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06)
호사퀸 공작은 결심했던 날로부터 머지않아 에반젤린 로한슨을 감옥에서 빼돌려 꺼내 왔다. 분명 천천히 마주하기로 계획했을 텐데, 공작 부인이 산책로를 멋대로 이탈하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공작 부인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데다가 하필 그 장면을 집사인 리코라드카에게 들켜 당시에 있던 하녀들은 크게 꾸지람을 들은 후 공작 부인을 모시러 복귀할 수 있었다.
“니겔라, 너도 서둘러 도와! 공작 부인께서 유리 온실로 가신대!”
복귀하자마자 이런 소란에 휘말릴 줄은 몰랐다. 니겔라는 온실에 있는 수조에 잠긴 덩어리들을 떠올렸다가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뭐? 하지만 온실에는 그… 작은 괴물의 시체들이 있잖아?”
“그래서 급한 거야! 너도 이거 받아.”
니겔라는 자신의 신장보다 기다란 천을 받아 들고는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렸다.
“이건 왜…?”
“뭐겠어. 가리려는 거지!”
니겔라를 포함한 공작 부인의 하인들은 부지런히 천을 날라 유리 온실에 쌓아 둔 수조들을 덮었다. 호사퀸 공작가에서도 온실의 비밀을 아는 건 아주 소수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온실에서 대공사가 이뤄지는구나 하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니겔라를 포함한 하인들은 부지런히 수조들을 구석에 몰아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천을 덮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품에 쥐 시쳇더미를 안고서도 한참 후에야 징그럽다는 감상이 들 정도였다. 그 덕분에 무사히 공작 부인이 예고한 시간에 맞출 수가 있었다.
“아마란스, 어때. 굉장히 예쁘지?”
공작 부인은 한참을 유리 온실을 맴돌며 온실을 자랑했다. 니겔라는 뒤를 따르며 부디 공작 부인이 구석에 덮인 천을 궁금해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니겔라의 바람은 어그러져 공작 부인은 천에 관심을 보였다.
“여기가 볕이 가장 잘 드니까 좋다. 그런데 저기 덮인 건 뭐니?”
“햇빛이 너무 거세서 꽃이 시들까 봐 잠시 천으로 덮어 놨습니다.”
“그렇구나.”
다행히도 공작 부인은 꽃을 아끼기에 별다른 말 없이 쉬이 넘어갔다. 대신 천의 바로 근처에서 다과를 즐기겠다며 테이블과 의자를 옮겨 오라고 명했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에 있어야 한다니…. 아마란스, 우리가 불쌍한 꽃의 옆에 앉아서 말 상대가 되어 주자.”
다른 곳이 어떠냐며 회유했다가는 드디어 안정을 찾은 공작 부인이 다시 아이처럼 울며 생떼를 부릴지도 몰라 하인들은 그냥 말을 따랐다. 유리 온실로 아마란스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겠다며 결국 공작이 허락할 때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니겔라는 상을 차리고, 차를 내린 후 뒤로 물러나 테이블을 바라봤다.
따스한 햇볕이 미처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 초록이 무성한 호사퀸 공작가의 후원에서는 쥐의 사체 더미를 천 한 장 차이로 옆에 둔 채 한창 소꿉놀이 같은 다과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하얗게 새 버린 백발을 어린아이처럼 양옆으로 땋은 후 보닛을 눌러쓴 노인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마란스, 어서 마셔 봐.“
공작 부인의 재촉에 소녀는 찻잔을 집어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가 마시지 않고 향만 음미한 후 잔을 다시 내려놨다. 일련의 행동은 미리 짜인 듯 굉장히 정교하였다.
”향이 좋네요.“
코를 찡긋거리며 냄새를 맡지도 않았으면서 사르르 웃으며 거짓을 내뱉었다. 이것이 어디까지나 소꿉놀이에 불과함을 상기시키자 소녀의 태연한 거짓말도 너그럽게 봐줄 만했다. 애초에 냉차를 준비한 것도 아닌데 찬물에 담갔다고 차가 우러날 리가 없었다.
공작 부인이 하녀들을 향해 뜨거운 수프를 끼얹어 사람 하나가 크게 다친 이후 공작은 결코 다과 시간에 따뜻한 차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동료 하나는 목이 졸렸다며 막대한 금화를 받고 시골로 떠났다. 한 번 죽을 뻔한 대가로 죽을 때까지 펑펑 놀고 살 돈을 얻는다는 건 니겔라가 보기엔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그렇지? 네가 평소 즐겼던 차를 준비해 달라고 했어.”
