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8
8화
몬스터에는 흔히 두 종류가 있다.
일반 몬스터와 엘리트 몬스터.
같은 자이언트 스네이크라도 일반 자이언트 스네이크라면 D난이도인 것에 비해 엘리트의 경우에는 C난이도로 껑충 뛰어 버릴 만큼 명백히 급이 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트와 일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한 크기와 외형?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차이를 말한다면…….
이것이다.
지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성장을 거듭할수록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그것이 바로 엘리트가 일반 몬스터와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호…….”
그렇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자신의 둥지로 숨어든 최강을 바라보며 관찰하는 아라크네는 필시 엘리트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최강을 바라보던 엘리트 아라크네가 사악하게 웃었다.
‘이 녀석이다. 이 녀석만 내 심복으로 삼으면 그 빌어먹을 녀석에게 복수할 수 있다.’
***
최강이 아라크네를 해치우고 다시 경기장으로 내려섰을 때였다.
짝짝짝짝.
관중석 한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최강이 박수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중세 시대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붉은빛 드레스를 걸친 여인이 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을 불태울 듯한 붉은 기운과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딸들을 전부 다 해치우다니 제법이로구나, 젊은 기사여.”
“딸? 저 아라크네인가 하는 거미 년들?”
아라크네가 최강의 말에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나의 왕국에 침범한 무지몽매한 기사여.”
최강이 아무리 봐도 몬스터라기보다는 사람인 것 같은 여인을 보고 말했다.
“그럼 너도 몬스터냐?”
“몬스터라……. 틀렸다. 나의 이름은 엘리스! 이 왕국의 주인이니라.”
쿵. 쿵. 쿵. 쿵. 쿵.
엘리스의 말이 끝나자 하늘에서 고치 수십 개가 떨어져 내렸다.
고치가 박이 갈라지듯 금이 가더니, 곧이어 쩍 갈라지며 검은 양복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가? 나의 왕국에 침범한 젊은 무인이여, 지금이라도 나의 충실한 심복이 되겠다고 한다면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을 약속하겠다.”
엘리스의 말에 최강이 보란 듯이 환하게 웃으며 중지를 폈다. 예전에 띠움이 자주 하던 행동이었는데,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싫수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스에게도 유효했는지 엘리스가 손에 쥔 쥘부채를 촥 펴며 말했다.
“유감이로구나.”
엘리스의 말과 함께 고치에서 나타난 무인들이 일제히 감고 있던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충혈된 듯한 붉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엘리스가 깨어난 무인들에게 명하듯 부채로 최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충실한 심복들이여, 왕국을 침범한 부랑자를 벌하라.”
최강이 엘리스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인들을 바라봤다.
최강이 여태껏 봐 왔던 무림인들보다 수배는 더 신속했다. 하지만…….
슉.
감히 최강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란 듯이 무인들의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돌파한 최강이, 어느 순간 모습을 감췄다.
엘리스의 앞에서 유유자적 나타난 최강이 주먹을 휘둘렀다.
엘리스가 최강을 보며 부채로 가린 하관 위로 눈웃음쳤다.
“너무 속셈이 훤히 보이지 않느냐.”
쿵.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수십 개의 고치가 엘리스와 최강의 사이에 떨어져 내렸다.
우뚝.
최강의 주먹이 멈춰 섰다. 주저하는 최강에게 엘리스가 말했다.
“강단 있는 사내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면도 있구나.”
엘리스의 도발에 얼굴을 구긴 최강이 몸을 옆으로 틀었다.
엘리스 앞에 성벽처럼 존재하던 고치가 사선으로 베인 듯 빗면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이윽고 바닥에 붉은 피를 적시는 것이 보였다.
안에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엘리스가 말했다.
“팔 하나는 함께 베어 버릴 작정이었는데…… 감이 좋은 아이로구나.”
쿵쿵쿵.
