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9
9화
도로 위에 떨어진 엘리스가 자신의 흐릿해진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급격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엘리스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엘리스가 자신의 쭈글쭈글해지다 못해 손끝에서부터 가루가 되는 손을 확인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언제였지?’
엘리스가 자신이 죽는 이 순간을 만든 최악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현세에 처음 왔을 때, 불행히도 그 사내를 만났던 순간일까?
생각하던 엘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군락을 버리고 홀로 도망칠 것을 미루고 사내에게 저항했던 순간일까?
이번에도 엘리스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자신의 패착은 그 사내와의 사투로 부상당했을 때, 그 사내의 꼬임에 따라 이곳에 새로운 군락을 형성한 순간이었으니까.
터벅. 터벅.
엘리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최강의 기척을 느끼고 흐릿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을 본 최강이 말했다.
“뭐야, 너 살아 있냐? 방금 거 진심으로 친 거였는데.”
그런 괴물 같은 일격을 선사한 최강의 여전히 여유로운 말투에 엘리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놀랄 필요 없다, 고강한 기사여. 천주갑이 아니었다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터이니.”
“천주갑? 그게 뭐냐?”
최강이 말하자 엘리스가 팔로 허공을 수놓듯 움직이다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다음 순간 그 위로 옷이 하나 만들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넝마가 되었던 엘리스를 가려 주던 붉은 드레스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형태만 다르지 같은 것이라고 최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천주갑. 1,000년 이상 산 아라크네의 여왕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실로 만든 갑옷이니라.”
엘리스가 최강을 보며 말했다.
“기사여,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는가?”
“거래?”
최강이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엘리스가 말했다.
“천주갑을 그대에게 줄 테니 나의 왕국을 유린하고 나를 이곳으로 몰아넣은 사내에게 복수해 달라.”
의아한 얼굴로 골똘히 생각하던 최강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왕국을 부순 건 자신인데 자신에게 죽여 달라는 점이 이상했는데, 그 전에 엘리스의 복부에 나 있던 검상을 떠올린 것이었다.
“아! 네 배에 칼침 놓은 놈?”
“칼침……?”
아라크네가 체념한 듯 인정했다.
“말하자면 그렇겠지……. 들어주겠나?”
최강이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전에 생긴 의문이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거절해도 그 천주갑인가 하는 건 그대로 남는 거 아닌가?”
최강의 말에 엘리스가 말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최강이 엘리스의 흐릿한 눈 한편에서 묘한 확신이 넘치는 것을 발견했는지 말했다.
“그건 아닌가 보네.”
엘리스가 말했다.
“어쩔 텐가, 기사여. 나와 거래를 할 텐가?”
고민하던 최강이 선심 쓰듯 말했다. 엘리스의 몸이 부스러지다 못해 이미 상반신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이상 지체했다가는 나가리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개고생 한 김에 남는 게 하나라도 더 있으면 나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좋다. 까짓것, 기회가 되면 해 주지 뭐.”
최강의 말을 들은 엘리스가 기껍게 웃었다.
“크크크큭. 그 재수 없는 놈의 얼굴에 절망이 끼는 것을 못 본다는 것이 한이로구나.”
엘리스가 자신의 최후를 느낀 것인지 마지막 사력을 다해 말했다.
“그대의 무운을 빌겠다, 기사여. 녀석은 듀랑달…… 저주로 물든 데스 나이트의 보검을 사용하는 자다.”
사라락.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래가 되어 엘리스가 사라지자, 그녀가 남긴 천주갑을 집어 든 최강이 중얼거렸다.
일단 어찌 됐든 전리품을 얻었으니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근데 이거 사이즈가 좀…….”
최강은 어디까지나 건장한 남성이다.
키는 180센티미터에 달했고, 어깨는 무인의 특성상 일반적인 남성보다 넓었으면 넓었지 절대 왜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천주갑은 뭐랄까……?
“이거 여자용 아니야?”
누가 봐도 남성용도 아닌 여성용 같은 크기였다.
최강이 천주갑의 사이즈 때문에 불만을 토로할 때였다.
최강의 손에 들렸던 천주갑이 갑자기 붉은빛을 뿜는 모습이 보였다.
