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25)
리코는 제이스라는 글자 아래로 세 줄이 더 적혀 있는 종이를 챙겨 호사퀸 공작에게 향했다.
“공작님…. 이번에 사망한 사람들의 목록입니다.”
공작이 리코가 내민 종이를 건네받았다. 이번에 색출된 자가 다해서 열한 명이었다. 숙주가 된 사람이 많아 봐야 두셋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잠식된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다.
호사퀸 공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험상궂은 얼굴이었으나 기저에는 고용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신에 대한 반성과 안타깝게 휘말려 죽은 이들을 향한 애도가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죽은 사람이 많군.”
공작이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숙주들에게서 겉으로 드러나는 이상 증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니겔라만 예시로 들어도 그랬다. 만약 니겔라가 쥐를 잡아먹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숙주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쥐답게 잘 숨어든 상황이었습니다. 성수가 없었으면 구별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숙주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쥐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지내다가 어느 순간 홀린 듯이 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본인조차 쥐에게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맨눈으로 구별할 수 없으니 만약 숙주가 우후죽순 불어났어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진압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작은 참담한 표정으로 이름들을 읽어내려갔다.
“공작가의 모든 사람에게 성수를 먹였겠지?”
“네.”
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인들에게는 전부 성수를 나누어 주었다.
“죽은 자들의 시신은?”
“우선 지하에 가져다 두고 기사에게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밤이 되면 지하로 내려가 시신들을 처리할 예정이다. 아마도 시신들은 쥐를 죽일 때처럼 불에 태워야 할 것이다. 화형은 태양신의 징벌과도 같기에 가장 비참한 죽음 중 하나였다. 쥐를 다룰 때와는 사뭇 마음가짐이 달랐다.
리코는 에반젤린의 하녀처럼 굳건하지 못했다. 아무리 숙주가 된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피를 토하고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릿해졌다.
공작 역시 우선순위가 확실하고, 아게라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정하다 뿐이지 분명 식솔들을 아끼고 있었다. 공작은 기도하듯이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빠져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리가 끝나면 유가족에게 적절하게 보상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보상해 줄 명분이 없습니다. 이자들은 대외적으로는 해고당하거나 도주한 자들입니다.”
리코가 공작의 말을 반박했다. 공작도 알고 있었다. 세상 그 어디를 가도 도망간 하인에게 퇴직금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생기는 돈은 없는 법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퇴직금의 명분이라도 좋아. 아니면 도주한 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그때가 되면 신고해 달라는 의미로 유족에게 전달해 주어도 되겠지.”
악마에 씌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으니 유가족들에게 사인을 전할 수조차 없다. 대대적으로 이단 사냥이 유행을 타는 가운데 가족이 악마에게 홀렸다고 알린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진실을 밝힐 수 없기에, 남은 사람들은 가족이 죽은 건지도 모르고 변명으로 내세운 말을 듣고 돈에 눈이 멀어 도망갔다고 여길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코는 마지못해 공작의 뜻을 따라 주었다.
공작의 제안은 유가족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공작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뿐이다. 기만적인 행동이었다. 위선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리코도 죄책감에 짓눌릴 것 같았다.
공작과 리코는 대략 얼마를 보상해 주는 게 나을지 결정했다. 명목상 보상금이었으나 사실 목숨값이었다.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긴 했지만 생명에는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리코가 직접 그 목숨값을 매기고 있었다. 온기가 꺼진 이름의 옆에 숫자를 써넣으려니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이 사람들의 죄는 무엇이지? 저택에서 일한 죄? 지금 리코가 죽은 사람들의 사인을 숨기고 은폐하는 것은, 간사하게 혀를 놀려 말 한마디로 죄 없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저택을 통째로 불태우는 신전의 폐단과 다를 게 없었다. 리코는 각 가정에게 전해질 금액을 기재하면서도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 공작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코의 말이 끝나자 공작은 명단이 적힌 종이를 뒤집어 덮어놓았다. 고작 글씨일 뿐인데, 사망자들의 이름만 연달아 쓰여 있는 탓에 어쩐지 등줄기가 섬뜩했다. 쓰여 있는 글자들이 꼭 공작이 저지른 죄의 낙인처럼 느껴졌다.
공작은 방을 나서려던 리코를 불러세웠다.
“리코라드카.”
“네. 부탁하실 일이 더 있으신가요?”
“오랜만에 아게라와 함께 식사하고 싶구나.”
“식사를요…? 주방장에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분명 아게라 님께서 좋아하실 거예요.”
리코가 공작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럴 만도 한 게 공작은 일전에 식당에서 한번 크게 소란이 난 이후로 함께 식사하는 걸 피했기 때문이다.
“그럼 전 이만 아게라 님께 말씀을 전하러 가 보겠습니다.”
리코는 잔뜩 상기된 채로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집무실을 나와 곧장 아게라를 모시러 갔다. 리코는 공작이 아게라를 따로 챙기는 걸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 리코가 아게라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5년 전 즈음에 외출을 나갔던 아게라가 딸이 생각난다면서 한 모녀를 주워 왔다. 그게 바로 리코와 마브카였다.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아마란스라도 떠오른 것이 분명했다. 아게라는 모녀를 먹이고 입히고 잘 곳을 제공해 주었다. 아마란스를 잃어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한 아게라의 애정은 리코에게 향했다.
공작은 괜히 리코가 양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질까 봐 일부러 일감을 쥐여 주고 노동을 시켰다. 다행히 리코는 제 분수를 알았다.
리코는 오히려 일하며 마브카를 먹여 살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재주가 좋아 집사에게 발탁당해 가르침 받은 후, 집사가 은퇴한 후 그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리코에겐 아게라가 은인이었다. 그러나 정작 망령이 들자 아게라는 리코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공작과 딸아이뿐이었다. 리코는 비록 아게라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대도 여태껏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다.
차라리 아마란스가 아니라 리코를 기억하고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럼 괜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공작은 아마란스에 대한 진실을 알자 자신의 과오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건만, 끝까지 놓지 않는 아게라의 의지가 참 대단했다.
공작은 책상 위에 놓인 사망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자신도 모르게 구겼다. 종이가 구겨졌다고 해서 아게라로 빌미한 죽음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