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22)
Chapter 22
데이지가 나와 얘기하다가 갑자기 도망갔는데 보통 그러면 이유를 물어보지 않나? 게다가 프라이버시 보호 운운하면서 대화를 엿듣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혹시 복흑 속성은 아니겠지? 지금은 이렇게 친절하게 굴지만, 가브리엘이 나를 적으로 간주하면 제일 먼저 앞장서서 나를 처단하러 오는 거야. 상상했더니 라파엘라의 웃는 얼굴이 좀 무서워졌다. 애초에 나는 저런 하하 호호 웃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아. 그쪽 영식께서는요?”
라파엘라가 젤리를 보며 물었다. 젤리는 내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하느냐고 눈빛으로 물어왔다.
그러게…? 뭐라고 하지? 내가 낚아챈 서브 남주? 마법 쓰는 웨어울프? 우리 집 애완 수인?
“제 호위예요.”
“아! 기사님이셨군요. 검을 차고 있지 않으셔서 몰라뵀습니다.”
그걸 생각 못 했네. 검을 쓰는 게 이상하지. 젤리는 수인 마법사잖아. 주로 마법 쓰고 검 대신 손톱을 쓰겠지. 변명할 거면 좀 그럴듯한 거로 할 걸 그랬다. 어떻게 수습하지? 고민하는데 젤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제가 검 없이도 훌륭해서요.”
아주 능청스럽게 잘 대꾸하네. 라파엘라는 젤리가 한 손으로 가볍게 성수 병이 담겨 있는 함을 들고 있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젤리의 힘자랑이 쓸 데가 있었다.
“기사단 응접실로 가실 거죠? 그럼 저도 함께 돌아가야겠네요.”
라파엘라와 유리엘이 먼저 앞장섰다. 젤리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하게 뒤를 따랐다.
“데이지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누구요? 아. 아까 걔? 음… 약간의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
“괴롭힌 건 아니고?”
“아니에요. 오히려 도와줬다니까요. 쟤를 밖으로 빼내서 같이 도망쳤다고요.”
젤리가 괴롭힘 당한 건 오히려 나 아니냐면서 툴툴대며 답을 했다. 아무래도 바로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어 말을 좀 돌려서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것만으로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젤리가 처음 나타났을 때 엄청나게 다쳐 있었잖아. 수인이 그렇게 다칠만한 일이 얼마나 있겠어? 게다가 방금 같이 빠져나와 도망쳤다고 했잖아.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그거다. 데이지와 젤리가 노예 상인 같은 놈한테 잡혔다가 같이 도망친 거지! 데이지는 그때 끔찍했던 기억이 젤리를 보니 떠올라서 그렇게 새파랗게 질렸던 거고. 이런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어쩌고로 불렀던 것 같은데.
그럼 젤리가 서브 남주가 아니라 서브 커플이었나? 이제 결말 즈음에 칸나에 대한 마음을 접고 데이지 쪽으로 넘어가는 거지. 이쪽도 악역은 나네. 왜 커플은 두 개인데 악역은 하나뿐인 건데?
“뒤처리도 깔끔하게 했어요.”
그 와중에 노예 상인들 처리까지 깔끔하게 했나 보다. 그건 잘했네. 칭찬으로 젤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라파엘라는 멀리서 우리가 뒤따라오지 않자 멈춰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젤리와 내가 다가가 거리가 좁혀지자 그는 굉장히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상관이랑 호감을 느끼고 만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외간 남자 머리를 쓰다듬는 걸 목격했으니 그럴 만하다.
“호위랑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건 젤리가 제 애완동물이라…. 평소에는 사람이 아니라 늑대 모습으로 다니는 바람에…. 이 말을 꺼냈다가는 진짜 이종족 차별하는 노예 상인으로 찍힐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전혀요.”
절대 가브리엘이랑 연애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가브리엘 눈 밖에 나면 안 되니까 대신 단호하게 대꾸했다. 내가 로판 세계관에서 어장을 펼칠 줄이야….
***
라파엘라는 데이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에반젤린 로한슨을 조용히 응시했다. 입으로는 유리엘과 실속이 없는 말을 주고받고 있어 다른 사람이 봤다면 라파엘라가 평소처럼 쓸데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중이라고 여길 거다. 물론 지금 대화 나누고 있는 유리엘도 눈치가 없는 편이라 라파엘라의 본성을 잘 몰랐다.
라파엘라는 가브리엘을 제외하고 기사단 내에서 가장 진실을 많이 아는 자였다. 보이는 것처럼 라파엘라가 천진했다면 애초에 가브리엘이 옆에 두지도 않았을 거다.
라파엘라는 도나우의 시체를 보았고, 그 속에서 나온 의문의 문장도 알았다. 주술 진에 대해서도 알았고, 로한슨 저택을 들린 이후 과거의 주술에 관하여 조사를 하는 중이기도 했다.
데이지의 증언을 듣고 정리해 가브리엘에게 보고서를 올린 것 역시 라파엘라였다.
데이지의 증언은 얼핏 듣기론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베르가 사제가 무엇인가를 소환하는 걸 보았다. 그것은 마치 악마 같았으며, 그 악마가 죽인 사람은 목이 잘렸다 다시 붙는다. 그리고 꼭 죽지 않은 것처럼 멀쩡하게 행동하며 목에 그어진 붉은 선만 아니면 빼면 보통의 인간과 구분할 수 없다고.