”배려 감사해요.“
의례적인 인사에도 공작 부인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히 웃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하인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공작 부인이 웃으시는 게 얼마 만이지?”
오래전부터 공작 부인을 모시던 연로한 하녀가 선창하자 이어서 동조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무엇보다 제대로 대화가 된다는 게 너무 놀라워….”
“갑자기 공작 전하가 아마란스, 아니 에반젤린 님을 데려오신다고 했을 때는 눈앞이 껌껌했는데….”
“그러니까. 다른 건 다 기억 못 하시잖아. 심지어 리코라드카 집사님마저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출가한 딸은 저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다니 참 신기하지.“
“꼭 아가씨가 돌아오신 것 같아.”
니겔라는 아마란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그저 로한슨 영애가 친모를 많이 닮았구나 하며 수긍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니겔라는 눈치를 보다가 하인들의 수다에 끼어들기 위해 한마디를 얹었다.
“로한슨 영애가 아마란스 님과 많이 닮으셨나 보네.”
“너도 아마란스 님을 봤다면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을걸. 공작 부인뿐만이 아니라 나조차도 아가씨가 살아 돌아오셨다고 착각했을 정도니까.”
호사퀸 공작이 딸과 절연을 결심했을 때 저택에 있는 아마란스의 초상화를 모두 불태웠기 때문에 니겔라는 아마란스의 얼굴을 몰랐다.
니겔라는 딸이 어머니의 얼굴을 닮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건만 왜 다들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며 눈길을 돌렸다.
공작 부인과 에반젤린은 하인들이 속닥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저들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었다. 망령이 든 공작 부인이 두렵지도 않은 건지, 노인과도 같은 백발을 늘어트린 로한슨 영애는 아주 태연하게 공작 부인의 상대를 해 주고 있었다.
“아마란스. 내일은 엄마랑 같이 쇼핑을 하러 나갈까?”
“내일 몸이 괜찮으시다면요.”
“그럼 오늘 푹 자 둬야겠네!”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소리와 공작 부인이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온실 안에 퍼졌다. 공작 부인이 중풍을 앓은 이후로 비명과 울음소리만 가득하던 호사퀸 공작가에서 정말 오랜만에 맞는 평화였다.
조금 전까지 수조를 가리느라 분주히 뛰어다녔던 탓에 몹시 지친 탓일까. 가만히 서서 햇볕을 내리쬐며 평화로운 다과회를 보고 있으니 긴장이 풀려 마음이 따뜻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집사에게 혼쭐이 나고 왔다는 것조차 잠시 잊을 정도의 나른함이 온몸을 잠식했다.
이윽고 니겔라는 그만 깜빡 졸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귓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몸이 추락하듯 심장이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졸았다는 사실이 들키면 또 집사에게 혼날 게 뻔했다. 니겔라는 졸은 적이 없었다는 양 몸을 바로 세웠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기를 바랐으나, 니겔라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니겔라는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공작 부인과 에반젤린은 한창 담소를 나누는 중이니 분명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동료일 것이다.
‘그런데 동료의 시선이 이렇게 진득하고 음침했나?’
발끝이 오므라들고, 영문모를 오한이 들었다. 소름 끼치는 불길함이 니겔라를 신경 줄을 갉아 먹었다. 누군가 니겔라를 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니겔라가 참지 못하고 슬쩍 곁눈질로 옆을 바라봤으나 온실에서 니겔라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대체 방금 느꼈던 시선은 무엇일까? 옆에 서 있는 하녀가 니겔라가 부산스럽게 움직이자 돌아보며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물어왔다.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니겔라가 잠깐 졸았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니겔라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저 시선이 엇갈렸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이제 정말 졸지 말아야지.’
모든 것을 잠결 탓으로 치부한 니겔라가 굳게 다짐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아직 한창 우스꽝스러운 다과회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잠이 깬 탓일까,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느껴지던 장면이 거짓말처럼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 명은 망령이 들어 과거의 고풍스러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자기를 소녀라고 생각하는 미친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사람이라고 보기도 의심스러운 이상향에 가까운 존재였다.
쥐들의 사체를 바로 옆에 두고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는 윗전들은 꼭 괴물들처럼 혐오감이 들었다. 곧 그들이 하는 소리에 이상한 소음이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니겔라를 깨운 부스럭거리는 소리였다.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다시 옆을 바라보았으나 모두 정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바로 지척에서 나는 소리였다. 다시 한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니겔라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에 덮인 수조가 보였다. 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상기시킨 순간 니겔라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온실 안에서 바람 때문에 천이 움직일 리 없었다. 그러니 분명 천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일 것이다. 니겔라의 귀에 유리를 발톱으로 갉작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첨벙거리고 무언가가 유리를 똑똑 치고 무엇 때문인지 천이 바스락거렸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공포는 배가 되었다.
