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툭.
토산 정상에 샬렉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大’ 자로 드러누운 샬렉이 개미 무덤처럼 삼키는 토산에 빨려 들어가며 생각했다.
‘떠올려야 한다.’
차갑게 식은 샬렉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아주 오래전에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던 포식자.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이 이번 일격으로 확실해진 셈이었다.
생각하던 샬렉이 자신의 몸 상태를 슬쩍 훑었다. 수천수만의 잔상처가 난 온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 한 번 정도인가?’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다음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샬렉이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던 샬렉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움직일 수 없군.’
손과 발을 까딱여 보던 샬렉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의 형태에서는 은밀함과 유연함이 장점일지 몰라도 신속함과 파괴력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차피 속도로 승부를 볼 때였다.
***
무잘알의 회원들은 1차 토벌대의 영상은 건너뛰더라도 2차 토벌대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설 아놀드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무려 그 프락시온에 10년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 아놀드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마도 아무도 이것만큼은 예상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놀드의 패배를 말이다.
아놀드가 주저앉았을 때는 그야말로 그 시끄럽던 채팅방이 얼어붙어서 올라갈 생각을 안 할 정도였다.
그만큼 아놀드의 패배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던 그 순간, 정말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최강이었다.
처음 최강이 등장했을 때의 반응은 당황스러움이 반, 걱정이 반이었다.
└엥? 왜 프리저가 나오냐?
└명단에 없지 않았나요?
└도망쳐!! 왜 하필 지금인데? 랭커들 다 도망친 마당에.
아무리 그 프리저라고 하더라도 아놀드마저 쓰러트린 상대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또 한 번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으로 이어졌다.
└엥, 뭐야? 끝난 겁니까?
└쟤 죽은 거?
└사실 쟤도 지쳐 있었나?
└주서 먹기 오지네.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최강이 몬스터를 두들겨 팼기 때문에 얼떨떨한 반응이 되는 것도 일순간이었다.
└사실 저 사람 아놀드가 아닌 거 아님?
모든 것을 지켜봤지만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사실상 일반인들에게는 랭커는커녕 순혈 무림인들의 움직임조차도 번쩍이는 수준으로 보이는 정도이니 보는 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채팅방이 한창 시끄럽게 달아오를 때였다.
└엥 뭐임?
└헐…… 동료 아니었음?
방심한 틈을 타서 동료까지 흡수한 샬렉이 다시금 부활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
└GG…….
└명복을 빕니다.
이번엔 일반인들조차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의 검은 마나가 사방팔방 퍼져 나가 일대를 어둡게 만드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아놀드가 처음 녀석을 맞닥뜨렸을 때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지쳤던 최강이 운 좋게 녀석을 잡았지만 지금은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이어진 최강의 발차기를 목도한 모두는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그냥…… 최강이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만큼 강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5252 믿고 있었다고 젠장!
└저희가 ‘고작’ 최지우 씨와 이런 분을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프락시온은 아놀드도 사이먼도 춘페이도 아닌 프리저가 가야 한다.
벌써부터 최강의 실질적 랭킹에 대해서 행복 회로를 돌리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이러면 프리저가 이제 사실상 23위?
└그 이상이라고 봐도 되지 않음?
└근데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하면 발차기 한 방에 산이 생김?
└그냥 졸라 세게 차면 생기나 보죠…….
하지만 5분쯤 지났을 때였다. 시끄럽게 떠들던 모두가 깜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아놀드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 거대한 검은색 뱀의 머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샬렉의 작전은 간단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을 삼킨다.’
상대적으로 지친 아놀드를 삼키는 수를 택한 것이었다.
현재 자신의 몸 상태는 최강을 해치우기도, 그렇다고 녀석에게서 도망가기에도 충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작전대로 아놀드가 최강과 멀어졌을 때였다. 기다리던 샬렉이 마침내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쿠구구궁.
시작은 인간의 형태를 포기하고 바실리스크의 상태로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부터였다.
샬렉이 신체를 변형시키자 일순간에 화산이라 폭발한 듯한 굉음이 일대를 울렸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토산의 상층부를 날려 버리며 등장한 바실리스크 샬렉이 아놀드에게 일직선으로 쇄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목표인 아놀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샬렉은 그저 빛 그 자체였다.
쿵.