그래서 에반젤린 로한슨의 하녀인 칸나를 봤을 때 그렇게 기겁을 했던 거겠지.
솔직히 에반젤린 로한슨이 데리고 있는 하녀라서 그런가?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기는 했다. 애초에 에반젤린 본인도 죽었다가 되살아났다는 참이고.
‘에반젤린 로한슨의 목에는….’
물론 에반젤린의 목은 깨끗할 뿐이었다.
데이지가 말한 베르가 사제가 저지른 악행들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끔찍한 것이었다. 여태까지 무사했던 건 외곽에 있는 수도원 특유의 폐쇄성과 베르가 사제의 가문이 받쳐 줬기 때문일 거다. 거참, 라헬 님의 은혜를 받은 성직자가 그래야 쓰나?
데이지가 알지 못한 다른 죄목들은 베르가 사제를 잡아 조사해 보면 밝혀지게 될 거다.
그러나 데이지의 진술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서 라파엘라가 제일 의아하게 여기는 점은 악마를 소환하는 걸 목격한 데이지가 어떻게 그걸 보고서 무사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베르가 사제가 자신의 비밀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 데이지를 손쉽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도망친 걸까?
“유리엘, 도망치기 힘든 곳에서 감시당하고 있는데 달아날 수 있어?”
“감옥 말입니까? 그러면 도망가면 안 되지요.”
“…감옥 말고 다른 곳이야. 예를 들어 수도원 같은 곳.”
유리엘은 수도원에 왜 갇혀서 감시를 당하는 데다가 도망까지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라파엘라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성실하게 고민해 봤다.
“창문을 뛰어넘어서요? 나무를 이용한다면 3층까지는 무사할 것 같습니다.”
“…그래, 고마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에 라파엘라가 이마를 싸맸다. 데이지는 유리엘처럼 창문으로 뛰어넘어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라파엘라는 다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절, 제 이름을 모르세요?”
“—————————.”
“…데이지예요.”
이상한 감각이다. 두 사람은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에반젤린 로한슨이 하는 말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에반젤린을 입을 움직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에반젤린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선명했다.
데이지에게는 제대로 들리는지 그녀는 무슨 말이라도 들은 듯 계속해서 문답을 나눴다.
라파엘라는 데이지의 말만으로 대화를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의 대화를 따르면 에반젤린 로한슨은 데이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데이지는 증언을 할 때, 마치 트라우마를 목격한 듯이 굴던데.
“에반젤린 영애가 되살아났다고요? 어떻게 들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맞아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모두 봤을걸요. …죽은 아가씨가 되살아나는 장면을요.”
“그때 장례식을 주관한 사제분이 자살했다고요? 놀랍지도 않네요.”
“소환 진은 영애가 그리던 걸 본 적이 있어요. 천사를 소환한다고요? 천사? 직접 본다면 그런 말은 못 할걸요?”
그리고 로한슨 저택에서 목격한 것.
데이지는 에반젤린이 무언가를 소환하는 걸 보았다고 했다. 베르가 사제의 경우를 봐서 그것 역시 악마일 게 분명하다면서 말이다.
“로한슨 저택에는 보는 눈이 많아요. 그래서 수도원으로 갔어요.”
그 후 저택에는 보는 눈이 있어 도망간 게 수도원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건에 휩싸이다니 운도 나빠라.
데이지가 말한 ‘눈’이란 과연 무엇일까.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가? 로한슨 저택의 사용인들이 모두 헤나와 칸나라는 자매처럼 충성스러운 걸까?
원래라면 단장님이 그에 대해 물을 예정이었는데 데이지가 로한슨 저택의 하녀들을 보고 입을 다무는 바람에 일이 좀 틀어졌다.
단장님은 정보를 더 캐보라며 라파엘라에게 배웅을 맡겼으나 걷는 내내 데이지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바람에 수확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에반젤린 로한슨을 만난 건 예상외의 행운이었다. 데이지는 시야에 에반젤린 로한슨이 들어온 순간부터 지나치게 동요했다.
그래서 라파엘라는 부러 데이지를 에반젤린 로한슨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무언가 더 캘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에반젤린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가브리엘 경이 알고 계세요.”
게다가 데이지는 겁을 먹고 자기가 증언을 했다는 사실까지 역으로 고해바친 것 같았다. 단장님의 이름이 나온 걸로 봐서는 자신이 진술했다는 사실을 토로한 것 같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다. 뒤이어서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검은 머리에 금색 눈을 가진 몹시 야살스러운 남자였다. 느릿한 행동은 마치 거대한 맹수가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에반젤린의 뒤쪽에 섰다.
“누구야?”
“로한슨 영애의 동행인 젤리 씨입니다.”
라파엘라는 황당해하며 유리엘을 바라봤다. 그런 우스갯소리 같은 걸 진짜 이름이라 생각하고 존칭까지 붙이는 순진한 동료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수도 없고 진중하시던데요.”
“저 젤리라는 사람이?”
“영애님이 기도하시는 동안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저 수상쩍은 사람이랑 둘이 있었다고? 물론 따지자면 에반젤린 로한슨이 더 위험 분자에 가깝기는 한데. 하필 눈치 없고 순진한 유리엘을 붙여 놓은 단장님이 약간 원망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