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19)
Chapter 19
칸나는 영애님이 하명하신 것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브리엘에게 계속 설명을 들었다.
헤나는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로 대신전도 열심히 둘러봤다. 이런 곳에 언제 다시 와 보겠느냐는 심리였다.
건물의 외형도 화려했는데 내부는 사치스러움이 배는 더했다. 오색 빛으로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저마다 성격 속 한 구절을 묘사하고 있고 곳곳에는 태양신 라헬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기도를 드리러 찾아온 방문객들은 대개 귀족들이었으며 그들을 안내하고 있는 신관들의 옷차림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가끔 빈민가를 돌며 봉사를 하는 사제들은 모두 장식 없이 청빈한 옷을 입고 있던데, 여기 신관들은 귀족을 상대해서 옷차림도 화려한 걸까?
아니면 빈민가에서 질시를 받지 않으려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검소한 옷을 입고 오는 걸까? 아니, 이건 너무 나쁜 쪽으로 부풀린 것 같다.
“부인, 언제나 발걸음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인께 항상 태양 빛이 내리쬐기를.”
그래도 인사말은 다르지 않구나. 태양 빛이 내리쬐기를. 헤나는 그들의 인사말을 속으로 한번 되뇌었다.
카펫을 따라 걸어 들어가자 메인 홀에 작지만, 무척 화려한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는 보통 야외에 두지 않나?’
실내에 있는 분수대가 어색해서 계속해서 흘끗거리고 있었더니 신관과 함께 있던 귀족 부인이 분수대로 가까이 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부인은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받아 내어 입을 축였다.
귀족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건 처음 본다. 당장 세숫물만 마셔도 더럽다고 하는 게 귀족들 아닌가.
그보다 위생을 떠나서 신전의 분수대인데 저 물을 마셔도 되는 걸까. 헤나로서는 알 리가 없기에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분수대의 물은 마셔도 되는 건가요?”
“네. 성수니까요.”
“네?”
“성수입니다. 저거.”
성수? 헤나는 새삼스럽게 이곳이 대신전이라는 걸 상기했다. 그래, 성수는 신전에서 만드는 거니까 여기에 성수가 있는 게 당연하지. 근데 왜 하필 분수 형태지?
끝없이 샘솟는 성수를 보고 있으니 어딘가 그늘진 마음이 들어 헤나는 자기도 몰래 칸나의 손을 억세게 쥐었다. 목을 축이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갈증이 생긴 것 같았다. 칸나는 손이 죄어들었지만 헤나의 심정을 짐작했는지 조용히 묵인했다.
“방문객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건 아닙니다. 보이시겠지만 주위에 저걸 지키는 기사들이 있거든요. 기부금을 넉넉히 주시는 고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애초에 대신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이라고 덧붙였다.
“신전의 부강을 보여 주는 퍼포먼스죠.”
그렇게 설명하는 가브리엘은 무척 냉담해 보였다. 헤나는 말을 곱씹어 봤다. 귀족들을 고객으로 받으면서도 신전이 우위에 서고 싶어서 원래 귀족들이라면 절대 안 할 행동을 시킨다는 말일까?
근데 그건 신전의 기사가 꺼낸 말이라기엔 좀 불신하지 않나? 신도를 보고 고객이라고 하고…. 헤나는 새삼스럽게 가브리엘에게서 기도 인사를 들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브리엘 경이라면 상대를 배려해서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만.
헤나는 답을 알 수 없어 침묵하며 가브리엘의 뒤를 따랐다.
중앙의 분수를 지나자 인파가 몰려 있는 곳이 보였다. 저기에 그림이 걸려 있는 거구나.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뉩니다. 한쪽은 아주 아름답다고 여기고 다른 쪽은 불쾌하게 생각하지요.”
굳이 부연해 설명하지 않아도 가브리엘이 후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헤나는 그림의 앞에 당도했다.
***
‘불에 탄 건가?’
잠시 오해할 만큼 잿가루에 덮인 것처럼 칙칙한 색으로 가득 찬 화폭이었다. 온통 새하얗고 오색찬란한 대신전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투명한 물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을 자세히 본 순간 헤나는 불쾌함에 토악질이 치밀어올랐다. 신의 축복? 성스럽다고? 이게? 이 그림이? 이런 오물 더미를 두고 찬사를 내뱉는 사람들의 심미안이 의심스러웠다. 그들의 눈이 제구실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가장 볼품없는 자의 최후를 그려 놔도 이것보단 아름다울 것이다. 아니지, 차라리 전에 도나우가 자살하던 장면이 더 나을 정도였다.
