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최지우는 1년 가까이의 후유증 때문에 현대의 기억이 거의 없다.
때문인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꿈을 꾸면 아직도 고려 시대의 꿈을 꾼다.
오늘은 오랜만에 꿈을 꿨는데 참회동에 들어가던 순간의 꿈이었다.
끄으으응.
잠에서 깨어난 최지우가 기지개를 켜더니 머리맡에 놓인 낭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어쩌지?”
그날 참회동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동했던 무리 중에 최지우와 마지막에 참회동 앞까지 도착했던 그 녀석.
이 낭은 그 녀석이 최지우의 배를 걷어차기 직전 오동골 돌다리 옆에 사는 자신의 누이에게 전해 달라며 주었던 물건이다.
사실 최지우가 살아 있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그 녀석 덕분인 것이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죽기보다 힘든 일인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열어 보니 낭에는 결혼을 축하한다고 적힌 쪽지와 함께 2개의 금가락지가 들어 있었다.
왜 이것을 자신에게 주냐며 물었던 내 질문에 녀석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낯부끄럽게 그딴 걸 어떻게 직접 주냐?
풋.
옅게 웃은 최지우가 낭을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뭐 어쨌든 덕분에 현대로 넘어와 도련님을 모실 수 있게 됐으니 좋은 일이지만, 이제는 어디 사는지는커녕 어디 묻혔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물건을 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임을 알았기 때문에 솔직히 기분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꿈을 털어 버리듯 이불에서 몸을 일으킨 최지우가 중얼거렸다.
“그럼 가 볼까?”
***
내 이름은 최지우.
나의 일과는 간단하다.
도련님의 시작과 끝을 보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도련님.”
내가 도련님이 나오시는 것을 보고 90도로 인사하자 도련님이 말했다.
“근데 지우야.”
“네, 도련님.”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런 거 안 해도 된다.”
이런 거…….
하긴 현대에서 만난 도련님은 나에게 번번이 이렇게 말해 왔었다.
“그냥 너 할 일 하면서 살라고.”
아마도 현대까지 와서 나를 묶어 두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나를 잘 모르기에 하시는 말이었다. 고려 시대의 엄격한 신분의 차이가 있던 나에게 유일하게 친동생처럼 대해 주셨던 분이 도련님이고 또 서화 형수님이었다.
도련님은 나에게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셨으면서도 반대로는 생각 못 하시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도련님은 그냥 가족이었다. 도련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나를 보던 도련님이 현관문에서 나와 계단 쪽으로 걸어가자 이어서 나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주소희와 최말숙.
도련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다.
최말숙이 도련님께 아버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양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의문이었다.
‘도대체 주소희 저 사람은 뭐지?’
물론 최말숙은 주소희에게 어머님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도련님과 주소희는 부부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묘하게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어째서 세 사람이 같이 살까?
어쩔 수 없다. 궁금하면 물어보는 수밖에.
“저 도련님. 그런데 주소희 씨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계단 쪽으로 걸어가던 도련님이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말했다.
“도저히 두 분이 동거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현대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은 형수님이십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도련님이 잊고 있던 걸 떠올린 얼굴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긴 도련님이 주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너! 방 구해서 나가라.”
도련님이 통보하듯 말하고는 계단으로 내려가 버리자 깜짝 놀란 주소희가 나를 말없이 노려보다가 빠르게 도련님을 따라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만요, 최강 씨.”
왜인지 미움받은 것만 같은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이겠지?
***
최강이 불편해도 주소희를 데리고 살았던 것은 처음에 좋지 못한 인상을 남겼던 그녀를 골려 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일이었다. 한마디로 옆에 두고 좀 갈구겠다는 의미가 다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확실히 옅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즉, 주소희와 번거롭게 같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강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주소희가 숨 차는 얼굴로 쫓아오며 말했다.
“저, 최강 씨. 그거 진심은 아니죠?”
“뭐가?”
“집 나가라는 말 말이죠, 뭐긴 뭐예요?”
최강이 주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진심인데?”
“그치만 돈 아깝잖아요!”
“뭐 그렇긴 하다만…… 돈이야 지금 어디다가 써야 할지 모르는 판이잖아. 솔직히 실제로도 통장에 있는 돈만 해도 생전에 다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거야 최강 씨가 흥청망청 안 쓰니까 그런 거잖아요?”
최강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 말, 방금했던 말하고 상당히 모순되는 말이다, 너?”
최강이 어째선지 부들부들하는 주소희를 보고 있을 때였다.
주소희가 한쪽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소원권.”
“뭐?”
“소원권 쓰겠다고요. 그러니까 쫓아내지 마요.”
어젯밤 맞고로 늘어났던 소원권을 사용하겠다는 말 같았다.
‘이걸로 그럼 1개 남은 건가?’
최강의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하긴 해도 딱히 손해 볼 것이 없었으니 땡큐였다. 하지만.
‘근데 뭔가 이상한데?’
최강의 생각이 갑자기 깊어졌다.
주소희 저 녀석도 불편한 건 피차일반이었을 텐데 구태여 소원권을 사용하면서까지 같이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간 생각하던 최강이 주소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뭐…… 왜요?”
주소희의 눈이 묘하게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휙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뭔데요? 말해 봐요.”
마침 소파 앞까지 도착한 최강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야.”
“뭐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 좋아하지는 말아라?”
리모컨을 조작하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최강의 목소리에 주소희가 말했다.
“왜…… 왜요? 무…… 무슨 안 될 이유라도 있으신가?”
