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20)
칸나가 자리를 비운 동안 헤나가 아자젤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헤나는 시중을 핑계로 곁을 맴돌며 아자젤을 관찰하였다.
아자젤 아스타로트. 마리크 주교님이 지어 주신 이름을 가졌던 자는 이제 로한슨 영애가 악마들을 부르는 법을 따라 하며 스스로를 ‘타르트’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자길 부르라고 했다.
헤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자젤이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게 철없는 소년 같다고 생각했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사람의 팔다리를 무참히 뜯어 버리는 살인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말투도 기사보다는 꼭 귀족 영애 같았고.
그래서 처음에는 아자젤을 마리크 주교의 개인 호위와 동일시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름을 전해 듣고 나서야 마리크 주교에게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자신의 호위가 주인을 배반하여 에반젤린을 섬긴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마리크 주교는 실망하지 않으셨다. 다만 악마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주며 헤나에게 항상 주의하라고 경고해 주실 뿐이었다.
“저…, 주교님.”
“네. 말씀하세요. 헤나 님.”
“정말 주교님의 말만 따르면 칸나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헤나가 불안에 차서 물으면 마리크 주교는 확신을 주었다.
“물론이죠. 지금 칸나 님의 몸을 차지한 악마를 죽이고 나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칸나 님이 돌아오실 겁니다. 미천한 제가 칸나 님이 길을 잃지 않도록 늘 기도하겠습니다.”
헤나는 축복으로 기도하는 마리크 주교에게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헤나가 마리크 주교를 만난 것은 황태자가 살해당하던 날이었다. 에반젤린이 황실 기사들에게 잡혀가고 토텐 부인이 당시 상황을 진술하기 위해 기사들에게 붙잡혀 있을 때였다. 그 틈을 타 마리크 주교는 헤나에게 접근하였다.
아니지, 헤나에게 진실을 일러 주기 위해 나타나셨다.
헤나는 처음에는 마리크 주교를 몹시 경계하였다. 로한슨 영애를 함정으로 몰아넣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게 주어진 시간 동안 마리크 주교님의 해명을 들으며 헤나는 그동안 자신이 좁은 우물 안에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아니다, 우물이라기보다는 로한슨 영애가 만들어 낸 모형 정원이라고 말하는 게 더욱 옳았다.
“로한슨 영애님이 절 속인 건가요?”
“맞아요. 제가 아니었다면 헤나 님께서는 평생 원수도 알아보지 못한 채 로한슨 영애를 위해 살았겠죠.”
마리크 주교가 일러준 진실은 끔찍했다. 헤나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었고 마리크 주교님은 헤나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끄집어냈다. 마리크 주교가 알려 준 진실은 이러했다.
모든 것은 로한슨 영애가 칸나의 몸을 차지하기 위하여 쌓은 연극에 불과했다. 도나우는 로한슨 영애의 사주를 받아 칸나를 납치했던 것이다. 애초에 소환진은 로한슨 영애의 것이었다. 칸나가 쫓아간 고양이도 푸딩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악마였다.
주교님의 말에 따르면, 헤나가 그토록 아끼며 위했던 칸나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칸나의 몸을 차지한 것은 로한슨 영애가 도나우를 이용해 불러낸 악마였다. 칸나가 납치당한 그날부터 이미 칸나는 죽은 것이다. 칸나는 그날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헤나가 느끼던 괴리감이 바로 그 때문이다.
칸나는 목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삿된 것에겐 성수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로한슨 영애의 고양이처럼.
알고 있었음에도 마리크 주교님의 설명으로 하나하나 지적당하자 자괴감이 밀려왔다.
“칸나…. 불쌍한 내 동생….”
헤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 데이지의 말을 들은 후에는 칸나가 누구든지 헤나의 동생임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멜렉이라는 악마가 토텐 부인의 죽은 아들 몸으로 깨어나는 걸 보며 심경이 복잡해졌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에반젤린 로한슨 본인부터 그렇게 죽은 아가씨의 몸을 차지한 존재였으니까.
침상에 누워 있던 시절의 칸나와 지금의 칸나는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신전에서 그림을 본 이후로 쭉 쌓인 균열이 몹시 커졌다. 그 틈새로 사람이 빠져 죽을 정도였다.
마리크 주교님은 한눈에 헤나의 상태를 알아보시고 도움을 주러 나타나신 것이다.
헤나가 동생의 겉껍질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동안 진짜 칸나가 어디에서 고통받고 있겠냐며 마리크 주교님은 헤나를 나무랐다. 헤나의 게으른 애정을 꾸짖었다. 헤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다행히 마리크 주교님은 헤나에게 헤쳐 나갈 방법을 언질 주셨다. 만약 헤나가 주교님의 뜻을 제대로 따른다면, 로한슨 영애를 징벌하고 난 후 칸나를 원래대로 되돌려준다고 약속하셨다.
그렇게 헤나는 마리크 주교님의 첩자가 되었다.
로한슨 영지의 편지와 필체를 빼돌려 전하였고, 내부사정을 낱낱이 고했다.
저택 근처에서야 로한슨 영애에 대한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멀리 가면 상관이 없었다. 헤나에게는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초리가 덜한 편이었기에 마리크 주교와의 접선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헤나가 감시를 덜 받은 이유는 하나였다. 칸나인 척하는 동생이 로한슨 영애를 깊이 사모하기 때문이다. 헤나는 그런 동생을 사랑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헤나가 동생을 위해 로한슨 영애를 따를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마리크 주교님이 일깨워 주시지 않았다면… 헤나는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칸나가 아닌 것과 함께 영원토록 에반젤린을 따랐을 것이다.
그 덕분에 오만한 악마들은 헤나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마리크 주교가 무척이나 신중한 덕도 있었다.
“전 악마가 정말 싫어요.”
헤나가 에반젤린을 등질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헤나는 칸나가 잠시 자리를 비워 혼자 차지하게 된 백작 부인의 침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헤나는 마리크 주교님을 따를수록 칸나인 척하는 삿된 존재가 역겹고, 로한슨 저택을 메운 존재들이 끔찍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천장 하나를 두고 바로 위에 로한슨 영애와 두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날이 곤두서 어제는 칸나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칸나는 죽지 않았다. 헤나는 그것이 칸나가 악마 같은 존재라는 걸 증명한다고 여겼다.
칸나인 척하는 동생은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며, 무섭다며, 이러지 말라며 동생을 따라해 기어이 헤나가 눈물을 터트리게 했다. 헤나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으나 주교님을 생각하며 악마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속에 든 것이 무엇이든 몸은 칸나의 것이었다. 목에 남은 상처를 본 순간 헤나는 칸나의 품 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칸나는 ‘언니는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라며 당분간 로한슨 영애에게 가 있을 거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헤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헤나가 칸나의 몸을 더 상하게 할까 두려웠다. 마침 동생이 자리를 비웠다. 헤나가 행동하는 데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리크 주교님이 부탁하신 일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