불이 막 꺼진 듯 보이는 무너진 건물의 나무 바닥을 배경으로 팔다리가 없어 몸통밖에 없는 갈라진 숯덩이가 절규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피 칠갑을 한 외눈이 깜박였고 등 뒤에서 지옥 불에서 튀어나온 무수한 수의 미세한 손이 망자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그것이 날개처럼 보이는 까닭은 작은 손가락들이 얽히고설켜 얼핏 깃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도나우의 최후가 자살이었다는 걸 알까? 그들이 그토록 맹신하는 태양신의 교리대로라면 자살한 자들은 절대 라헬의 품에 안길 수 없다. 고로 이것은 도나우를 맞이하러 온 지옥의 한 장면이었다.
“라헬이시여.”
“저희에게도 구원을 내려 주세요.”
헤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저들이 태양신의 신도가 맞나? 도나우에게 원한이 있는 헤나마저도 저 그림 속 도나우가 안타까웠는데 어떻게 이걸 보고 찬사를 내뱉을 수가 있지?
“과연. 아름답네요.”
“칸나?”
그리고 불행하게도 칸나 역시 그림을 아름답다고 여긴 듯했다.
“칸나 양에겐 다르게 보이나 보군요. 저는 저 그림이 몹시 불쾌해 보입니다. 헤나 씨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쾌하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칸나는 이 그림이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넋을 놓고 화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그린 화가는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이런 양가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헤나는 왜 아직도 이 그림이 신전에 걸려 있는지 깨달았다. 양극화된 반응은 오히려 그림을 신비롭게 여기게 할 것이다. 저 그림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아무리 진실을 말해 봤자 그건 그림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차이일까요?”
“글쎄요. 저들은 신실함의 차이라고 말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신전을 거북해하는 칸나가 그림을 아름답다고 평했으니까.
“단장님!”
“라파엘라?”
“어디 가셨던 거예요! 한참 찾아다녔어요!”
“잠시만. 두 분은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급한 일인 것 같아 전 잠시 수하에게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멀리서 흰 제복을 입은 기사가 조급하게 가브리엘을 찾았다. 가브리엘이 잠시 양해를 구하는 말에 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칸나가 넋을 놓고 그림을 보고 있으니 어차피 혼자 여길 벗어날 수도 없었다.
가브리엘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던 칸나가 불현듯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언니는 저 그림이 다르게 보여? 난 저 문양이 꼭 눈 같은데.”
칸나가 그림을 등지고 헤나를 바라봤다. 각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탓에 칸나의 등 뒤로 날개가 펼쳐진 것 같았다.
헤나는 숨을 멈췄다. 등줄기를 따라 팔에 소름이 돋았다. 배에 힘이 들어가고 오금이 저렸다. 이명이 들리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말도, 말도 안 돼.
눈이라고? 칸나가 말한 건 헤나가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 칸나는.
‘칸나는 내가 본 것과 같은 모습을 아름답다고 칭한 거야?’
“칸나, 너….”
헤나는 칸나를 다그치고 싶었다. 그러나 동생에게 뭐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넌 정상이 아니라고? 평생 아프다가 이제 겨우 웃을 수 있게 된 아이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창 말을 고르고 있다 가브리엘이 볼일을 마치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헤나는 숨을 죽여 급하게 속삭였다.
“가브리엘 경에게는 눈이 보인다고 하지 마. 넌 그냥 저 그림이 성스럽다고 느껴지는 거야. 알겠지?”
신전의 사람들도 그림을 신성하다 여겼으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칸나의 경우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칸나는 저 성화를 ‘눈’으로 인식하면서도 그걸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인간에게서 떨어져나온 안구를 보며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헤나가 다그치듯이 당부하자 칸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나는 오랜 시간 짐작해 왔음에도 믿을 수 없었던 진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기로 했다.
칸나는 어딘가 망가져 버렸다.
그게 도나우에게 납치되고 난 후인지, 영애님을 만나고 나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이 병약한 것에 감춰져 있었을 수도 있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림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다행인 것은 이렇게만 보면 칸나에게 별다른 이상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칸나는 영애님의 총애를 받고 있지 않은가. 영애님의 곁에 있으려면 차라리 그대로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헤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 모든 게 자신이 동생과 마주할 수 없어 합리화해 버린 게 아닐까에 대해 고민했다.
물론 고민은 짧았다. 과거, 고양이처럼 구는 괴물과 결국 손을 맞잡았듯이 헤나의 선택은 언제나 동생을 위한다.
“그런데 방금은 왜 부르신 거래요? 저 그림이랑 관련 있나요?”
헤나가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에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칸나의 물음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제 수하가 증인 한 명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증인이요?”
“네. 수도원에 있던 사람이라는데….”
“그림에 관한 이야기면 저도 들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가브리엘이 말을 아끼자 칸나가 물었다. 가브리엘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다가 도나우의 사건과 관계있는 두 사람을 대동하기로 한 듯했다.
“먼저 응접실에 모셔가라 했으니 자세한 건 함께 들으시죠.”
그림을 봤으니 더는 신전에 머무를 이유도 없었다. 헤나도 한시 빨리 불길한 그림 근처에서 멀어지고 싶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