수조 속의 쥐들이 죽지 않고 움직이는 게 아닐까? 아니면, 더 끔찍한 것이….
쨍그랑!
니겔라의 상상이 더욱 구체화 될 즈음 갑자기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다. 그 순간 니겔라의 귀에 들리던 잡음이 모두 사라졌다.
또 공작 부인이 발작을 시작해 접시를 내던진 건가 싶어 화들짝 놀라서 바라봤는데 범인은 예상외로 로한슨 영애였다. 그렇게 날카롭고 크게 들렸는데 사실은 로한슨 영애가 티스푼을 차를 젓느라 잔과 부딪혀서 난 소리일 뿐이었다.
티스푼을 내려놓은 로한슨 영애는 지루하다는 듯 잔의 손잡이를 손톱 끝으로 톡톡 쳤다.
‘이 소리였구나.’
니겔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들었던 소리는 로한슨 영애가 내는 소리였다. 니겔라가 피로해서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 것일 뿐이었다. 그러게, 죽은 쥐가 움직일 리가 없지. 죽은 걸 직접 보기까지 했는데.
니겔라가 안심하고 계속 에반젤린을 응시하였다.
다른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물소리는 차를 따르고 휘젓느라. 천이 움직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드레스 자락이 움직이느라 난 것뿐이었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드시네.’
니겔라는 자신을 겁먹게 만든 로한슨 영애에게 잠시 불만을 곱씹다가 새빨간 눈과 마주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니겔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양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인 로한슨 영애는 보란 듯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로한슨 영애가 잔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도 다시 유리 두드리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갉작갉작, 똑똑똑똑, 부스럭부스럭.
갉작갉작갉작, 똑똑똑똑똑, 부스럭부스럭부스럭.
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 니겔라는 혼란스러워하며 로한슨 영애를 바라봤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역시 소리가 나는 곳은 천막 안이었다.
천을 치우면 쥐들이 모두 니겔라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니겔라가 느꼈던 시선이 그것일까? 그 광경을 떠올리자 섬뜩해지며 호흡이 가팔라 왔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숨이 부족해지는 듯하며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니겔라는 소리가 더는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았으나 여전히 소음이 컸다. 손바닥이 귀를 막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달라지는 건 없었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선명할 리가 없는데….
“니겔라?”
갑자기 귀를 틀어막으며 이상 증세를 보이는 니겔라를 보며 하인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어디 아파?”
“빨리, 빨리 니겔라를 밖으로 데려가.”
공작 부인이 멀쩡해졌다 했더니 니겔라가 문제였다. 드디어 공작 부인이 진정되었는데 니겔라를 보고 혹시나 공작 부인이 또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웠다.
그들에게 우선순위는 어디까지나 공작 부인이었기에 니겔라를 공작 부인의 시야 밖으로 떨어트리는 게 우선이었다.
밖으로 부축하려는데 니겔라가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쥐가, 쥐가… 살아났나 봐.”
“니겔라, 그게 무슨 소리야? 정신 좀 차려…!”
하인들은 공작 부인이 ‘쥐’라는 말을 듣고 반응할까 봐 니겔라의 입을 막으려 들었다. 니겔라는 손길을 피하며 크게 소리쳤다.
“이 소리 안 들려? 안에서 갉작대고 있잖아!”
그리고 니겔라의 발밑에 작은 털 뭉치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흐윽…!”
니겔라는 헐떡이며 몸을 버둥거렸다.
‘쥐다! 살아난 쥐가 수조 밖으로 나온 거야!’
날카로운 소음은 필시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을 거다. 수조를 깬 쥐들이 돌아다니다 발을 스친 것이다.
“다 죽은 것들이야. 너도 봤잖아…!”
하녀가 니겔라의 몸을 흔들며 조용히 윽박질렀다. 니겔라는 몹시 억울해졌다. 왜 믿지 않는 거지? 소리를 듣지 못했나? 그렇다면 보여 주면 그만이다.
자신을 부축하던 하녀들을 팔로 쳐 낸 니겔라가 수조로 달려들었다.
“니겔라! 무슨…, 빨리 막아!”
“공작 부인을 밖으로 모셔!”
