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대화가 끝나고 나오는 엘리자의 표정은 곱지 못했다.
쇼튼이 엘리자를 보며 말했다.
“잘 참았어. 덕분에 절반이라도 건진 게 어디냐.”
“알았으면 빨리 크리스에게 보고나 해.”
“네네, 알겠습니다.”
엘리자를 달래듯 말한 쇼튼이 휴대폰을 빼 들었다.
잠시 후 쇼튼의 휴대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락이 많이 늦었군. 엘리자와 또 다퉜나?
“아니…… 차라리 그런 일이었다면 더 빨랐겠지.”
물론 다툰다는 말은 옳지 않다. 자신의 파트너인 엘리자의 심술이 발동해서 그 심술을 풀어 주는 게 보통 일반적이니 말이다.
-그럼 왜 이렇게 늦었지?
“일단 문제가 좀 복잡하긴 한데, 그 부분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하는 걸로 하고.”
-…….
“등급부터 말할게. 마나 플로라이트의 등급은 S급이었어. 지금껏 발견된 것 중에서도 상당히 질이 좋은 편의 S급이야.”
-S급 확실한가?
최강의 손에 들려 있던 크기와 빛깔 그리고 기운을 돌이켜 생각하던 쇼튼이 말했다.
“그래. 대충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질이 좋았으니까 확실해.”
당연하지만 S급은 흔한 등급이 아니었다. 프락시온 내부에서도 전부 다섯 번밖에 수집한 적이 없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바로 볼 수 있나?
“아니. 말했잖아. 문제가 좀 있다고.”
-무슨 문제길래?
“전에 말했지. 그 녀석 입단 테스트 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최강의 이야기 같았다.
크리스가 며칠 전에 들었던 것 같은 말을 떠올리듯 말했다.
-최강인가, 하는 그 녀석 말인가?
“그래. 혹시나 해서 녀석에게 접근해 보니 녀석이 가지고 있었다.”
말하던 쇼튼이 귀찮은 목소리로 바꿔 말했다.
“뭐…… 힘으로 빼앗는 것도 고려해 보긴 했는데, 마나 플로라이트를 쥐고 있는 상태라서 그건 확실히 힘들 거 같기도 했고 말이야.”
크리스가 의문점이 생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하군.
그날 바실리스크를 사냥할 때 본 결과, 최강은 분명히 무투가 계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녀석이 탐지계처럼은 보이지 않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오히려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
만약 녀석이 무도 계열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날 거기서 헛우물 캐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 때문인지 조금 혼란스러운 듯 쇼튼이 말했다.
“마지막 녀석이 입속에서 했던 공격. 그거 아마 왼발 발차기 맞지?”
-그래, 주발이 왼발이었으니까.
크리스도 쇼튼도 그날 최강이 바실리스크를 사냥한 이후에 영상을 본 바가 있다.
최강의 오른발 발차기.
분명히 뭔가 자세도 위력도 굉장한 발차기였지만 위화감이 느껴졌었다. 최강이 이전에 보였던 움직임이나 동작에서는 왼발을 중점적으로 쓰다가 첫 번째 발차기에서는 오른발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오른발 발차기는 완급 조절용 발차기였고, 사실 핵심 공격은 왼발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측한 것이었다.
“그 위력, 분명히 탐지계는 아니었어.”
-나도 동감이다만. 그럼 거래는 잘했나?
쇼튼이 말했다.
“거래야 잘하긴 했는데…… 결론은 뭐, 절반을 줘야 할 거 같아. 물건도 아직은 최강 그 녀석이 가지고 있고.”
-…….
잠시간 고민하던 크리스가 말했다.
-꼼수를 써 보는 것은 어떤가?
“안 될 거 같아. 이유야 모르겠지만 일단 플로라이트를 집어 들고 간 녀석이잖아? 들킬 확률도 적지 않은 데다가, 그럴 경우 거래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릴 수도 있는 귀찮은 성격이야.”
