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60)
짐마차는 수도를 빠져나와 목적지를 향해 한참을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 메리가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통에 잠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건량은 충분했다. 마차가 떠나기 전, 푸딩이 상당한 양을 전해 준 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식사를 하며 한창 수다를 떨었다. 데이지는 한창 대화에 열을 올리는 웨더를 바라보았다. 온통 로한슨 사람들뿐인데도 웨더는 그사이에 쉬이 녹아들었다.
지금 나누는 대화 주제는 막 수도를 빠져나오려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전 진짜, 하마터면 걸리는 줄 알았어요.”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던 웨더가 목이 탔는지 물 한 병을 꿀꺽 마신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희생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검문이 무척 철저했다. 수도로 입성하는 마차는 물론이고, 빠져나가는 짐들마저 모조리 확인해댔다.
아직 로한슨 사람들이 도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전이었을 텐데 예상했던 건지, 아니면 철저히 예방을 한 건지, 뭐가 되었든 결벽적인 대응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멜렉 씨가 아니면 걸렸겠죠?”
화제는 곧 얼마 전에 내린 멜렉으로 바뀌었다.
“맞아. 처음엔 무슨 수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들 처음에는 멜렉을 수상쩍게 여겼다. 데이지도 동생들의 일이 아니었다면 멜렉의 진면목을 몰라 경계했을 것이다.
성문까지만 동행한다기에 까닭이 궁금했는데, 멜렉 덕분에 쉬이 검문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멜렉이 경비대에게 가까이 가 무어라 말하자, 경비대가 짐마차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훑는 시늉만 한 후 보냈기 때문이다. 경비는 짐칸에 사람이 가득 타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뭘 했길래 우릴 보내준 걸까요?”
“역시 이거겠지?”
누군가 손을 말아 동전 모양을 해댔다. 남들 눈에는 멜렉이 금화로 경비대를 매수했다고 보였을 것이다.
데이지는 추측에 말을 얹지 않았다. 경비대를 매수해? 경비로 서 있던 자는 사실 태양의 휘장을 매달고 있었다. 신전 측에서 내세웠을 테니 믿음이 단단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데이지는 금이 아니라 멜렉의 능력이 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한슨 사람들의 도주가 발각된 이후 경비의 처우는 어떻게 될까. 데이지는 잠시 경비의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이내 상념을 지웠다.
생전 모르는 타인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만약 경비에게 걸려 제때 도망치지 못했다면 그땐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테니까. 이게 최선이었다.
데이지는 건량을 집어 들고 마부석으로 향했다.
“기사님, 식사 거리를 가져왔어요.”
“아, 데이지 님.”
미쉘이 친절한 낯으로 인사를 했다. 기사가 하는 존칭은 아직도 귀에 익지 않았다.
멜렉은 성문을 벗어난 후 예고했던 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인적도 드문 숲속인데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냐며 걱정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멜렉은 희생제로 인해 수도에 사람이 많이 몰리니 마차를 얻어 타면 될 것이라며 태연히 대꾸했다.
그러곤 중요한 사람을 두고 와서 어서 가봐야 한다고도 했지. 데이지는 그가 범상치 않은 방법으로 돌아갈 것이라 짐작했다. 멜렉의 자리는 미쉘이 대신했다.
미쉘은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다. 부러 데이지에게 존칭을 붙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데이지에게 친절한 편이었다. 이유를 묻자 ‘영애님의 하녀니까.’ 하는 답이 돌아왔다.
하물며 내뱉는 말들도 괴이쩍었다. 미쉘은 성기사 주제에 꼭 에반젤린을 숭배하는 사도 같았다. 남매인 미샤도 찬사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나 미쉘은 조금 더했다.
미쉘의 찬양을 듣던 데이지는 그에게 조금 질려 버렸다. 데이지도 이젠 에반젤린에게 호의를 품고 있으며, 나름 주접에 일가견이 있는 칸나나 푸딩과 함께 지냈는데도 어째 미쉘의 찬양이 더욱 거북했다.
에반젤린이 기사를 홀리고 다닌다는 말에는 가브리엘뿐만 아니라 저자의 지분도 상당할 것이다. 하물며 데이지의 기억으론 에반젤린과 미쉘은 딱히 접점도 없었다.