최강이 고치 위로 다시 보이는 엘리스의 붉은빛 눈동자를 보고 있자, 이번에는 최강의 뒤편과 관중석, 운동장 할 것 없이 사방으로 고치들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최강의 후면에 떨어져 내렸던 2개의 고치를 뚫고 두 명의 민간인이 나와 최강을 후면에서부터 짓눌렀다.
짓누르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서 있는 최강이었기에 껴안는 모습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섬뜩한 장면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어찌 됐든 최강이 붙들리자 곧이어 그를 향해 미리 깨어나 있던 무인들도 일제히 달려들어 하나씩 달라붙기 시작했다.
인파에 모습이 점점 사라지던 최강이 어느덧 얼굴 부위 정도만 흐릿하게 엘리스에게 보일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엘리스가 하인들이 고치를 치워 낸 길로 굽 소리를 만들어 내며 걸었다.
마침내 최강의 앞에 선 엘리스가 말했다.
“그래, 잘 선택했다. 그대가 거부하면 할수록 죄 없는 사람만이 죽어 갈 뿐이겠지…….”
애인 바라보듯 따뜻한 눈빛으로 최강의 뺨을 쓰다듬으며 엘리스가 말했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나의 심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랄하네.”
최강의 과격한 말에 엘리스의 눈가에 미세한 인상이 지어졌다.
“기어이 벌주를 들겠다는 것이냐?”
“응. 개 같은 술은 너나 잡수시고, 넌 좀 많이 맞는 걸로 하자.”
최강이 결정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쾅.
최강의 몸을 기점으로 한차례 기파가 폭발했다.
최강을 짓누르던 수십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언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는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어떤 이는 경기장 바닥에 박혔고, 어떤 이는 물수제비처럼 수십 번을 튀어 벽에 틀어박혔으며, 어떤 이는 데굴데굴 구르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하지만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 냈음에도 최강의 눈은 엘리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최강이 말했다.
“죽지 말아라.”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최강의 주먹이 엘리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콰앙.
***
엘리스는 지금 경기장 밖에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솟아오른 고층 빌딩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며 엘리스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뚝…… 뚝…….
어디선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엘리스가 자연스레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엘리스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건.”
소리의 정체가 자신의 피였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천주갑을 입고 있었는데…… 어째서?!”
샤샥.
최강이 엘리스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나타났다.
“나름 힘 좀 줘서 팬 거였는데.”
엘리스가 최강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를 바득 갈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지막에 허용한 일격.
최강의 주먹이 원인이었다.
최강이 엘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너, 그 부상은 누구에게 당한 거냐?”
자신의 복부의 아물고 있던 큰 검상을 바라보는 최강의 눈초리에 엘리스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다물어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망발을……?!”
치욕을 감추려는 듯 엘리스가 쥐고 있던 부채를 휘두르려 팔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들렸던 엘리스가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디로?’
엘리스가 순간적으로 당황의 기색을 떠올렸을 때였다. 바람과 같이 엘리스의 코앞에서 나타난 최강이 말했다. 최강의 주먹은 어느새 엘리스 복부의 상처 위에 있었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그런데…….”
쾅.
“이번엔 조금 더 아플 거다. 난 약점이라고 가려 가면서 안 패.”
최강의 주먹에서 소음과 함께 충격파가 일어나며 그것을 기점으로 흙먼지가 원형 고리처럼 퍼져 나갔다.
끄아아아악!
이미 깊은 상처를 또 한 차례 가격당한 엘리스가 비명 소리와 함께 복부를 움켜쥐고 무릎 꿇었다.
“어때, 진짜지?”
어찌나 아픈지 엘리스가 침을 질질 흘리는 몰골을 하고 표독스럽게 최강을 노려봤다.
‘이자……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이 정도면 그 빌어먹을 녀석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최강이 기분 나쁜지 엘리스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말했다.
“뭘 꼬라 봐, 기분 나쁘게.”
최강의 주먹에 맞은 엘리스의 머리채가 콘크리트 바닥에 들이박혔다. 엘리스가 실성한 듯 웃었다.
“크크크크큭.”
“뭘 쪼개.”
