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69)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헤나는 역시 젤리의 감시역이 아니라 함께 종탑에 갇힌 것이었다. 마리크 주교가 쓸모를 다한 헤나를 젤리와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함께 가둬둔 거겠지.
사제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약이 섞인 식사를 들고 왔다. 가끔은 성수를 수십 병 이고 올 때도 있었다. 헤나와 푸딩이 갇혀있건 상관없이 여전히 성수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는 듯했다.
그러나 기사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허리춤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검집에 헤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에반젤린 로한슨의 하녀로군.”
기사가 경멸스럽다는 듯 헤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악마의 하수인이라기엔 볼품없는 몰골이야.”
눈에는 감추지 못한 혐오감이 선명했다. 기사가 검의 손잡이를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 작은 몸짓이 두려워 헤나는 숨을 들이켰다.
약을 먹지 않는다는 걸 들킨 건가? 마리크 주교가 헤나의 쓸모가 다했다고 생각해 기사를 보낸 것일까?
다행히 기사의 시선은 곧 떨어졌다. 금방 헤나에게서 관심을 거둔 기사는 젤리에게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기사의 눈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기사가 당장이라도 젤리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만 같아 헤나가 절로 긴장했다.
“마리크 주교님께서 살려두라는 말만 하시지 않았다면 진작 죽였을 텐데…. 오늘 같은 날 내가 왜 네까짓 것을 감시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기사는 차오르는 살심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기사가 분노한 이유는 젤리 때문인듯했다. 기사는 젤리를 노려보며 불평하듯 무어라 중얼거렸다. 헤나는 숨을 죽이고 작은 소리를 귀담아들었다.
주워들은 말들을 종합해 보면 기사는 악마를 가둔 종탑을 지키라는 마리크 주교의 명령에 잔뜩 열이 받은 것 같았다. 제게는 더 큰 역할이 쥐어져야 하는데 젤리에게 발이 묶였다는 투였다.
“하지만 그래. 잠깐 화풀이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마리크 주교님께서도 이 정도는 눈감아주실 거야.”
기사는 검을 빼 들었다. 날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합리화하듯 내뱉은 말을 끝으로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됐다.
헤나는 기사가 보여 주는 시각적인 폭력에 압도되어 숨을 죽였다. 기사를 말렸다간 자신의 목이 떨어질까 두려워 숨을 죽이고 구석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주 무력하게.
젤리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저항이 가능한 상태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는 몸을 꿰뚫은 검에 천천히, 느긋하게 성수를 부었다. 검의 날을 타고 흘러내려 간 성수는 칼날이 파고든 살점 사이로 고여, 안쪽에서부터 들끓기 시작했다. 아주 느릿한 고문이었다.
기사는 젤리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감상하며 악마를 더욱 괴롭히기 위한 조미료를 얹었다.
“잘 들어. 오늘은 네 주인의 목이 잘릴 날이다. 아니, 불타 죽으려나?”
콧노래를 부르는 듯 경쾌한 어조였다. 기사의 말은 젤리의 신음을 견딜 수 없어 귀를 막고 있는 헤나에게도 이상하리만치 또렷이 들렸다.
마리크 주교님이 드디어 칼을 빼든 건가? 하지만 약에 절여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소식이 그다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만약 로한슨 영애님이 처형당한다면 그럼, 칸나는…. 칸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마리크 주교의 전적을 헤아려 보아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마리크 주교는 헤나에게 칸나를 원래대로 돌려놓아 주겠다는 약속도 어긴 채 아무런 죄악감 없이 칸나를 앗아갈 것이다. 로한슨 영애의 최측근이니 모두에게 자랑하듯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겠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점점 멍해지는데 꿈을 꾸듯이 수많은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헤나가 정신이 팔린 사이 기사는 꼬챙이처럼 찔러놓은 검을 뽑았다. 검 날을 타고 흘러내려 간 붉은 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제 끝난걸까? 헤나가 조금 안도하기 무섭게 기사는 손을 뻗어 젤리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몸이 칼집이 되었어도 눈빛은 여전히 흉흉했다. 기사는 혀를 차며 손을 놓았다. 허공에서 추락한 젤리의 몸이 다시 땅에 부딪히며 앓는 소리가 났다.
기사는 젤리를 밟아 으깨고 싶다는 듯 발에 체중을 실어 짓눌렀다. 방금까지 검이 박혀있던 곳이었다. 젤리가 고통에 몸서리쳤다. 허우적대며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모습을 보던 기사가 미간을 구겼다.
