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20)
Chapter 20
“로한슨 영애께서 기도를 끝내시면 기사단 응접실로 안내하도록. 유리엘이 함께 있다.”
가는 길에 기사 한 명에게 에반젤린 영애를 기사단 응접실로 모셔오라는 말도 전했다.
파라로스 기사단은 신전 소속이라서 그런지 대신전의 바로 근처에 건물이 따로 지어져 있었다. 그 위용이 대신전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화려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건물은 단출했다.
“아. 저기입니다.”
기사단 사무실과 가까워질수록 헤나는 앞으로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가브리엘은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생겨 달가웠겠지만 헤나는 반대로 몹시 불안해졌다. 당시 도나우의 죽음을 목격한 건 헤나와 칸나인데 다른 증인이 나타났다고? 그림이 문제인 거니 화가 쪽의 증인? 아니 증인이랄 게 필요한가?
그것도 수도원에 있던 사람이라니. 헤나는 가브리엘이 말한 증인이 대체 어떤 걸 목격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해졌다.
‘설마 영애님이 도나우를 죽이는 모습을 본 건 아니겠지. 그때 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니까 소란을 듣고….’
그리고 사형 선고가 내려지듯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방금 봤던 라파엘라를 포함한 세 명의 기사와 제보자로 추정되는 수도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너무나도 눈에 익어 헤나는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내뱉었다.
“데이지?”
눈이 멀어 수도원으로 치우듯 버려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데이지가 부쩍 수척해진 모습으로 헤나를 바라봤다.
“헤나.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할 말이야. 너 눈이 멀었다고….”
데이지는 눈이 멀어 수도원에 보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처음에 데이지의 후임 자리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헤나는 반쯤은 데이지가 이미 죽었고 영애가 뒤처리를 위해 그런 소문을 낸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데이지는 눈이 멀지도 않았고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 데이지가 증인이라고? 헤나는 짐작도 못 했던 상황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면 착각한 거라고 몰아갈 수라도 있지. 데이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애를 모시던 측근 하녀였다.
로한슨 저택의 사람들은 집사가 주는 돈과 항상 곁에 존재하는 에반젤린 영애의 존재감에 쉽게 입을 떠벌리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가 이미 일을 그만둔 데이지라면? 죽은 영애가 되살아난 것부터 모든 것을 밝힐 것이다.
그럼 안 된다. 모든 전말을 듣게 된 신전 측에서 영애를 처단하려 든다면? 영애에게 해가 끼칠까 걱정하는 게 아니다. 에반젤린 로한슨이란 역할이 지금 영애님을 자제시키고 있는 셈인데 그게 무용지물이 되고 난 후가 두려울 뿐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데이지의 입을 막아야 하는데.
“저택 일은 그만뒀어?”
헤나가 고개를 젓자 데이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되도록 빨리 그만둬. 잠깐, 잠깐만. 목에 저거…. 헤나, 쟤 누구야?”
데이지가 칸나를 가리켰다.
“내 동생이야.”
목? 데이지는 칸나의 목을 보고 있었다. 칸나의 목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과거, 도나우가 그은 것인데 칸나가 성수로 치료하자는걸 거부해 여태 그냥 두고 있는 것이었다.
데이지는 그 목을 보고 구역질이 난다는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동생이라고?”
데이지의 되물음에 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생… 저택에서 같이 일해?”
“응.”
헤나가 대답을 할수록 데이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입을 틀어막은 손과 눈동자는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저 목에 그어진 선은 분명 데이지가 소환해 낸 악마의 흔적이었다. 악마는 사람의 목을 잘라 죽이고 그걸 다시 이어붙이는 악취미를 가졌으니까. 목에 그어진 가는 선만 아니라면 저 사람이 죽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악마는 자신을 로한슨 저택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었고 데이지는 그 말대로 따랐다. 악마는 로한슨 저택에 무사히 입성해 그 저택의 사람들을 해한 모양이다.
한 편으로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으나, 직접 피해자가 데이지의 앞에 나서자 충격이 컸다. 심지어 피해자가 원래 알던 동료의 혈육이라니까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충격을 받은 데이지가 비틀거리자 옆에 있던 기사가 서둘러 부축하려 했으나 데이지가 날카롭게 손을 쳐냈다. 그리고 자신이 내친 기사를 공포에 질린 것처럼 바라보더니 뒷걸음질 쳤다.
당장에라도 저 기사들이 돌변해서 데이지의 목을 칠 것 같았다. 악마를 소환해 낸 데다 베르가 사제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데이지 역시 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는, 저는 이만 가 봐야겠어요.”
“네? 그게 무슨.”
데이지가 신전을 찾아온 건 베르가 사제가 봤다는 그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림에서 불길한 주술 진을 확인했고 그걸 처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증언하기로 했다.
물론 자신이 저지른 걸 모두 자백하려고 한 건 아니어서 증언은 거짓말을 섞어 그럴듯하게 만든 것뿐이었지만.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게 전부예요. 증언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가브리엘이 맞느냐는 듯 돌아보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가 증언했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종이를 받아든 가브리엘은 내용을 대충 훑어보았다.