니겔라를 진정시키면 될 뿐이라고 여겼기에 그제야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알아챈 자들이 서둘러 공작 부인을 온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들었다. 하인들은 이 소란이 집사나 공작의 귀에 들어가고 나서 크게 경을 치게 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애초에 온실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들의 수는 보안을 위해 고작 다섯이었고, 그중 셋은 공작 부인과 로한슨 영애를 온실 밖으로 모셔가고 있었기에 실제로 니겔라를 막아 내는 인원은 두엇 정도였다.
“힘이 너무 세…!”
무슨 힘이 샘솟았는지 둘 정도 되는 사람 가지고는 니겔라를 막지 못했다.
니겔라는 천의 끝을 집었다. 망설이지 않고 천을 휙 당겼다. 펄럭거리던 천이 축 가라앉고 가려져 있던 내용물이 드러났다.
천 안에 있는 수조를 본 사람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그 안에 예상외의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게 뭐야?”
누군가 목도한 기괴한 광경에 입을 틀어막았다.
수조에 들어있는 것은 굉장히 잘 묘사된 사람 형상의 석상이었다. 수조의 크기에 맞춘 듯 여러 부위를 조각내어 석상 일부가 수조에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것들을 물에서 꺼내어 합친다면 온전한 석상이 완성될 것이다.
꼭 예술작품들을 하나씩 따로 떼어 내어 전시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마는 사람들 가운데 니겔라만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니겔라에겐 꼭 수조 안에 들어있는 것이 부서진 석상 조각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길고 가는 손가락이 물속에서 헤엄치며 수조를 톡톡톡 쳐 댔다.
“…그래! 내가 들은 게 이 소리였어!”
니겔라는 유리를 치던 소리의 정체를 깨닫고는 희열에 차 수조를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이 사람이 유리를 치던 소리였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기묘한 확신과 환희 가득한 어조는 듣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니겔라를 붙들고 있던 하녀는 손을 놓고 니겔라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보기에 수조 속에 들어있는 것은 분명 사람과 닮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모조품에 불과한 조각이었다.
“니겔라, 너 미쳤어? 갑자기 천막을 들춰내더니, 이걸 보고 사람이라고…? 이건 그냥 석상이잖아. 너 정말 미친 거야?”
하녀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석상? 너야말로 제대로 보고하는 소리야? 저거 봐! 움직이잖아!”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동료에게 니겔라는 수조를 가리키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석상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그들은 니겔라가 공작 부인의 광증이 전염되어 헛것을 본다 생각했다.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눈초리에 니겔라는 분해하며 머리를 쥐어뜯듯이 헝클어댔다.
다른 하인들은 그대로 굳은 가운데 공작 부인이 비척거리며 수조로 다가갔다. 다들 기괴한 광경을 목도해 굳어 있는 탓에 미처 공작 부인을 챙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작 부인은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듯 유리에 손바닥을 딱 붙이고 수조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아…. 아마, 아마란스….”
공작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말을 잃어 꼭 ‘아마란스’라는 한 단어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딸의 이름을 반복하여 읊었다.
‘아마란스…?’
니겔라는 긴 실타래에 휘감긴 머리의 이목구비를 훑어보았다. 어째서 연차가 많은 하녀가 아마란스와 로한슨 영애를 두고 똑 닮았다며 감탄을 했는지 깨달았다.
멀쩡히 테이블에 앉아 있는 영애와 수조 안에 있는 것들을 비슷하다고 여기는 건 어딘가 섬뜩한 감상이었으나, 생김새도 그렇고 섬찟하게 여겨지는 것까지 비슷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마란스…. 제발… 눈을 뜨렴.”
공작 부인이 절절하게 바랐다.
마치 수조 안에 들어있는 조각들을 딸이라고 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는 하녀들은 혐오의 시선을 숨기지 못했다. 공작 부인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니겔라는 공작 부인이 딸의 이름을 연호하는 순간 찬물이 뿌려진 듯 제정신을 차렸다. 공작 부인을 보는 시선들이 조금 전까지 니겔라를 보고 있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공작 부인처럼, 정말 니겔라도 미친 것일까?
수조 속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니라고?
목 밑으로 이어진 것이 없으므로 사람이라는 감상이 들지 않았으나 니겔라에겐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오히려 따지자면 로한슨 영애가 박제된 조형물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7년 전에 죽은 사람이 이렇게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을 리 없었을뿐더러 이미 매장까지 끝마친 시체가 호사퀸 공작저에 있을 리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굴러가는 머리와 다르게 오감은 여전히 수조 속에 든 것이 사람이라고 외쳐왔다. 잠깐만. 수조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건 석상도 사람도 아니었다.
“쥐는 어디 갔지…?”
기이한 광경에 압도되어 당연히 떠올라야 하는 의문은 뒤늦게 따라왔다.
