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34)
눈앞에 타들어 가 그을린 내 집이 보였다. 순간 울컥 화가 났다.
“내 저택을 잿더미로 만들어 놨으니 지옥을 보여줘야겠다.”
쥐새끼 가만 안 둬.
칸나의 아가씨는 화병에 장식된 꽃을 한 송이 집어 들었다. 잘린 줄기에서 뚝뚝 물이 흘렀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순간 칸나는 장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귀족에게 진상되는 관상용 꽃은 혹여나 손이 베일까 아주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가시가 잘린 장미는 에반젤린의 손아귀에서 무척이나 순종적으로 보였다.
에반젤린을 장미의 꽃잎을 똑 떼어냈다. 희고 가는 손이 꽃잎을 짓이겼다.
아가씨는 몹시 화가 나셨다. 꽃잎을 떼어내는 행위는 폭력을 억누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였다.
아가씨는 늘 평범한 영애답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셨으니 칸나의 짐작이 맞을 것이다.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꽃잎이 마치 피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코 아가씨 자신의 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척 우스웠다.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아가씨께서는 돌아가실 때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벚나무 아래, 흰 이불보를 찢어 목을 매달고, 순백의 이브닝드레스가 축 늘어져 있었다고 들었다. 유일하게 붉은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만약 화가에게 그 장면을 그리라 일렀다면 흰 도화지가 그대로 돌아올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다시 눈을 떴을 때, 붉게 뛰는 눈이 얼마나 선명하다 했는지. 칸나는 그 기념비적인 순간에 함께 자리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언니는 그런 칸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꽃잎이 뚝뚝 떨어졌다.
아가씨께서는 사람의 목도 저렇게 손쉽게 뜯어낼 것만 같았다. 칸나는 제 목을 더듬거렸다.
칸나가 에반젤린의 추종자를 자처한 이래로, 에반젤린이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칸나가 목격한 처음이란 당연히 도나우에게 납치당한 칸나를 구해 주셨을 때였다.
칸나는 목의 흉터를 영광으로 여겼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 성수를 마셨다가 몸이 회복되었을 땐 다시 목을 망설임 없이 제 손으로 그었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하리라.
이 사실을 듣는다면 누구든지 칸나를 미쳤다고 매도할 것이다. 하지만 칸나에겐 그 순간을 회상할 만한 추억이 필요했다.
손끝으로 길게 그어진 상처가 매만져진다. 이것은 성흔이었다.
칸나는 저 자신이 에반젤린에게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만큼 나름대로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동시에 이번에 아가씨를 노하게 하는데 일조한 것이 사랑하는 언니라는 사실이 착잡했다.
다시, 또.
헤나는 결국 칸나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헤나는 어떻게 아가씨에게 그렇게까지 매료될 수 있는지를 의아해했다. 칸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언니야말로 어떻게.’
어떻게 아가씨를 숭배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걸까. 아가씨는 어둠에 내려앉은 빛이다. 칸나는 에반젤린을 숭배했다. 그녀를 신앙으로 삼았다.
원래, 칸나의 세상은 방 한 칸이었다.
칸나는 좁고 어두운 수렁에 빠져 있었다. 칸나가 갇힌 구덩이는 너무나도 깊어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칸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누워서 하늘일 법한 동공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헤나는 바로 그 위에 있다. 헤나는 그 위에서 손을 뻗어 칸나에게 제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외친다. 헤나가 내민 손을 보며 칸나는 드디어 이 어두운 수렁에서 나갈 수 있다며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그러나 손은 닿지 않았다.
구덩이는 무척이나 깊었기 때문이다. 헤나 역시 칸나를 끄집어낼 수 있을 만한 힘이 없었다. 칸나의 희망은 좌절되었다. 몇 차례나 희망 고문과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칸나는 이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렸다.
홀로 남겨진 칸나는 위를 바라보며 언젠가 헤나가 발을 삐끗 잘못 디뎌 수렁에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때 기적처럼 나타난 것이 에반젤린 로한슨, 칸나의 아가씨였다. 에반젤린은 손이 닿지 않는다며 직접 수렁 아래로 추락하여 칸나를 구원해주셨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자매 사이에 존재하는 극명한 차이였다. 칸나는 결국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오지는 못했지만, 수렁 안에서 빛을 발견했다. 헤나는 구덩이 안으로 빠져본 적 없지만, 그 탓에 구원받지도 못했다.
에반젤린의 그늘 아래 머무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도드라지기 시작한 간극은 둘을 이토록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도나우가 단죄받는 것을 얼마나 달갑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차이였고, 신전에 걸린 그림을 아름답다 칭하는지 끔찍하다 칭하는지에 대한 차이였고, 에반젤린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차이였다.
헤나는 에반젤린의 보호를 기꺼이 여기는 칸나를 무척이나 괴상스럽게 여겼다. 그늘 속에서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만족스럽냐는 투였다.
헤나는 정말이지 칸나에 대해 무지하였다. 칸나는 방 밖으로 나서본 적이 없기에 그늘이 무척이나 익숙하였다.
헤나는 가끔 칸나가 사지가 움직이지 않아 식물인간처럼 있기를 바랐다. 칸나가 그 시절을 얼마나 끔찍해 여기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언니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나가 에반젤린을 배반했다는 소식에 실망하여 분노할 정도로 아가씨를 애정했다. 헤나가 목을 조였을 때도 용서할 정도로 언니를 사랑하지만, 아가씨를 향한 마음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아가씨는 말씀하셨다. 헤나가 칸나의 언니이기 때문에, 언니가 등을 졌음에도 죄를 묻지 않겠다고.
이성이 짜릿하게 마비된다.
‘언니. 아가씨는 나를 온전히 받아주셔.’
이것은 분명 총애였다. 칸나는 울었다. 절대자의 사랑은 해일과도 같다. 이것은 재해일 것이다. 나약한 자신은 흠뻑 젖어 휘말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