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아놀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뒤에서 구경하던 랭커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퍼억.
기합과 함께 내지른 자신의 주먹에 적중한 샬렉의 모습을 본 아놀드가 확신했다.
‘그만큼 지쳤다는 건가?’
자신이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처음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주먹의 위력이 느껴졌다.
최고의 싸움은 이겨 놓고 하는 싸움이라고 했던가?
자신은 분명히 이겨 놓은 싸움을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허리춤의 상처.
온몸을 파고들며 괴롭히는 산성 독.
이겨 놓고 하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유리하다는 방심이 오히려 뼈아픈 상황을 불러왔다.
차라리 조금의 긴장감을 가지고 싸움에 임했다면 지금의 상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놀드가 얼굴에 일격을 내지름과 동시에 녀석의 주먹이 복부를 때리는 것을 느꼈다.
피를 토해 내는 허리춤의 상처가 보였다. 벌써 자신이 서 있던 주변의 모래는 허리가 뱉어 낸 피로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후…….”
아놀드가 혼신의 주먹을 내질렀다. 한 대 맞았으니 갚아 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 거랑은 다를 거다.’
휙.
아놀드가 처음으로 빗나가는 자신의 주먹을 목격하고 난처해할 때였다.
“큽…….”
샬렉의 공격이 자신의 복부를 연달아 두들겼다. 아놀드가 한 방, 두 방, 세 방 짧은 순간에 수십, 수백 방의 주먹을 얻어맞고는 물러나다가 결국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대한 태산 같던 아놀드가 마침내 무너진 것이었다.
아놀드가 자세가 무너짐을 깨닫고 황급히 묵직한 한 방을 공격을 견뎌 내며 장전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훌쩍 피해 내며 거리를 벌리는 샬렉이 보였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며 샬렉을 노려보던 아놀드가 지친 호흡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품에서 포션 하나를 꺼냈다.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꺼내서 쓰고 싶었던 것이지만 집요하게 달려들던 녀석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던 엘릭서였다.
뚜껑을 딴 아놀드가 상처에 포션을 절반쯤 뿌리고는 들이켰다.
부식됐던 살가죽이, 허리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소진된 마나도 어느 정도는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할 수 있겠군.’
한 방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아놀드가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누틀의 시체를 먹고 나서는 이렇다 할 상처를 입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방이 아닌 승리를 위한 한 방이 필요한 것이었다.
단순히 힘을 쥐어짜 내는 것뿐인데 주변이 강도 높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강하게 흔들렸다.
한 시간 30분가량 지속되던 싸움에 반쯤 무너져 내린 산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고, 약해진 지반이 더욱더 갈라지기 시작했다.
주먹에 모든 기운을 집중시키고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을 강하게 진동하던 지진이 멈췄다.
아놀드가 주먹에 힘을 모두 갈무리시켰기 때문이다. 아놀드의 주먹은 먹칠한 인형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아놀드가 샬렉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 있나?”
“…….”
“자신 있다면 어디 막아 봐라!”
***
자신의 마지막 혼신의 일격을 내지른 아놀드가 허공을 향한 주먹을 보고는 털썩 무릎 꿇었다.
“끝이다, 포식자.”
아놀드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한 팔이 잘린 샬렉이 보였다.
자신의 마지막 일격의 결과였다.
녀석은 마지막 순간에 피하지 않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있었던 것일 테다.
훌륭하게 흘려 낼 자신이 말이다.
자신이 유도하는 대로 난타전을 하는 모습이나 본능에 충실한 공격을 구사하길래 짐작조차 못 했었다.
‘기술을 사용할 줄이야…….’
녀석은 마지막에 흡사 이곳으로 오기 전 보았던 타쿠마라는 무인이 사용했던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흡수한 건가?”
이제 정말로 끝이었다.
엘릭서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전 세계에 몇 개밖에 없는 비약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장을 다니는 자신이기에 오늘 같은 상황을 대비해 구비해 뒀을 뿐이지 그렇게 남발할 수 있는 포션이 아니었다.
아놀드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샬렉의 손이 자신을 가를 것을 기다릴 때였다.
금방 내려쳐질 줄 알았던 녀석의 손이 머뭇거리는 것을 목격한 아놀드가 놈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이봐. 보니까 볼일 끝난 거 같은데, 내가 이어받아도 될까?”
“무슨……?”
갑작스러운 남자의 등장에 아놀드가 의문 섞인 소리를 낼 때였다. 섬광처럼 이동한 샬렉이 남자를 향해 일격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야, 지금 대화하는 거 안 보이냐?”
아놀드가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시선조차 주지 않고 샬렉의 주먹을 받아 낸 남자의 실력에 놀란 것이었다.
남자가 샬렉의 팔을 잡고 빙 돌려 멀찍이 던져 버리고는 말했다.
“다시 한번 묻는다. 내가 처리한다?”
아놀드가 얼빠진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
최강이 갑자기 사라지자 화장실까지 천천히 돌아본 주소희는 최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놀드 피터슨.
그의 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놀드다. 그의 무용담의 한 페이지에 새겨질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화면이 훌쩍 변해 있는 것을 확인한 주소희가 제이스에게 말했다.
“저…… 저기.”
“말씀하시죠.”
“방금 전에 뚱뚱한 녀석하고 마른 녀석은 어디 갔어요?”
“아놀드가 처리했습니다.”
“벌써요?”
“네. 일격에 머리를 터트려 버리더군요.”
제이스의 말을 들은 주소희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난타전을 바라봤다.