그런 데이지의 의문을 읽었는지 우직한 기사가 슬쩍 미쉘의 사정을 귀띔해 주었다. 데이지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 무려 온몸에 불이 타 구경거리가 되는 걸 에반젤린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데이지는 미쉘의 심정을 아주 약간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가끔 사람은 아주 찰나의, 한순간으로 온 인생이 저당 잡히고는 한다. 데이지가 그러했듯이.
“언제까지 가야 할까요?”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미쉘은 말을 보채면 오늘 중으로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찬 예측을 내놓았다.
“정말요?”
대화가 안까지 들렸는지 불쑥 웨더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데이지는 웨더의 얼굴을 살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다면 반가울 만한데, 웨더에게선 영 불안해하는 감정만 느껴졌다.
고향이 폐쇄적인 곳이라 했지. 데이지는 자신들이 잠시 동안 몸을 피해있을 곳이 궁금해졌다. 로한슨 저택에 갇혀있을 때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검문까지 통과해 빠져나오자 한동안 머물러야 할 도피처에 대한 걱정이 차올랐다.
웨더의 고향이 외부인의 배척이 심하다고 했었나? 그런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웨더 씨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요?”
“네. 도망 온 사람들이요.”
웨더는 싱긋 웃어 보였다. 외부인의 배척이 심한 마을이 정작 도망자로 이루어졌다는 건 참 아이러니 한 말이었다.
웨더는 기억 나는 이름들을 꺼냈는데 이름 뒤에 붙는 설명들이 하나같이 악명이 자자했다. 한동안 같이 지내게 될 테니 주의하라고 미리 말을 해두려는 의미도 없잖았다.
사기를 치고 도망 온 여자. 억지로 결혼하게 될 뻔해 정인과 야반도주한 부부. 죽은 아들을 찾아다니다 흘러들어온 노인. 주인인 귀족을 살해한 후 도주한 하인.
하나 같이 대하기 불편한 군상들이었다. 살인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데이지는 식사를 정리하고 마차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주어진 몫의 반도 비우질 못했다.
속이 얹힌 듯 불편했는데 웨더는 상대의 기복이 저조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을을 주제로 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참. 파키라 이모는 제가 하녀가 되는데 일등 공신이 되어주신 분이에요. 이모도 마을에 오기 전 원래 하녀로 일하셨다고 하셨거든요. 로, 로… 어디였는데.”
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로한슨 백작가였다. 그러나 이름을 떠올리기도 전에 웨더가 놀란 듯 입을 딱 벌렸다.
“저기에요!”
“네?”
“도착했어요! 저게 저희 마을 입구거든요!”
웨더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마을 입구라는 데에 사람의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차가 가까워지자 자세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업은 노인이었다. 그러나 등에 업은 아이가 조금 이상했다. 몸이 위아래로 뒤집혀 발이 머리 쪽으로 나와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꼭 잘린 발을 업고 있는 듯했다. 그 광경이 음침해 데이지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데이지와는 다르게, 웨더는 마차에서 뛰어내러 달려가 노인을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다녀왔어요, 할머니.”
사람을 으스러트릴 듯 껴안는데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인형이군요.”
미쉘이 담담히 설명했다. 마차가 멈춰서자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은 깊은 숲속에 자리해 있었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해 웨더가 길을 안내하기를 자처했다.
가장 선두에는 미쉘과 웨더, 그리고 웨더가 챙기는 노파가 있었다. 인형을 업은 노파는 흥얼거리며 자장가를 불렀다.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맴돌아 음산한 기운을 더했다.
노파는 정신이 멀쩡하지 않아 보이는 것 치고는 발이 무척이나 빨랐다. 데이지조차 뒤따라가기 가려웠다.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마구 얽혀 바닥을 만들어 한 발짝 떼는 것도 힘겨웠다. 간혹 밟은 자리에서 뭉클한 느낌이 느껴지기도 했다.
웨더는 제대로 된 길로 가지 않았다. 나무 사이를 쏙 파고들며 다녔는데, 규칙성이라고는 없어 웨더가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데이지는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더욱 울창하고 빽빽해졌다.
울창한 나무로 가려져 하늘의 색조차 분간되지 않는다. 어쩐지 오싹하고 서늘한 기분에 걸친 담요를 고쳤다.
“언니, 나 무서워.”