“바닥을 기는 꼴이 꼭 구더기 같군.”
기사는 그리 품평했다.
“천박하고, 흉하고, 추악하니 더러운 너와 아주 어울리는 별명이지 않나?”
태양에 시선을 둘수 없게 머리를 밟았다. 바닥을 기는 꼴이 아주 흡족했다.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분풀이를 끝마친 모양이다. 기사는 손수건을 꺼내 성수를 묻혀 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 역시 씻어냈다. 피만 닦아낸다고 추악한 성정까지 닦일 리 없건만 홀로 고고한 행세였다.
빈 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헤나는 지금 깨어진 게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내가 에반젤린 로한슨의 목을 치게 된다면, 나중에 머리라도 구경시켜주지.”
선심 쓰는 척 시혜적인 태도였다. 기사는 헤나에게 바닥을 치워놓으라 일갈한 후, 방을 나섰다.
기사가 나간 이후 헤나는 무릎 걸음으로 젤리에게 향했다. 다리가 덜덜 떨려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젤리에게 가까이 갈수록 무릎에 붉은 물이 들었다.
“괜찮, 괜찮나요?”
가까이서 본 상태는 더욱 엉망이었다. 이제야말로 진짜 젤리가 죽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팔…팔 끓는… 성수…에 집어…넣지 않…는 이상… 안 죽는다니까….”
억지로 낸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너덜너덜했으나 헤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살아있었다. 아직.
헤나는 제 겉옷을 벗어 바닥의 성수를 박박 닦아냈다. 젤리의 아래로 붉게 물든 성수가 고여있기 때문이다.
바닥을 청소하며 헤나는 저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볼품없다고 느꼈다. 기사의 작태에 화가 나는 한편, 헤나 자신이 과거 젤리에게 저질렀던 짓과 다름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처럼 직접 손을 쓴 게 아니라 어린아이를 속여 도구처럼 쓰기까지 했으니 헤나가 오히려 죄질이 더 나빴다. 헤나는 도통 젤리가 이해 가질 않았다. 젤리는 어떻게 헤나를 걱정할 수 있는 거지? 자기가 이 지경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을 훔쳤다.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가가 따가웠다. 거친 소매로 벅벅 닦으니 금방 눈가가 문드러졌다.
소매에 묻은 피가 얼굴에 묻었으나 헤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닦아내는데도 계속해서 방울이 맺혔다.
바닥의 물을 닦아낸 옷음 금방 질퍽해졌다. 축 늘어져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게 헤나의 꼴과 별다를 것도 없었다. 그리고 깨진 병을 치울 때였다.
헤나는 탁한 시야로 젤리를 보았다. 젤리 근처의 성수를 닦아냈음에도 젤리는 여전히 괴로워 보였다.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틀었다. 그래도 금방 정신을 추스르던 이전과 달랐다.
‘이대로 진짜 죽어버리면 어쩌지?’
헤나는 덜컥 겁이 났다. 심장에 무언가 얹힌 느낌이었다.
고심하던 헤나는 큰 결심을 한 듯 빈 병을 하나 깨트리고 큰 조각 하나를 잡아들었다.
헤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유리 조각을 제 팔에 가져다 댔다. 전에 약에 취해 젤리를 동생으로 착각해 헤나의 피를 먹였을 때, 조금이지만 분명 차도가 있었다.
“너… 뭐… 하는 거…야? 그만 안…둬?”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한 젤리가 기겁하며 헤나를 말렸다.
헤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번에는 약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으나 멀쩡한 정신으로 몸에 손을 대는 건 처음이었다.
따끔한 감촉과 함께 헤나는 눈을 떴다. 팔이 얼얼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얕았다.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겉 피부만 살짝 긁어낸 모양새였다. 헤나는 숨을 헐떡였다. 등에 땀이 흥건했다.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헤나는 문을 돌아보며 저도 모르게 보호하듯이 젤리의 앞을 가로막고 문에 가까이 섰다.
조금 전의 기사가 다시 올라오는 걸까? 아직 젤리가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다 헤나가 늦장을 부린 탓이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헤나는 긴장한 채로 유리 조각을 꽉 쥐어 높이 치켜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곧바로 찌를 생각이었다.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숨을 죽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헤나는 문 너머로 나타난 사람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하, 이…제 헛…것도 보이…네.”
젤리 역시 같은 허상을 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