최강이 기분 나쁜지 머리통을 한 대 더 쥐어박았다. 엘리스가 조금 더 깊이 바닥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크크크크크크큭. 원래라면 그 녀석을 위해 아껴 두고 있었던 것이다만, 이제 상관없다.”
최강이 기분 나쁘게 쪼개던 엘리스의 몸이 붉게 물들다 못해 점점 짙은 빛을 뿜어내는 수준에 이르자 신속히 자리를 피했다.
다음 순간 100미터 떨어진 고층 빌딩 옥상에서 나타난 최강의 모습이 좀 전의 위치를 내려 보는 것이 보였다.
엘리스를 확인한 최강이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뭐…… 뭐야, 저게.”
300미터 떨어진 경기장을 가득 채우던 거미줄이 일대에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며 엘리스에게로 모여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최강이 잠시 후 엘리스가 있던 장소에 둥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공을 보고는 혀를 찼다.
“내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커다란 공은 최강이 얼추 크기를 가늠해도 직경 50미터를 상회하는 엄청난 크기였다.
최강이 잠시간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 최강의 뇌리로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후.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라.
최강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인상을 구기자, 잠시 후 붉은빛의 실타래가 쩍 하고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난 또 폭발이라도 하는 줄 알고 피했더니, 잘난 척해도 결국엔 거미 새끼로 돌아간 거냐?”
최강이 눈앞의 공에서 튀어나온 초대형 붉은 거미를 확인하고 말했다.
-마지막 유언은 그게 전부이더냐? 운 나쁜 기사여?
자신이 다시 유리해졌다고 생각하는지 그새 부랑자에서 기사로 승격한 최강이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네.”
거미가 된 엘리스의 말에 픽 웃은 최강이 잠시 후 다시 엘리스와 조금 떨어진 도로 위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래, 나도 내가 운이 안 좋다는 건 공감한다. 어쩌다가 대놓고 호구 잡힌 것 같거든.”
최강이 현대로 넘어오고 처음으로 자세다운 준비 자세를 잡는 것이 보였다.
후면으로 향한 최강의 주먹에 백색 기운이 서리는 것이 보였다.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엘리스가 최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응?”
최강이 자신의 내뻗으려는 팔을 중심으로 감기는 거미줄을 확인하고는 조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한마디 말을 남긴 최강이 팔에 힘을 주자 방해하던 거미줄은 사르르 눈 녹듯 사라졌고 최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어느덧 가까이 달려들어 자신을 꿰뚫으려는 엘리스의 다리가 코앞에 보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최강의 주먹에 비하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느껴질 정도로 느렸고 최강의 주먹은 빨랐으니까.
“고려 좌군 첫 번째 주먹, 천지(天地) 가르기.”
최강의 주먹이 마침내 엘리스의 다리와 닿는 것이 보였다.
콰과과과광.
고막을 날려 버릴 정도의 굉음이 터지면서 엘리스의 후면으로 거칠게 광풍이 몰아쳤다.
바닥의 콘크리트는 밭갈이하듯 뒤집어졌고, 쭉 뻗은 도로 위에 떠 있던 하늘의 구름은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태풍처럼 몰아치던 남은 바람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최강이 돌처럼 굳은 듯한 엘리스를 놔두고 마주 닿은 주먹을 회수하며 말했다.
“잘 가라. 멀리는 안 나가.”
두둑…… 두두두둑.
최강의 말이 신호라도 되듯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엘리스의 마주 닿았던 다리 끝부터 가죽이 불규칙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리를 타고 이내 엘리스의 전신으로 괴현상이 확산된 순간이었다.
극한의 상황에 다다른 거대한 거미 엘리스가…….
팡.
풍선 터지듯 터지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거미가 흔적도 없이 흩어지며 너덜너덜해진 엘리스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툭.
마침내 거대 거미에 비하면 점이나 다름없는 엘리스가 도로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도시의 건물 유리창이란 유리창이 전부 일제히 깨지며 슬프게 울어 댔다.
여왕을 위한 마지막 진혼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