슬쩍 A급 플로라이트와 바꾸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던 크리스가 단념했다.
-알았다. 일단 복귀하도록 해.
“잠깐, 크리스.”
-뭐냐? 따로 할 말이라도 있나?
쇼튼이 말했다.
“그 녀석 말이야.”
-최강 말인가?
“그래. 녀석이 입단 테스트를 거부하더라고. 어떻게 할까? 그냥 포기해?”
크리스가 말했다.
-무슨 다툼이 있었나?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직감상 그쪽은 아니야. 그냥 애초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았달까?”
-…….
크리스의 침묵이 길어졌다. 쇼튼이 말했다.
“크리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문제는 조금 더 지켜보는 걸로 하고 일단 보류한다. 복귀해.
“어.”
전화가 끊기자 엘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일전에 보았던 포탈이 하나 생겨나는 모습이 보였다. 공항으로 이어진 포탈이었다.
“가자.”
***
최강에게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잃어버린 이씨 문중은 그날 이후 결계를 더욱 강화했다.
당시 최강이 다른 세력과 손을 잡고 밀고 들어올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만 놓고 보면 옳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최강은 지금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에서 감당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뭐 어찌 됐든 적어도 최강이 한국에서 사라질 때까지 안전을 도모할 생각이었던 이씨 문중은 평화로운 나날을 이어 가고 있었다.
오늘 견고한 결계를 뚫고 의문의 무리가 공격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 도망쳐!”
“커억…….”
이씨 문중의 결계 안쪽으로 숨어든 무리는 강했다.
이씨 문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들이 아니었다.
일행은 총 다섯 명 정도였는데, 전부 100위권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살려 주세요. 제발…….”
아이를 감싸 안은 젊은 여성을 노려보던 남자가 가차 없이 여인과 아이를 함께 베고 돌아섰다.
미리 주변을 정리한 네 명이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네 명의 무리에는 청년의 모습을 되찾은 샤오첸의 모습도 보였다.
“어디지?”
남자의 물음에 샤오첸이 말했다.
“기다려 봐라.”
자신의 허리춤에 달고 있던 검집을 빼 들어 보던 샤오첸이 말했다.
“이쪽으로 가면 되겠군.”
“가자. 앞장서라.”
샤오첸의 검집에는 청화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최강은 요즘 고민이 있었다. 마나 플로라이트는 다행히 사용할 곳을 적당히 찾아냈지만 그날 함께 얻은 마석은 달랐기 때문이다.
최강이 사무실 테이블 위에 깔린 하얀 수건을 바라보았다. 수건 위에는 사과만 한 크기의 마석이 놓여 있었다.
‘뭐 어쩔 수 없나?’
그날 프락시온의 두 사람이 방문했을 때도 마석은 지금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프락시온 두 사람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이유는 간단하겠지.’
아마 녀석들도 사용할 방법이 없다거나, 있어도 효율이 좋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별다른 사용처가 생길 거 같지는 않다고 판단한 최강이 최말숙을 바라봤다.
“말숙아.”
최강의 눈에 고개 돌리는 최말숙의 모습이 보였다.
“부르셨사와요.”
“손.”
최강이 펼쳐진 최말숙의 손바닥을 보고는 테이블 위에 마석을 집어 내려놓았다.
“이걸 왜……?”
“우리 말숙이 가지라고.”
좀처럼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최말숙이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이만한 크기의 마석은 태어나서 처음 볼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는데 자신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진심이신 것이와요?”
“그래, 근데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물어보자면, 이거 먹는다고 막 겉모습이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지?”
“물론인 것이와요. 마나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변하는 거였다면 300년간 그런 모습이었을 리는 없는 것이에요.”
이전번에도 그랬지만 마석이 외관을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최강이 말했다.
“그래.”
최강이 맞은편에 앉아서 야금야금 한입씩 마석을 먹는 최말숙을 지켜보고 있자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심부름을 보냈던 최지우가 들어왔다.
최지우가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별일은 없었고?”