채 아놀드가 뒤돌기 전에 성공적으로 아놀드를 집어삼킨 샬렉이 지면을 갈아엎으며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한 뒤에야 멈춰 서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작전대로 성공시킨 샬렉이 아놀드를 잘근잘근 씹어 버리려고 할 때였다.
“어…… 어째서 네놈이.”
돌연 샬렉이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기억난다. 바실리스크랬던가?”
최강의 목소리가 샬렉의 입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쩐지 똥 덜 닦은 거처럼 기분이 께름칙하더라니, 덜 닦인 놈이 너였다 이거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직감한 샬렉이 최강이 들어 있든 말든 빨리 삼켜 버리려고 할 때였다.
움직이려던 샬렉의 턱 근육이 정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왼발…….”
꺼져 가는 듯한 샬렉의 음성이 울리면서 바실리스크 눈에서 파충류 특유의 날이 선 눈빛이 꺼지는 모습이 보였다.
날개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가던 샬렉이 머리만 남았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최강이 말했다.
“왜, 좀 짭조름했냐?”
***
상황이 종료된 것을 파악한 주소희가 통장을 조용히 집어 가며 말했다.
“아시겠어요? 우리 최강 씨가 이 정도예요.”
기세등등해진 주소희가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는 최말숙에게 말했다.
“준비해, 말숙아. 오늘은 최강 씨한테 말해서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자.”
“알겠사와요.”
주소희가 때마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최강을 보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일본에 있던 최강이 어째서 벌써 한국에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최강 씨, 있잖아요.”
“왜, 무슨 일 있었냐?”
최강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밝은 얼굴로 최강의 앞에 선 주소희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깜박했던 것이 떠오른 이유였다. 최강과 맺었던 그 계약 말이다.
자신이 최강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는 중에 수조 원의 돈이 생겨난 것을 최강이 안다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도 뻔했다. 아마도 당장 돈 내놓고 사라지라고 할 사람이 최강이었다.
‘어떡하지?’
주소희가 대충 얼버무릴 일을 떠올리며 최강의 앞에서 얼어붙어 있을 때였다.
“외식하자고 할 생각이었다면 포기해. 이틀 전에도 먹고 들어갔잖아.”
“네?”
넘겨짚는 듯한 최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밥하기 귀찮아도 그렇지, 너도 일 좀 해야겠다는 생각 안 드냐? 기간만 채우면 다야?”
“여…… 역시 그렇죠?”
최강이 웬일로 쉽게 물러나는 주소희를 의아하게 쳐다보다 잠시 후 시계를 보았다.
“뭐 이르긴 한데, 오늘은 이만 퇴근할까?”
최강이 준비를 마치고 나오는 최말숙을 데리고 퇴근 준비를 하자 조용히 제이스에게 다가간 주소희가 통장을 쓱 주머니에 다시 넣어 주며 말했다.
“이번만 봐주는 줄 알아요.”
제이스에게 통장을 건넨 주소희가 최강이 사무실을 나가자 따라 나가며 중얼거렸다.
“아, 씨…… 큰일 날 뻔했네.”
***
마지막에 최강을 보고 곧바로 의식을 잃어버린 나미사가 깨어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비몽사몽한 눈으로 낯익은 천장을 바라보던 나미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끊어진 의식이 돌아오면서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최강 씨를 본 거 같았는데…… 꿈인가?”
나미사가 현실과 꿈을 분간하기 위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조용한 바깥을 확인한 나미사가 곰곰이 생각했다.
‘잠깐…… 그보다 낮에 있었던 일은 진짜로 일어났던 일인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조용한 바깥도 바깥이었지만 상처투성이여야 할 온몸이 욱신거리는 곳 없이 말끔했기 때문이다.
역시 정황상 고약한 꿈이었던 것으로 단정 지은 나미사가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상대는 최강이었다.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꿈 이야기를 해 줄 심산이었다.
“안 받으려나?”
신호음이 길게 늘어지자 나미사가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오늘은 안 받으면 후회할 거거든요?”
“어차피 받아 봐야 야한 농담이나 성희롱이나 할 거잖냐?”
“아니거든요?”
반사적으로 최강의 목소리에 대답한 나미사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은 여전히 연결 중이었다.
“어라? 방금……?”
“몸은 괜찮아졌냐?”