“함정?!”
좀 전에 엘리스의 변신 과정을 봤던 최강이 천주갑을 급히 집어 던졌다.
황급히 천주갑에서 물러난 최강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천주갑을 바라봤다.
천주갑을 노려보던 최강이 고개를 한차례 갸우뚱했다.
‘얼레?’
빛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머쓱해진 최강이 다시 조심스럽게 천주갑에 다가가서 혹시 모르는 마음에 발끝으로 툭툭 천주갑을 건드렸다. 그러자…….
번쩍.
발끝에 닿아 있던 천주갑이 한차례 빛을 뿜었다.
놀란 최강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최강이 다음 순간 몸을 피하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엥?”
천주갑이 방금 전까지 있던 곳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피던 최강이 이내 자신의 몸도 점검하기에 이르렀다가 천주갑이 자신의 초록색 추리닝 위에 또 하나의 추리닝이 되어 입혀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천주갑……? 어느 틈에? 아니…… 아니지, 그보다 외형도 마음대로 바뀌나?”
최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야~ 이거 괜찮네! 더럽게 촌스러워서 속에다가 입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솔직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잿빛의 면 옷 같은 느낌의 천주갑의 기본 외형이나, 최강이 평소 입던 초록색 추리닝이나 촌스럽기로 따지면 비슷했지만 본인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나 보다.
여하튼 천주갑의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한 최강이 또 다른 관심사에 시선을 던졌다.
천주갑이 있던 옆 모래 더미 위에서 특이한 생김새의 물체 하나가 아까부터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물체를 집어 든 최강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설마…….”
붉은빛의 기운이 서려 있는 구슬 같은 느낌에 대한 묘한 추측을 한 최강이 눈을 감았다.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다음 순간 눈을 뜬 최강이 말했다.
“내단이잖아?”
내단이 무엇이냐?
영물이나 신물들의 정수가 담긴 물건이다.
자신이야 이미 천목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내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고강한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현대 세계에서 내단이란 그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누구나 탐낼 법한 물건인 것이다.
최강이 만남은 구렸지만 끝은 깔쌈한 엘리스를 떠올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아낌없이 주는 거미였어.”
***
김준영이 방금 전 카페에서 만났던 여인의 이름은 주소희.
주씨세가의 2남 1녀 중 막내딸이었다.
김준영은 지금 주소희와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최강과 헤어졌던 곳까지 나와서 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겠지? 무슨 착오가 있었던 거야.”
김준영이 때마침 들려오는 뇌리 속의 주소희의 목소리에 현실을 부정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 프리저가 맞긴 한 건가요?
평소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당연히 코웃음 치며 큰소리쳤겠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었다.
주소희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주의 직계 딸이기 이전에 사람의 내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주소희가 그렇다면 여태 100에 100은 그래 왔고 말이다.
김준영이 안절부절못하며 최강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위험 구역 안쪽에서 불어오는 엄청난 강풍에 김준영이 버티다 못해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를 까치집으로 만든 김준영이 잠자다가 놀라 일어난 듯한 눈으로 멀뚱멀뚱 위험 구역을 바라봤다.
마른하늘에 태풍이라도 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김준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였다.
챙그랑.
이번에는 도시의 모든 유리가 일제히 조각조각 나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연달은 괴현상에 불안감을 느낀 김준영이 중얼거렸다.
“진짜 뭔 일 나는 거 아니야?”
아까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무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김준영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김준영이 두 눈을 감고 빌고 또 빌었다.
‘부처님. 하나님. 알라님. 제에에발…….’
만약 일반인을 프리저로 착각해서 밀어 넣었는데, 최강이 사체가 되어 돌아온다면 주씨세가는 둘째 치고 자신에게도 큰 징계가 협회로부터 내려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두 눈을 감고 기도하던 김준영이 생각해 보니 울컥했는지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게 왜 개자식이 프리저 행세는 해 가지고.”
“내가 최강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리고 프리저 행세? 그거는 또 뭐냐?”
김준영이 깜짝 놀라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상처 하나 없이 너무나도 태연한 최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아라크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도 마침 그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었다.”
김준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질문했다.
