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28)
Chapter 28
“저, 로한슨 영애님의 존함은 어떻게 되나요?”
“로한슨 영애? 에반젤린 로한슨인데.”
“에반젤린 로한슨….”
그건 왜 물어보지? 라파엘라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굳이 따지자면 조금 전에 가브리엘이 에반젤린에게 손등 키스를 하던 때와 비슷했다.
“단장님, 라파엘라 님. 저는 그분을 마주한 순간 제 운명을 깨달았습니다.”
설마, 아니지? 첫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거 아니지? 라파엘라가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며 간절히 기도했다.
“에반젤린 님은 천사이시죠?”
이건 더 안 되는데. 라파엘라는 말을 정정했다. 차라리 반했다고 해 줬으면 좋겠네. 그 망할 그림에 미쳐서 천사가 기다리고 있다며 그림 속으로 뛰어들려 하더니, 이제는 에반젤린 로한슨이 천사라고?
문제는 이번엔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가브리엘과 라파엘라는 데이지의 증언을 듣고 나서도 에반젤린의 정체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에반젤린 님이 세례를 해 주실 때 저는 제가 진정으로 섬겨야 할 게 누구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미쉘이 기절하기 직전, 눈이 돌았던 그 순간을 말하는 건가? 라파엘라가 본 게 헛것이 아니었다. 라파엘라는 미쉘이 에반젤린에게 매료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내 몸이 불타고 있는데 웬 여자가 나타나서 물을 뿌려서 불을 꺼 주면 고맙겠지. 미쉘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던 라파엘라가 끝내 분노가 차올라 역지사지를 때려치웠다.
“이 미친놈아!”
그냥 감사하다고 생각하겠지. 천사 같다고는 생각할 수 있지. 근데 섬긴다고? 세례? 저 자식 뇌가 맛이 간 게 분명했다.
“라파엘라 경, 미쉘 경은 이제 막 일어났잖아요. 진정하세요.”
예레미가 라파엘라의 입을 틀어막고 소리 지르는 걸 진정시켰다. 미쉘은 라파엘라의 분노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더 이상 라헬 님의 기사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로한슨 영애님께 호위 기사로 받아 달라고 청할 겁니다. 갑작스러워서 거절하시려나요? 그럼 마구간지기라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그분이 존재하고 있는 곳에서 숨을 쉬고 싶습니다.”
라파엘라는 대신전의 지척에서 이단 숭배를 하는 미쉘을 보며 라헬 님에게 대신 사죄했다. 라헬 님, 저 자식이 잠깐 미쳐서 저러는 겁니다.
“단장님, 이대로 라파엘라 경이 쓰러질 것 같은데요….”
예레미의 말에 가브리엘이 미쉘을 불렀다.
“미쉘.”
“네, 단장님.”
미친 와중에도 사람은 잘 알아보는 게 그나마 전보다 낫다는 점이었다.
“네가 지금 신께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럼 계속 여기 있도록. 그게 라헬 님께서 주시는 벌이라고 생각해라.”
“그렇군요. 이미 다른 분을 섬기게 된 제가 여전히 이곳에서 라헬 님을 위해 일하는 게 벌이군요. 역시 라헬 님은 자비로우십니다. 하지만 단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저와 같은 이단 숭배자와 함께해도요.”
“나는 언제나 널 존중한다.”
“단장님! 저도 라헬 님만큼 단장님을 존경합니다!”
라파엘라는 방금 자기를 이단 숭배자라고 한 주제에 라헬 님만큼 단장을 좋아한다고 묘사하는 저 썩은 정신을 개조시키고 싶었다. 그림에 홀렸을 때는 말이라도 안 통했으니 그나마 나았지, 지금은 말도 통하니까 더 죽을 맛이었다.
“방금 미쉘 경이 자기가 이단 숭배자라 한 건가요?”
“벨까요?”
뒤에서 유리엘과 세라프가 만담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더 듣고 있으니 라파엘라는 차라리 자신이 로한슨 저택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오늘도 선선하니 좋구나.”
침대에 누워서 헤나가 가져다준 과일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먹구름이 우중충하기는 한데 살짝 열어 놓은 창문 틈으로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가 혹시 천국인가? 나 이미 죽은 것 같아….
“아가씨, 그러다 감기 걸리셔요.”
칸나가 내 어깨 위로 숄을 둘러줬다. 날씨가 덥지 않아서 그런지 이것도 괜찮은 것 같네. 아이고, 우리 칸나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잘하네. 고맙다는 뜻으로 과일을 하나 콕 찍어 내밀자 칸나가 볼을 붉히며 과일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걸 보던 헤나가 평소처럼 칸나한테 한마디를…. 한마디를 해야 하는데….
슬쩍 헤나의 눈치를 살폈다. 헤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헤나.”
“네, 네? 부르셨나요 영애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다. 진짜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피곤하다면 쉬어도 좋아. 칸나도 있고.”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말하는 데 힘이 하나도 없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가서 쉬어.”
“네….”
한 번 더 말하자 헤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헤나는 신전을 다녀온 이후로 계속 저 상태다.
“칸나. 헤나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나?”
“아프진 않아요. 근데 무슨 일인지 저한테도 말을 하지 않아서….”
칸나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분명 그때 데이지라는 사람한테 들은 말 때문일 거예요. 확실히 물어볼 걸 그랬어요….”