수도원의 베르가 사제가 그 소환 진을 통해 악마를 소환하였다는 내용이다. 베르가 사제가 악마에게 홀려 저질렀다는 악행들도 여럿 쓰여 있었다. 사제의 방을 뒤지면 그 증거가 나올 거라는 이야기도 함께였다.
다음 장으로 넘기자 에반젤린 로한슨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로 대화하는 걸 보면 원래 로한슨 저택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목격담인 것 같았다.
슬쩍 헤나와 칸나를 살핀 가브리엘은 조용히 종이를 뒤집어 덮었다. 그렇다면 왜 데이지가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로한슨 저택의 사람을 다시 만났으니 겁을 먹은 게 당연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조사해 보죠.”
가브리엘에게서 가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데이지가 안도했다. 베르가 사제는 이미 죽었으니 죄를 뒤집어씌워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진술한 악행들은 베르가 사제가 실제로 저질렀던 일들뿐이고, 사실 그 소환 진을 그린 것도 베르가 사제가 맞았으니까.
데이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신전에 걸려 있는 불길한 그림을 내리는 것뿐이었으니 이걸로도 충분히 제 몫을 다 한 거다.
“라파엘라, 신전 밖까지 모셔다드려.”
데이지는 그것마저 거절하면 정말 수상하게 비칠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는 헤나를 스쳐 지나가며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헤나의 옆에 있는 칸나마저 듣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밀한 속삭임이었다.
“헤나. 저건 네 동생이 아니야.”
차마 모든 경위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바로 옆에 기사들이 있었고, 헤나에게 너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는 원망을 들을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게 데이지의 최선이었다.
데이지는 헤나의 죽은 동생과 그 옆에 둥둥 떠 있는 한 구체를 바라봤다. 저걸 저택 밖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전에 봤던 만큼 두렵지는 않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래도 대신전 안이라서 그런지 제 위력을 다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데이지가 겪어 본 바, 저 눈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방금 데이지가 헤나에게 건넨 말도 듣지 못했을 거다.
데이지는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서둘러 응접실을 벗어났다.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방을 나서는 데이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헤나는 조용히 동생의 손을 꽉 잡았다.
“언니. 저 사람이 방금 뭐라고 말한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데이지가 뭐라 말하건, 칸나는 헤나의 하나뿐인 동생이 맞았다. 죽은 도나우를 보고 희열에 찼을 때도, 그 괴물 같던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했을 때도, 칸나가 얼마나 망가졌든 무슨 생각을 하든 헤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동생일 뿐이었다. 맞지. 맞겠지?
***
“기도는 잘 끝내셨나요?”
네. 아주 끝내주는 낮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차마 성기사 앞에서 기도 시간에 꿀잠 잤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유리엘이 안내해 준 기도실은 귀족들이 자주 쓴다던 개인실이었는데, 주 고객층이 부자라서 그런지 실내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무슨 독방처럼 생겼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주 포근하고 좋더라.
큰 창문에서 햇빛도 쏟아지고 어디선지 모르겠지만, 오르간 소리도 들려서 눈 감고 기도하는 척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노곤해져서 잠이 쏟아졌다.
꿈에서도 신은 못 봤다. 빙의자 특전으로 신이랑 대화하기는 무슨. 언어 패치도 나중에 해 주고 빙의 시점도 한참 늦었는데 이런 특혜를 줄 리가 없지. 내가 너무 행복 회로를 돌렸나 보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몇 시간 동안 기도하시는 신도님들도 계시는걸요.”
오래 자 버린 건 아니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나 보다. 신전에 시계라도 걸려 있으면 좋을 텐데 기도실도 물론이고 시계가 없었다. 휴대 전화기가 없으니까 이런 게 불편하네. 나도 회중시계 같은 거 하나 들고 다녀야겠다.
“아, 단장님께서는 기사단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같이 오신 일행분들도 함께 계시고요.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헤나랑 칸나는 벌써 그림 구경 끝냈나 보다. 저택으로 먼저 안 돌아가고 날 기다려 준 건가? 이게 바로 우정…? 마음이 따뜻해진다. 꾸벅꾸벅 자는 젤리를 찰싹 때려서 깨웠다. 얘도 따지고 보면 같이 기다려 준 건데 왜 이렇게 얄밉지?
신전에 온 김에 겸사겸사 가져온 금화로 성수도 쇼핑했다. 온 김에 성수도 좀 쟁여 놔야지. 다행히 금화를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로 가져오는 바람에 성수 열 병을 사고도 돈이 남았다.
“멋지십니다, 영애님. 제 연봉을 몇 년 치를 전부 쏟아도 살 수 없는 양입니다.”
옆에서 유리엘이 가게 점원처럼 손뼉을 칠 기세로 입바른 말을 했다. 혹시 기사가 아니라 무슨 성수 세일즈맨 같은 건 아니지?
성수를 젤리한테 들려 주자 젤리가 싫다며 질색을 해 댔다.
“이걸 제가 들고가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