“네?”
“뭘 모르는 척하고 그래.”
말하던 최강이 싱긋 웃었다.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
***
주소희는 김준영이 돌아간 후로도 카페에 계속 앉아 있었다.
내일이면 남은 병력을 데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아라크네를 해치우러 가야 하는 마당에 이러나저러나 오늘 들여보낸 최강이 들고 올 결과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딸랑.
때마침 카페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주소희의 눈에 최강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빈 카페를 쓱 둘러본 최강이 주소희를 발견했는지, 중앙에 있는 테이블을 향해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었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주소희의 맞은편에 앉은 최강이 말했다.
“이봐, 내가 지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이유가 뭔지 알아?”
주소희는 내공 한 줌도 없는 최강이 위험 지역에 들어갔다가 어떻게 생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불만을 느끼는 점이 무엇인지 익히 짐작했다.
김준영이 독단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아라크네가 두 마리나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묵인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최강이 두 마리의 아라크네를 해치웠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주소희가 말했다.
“대충은 알고 있답니다.”
“뭐야, 알고 있었어?”
“…….”
유구무언이라고 주소희가 침묵하자, 기세를 탄 최강이 따지듯 물었다.
“뭐, 좋아. 알고 있었다니 이야기가 쉽겠네. 어떻게 할 거지?”
주소희가 따지고 드는 최강의 물음에도 흔들림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아라크네가 두 마리였던 것에 대해서는 사전에 감추었던 저희의 잘못도 있으니까요. 돈을 원한다면 돈을 드려도 좋고 물건이라면 가능한 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최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두 마리? 다섯 마리겠지.”
주소희가 최강의 말에 모르겠다는 듯한 느낌의 물음을 던졌다.
“네?”
자신이 프리저를 그토록 찾았던 이유는 내일 결전을 앞두고 어떻게든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라도 사전에 해치워 두자는 의미가 아니었던가?
때문에 주소희는 최강이 건수 잡힌 김에 제대로 뜯어 보려는 속셈으로 일을 과장시킨다고 생각했다.
아라크네 다섯 마리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정도면 국가 비상사태나 다름없는 규모였으니까.
주소희가 말했다.
“과장이 심하시군요. 다섯 마리라니요.”
“뭐? 과장?”
최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아…… 이해했다. 이거 뭐, 그건가? 모르쇠 작전이야?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주씨세가 이거,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냐?”
주소희도 이쯤 되면 차분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최강의 반응에 그녀답지 않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짓말도 상황을 봐 가면서 치도록 하세요. 저희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바, 약속했던 자격증과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신다면 합당하다 생각하는 수준까지는 드리겠습니다. 이걸로 만족하세요.”
“하……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가면 다섯 마리 사체가 떡하니 있는데도 뻔뻔하게 나오시겠다? 좋아, 내가 주씨세가 이거 몹쓸 놈들이라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녀 주마.”
드르르륵.
최강이 의자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았다. 주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이미 늦었어. 내가 깔끔하게 인정한다기에 적당히 받을 것만 받고 빠질랬더니 공갈범으로 몰아?”
자리에서 일어난 주소희가 자신을 무시하고 나가려는 최강의 앞을 황급히 막아섰다.
“무슨 말이죠? 다섯 마리의 사체라는 게?”
최강이 짜증 섞인 눈으로 주소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애초에 아라크네인지 하는 거미 년들 치워 달라 한 건 그쪽이 아니었나?”
주소희의 눈에 미세한 동요가 맺혔다.
때마침 주소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준영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주소희가 멍한 눈을 해 보였다.
‘진짜였어……?!’
휴대폰을 통해 김준영이 전한 말은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다섯 마리의 아라크네의 사체와 고치가 되어 있던 생존자들에 대한 내용.
주소희가 아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최강의 내공을 읽기 위해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다.
‘이…… 이럴 수가?’
아까는 보이지 않던 밝게 빛나는 붉은빛 내공이 최강의 전신을 감고 있었다.
이제야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주소희가 어떤 말을 먼저 건네야 좋을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조금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대로 최강을 보내면 큰 후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같이 점심이라도 하는 게 어때요? 대화로 풀도록 하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