주소희는 마음을 들켰다는 충격보다 차였다는 것에 정신적인 대미지가 더 있어 보였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인지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 주소희의 모습에 픽 웃은 최강이 말했다.
“이유는 무슨.”
TV를 향하던 시선을 최강이 소파 뒤편의 주소희에게 슬쩍 옮기며 말했다.
“나 솔직히 그 방면으로는 별로 흥미가 없으니까 감정 낭비 하지 말라는 거지.”
주소희가 말했다.
“그거,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어요?”
최강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야, 너 울겠다?”
“답이나 하시죠. 말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제법 알고 지냈지만 저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최강이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어이없는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당연한 걸 묻냐? 한 1년 정도 겪어 봤으면 알 거 아니야. 내가 그런 거에 관심 없는 거.”
“그럼 됐어요.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제가 생각해 보고 결정할 테니까 일단 쫓아내지는 마세요.”
평소처럼 사무용 컴퓨터에 앉아서 본인이 할 일을 시작하는 주소희를 보던 최강이 머쓱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니, 그냥 싫어한다고 했으면 어쩌려고 저래?’
솔직히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누가 놓고 봐도 최강은 여자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신랑감은 아니다.
특히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자를 필요로 하는 현대의 남성관에 놓고 보면 더욱더 그렇다.
최강 스스로도 생각하기에 자상한 말은커녕 싱크대 앞에서 쌀 씻는 여자한테 ‘꼬들밥으로 해라. 뒤지기 싫으면.’이라고 말할 법한 남자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어쩌겠나? 다 이 죄 많은 얼굴이 문제지.’
최강이 가장 안 그럴 것 같던 주소희마저 꼬셔 버린 미친 얼굴에 심취해 있을 때였다.
마침 모든 사건의 원흉 최지우가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
“…….”
약간 부은 주소희의 눈이라거나 묘한 사무실내의 분위기라거나 여러 가지를 살피던 최지우가 조심스럽게 최말숙에게 가서 말했다.
“분위기 왜 이래?”
“작은아버님 덕분에 가정에 혼란이 온 것이와요.”
“뭐야. 나 때문이야?”
최지우와 최말숙이 구석에서 조용히 속닥이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 문밖에서 손짓하는 류세란을 발견한 최말숙이 말했다.
“됐고, 저쪽이나 가 보시와요.”
“어? ……어.”
최말숙의 말 덕분에 류세란을 발견한 최지우가 사무실을 나와 류세란과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류세란이 말했다.
“어때요?”
“오…… 역시 형수님이십니다. 장족의 발전이십니다.”
“그래요? 사실 엄청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최지우는 요즘 류세란의 훈련을 봐 주고 있었다.
일본에 다녀온 후 또 한 번 주소희와 벌어진 차이를 의식한 류세란이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최강에게 요청해서 의형기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 주소희도 같이 강해지는 것이다. 일단 차이를 좁히고 싶은 마음인 류세란에게 오히려 그건 곤란했기에 최지우를 선택한 것이었다.
류세란은 요즘 의형기의 모양을 원에서 세모로, 네모로 빠르게 바꾸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 정도 수준이면 오늘부터는 한번 달리면서 모양을 바꿔 보도록 하세요.”
모양 바꾸기 다음은 달리면서 바꾸기였다.
“네. 알았어요.”
최지우와 대화를 하던 류세란이 궁금한 게 떠올랐는지 말했다.
“근데 지우 씨,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왜 제가 형수님이에요?”
***
최강이 샬렉과 싸웠던 장소는 며칠 사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고 한 남자가 말했다.
“오, 많기도 하네.”
키가 180센티미터 남짓에 최강과 비슷한 균형 잡힌 체형의 유럽권의 남성이었다.
남성이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어때?”
사진을 가지고 눈에 비치는 풍경과 번갈아 가며 대조해 보던 여자가 곧이어 말했다.
“확실히 이 정도면 확인해 볼 가치는 있는 거 같달까? 뭐, 마지막 일격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여자는 남자의 동료 같았는데 170센티미터가 조금 안 되어 보이는 키에 마찬가지로 유럽권의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엘리자, 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란 말이지?”
“그래, 이 정도면 시험을 보는 건 상관없겠어.”
엘리자가 보기 드문 은발을 목뒤로 보란 듯이 넘기며 새침하게 말하자 남자가 말했다.
“근데 말이지, 엘리자?”
“왜?”
“찾는 거 좀 도와주면 안 되냐?”
“무슨 소리야. 원래 찾는 건 네 역할이잖아.”
직경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샬렉의 머리 위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시선을 슬쩍 옮겼다.
“그나저나 주변이 좀 시끄럽지?”
아래쪽에서 위험하니까 내려오라며 시끄럽게 떠드는 무인들을 보다가 엘리자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됐지?”
남자가 소리 없이 이빨을 보이며 씩 웃자 엘리자가 말했다.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이 일제히 정지한 사람들을 보고는 남자가 말했다.
“글쎄…… 한 반나절 정도……?”
엘리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친…… 거지?”
“어쩔 수 없다고. 사실 반나절도 자신 없어. 이미 누가 주워 간 것처럼 흔적도 없이 깨끗해.”
“그 말, 진짜였어?”
“그럼 가짜겠냐?”
엘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자의 특기는 무력도 무력이지만 탐색.
즉, 자신보다 훨씬 이쪽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말이었는데 주변에 있어야 할 것을 못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남자의 말마따나 이곳에서 죽치고 있어도 답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봐, 쇼튼.”
“왜.”
엘리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포탈이 하나 생겨났다. 엘리자가 쇼튼을 보며 말했다.
“가자. 있을 만한 곳이 생각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