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36)
언제부터 세상이 이리 어두웠을까? 주변은 컴컴해져 갑자기 밤이 된 줄로만 알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전능하신 태양을 보잘것없는 구름이 가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열기가 가셨다.
온몸이 한기에 덮쳐진다. 추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숨을 내뱉으면 입김이 나올 것만 같았다. 차게 얼어붙은 몸은 금이 간다면 산산이 조각나 부서질 것이다.
코키아는 눈을 의심했다. 동공이 정처 없이 떨렸다.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새하얀 사람이다. 사람인가? 정정한다. 그것은 죽음이 가련한 태를 입고 인간을 기만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다. 무기질 같은 새하얀 피부는 무례하게도 시체와 다름없었다.
곧 코키아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과 눈이 마주친다. 시뻘건 눈이다. 한없이 냉랭한 눈빛은 코키아의 목을 조이며 숨을 앗아갔다. 코키아는 재앙을 직면한 탓에 압도적인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했다. 당장 정신을 놓고 혼절하지 않는 게 기적이었다.
“로, 로, 로, 로한슨 영애님….”
목구멍을 통해 내뱉어지는 소리가 형편없었다. 호기롭게 에반젤린 로한슨은 악마라 외치던 용맹함은 종적을 감췄다. 코키아는 맹수의 앞에 목덜미가 꺾인 짐승마냥 덜덜 떠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목이 꺾일 것 같아 코키아는 제 목을 스스로 조여 숨기기로 했다.
“내가 아직 네가 모실 영애로 보이긴 하구나?”
“언제, 언제부터? 아니, 어떻게 여기에…?”
코키아는 정신을 놓은 채로 의문만 늘어놓았다. 에반젤린이 어떻게 로한슨 저택에 들어왔지?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담벼락 바깥은 성기사들이 줄지어 포위하고 있었다. 에반젤린은 코키아의 물음이 대단한 유머라도 되는 양 되물었다.
“왜. 악마가 마차를 타고 나타날 것 같아?”
“흐읍….”
“코키아.”
목소리가 경고하듯 울렸다. 에반젤린이 부른 코키아의 이름은 머릿속에서 공명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넌 내 하인이니 이름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에반젤린이 코키아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읍하여 실성할 것만 같았다. 황제가 코키아의 이름을 연호하더라도 이리 놀랍지는 않으리라.
“네가 마리크 주교에게 증언할 내용이 필요하다면 내가 만들어 주마. 널 가지고 증명해 줄까?”
에반젤린 로한슨은 코키아가 저지른 무례를 지적했다. 코키아는 제가 저지른 죄악이 에반젤린의 입을 통해 언급되자 숨이 막혀왔다.
에반젤린은 코키아의 죄를 천칭에 재서, 추가 기운다면 코키아를 당장이라도 심판할 것만 같았다. 코키아가 말한 대로 가죽을 벗기고, 피로 목욕을 하고, 코키아의 살점을 요리해 먹을 것이다.
코키아는 과도한 공포에 허물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헛소리를 했습니다.”
코키아는 우선 사죄를 빌었다. 무릎 꿇고 애원하며 고개를 숙여 자비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입방정을 떨었어요.”
코키아는 손을 마구잡이로 비비면서 사과를 했다. 에반젤린이 답이 없자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일종의 자해였으나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죄하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받으리라.
“갑자기 왜 저래?”
“헛거라도 보는 거 아냐…?”
그때 코키아의 귓가로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들이 코키아가 갑자기 주저앉아 바닥에 머리를 찧고 있으니 괴상하다는 투로 소곤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코키아가 기댈 곳은 그들이었다. 코키아의 신경이 기사들 쪽으로 쏠렸다. 틈을 엿보던 코키아가 솟아날 구멍이라도 찾은 것처럼 희망에 차 기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살, 살려주세요!”
가면서도 몇 번을 휘청거리며 발이 꼬였다. 넘어지기 전 기사를 부여잡고 울먹이며 외치는데 정작 기사는 혐오스럽다는 듯 코키아를 내쳤다. 그리고 코키아가 붙잡은 부위를 거세게 털어댔다.
“더럽게 젠장….”
“푸핫, 야. 너 이제 사악한 기운이 옮아서 목이 뎅강 잘릴지도 몰라.”
“같잖은 소리 하지 마. 옮긴 뭐가 옮아. 나는 신앙심이 뛰어나서 절대 안 옮거든?”
코키아는 돌아보며 기사에게 더욱 간절히 매달렸다. 에반젤린은 코키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코키아는 절박해져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기사님! 저기 에반젤린 로한슨이 나타났잖아! 당장 잡아가!”
