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샬렉의 주먹을 잡은 아놀드가 남은 주먹을 꽈득 쥐었다.
검은 불꽃처럼 일렁이는 기운이 그의 손에 맺히는 모습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샬렉이 발악하듯 아놀드를 후려쳤다. 하지만.
“잘 가라.”
끄떡도 하지 않던 아놀드가 마침내 샬렉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콰앙.
아놀드가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 따위는 보지도 못했다. 샬렉이 정신 차렸을 때는 주먹을 얼굴에 얻어맞고 이미 왔던 길을 날아가고 있었다.
샬렉이 S급 균열이 있던 산을 뚫고 그대로 반대편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샬렉의 눈에 산이 가루되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단 일격. 일격이었는데 엄청난 위력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한참을 날아간 샬렉이 그대로 땅에 물수제비뜨듯 튕기다가 데굴데굴 굴러 멈췄다.
“허억. 허억.”
바닥에 엎드려 숨을 쉬던 샬렉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나 되는 거리를 날아온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늘을 뚫어 버릴 듯 치솟던 녀석의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면 엄청난 거리를 날아온 것임은 분명했다.
잘생긴 얼굴이 반쯤 으스러진 샬렉이 다시금 발을 박찼다.
‘또 한 방은 위험하다.’
방금 전 포식자가 얼마나 위험한 녀석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달렸다.
지금 이곳에서 녀석을 잡아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녀석에게 날아가기 전 자신도 녀석에게 한 방을 먹였기 때문이다.
***
아놀드가 허리춤의 상처를 보고 인상 썼다.
전장에서 상처라.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를 일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확실히 강하다. 자신의 단단한 살가죽을 뚫은 것이 그 증거였다.
남은 바실리스크들을 향해 걷던 아놀드가 멈칫하며 걸음을 정지했다.
‘츳…… 그런 거였나?’
맞고 날아가기 직전에 방어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텐데 방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하기에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독을 사용한 것이었다.
아놀드가 몸을 마비시키려는 독을 응급처치 하기 위해 허리에 거대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집어 뜯었다.
살점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뜯겨 나올 정도로 강하게 쥐어뜯어 내면서도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은 아놀드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의 살 조각을 대충 바닥에 휙 던지고는 걸음을 옮기는 아놀드가 보였다.
“남은 건 세 마리인가? 녀석이 오기 전에 끝내 주지.”
강력한 일격이었지만 아놀드는 녀석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찌그러트려 버리려고 했던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감촉이 손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가가는 것을 얼어붙은 자세로 바라보는 바실리스크들을 본 아놀드가 무심하게 말했다.
감정 따위는 철저하게 배제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겁에 질렸나?”
바실리스크들이 아무리 외적인 성장을 거듭했다고 해도 불과 3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을 포식자의 입장에서 살아왔지 절대적인 약자의 입장을 살아온 적이 없었다.
이런 절대적인 강자를 경험해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얼어붙은 카프오의 앞에 선 아놀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가만있어라. 한순간일 테니.”
아놀드의 말에 깨어나듯 반응하며 뒤로 물러나려는 카프오의 양 볼을 손으로 움켜쥐는 아놀드의 손이 보였다.
그대로 카프오를 땅에 내려찍은 아놀드가 남은 손을 뀌득 쥐었다. 방금 전 샬렉을 날려 버린 그 주먹이었다.
“고통 따윈 없다.”
카프오가 저항하듯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거대한 바위처럼 묵직함을 자랑하던 아놀드가 꿈쩍도 하지 않자 카프오가 검은 독을 한 움큼 분사했다.
치이이이익.
주먹을 내려치려던 아놀드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흥미로운 기색이 묻어 나왔다.
“분사할 수도 있다라…….”
아놀드의 주먹이 카프오를 내려찍었다.
주먹이 적중한 카프오의 머리가 그대로 괴상한 소리를 내며 으스러지더니 다음 순간 지면 깊숙이 주먹과 함께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참고하도록 하지.”
콰르르릉.
주먹이 박힌 지면을 기점으로 쩍 벌어지는 대지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모래로 변한 주변의 땅에 쓸려 카프오의 시체가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무심하게 몸을 일으킨 아놀드가 말했다.
카프오를 압도적인 무용으로 해치운 아놀드가 누틀과 힐테를 바라봤다.
아놀드가 화들짝 놀라며 저 멀리 뒤로 물러난 누틀과 힐테를 보며 말했다.
“왜 물러났지? 고작 그 정도 거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누틀에게 말을 건네던 아놀드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일순간에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손으로 누틀의 얼굴을 들어 올리는 아놀드가 보였다. 그리고 아놀드가 방금 전 카프오의 숨통을 끊었던 그 주먹을 장전했을 때였다.
인상 쓰는 아놀드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오는 건가? 생각보다 빠르군.’
주먹으로 지금 쥐고 있는 녀석을 마무리 지을지, 처음에 날려 버렸던 녀석을 마무리 지을지 고민하던 아놀드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녀석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누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둘 다 죽인다.”
누틀의 머리를 터트린 아놀드의 주먹이 날아오던 샬렉의 주먹과 부딪쳤다.
주먹을 맞댄 샬렉과 아놀드의 후면으로 동시에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다.
주변에 서 있던 힐테가 먼지 조각처럼 수백 미터를 굴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놀드가 말했다.
“꽤나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마찬가지다.”
아놀드는 아까 카프오가 뱉어 낸 독으로 인해 몸 군데군데가 살가죽이 염산에 녹은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신경전을 하던 두 사람이 맞대고 있던 주먹을 동시에 떼며 약속이라도 한 듯 반대편 주먹을 쥐고는 내질렀다.