나미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등 뒤에 서 있는 최강을 확인한 나미사가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최강이 말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냐?”
“이게 꿈이라면 말이죠. 보통 딱 이쯤에선 깨곤 했거든요?”
최강이 나미사의 볼을 꼬집어 늘어트리며 말했다.
“일단 꿈은 아닌 거 맞지?”
“그런 거 같눼요.”
바람 새는 목소리로 나미사가 답하자 볼을 놓아준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후회할 만한 이야기가 뭔데? 야한 농담이나 성희롱은 아니라고 했지?”
“그게 사실, 없어져 버렸어요. 방금 전에.”
“무슨 이야기였길래?”
“그게 사실, 낮에 있던 일이 꿈인 줄 알았거든요.”
나미사가 최강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꿈이 아닌 거죠?”
“뭐 그렇지.”
최강이 나미사의 질문에 긍정하자 나미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 그럼 질문이 있습니다.”
“뭔데.”
“오랜만에 제 가슴을 훔쳐본 소감은 어땠나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표정 변화 없는 최강의 말에 나미사가 야릇한 얼굴로 말했다.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답니다. 아까 하려던 이야기가 뭐냐고 물으셨죠?”
“그랬지.”
“그 이야기의 핵심이 최강 씨가 침을 질질 흘리시면서 제 가슴을 훔쳐본 것이었거든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최강이 말했다.
“침을 질질 흘렸다면 그건 꿈이 확실하거든?”
나미사가 풉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거짓말하시길래 저도 거짓말 좀 했을 뿐이랍니다.”
최강이 디멘션 게이트를 다시 열면서 말했다.
“여하튼 괜찮은 거 같으니까 난 간다.”
최강이 위아래로 길게 늘어진 타원 모양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나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강 씨!”
최강이 나미사의 부름에 비스듬히 뒤돌았다. 최강의 눈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미사가 보였다.
“감사해요.”
깍듯하게 고개 숙이는 나미사가 보였다.
“그런 저급한 농담이 아니라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라는 여자가 최강 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 보니 자꾸 아무 말이나 막 뱉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 아쉽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참 괜찮은 녀석인데.”
나미사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참고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닌데요?”
“그럴 거 같아서 말해 준 거야.”
최강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곧이어 게이트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홀로 남은 나미사가 말했다.
“정말 이민이라도 해야 할까?”
***
무잘알은 지금 새벽이 되었어도 폭주 상태였다.
전설 아놀드를 쓰러트린 몬스터를 처리한 게 다름 아닌 프리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크으으으으…… 주모!!
└샷따 내려 오늘 아무도 못 나가.
무잘알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커뮤니티 채팅방도 게시판도 내일이 월요일임에도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채팅은 초당 수십 개가 올라오고 있었고, 게시 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최강과 관련된 글이라면 30분도 안 돼서 10만 조회 이상은 기본으로 찍힐 정도였다.
참고로 방금 전 올라왔던 글 중에 ‘아직 올해가 시작된 지 2개월밖에 안 됐지만……’이라는 글은 채 5분도 안 돼서 10만 조회 수를 찍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잘알의 연례행사를 떠올리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무잘알은 연말에 다음 연도의 대문을 장식할 무인을 국내외 무인 할 것 없이 투표로 선출하는데, 지금 저 제목은 무잘알 회원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그 행사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기대를 하고 들어온 만큼 당연히 게시 글의 내용은 최강과 관련이 있었다.
내용은 최강이 발차기하는 모습이 찍힌 움짤들이었다.
가장 위에 원본 짤부터 서서히 느려져 가는 짤이 10배를 넘어서 100배에 달해서야 겨우 육안으로 발차기 공격이었음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보이는 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1,000배가 되어서야 정상적인 속도의 발차기를 확인한 네티즌의 댓글이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크…… 공감합니다. 미리 보는 대문.
└대문으로으로 가 버렷!!
└솔직히 올해는 투표할 의미가 사라졌다.
유저들의 지지를 받으며 글이 성지화되어 갈 때였다. 잠시간의 간격을 둔 새로운 글이 빠르게 화재가 되었다.
*이 시간 모두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일본이 내걸었던 현상금은 어디로?
그렇다.
대문 어그로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 수를 자랑한 이 글은 다름 아닌 일본이 내걸었던 현상금에 대해서 지적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