메리와 율마가 데이지의 뒤에 숨었다. 데이지를 잡은 손이 달달 떨렸다. 데이지가 보기에도 음침한데 아이들로서는 더욱 두려움이 배가 되겠지. 그렇게 한참을 더 가서야 웨더가 멈춰 섰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뒤에서 기대가 섞인 수군거림이 들려왔으나 데이지에겐 잘 와닿지 않았다. 도피처라는 마을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 보였다.
빽빽한 나무들 속에 숨은 마을이라니,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꼭 마을이 아니라 나무 동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과연 이단들이 숨어있기에 어울리는 곳입니다.”
나무에 태양이 가려져 이단이 신을 피해 도망 오기론 아주 적당한 장소처럼 보였다.
데이지는 궁금했다. 그 발언은 신실한 성기사로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에반젤린을 따르게 된 입장으로 하는 자조적인 말일까.
미쉘은 망설임 없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데이지는 동생들의 손을 양손에 잡고 심호흡을 한 후, 뒤를 따랐다.
마리크 주교가 참패하는 날, 그날이 오면 다시 마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마을이 로한슨의 사람들을 지켜줄 것이다.
마리크 주교와 성기사들도 쉬이 이곳을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웨더가 말한 외부인을 배척한다는 것도 마을 주민이 아니라 숲의 지리를 말하는 걸 수도 있었다.
데이지는 조소했다. 과연 이단이 숨어있기 어울리는 장소였다.
희생제를 하루 앞두고 호사퀸 공작저에 마차가 도착했다.
미샤의 의상실에서 보낸 것으로, 미샤의 직원들과 공작가 하인들이 여럿 달라붙어 짐을 옮겼다. 미샤도 함께 올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아 직원 하나를 잡고 물었다.
“미샤가 보이질 않는구나.”
“아, 마담께서는 밤을 새워 일하시다가 드레스를 완성하시자마자 기절하셨어요.”
다행히 건강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동안 무리를 하다가 깊은 잠에 빠진 것뿐이란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늦기 전에 직원들끼리 토론하여 저택에 들른 모양이었다.
“함께 오고 싶으셨을 테지만, 영애님의 일에 차질이 생기는 걸 더 싫어하셨을 테니까요.”
“맞아. 깨어나시면 영애님께서 드레스를 입으신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며 우실지도 몰라요.”
“마담께서 다른 의상은 전부 저희에게 맡겨놓고 영애님의 드레스에만 전념하신 건 아세요?”
기어이 무리한 모양이다. 직원들이 한마디씩 얹으며 툴툴댔다. 언뜻 과로한 탓에 미샤를 탓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게 미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미샤가 날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마담의 걸작이에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미샤의 말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은 함께 자리하지 못하더라도, 내 곁에 있을 거라고 했지.
칸나는 걸작이라는 말에 지금 당장 시착을 해 봐야 한다며 극성이었다. 미샤가 직접 오지 못하니 자신이 빈자리를 채우겠다며 주먹을 꽉 쥐고 다짐하더라. 물론 미샤의 직원들이 있어 칸나가 수고할 일은 없었다.
“너무 잘 어울리세요! 이런 걸 만드시니 기절을 하지!”
전에도 미샤가 고생했음을 안 칸나는 이번에도 무리한 일정을 맞춘 미샤의 노고에 기함을 토했다.
과장은 아닌 것이 시간이 촉박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길이 많이 닿아 있었다. 작은 장식 하나에도 숨결이 불어 넣어져 있어 무척이나 섬세했다. 움직임에 맞춰 드레스 자락이 펄럭일 때는 살아있는 생기가 느껴지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영혼을 담아 완성해낸 역작이니 미샤가 내게 함께한다고 말한 것이 과연 허언은 아니었다.
“미샤 씨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으시네요.”
칸나가 드레스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무슨 뜻인지 대강 이해가 갔다. 드레스는 내가 평소에 즐겨 입는 색상인 흰색이었다. 제물이라기보단 사제에 가까운 의상이다.
미샤가 심혈을 들여 맞춘 드레스는 마치 황태자의 탄신연 때를 상기시키는 듯했다. 그때의 최후가 좋지 않았음을 기억해 보면, 미샤는 분명 그때의 앙갚음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는구나.”
생각이 많아져 한 박자 느리게 답을 하자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다행히 치수는 달라지지 않아 수정을 거치진 않았다. 미샤의 직원들은 드레스를 입고 나온 날 보면서 저마다 찬사를 내뱉었다.