이 자리에 있는 하인들은 공작 부인의 티타임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수조를 옮기고 천을 덮어 놓은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천으로 덮기 전, 수조에 담긴 것이 쥐의 사체임을 본 자들이었다. 자리를 비운 적도 없는데 어째서 내용물이 바뀌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니겔라. 네가 한 짓 아니야?”
동료들은 쥐 사체를 빼돌리고 기괴한 장난을 친 주범이 니겔라가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천막을 뒤집은 데다 혼자만 다른 반응을 보였으니 니겔라를 의심하는 게 마땅했다. 니겔라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수상하게 여기는 판이었다.
어째서 니겔라 자신이 쥐들이 도망쳤다고 여기고 천막 아래를 확인하려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꼭 악마에게 홀린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어야 마땅하였으나 지독한 현실감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웠다.
‘꿈이 아니라면 나도 미쳐 버린 걸까?’
니겔라는 불안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항상 잔머리 없이 깔끔하게 묶었던 머리카락은 잔뜩 흐트러져 니겔라를 더욱 광인처럼 보이게 했다.
니겔라는 망령이 씐 공작 부인과 자신이 같은 광경을 보고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마치 공작 부인이 쥐들을 두고 딸이라고 우겼던 것과 니겔라가 방금까지 지껄였던 말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증이 전염된 것이다. 공작 부인을 시중든 탓에 신이 노하셔서 니겔라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신전에 달려가 공작 부인이 망령이 들었다며 고백할 것을 그랬다. 전해 듣기로는 주인이 식인한다며 고발한 한 요리사는 이교도를 고발한 대가로 막대한 거금을 받았다고 했다. 비록 그 집안은 요리사를 제외하고 모두가 공범으로 묶여 사형당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직 한창 신전에서는 마리크 주교를 주축으로 한 이교도 수색이 진행 중이다. 니겔라가 공작 부인을 신전에 고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따가운 질책이 들렸다.
“거기, 너. 아게라 님이 계속 수조 안을 보고 계시게 할 거니?”
아주 여상스러운 말투였다. 단 한마디로 주변의 집중을 제게 돌린 로한슨 영애는 니겔라를 눈초리로 힐난하고 있었다. 방금도 그랬듯이 니겔라의 저열한 생각을 속속들이 읽어 낸 것일지도 몰랐다.
로한슨 영애는 수조 속에 박제된 자신과 꼭 닮은 분신을 역겹다는 듯 바라보다 공작 부인의 눈을 가렸다. 수조 속에서 유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얗고 고운 손이다.
“아게라 님.”
공작 부인이 더듬거리며 로한슨 영애의 손을 매만졌다.
“…내 딸.”
공작 부인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죽은 쪽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더 딸에 가까웠을 것이다. 공작 부인은 로한슨 영애의 인도하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서 아게라 님을 모시렴.”
로한슨 영애가 눈짓하자 하인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공작 부인을 부축하였다.
“너희는 다시 천을 덮어.”
그 말에 다른 하인들이 서둘러 천을 다시 덮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꼭 로한슨 영애의 수족이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로한슨 영애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니겔라를 응시하였다. 붉은 눈이 니겔라에게 주박을 걸었다.
“알고 있겠지만 본 것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된다.”
니겔라는 들려온 것이 천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네.’라고 답을 하고 싶은데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을 재빠르게 정리한 로한슨 영애가 당장 떠나려고 들자 니겔라가 드레스 자락을 붙잡았다. 로한슨 영애가 니겔라를 두고 불쾌한 시선을 보내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더 할말 있니?”
니겔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 보렴.”
로한슨 영애가 흔쾌히 허락하자 니겔라가 입을 열 수 있었다. 니겔라는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다.
“…로, 로한슨 영애님께는 수조에 든 것이 무엇으로 보이셨나요?”
니겔라가 굳이 로한슨 영애에게 무엇을 보았냐 물어본 까닭은 수조를 본 사람 중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태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 니겔라가 공작 부인에게 광증이 옮은 거라면, 공작저에 막 도착한 로한슨 영애는 아주 멀쩡하지 않겠는가? 로한슨 영애가 본 것이 바로 진실일 것이다.
“내가 본 것?”
로한슨 영애의 입이 열리자 니겔라는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어쩐지 목이 매우 따끔거렸다. 로한슨 영애는 허리를 숙여 니겔라를 굽어살폈다. 그리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쥐의 사체를 봤단다.”
이어지는 답은 정말 예상외의 것이었다.
수조 안에 든 것은 석상도 사람도 아니었다. 애초에 쥐들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니겔라는 미쳐버린 것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