샬렉의 면상을 때리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복부를 얻어맞은 아놀드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손해는 샬렉 쪽이 더 많이 본 듯했지만 처음과 같이 막심한 피해를 입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불과 30여 미터를 뒤로 밀려났을 뿐이다.
아놀드가 자신의 시뻘건 우측 허리를 보고는 생각했다.
‘위력이 죽었다.’
처음에 입었던 상처가 문제였다. 허리의 통증에 신경 쓰느라 온전히 주먹을 끝까지 내뻗지 못한 것이었다.
아놀드가 뒤로 밀려난 샬렉의 손에 들린 시체를 보더니 말했다. 방금 전 절명한 누틀의 시체였다.
“그건 어디에 쓰려고 그러지?”
“이렇게 쓸 생각이다.”
머리 없는 누틀의 시체를 어깻죽지부터 큼지막하게 물어뜯는 샬렉의 모습에 아놀드가 아차 싶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를 잡아먹는다고 그랬었나?’
설마하니 시체라고는 하나 동족을 잡아먹을 줄은 몰랐던 아놀드가 일순간에 거리를 지우고 나타났다.
탁.
주먹을 내지른 아놀드의 표정에 처음으로 동요가 걸렸다.
일격에 머리를 날려 버리려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시체를 씹으며 주먹을 잡아내는 샬렉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우드득.
주먹을 으스러트릴 법한 기세가 신경을 통해 느껴지자 아놀드가 새삼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즉각적으로 반대편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누틀의 시체를 향해 휘둘렀다.
파악.
아놀드의 주먹이 직격하자 빨간 반죽이 되어 사방으로 터지는 누틀의 시체가 보였다.
더 이상 섭취하게 둘 경우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
2차 토벌대에 참가했던 랭커들은 지금 아놀드와 샬렉의 싸움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고위 랭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저 둘의 싸움에는 끼어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못해도 3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도 소름 끼치게 만드는 마나가 그 증거였다.
이 이상 다가가면 휩쓸린다. 그렇게 판단한 것이었다.
“이봐, 루톤.”
루톤는 영국의 고위 랭커이다. 루톤이 자신을 부르는 프랑스의 고위 랭커 두 명을 바라봤다.
“왜? 설마 끼어들자고?”
두 명의 프랑스 고위 랭커가 쉴 새 없이 제자리에서 공격만을 주고받는 아놀드와 샬렉의 싸움을 보고는 말했다.
“그럴 리가.”
“다만 저 뒤에 있는 놈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겠나?”
“뒤에 있는 놈?”
루톤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자신들과는 정반대 편을 바라봤다. 상당한 거리였기에 고위 랭커인 자신조차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지만 여자가 보였다. 힐테였다.
확실히 아놀드가 상대하고 있는 놈은 몰라도 저기 있는 여자는 본인들끼리 충분해 보였다.
사실 아무리 업혀 가려는 심산으로 참가했더라도 잔당 정도라도 처리하지 않으면 명분이 서지 않는다.
루톤이 말했다.
“좋다. 난 뭘 하면 되지?”
루톤이 두 사람과 대화를 한창 이어 갈 때였다.
루톤이 귀에 끼고 있던 무전기에 수신음이 들려왔다. 대화를 이어 가던 두 사람의 말이 멈추자 루톤이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루톤이다.”
-루톤, 상황은 어떤가?
무전기를 통해 답신을 받은 루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총리님?”
-그래, 날세.
무전으로 가능한 거리를 감안했을 때 도저히 들려올 리 없는 목소리였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루톤이 주변의 잡음이 섞이는 것을 느끼고는 눈치챘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전원은 지금 자신의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꿔서 송신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루톤이 벌써 한 시간 넘게 제자리에서 치고받는 아놀드와 샬렉의 싸움을 보며 말했다.
“보고……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현지에서 보는 냉정한 판단을 원하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글아이는 시각적 효과는 정확하게 전달해 줄지 모르지만 청각적 효과나 촉감, 후각 등 다른 효과는 전혀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리가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묻겠네. 상황은 어떤가? 아놀드가 이길 수 있겠나?
루톤의 시선이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당연했다. 총리의 목소리나 분위기를 봤을 때 그는 지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괴물 아놀드가 무너진다면 그다음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루톤이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의 싸움을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싸움?
분명히 처음에는 아놀드가 유리했다. 열한 명밖에 없는 토벌대의 세 명을 한 번에 잃어버리긴 했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고, 곧이어 무리의 절반을 일격으로 마무리 짓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하지만.
펑.
‘확실히, 힘이 위력이 많이 빠졌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연타로 치는 것을 고려해도 아놀드의 주먹은 처음에 비해 위력이 많이 죽어 있었다. 한 시간 이상 치고받은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긴 했지만 문제는 이제 아놀드의 주먹과 녀석의 주먹이 거의 위력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놀드는 산성 독에 피부의 3분의 1이 녹아들어 붉은 근육이 보이는 상태인 데다가 허리춤에는 상당한 부상을 안고 있는 처지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아무리 아놀드라도 반반 교환을 해서는 결국에 먼저 지쳐 버릴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문제는 아놀드가 숨겨 둔 무언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데…….’
잠시간 샬렉과 아놀드의 공방을 지켜보던 루톤이 귓가의 무전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총리.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아놀드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같이 피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잠시간 더 이어지는 총리의 말을 듣던 루톤이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생존한 랭커들은 물론이고 방금 전 자신과 대화하고 있던 프랑스의 랭커들 역시 구석으로 이동해 무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루톤이 중얼거렸다.
“이거 한바탕 시끄럽겠군.”
철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