코키아의 입에서 존대와 윽박이 섞여 나왔다. 그는 상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제발 에반젤린에게서 그를 안전히 보호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사는 코키아의 머리를 밀어내며 질겁했다.
“있긴 뭐가 있어! 이거 왜 이래? 진짜 돌아 버린 거 아니야?”
“악마의 하수인이 정신이 멀쩡하겠어? 진작 죽여야 했는데…. 주교님께서 괜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는….”
코키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보이지 않지? 선명할 정도로 지나치게 느껴지는 저 압도적인 존재감이, 기이할 정도로 피부에 새겨지는 감각이 에반젤린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기사는 코키아가 붙잡은 발을 휙휙 내저으며 코키아를 떨쳐 내려 했다.
“에반젤린 로한슨이 안, 안보이다고?”
“그래, 이 미친 자식아! 보이긴 뭐가 보인다고 그래!?”
“에반젤린 로한슨이 있기는 무슨! 머리털 한 올도 안 보이는데!”
기사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코키아가 정말 미친 걸까? 에반젤린 로한슨은 코키아의 죄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일까? 기사는 혀를 차더니 코키아가 여전히 매달린 채 떨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자 칼을 뽑았다.
“그냥 죽이자. 악마에 홀린 게 분명해. 하나 정도 더 죽였다고 문제 되진 않겠지.”
코키아는 검이 들이밀어 지자 창백히 질리더니 몸이 굳어 버렸다. 칼날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머릿속으로 자신의 보잘것없는 죽음이 떠올랐다. 목이 가볍게 동강 나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키아도 그렇게, 처참하게 끝맺어질 것이다.
코키아는 꼴사납게 겁을 먹었다. 눈물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콧물이 나 계속 코를 킁킁대며 훌쩍였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이리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코키아는 모친의 장례식에서조차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의젓하게 자리를 지킨다며 추켜세워졌으나, 정작 자기 목숨이 달리자 벌벌 떠는 꼴은 무척이나 꼴답잖았다.
기사가 칼을 치켜들었다. 곧 저 검이 코키아를 벨 것이다. 코키아는 제 목이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사는 그대로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질 않았다.
“왜 그래?”
“아니, 몸이… 안 움직여서.”
“너까지 무슨 헛소리야? 진짜 같이 실성하기라도 했어?”
제 눈에만 보인다고 하는 에반젤린 로한슨이 웃는 것을 보고 코키아는 그녀가 기사에게 무슨 수작을 부렸음을 알아차렸다.
기사는 손에 힘을 주는데도 몸이 움직이질 않으니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참을 허공에서 칼을 든 채 끙끙대던 기사는 옆에서 자신을 괴상망측하게 보자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기사의 팔이 그대로 내려가 칼을 검집에 다시 넣었다.
“뭐해?”
기사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스스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누군가 제멋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걸 말했다가는 코키아와 똑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지 기사가 목을 한 번 가다듬은 후 변명했다.
“큼, 큼. 아니…. 아니야. 그냥 주교님께서 살려주셨는데 죽이긴 좀 껄끄러워서…. 이 미친놈 입만 닥치게 겁만 주려고 잠깐 시늉만 한 거야.”
“진짜 신앙심도 깊으셔라.”
하마터면 목이 잘릴뻔한 코키아가 멈췄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코키아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살아났음을 안도했다.
코키아를 절벽에 떠밀었다가 추락하기 직전에 은혜를 베풀듯 손을 잡아 준 악마가 코키아에게 당도했다.
에반젤린 로한슨은 자비롭게 웃어 보인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코키아는 본능적으로 에반젤린의 외형을 홀린 듯 훑어보았다. 설탕으로 빚은 인형이 아닐 테니 절대 달지 않을 것임에도 저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에반젤린은 손을 뻗어 코키아의 뺨을 감쌌다. 코키아는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차가운 손가락이 코키아의 뺨을 쓰다듬는다. 심장이 간지러웠다. 불쾌하고 기쁜 감각이다. 코키아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형용할 수 없어 심장을 뜯어내 누군가에게 감정을 맡기고 싶었다.
“자. 이제, 널 누가 살려줄 수 있는지 알았지?”
에반젤린이 활짝 웃으며 묻자 코키아가 넋을 놓고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이상하지. 시간이 멈춘 게 아니었다. 구름이 지나쳐, 가려졌던 태양이 드러났다. 에반젤린 로한슨의 뒤로 햇빛이 금관처럼 머리 위에서 빛났다.
사람이 태양을 짊어질 수 있을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코키아의 머릿속에 신전의 약식 문양이 떠올랐다. 태양을 짊어진 사자였다.
에반젤린 로한슨을 상대로 떠올리기에는 굉장히 불경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