가 살짝 빼 들었던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허풍이 아님을 눈치챈 것이었다.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알고 있지. 적어도 너보다는 더.”
후미토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당사자인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이 약간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그 말, 자신할 수 있나?”
“자신? 당연하지. 봤거든, 그 여섯 명.”
아니, 마리라고 해야 하나……?
마시모토의 뒷말도 들려왔지만 후미토는 그런 것 따위 관심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세히 말해 봐라.”
마시모토의 처음 발언 여섯 명.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픽 웃은 마시모토가 말했다.
“수컷 네 마리에 암컷 두 마리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이것 또한 도망자들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었다.
마시모토가 말을 이어 갔다. 몬스터라고 확신하고 뱉는 말 같았다.
“암컷 두 마리의 수준은 나보다 세 수 아래, 수컷 세 마리의 수준은 조금 차이는 있었어도 크게 보면 나보다 한두 수 아래였다. 생긴 건 뚱뚱한 놈 하나, 마른 놈 하나, 멀대 같은 놈 하나려나? 아! 암컷 놈들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군. 몸매 하나는 끝내준다. 살결이 아주…….”
마시모토의 말을 끊고 후미토가 말했다.
“남은 한 놈은 어떻지?”
마시모토가 말했다.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나보다 두 수는 위다. 생긴 건 까무잡잡한 피부에 체형은 평범한 편.”
후미토의 얼굴에 놀라움이 맺혔다.
마시모토는 암살자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자신과 같은 40위권의 랭커이다. 전면전은 몰라도 기습으로 먹고 들어간다면 자신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시모토가 전면전일 경우 본인보다 두 수 위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건 전면전으로 붙어도 자신과 동일.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하게 마시모토의 생각과도 동일했다.
마시모토는 어디까지나 암살자다. 때문에 은신을 이용한 기습이라면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도 제압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한 수 위까지는 은신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샬렉은 아니었다. 느낀 수준도 아니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마시모토가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뭐 물론 어디까지나 전면전을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전면전에 두 수 위라……. 솔직히 믿을 수 없군.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마시모토가 순순히 털어놓았다.
“내 은신을 꿰뚫어 봤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 아마…….”
기억을 더듬듯 마시모토가 말했다.
“20미터 정도 됐으려나?”
“20미터……?”
자신은 마시모토가 15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자신이 없었다. 몬스터라 유독 감각이 발달했다고 감안해도 상당히 절망적인 정보였다.
“그 외에 다른 정보는 없나?”
“상당히 날렵한 녀석이다. 최대 속도는 나와 동일. 체력적인 부분은 모르겠군. 추격전이 그렇게 길지 않았거든.”
후미토는 마시모토의 말을 들을수록 믿고 싶지 않은 정보만 접할 뿐이었다.
속도라면 단연 마시모토가 후미토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만 해 주자면, 괜히 혼자 잡겠다고 까불지 말라고나 할까? 뒤진다, 너. 가능하면 적어도 너 정도 수준으로 한 놈을 더 끌고 가서 퇴로를 끊은 뒤에 사냥해.”
뒤돌아서는 마시모토를 후미토가 불러 세웠다.
“잠깐! 어째서 말해 주는 거지?”
“말했잖냐. 빚이 있었다고. 뭐, 넌 모르는 거 같지만.”
마시모토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토록 원하던 많은 정보가 오고 갔지만 어째선지 기쁘지 않았다.
***
나는 일곱 살 때 고아가 됐다.
왜구에게 부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아버지에 이어 올해 어머니까지 잃은 것이었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슬픔?
고작 6년 남짓 산 소년이 뭘 알았겠냐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머니의 슬픔에 눈물 흘렸던 것은 채 3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뱃가죽이 찢어질 듯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의 어머니는 굶어 죽었다. 자신의 배는 곯으면서도 나를 먼저 챙기다가 말이다.
더 이상 울 체력도 남지 않은 내가 하늘을 보고 드러누웠다.
원망스러웠다.
왜구가. 우리를 외면한 국가 고려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잡아먹고도 이렇게 굶어 죽는다. 병신처럼 그렇게 순리대로 천천히…….
“꼬맹이, 살아는 있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듯 감았던 눈을 떴다.
흐릿한 초점에 누군가의 얼굴이 걸린다.
꽤나 앳된 얼굴이었다.
“먹어라.”
표주박에 담긴 죽을 떠서 내 입에 밀어 넣는 사람이 주는 대로 나는 죽을 한두 입 얻어먹다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멀쩡했잖아?”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가 표주박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내가 표주박을 들고 미친 듯이 입에 처넣었다.
별다른 게 들어가지 않은 그냥 쌀죽이었을 텐데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표주박을 깔끔하게 비운 내가 박을 내려놓고 남자를 봤다.
방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갑주와 수려한 이목구비 그리고 주변에 나와 마찬가지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죽을 먹이는 허름한 갑옷 차림의 사람들이 보였다.
정신이 번뜩 든 내가 급히 어머니를 바라봤다.
역시 어머니의 숨은 끊어진 뒤였다.
“미안하다.”
내가 목소리를 뱉은 남자를 돌아봤다.
남자는 나에게 그 말을 뱉고 멀어지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남자가 멈춰 섰다.
내가 말했다.
“나리는 이름이 뭔가요?”
죽을 줄 알았던 그날, 나는 그렇게 한 그릇의 죽으로 살아남았다.
“최강.”
그 남자가 먹여 준 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