아놀드. 확실히 미국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강력했다.
무엇보다 저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펀치들의 각개 위력이, 반경 수백 미터 밖까지 여파를 남기는 모습은 저게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쉴 새 없이 서로를 두들길 때마다 땅이 마르고 그나마 남은 풀 조각도 시들어 가는 전투를 주소희가 바라보다가 피곤한지 뻐근한 몸을 풀었을 때였다. 시계를 슬쩍 확인한 주소희가 말했다.
“근데 저거,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글쎄요.”
얼추 잡아도 한 시간은 훌쩍 넘어간 것 같았다.
“혹시 아놀드가 지지는 않겠죠?”
“…….”
처음에 최강의 말에 그토록 자신하던 제이스는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말하지 못했다.
제이스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펀치가 많이 약해졌다.’
처음 난타전을 벌일 때만 해도 펀치의 위력만 놓고 본다면 아놀드의 주먹이 훨씬 더 강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거의 호각…….’
아마도 그 원인을 꼽으라면 허리춤의 저 상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그것을 느낀 것인지 아놀드를 제외한 토벌대들은 진작에 사라지고 없었다.
‘큰일이군.’
얼마 전 로버트를 잃어버린 것도 뼈아픈데 지금 대체 불가 자원인 아놀드마저 잃어버린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었다.
때문에 난타전에 돌입한 순간부터 제이스는 처음 말과 다르게 불안한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고 말았다.
절대로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한 태산 같은 아놀드가 마침내 한쪽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곧이어 샬렉을 쫓아낸 아놀드가 엘릭서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가 기운을 끌어 올리는 와중에도 어째선지 제이스는 불안했다.
뒤가 없는 한 방을 준비한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아놀드 스스로도 궁지에 몰린 상태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아놀드의 시꺼먼 오른팔을 본 제이스가 긴장했다.
저 한 방에 결판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끝났다…….’
아놀드의 주먹을 샬렉이 흘려보내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 대가로 한쪽 팔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모든 힘을 소모한 아놀드만큼은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처참하게 무릎 꿇는 아놀드가 보인 순간이었다.
주소희가 말했다.
“어?”
제이스의 눈이 주소희와 마찬가지로 봐선 안 되는 걸 본 듯 바뀌었다.
‘Mr. 최? 어떻게 저기에……?’
불과 한 시간 30분 전에 한국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유가 있어서 바로 출발했다고 한들 도착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일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제이스가 한심스럽다는 양 중얼거렸다.
“괜한 희생자만 늘겠군.”
주소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 최강 씨 무시하는 거예요?”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제이스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주소희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구시렁댔다.
“깜둥이, 깜둥이 하는 이유가 있었다니까.”
“죄송하지만 다 들립니다만.”
“들리라고 한 거예요!”
제이스가 어이가 없었는지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그러지 말고 내기하시죠.”
“내기요?”
“저 승부의 승자를 정하는 겁니다. 저는 당연히 저 정체 모를 몬스터 쪽에 걸겠습니다.”
주소희가 흔쾌히 말했다.
“좋아요. 근데 뭘 걸 건데요?”
“그쪽이 이기면…….”
제이스가 자신의 통장을 툭 던지며 말했다.
“드리겠습니다. 대신 제가 이긴다면 최씨 특전대 인원 전부 미국과 계약하시죠.”
***
최강이 한국에 있다가 일본으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치의 스킬 중 하나인 디멘션 게이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강이 처음부터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S급 균열 안에서는 몇 번을 사용해도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스킬이었다.
결국 최강이 실마리를 푼 것은 한국에 도착해서였다.
디멘션 게이트를 사용하자 느껴질 리 없는 곳에서 자신의 내공, 즉 마나가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반응하고 있었다.
그랬다. 디멘션 게이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공간을 이어 줄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내공이었고 말이다. 당시에는 당연히 버프를 걸어 둔 상태였기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미사와 하야토에게는 자신이 균열에서 걸었던 버프들로 인해 다량의 마나가 남아 아직까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편리하단 말이지.’
아놀드와의 언어의 장벽을 해소시켜 준 또 하나의 스킬의 효과를 맛보고 최강이 만족스럽게 책을 덮었다.
“유니버셜 랭귀지 합격.”
통역이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디멘션 게이트보다 최강의 입장에서는 더 편리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 또한 나미사와 헤어지고 난 뒤 알게 된 스킬이었다.
“자, 그럼.”
구슬을 저지 호주머니에 넣은 최강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새 또 달려들어 주먹을 날린 샬렉이 보였다. 뭐 마찬가지로 손바닥에 허무하게 막히긴 했지만 말이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
“너, 나 아냐?”
바득바득 이를 가는 녀석의 얼굴이 어째선지 자신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이상하네…….’
자신은 이 녀석을 알지 못한다. 기억력이 나쁘단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어보는 말에 답은 하지 않고 연달아 공격해 오는 샬렉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 내던 최강이 샬렉의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먹였다.
짧은 거리를 밀려나는 샬렉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저건?’
최강이 샬렉의 잘린 한쪽 팔에 의족처럼 생겨난 또 다른 팔을 보고 말했다.
“따라 한다 이거냐?”
마치 타쿠마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 줬던 기술 같았다.
“하긴 방금 전 움직임도 얼추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최강이 양팔로 퍼붓는 샬렉의 공격을 피하다가 훌쩍 물러나고는 구슬을 다시 꺼냈다.
책의 형태로 바꾼 최강이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