미샤의 앞이 아니니 입바른 말은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덕분에 미샤의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을 찬양을 내뱉던 직원들이 저들끼리 눈치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전에 의상실의 로비에서도 봤던 직원이다.
“로한슨 영애님. 토텐 부인께서 말씀하시길… 마차는 무사히 수도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드레스 시착을 위해 곧게 서 있는 게 아니었다면 안도해서 다리가 풀렸을 거다.
마차란 당연히 로한슨 저택 사람들을 태운 마차였다.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수도를 벗어났다면 한 시름 놓아도 괜찮았다. 마리크 주교의 영향력은 수도에서 가장 빛을 발했으니까.
‘역시, 멜렉에게 부탁하길 잘했어.’
나는 토텐 부인께 파라로스 기사단과 함께 라이더, 그러니까 멜렉을 잠시 빌려 달라고 했다. 원래는 푸딩을 보내 사람들을 호위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한번 내게 쫓겨났기 때문인지 푸딩은 절대로 곁을 벗어나려 들지 않아 결국 멜렉을 찾았다. 상냥한 멜렉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만큼 흔쾌히 나서주었다.
멜렉이 나서준 김에 함정을 하나 더 파기로 했다.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마리크 주교가 아는 내 수족에 멜렉은 없을 테니까, 마리크 주교는 푸딩만을 경계할 것이다.
나는 한창 도주극이 벌어질 때, 푸딩과 함께 보란 듯이 연회를 전전했다. 마침 희생제를 앞두고 수도로 올라온 귀족들이 많아, 작은 소규모 연회들이 한창 즐비해 마음껏 고를 수 있었다.
귀족들은 악소문이긴 해도 ‘에반젤린 로한슨’의 이름값이 출중한 덕에 내 참여를 반기는 눈치였다.
희생제를 앞두고 마리크 주교가 내게 손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생기자 몸을 사릴 이유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내가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저택 사람들이 도망을 쳤다. 물론 칸나는 드문 내 외출에 험한 목적이 있는 것을 아쉬워하긴 했다.
정말로 무사히 수도를 벗어나서 다행이다. 계속 걱정하던 일이 잘 풀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샤의 직원에게 최대한 상냥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미소를 지었다.
“알려 주어 고맙구나.”
드레스는 그저 사람만 보내어 전달하면 될 일이다. 굳이 직원들이 나를 찾아온 것은 미샤의 부탁도 있겠지만, 내게 말을 전달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로한슨 저택 사람들이 잘 도망갔는지 알려 주기 위해서. 나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아니에요.”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어색한지 머쓱해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로한슨 영애님, 마지막으로 이것 받으세요.”
직원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에메랄드를 세공하여 만든 목걸이가 있었다. 내가 미샤에게 부탁했던 예레미아의 목걸이였다.
뜬금없이 황녀의 목걸이를 복제해 달라는 부탁에 난감했을 텐데, 이것도 시일을 잘 맞춰 주었다.
“참고로 그 목걸이를 만든 아이도 마담 옆에 같이 누워있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미샤의 곁에서 머리를 모아 새근새근 자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에메랄드 목걸이가 담긴 상자 뚜껑을 다시 닫아 잘 갈무리했다. 예레미아는 희생제 때 테네브레이의 호위로 함께 참석할 것 같다고 리코를 통해 전해왔다.
마리크 주교와 테네브레이에게 분명 꿍꿍이 속이 있을 테니 꼭 경계를 늦추지 말고 주의하라고 일렀고.
목걸이는 일이 잘 마무리된 후 예레미아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사실 한참 전부터 떠올렸던 건데 주문할 기회가 없어 준비가 늦었다.
예레미아가 좋아하려나? 나는 마음에 들었으니, 부디 예레미아가 봤을 때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미샤와 그 아이에게도 내가 잘 받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주렴.”
직접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절 잠에 빠진 미샤가 내일 희생제가 열릴 때까지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말하니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감사 인사는 다음에 마담께 직접 해주세요.”
호기롭고 당차게 말해놓고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주제넘은 말에 내가 불쾌하게 여길까 봐 그런듯했다.
걱정도 참….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마리크 주교에게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는 소리겠지.
“그래. 다음에 미샤를 보면 내 입으로 전하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져 훗날을 약속하는 말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향하는 호의가 기분 나쁘기는커녕 달가워져서 큰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