“물론입니다. 끽해 봐야 유형기 조금 다듬어 주는 일인데요.”
최강은 최지우가 합류한 뒤부터 최씨 문중의 지도를 최지우에게 일임했다. 어차피 알려 주는 것 정도야 최지우여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고생했다.”
최강이 다시 최말숙에게 시선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최지우가 최강의 고개를 붙들어 세웠다.
“저, 그런데 도련님. 1장로가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할배가?”
“네. 청화수에 대해서 알아봤지만 알 수 있는 게 없었답니다. 추가로 이씨 문중에 대해서도요. 아무래도 작정하고 잠적한 거 같답니다.”
최강은 그동안 1장로에게 시켜서 청화수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 지금 주인이 누구인지, 어디 있기에 모습이 안 보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참 신기한 일이죠? 청화수 정도의 명검이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을 리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최강이 최지우의 말에 동조하며 대화를 다시 마무리했다. 최지우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신경 쓰였는지 슬쩍 최강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근데 도련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저거 먹어도 되는 거였습니까?”
“몰라. 본인이 맛있게 먹잖아.”
오독오독 소리 내며 먹던 최말숙이 마침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최강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
협회의 1층 동쪽 안내 데스크는 조금 특별하다.
협회의 50층 이하의 모든 안내 데스크들과는 다르게 매일 같은 사람이 근무를 서기 때문이다.
동쪽 안내 데스크에서 매일 고정으로 근무 서는 사람은 진유화.
최강이 우범하에게 사무실을 부탁할 때 최강을 담당했던 안내원이었다.
진유화의 인생은 반년 전 그날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월급 50% 인상, 격려휴가 1주일.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위해 옆자리의 파트너 근무자 지정권까지.
이 모든 것이 단지 1층까지 마중 나온 김 비서관의 불편한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최강이 친절해서 그런 건 없었다고 뱉었던 한마디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때문에 그날 이후 진유화는 모든 안내원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자신들도 거물 인사를 멋지게 상대해서 진유화처럼 포상 좀 받고 싶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최강이 동쪽 안내 데스크만 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안내원들은 방법을 바꿨다.
불러올 수 없다면 최강의 경로로 자신들이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유화 씨, 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 그랬던가?”
“네?”
“소개받을래?”
“뭐야, 진짜로? 나도 진짜 괜찮은 남자 있는데 소개해 줄까? 어디 보자, 사진이…….”
“괘…… 괜찮아요.”
안내원 진유화가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한참 여유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데스크로 황급히 돌아갔다. 자리가 불편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오늘은 최강의 방문이 예정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진유화가 이른 시간에 자리를 뜨자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한 친한 동료가 말했다.
“어? 아직 시간 많이 남지 않았어?”
“불편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충 짐작이 됐는지 동료가 말했다. 이런 일,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화야, 힘내. 버티고 버텨서 내 자리까지 꼭 지켜 주는 거야.”
“노력하는 내 모습 안 보여?”
동료가 진유화의 엉덩이를 강하게 한 대 치더니 씩 웃었다.
“아주 잘 보이지. 내가 덕분에 얼마나 편한데.”
“치…….”
진유화가 자리에 앉아서 근무를 다시 시작하자 잠시 후 교대 시간이 되었고 동료가 일어났다.
식사를 아직 못 한 자신의 동료가 진유화의 어깨를 고생하라는 듯 툭 치며 식사를 하러 갔다.
“그럼 노오오오력하고 있어라. 나도 밥이나 먹고 올 테니까.”
진유화가 멀어지는 친구에게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자 때마침 고객 한 명이 다가왔다.
기다렸던 손님 최강이었다. 솔직히 말 한마디에 이렇게 사람 인생을 바꿔 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진유화는 묘하게 최강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늘도 협회장님을 만나러 오신 거죠?”
진유화가 웃는 얼굴로 접대한 최강이 김 비서관과 함께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옷차림 때문인가?”
꼭 옆집 사는 이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