맞아, 데이지한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했었지. 데이지가 남주랑 섭남이랑만 엮이는 게 아니라 헤나한테도 갈등을 유발하나 보네.
그럼 헤나가 저런 게 나 때문인가? 헐…. 데이지한테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아, 맞아. 가브리엘이 준 종이 있잖아. 번역기도 다시 고쳐졌겠다. 지금 읽어 봐야겠다. 그래야 데이지가 가브리엘이랑 헤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칸나 저번에 가브리엘 경에게 받은 종이 좀 줄래?”
“방에 있을 거예요. 가져올게요.”
칸나가 방을 나섰다가 한참 뒤에 다시 돌아왔다. 근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칸나? 왜 그래?”
“아, 아가씨. 죄송해요, 종이가.”
칸나가 울먹이며 종이를 내밀었다. 받아 들고서는 깜짝 놀랐다. 잉크가 물에 번져서 글자가 전부 뭉개져 있었다.
“옷을 세탁할 때 실수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가씨. 죄송해요.”
칸나는 이제 숨이 넘어갈 것처럼 굴었다. 도나우한테 납치당했을 때도 이렇게 심하게 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혼낼 것 같은 게 더 무서운 거야?
“칸나.”
“흑…. 네에.”
“괜찮아. 고작 종이를 망쳤다고 내가 너를 혼내겠어?”
조금 많이 심란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애를 혼낼 수는 없잖아. 애초에 칸나한테 종이를 맡긴 건 나였으니까 내 책임이지 뭐.
이제 종이에 뭐라 쓰여 있었는지는 평생 모르는 건가? 가브리엘한테 다시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가브리엘이 왜 못 읽었느냐고 혹시 문맹이냐고 그럴 거 아니야. 에반젤린은 로판 귀족인데 글을 모를 리가 없잖아! 혼란스러운 와중에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데이지?”
“네?”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긴 하지. 진술서는 데이지의 말을 토대로 만든거잖아. 그럼 데이지를 찾아가면 되겠네! 저번에는 성수 사느라 돈을 다 써 버린 후에 만나서 줄 돈도 없었는데 이번에야말로 거금과 함께 찾아가서 현물로 사과하는 거지. 돈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다고.
“그 데이지라는 애가 사는 곳을 알면 찾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왜요? 걔한테 볼일 있어요?”
마침 산책을 나갔던 젤리가 타이밍 좋게 돌아왔다.
“젤리.”
그래, 젤리는 데이지랑 엮여 있는 과거사도 있잖아. 알지 않을까?
젤리의 품 안에서 푸딩이 뛰어나와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꾹꾹이를 하는 손이 아주 야무졌다. 이 손으로 오늘도 열심히 한 판 했는지 젤리의 얼굴에 발톱 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웨어울프라서 회복력이 빠르니까 다행이지.
“젤리 넌 그 애가 어디 사는지 아니?”
“아뇨?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걔는 제가 여기 있는 걸 아니까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오겠죠.”
이게 데이지와 같이 역경을 함께한 섭남이 맞나…? 잘생긴 거랑 웨어울프라는 점 때문에 주연이 확실하기는 한데 보면 볼수록 그냥 똥차 같단 말이야. 아니… 똥개인가?
젤리가 자기도 늑대로 변해서 침대 위로 올라가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건 이제 낮잠 잘 거니까 말을 걸지 말아 달라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내가 섭남이 아니라 사춘기 아들을 키우고 있었나 보다.
저걸 내다 버릴 수도 없고. 그럼 어떻게 하지? 가브리엘한테라도 물어봐야 하나. 저 도움 안 되는 것…. 혀를 차며 보고 있으니 칸나가 좋은 의견을 내놨다.
“데이지라는 사람이 원래 저택에서 일했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집사님께 여쭤보면 되는 거 아닐까요?”
푸딩도 그게 정답이라는 듯 냥냥 울었다. 우리 칸나가 너무 똑똑해서 박수만 나온다 진짜. 도움도 안 되는 어떤 털 뭉치랑은 아주 다르네.
“칸나. 도움이 됐어.”
“아가씨이….”
쇠뿔도 당긴 김에 빼랬다고 지금 바로 가서 물어봐야겠다.
“저는 채비를 해 놓고 있을게요.”
집사한테 데이지 주소 캐물으러 굳이 둘씩이나 갈 필요는 없지. 칸나는 외출 준비, 나는 뒷조사. 완벽한 분업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푸딩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푸딩을 안아서 젤리 품에 안겨 놨다.
“집사한테 다녀올 동안 젤리 좀 깨워 줄래?”
수인이라서 말이 통하는 건 진짜 편하다니까. 쓰다듬어 주니 푸딩이 만족한 듯이 고롱거렸다. 하…. 이 세계에서도 고양이는 진짜 힐링 그 자체다.
“헤나에겐 말하지 말렴.”
“네. 그냥 외출을 다녀온다고 할게요.”
지금 데이지한테 헤나한테 뭐라 말했느냐고 캐물으러 가는 건데 데려갈 수는 없지. 겸사겸사 가브리엘한테 뭐라 했는지도 묻고. 돈도 주고. 완벽하다.
상대 쪽에서 보기 싫어할 거라고? 여기가 현실이면 그랬겠지. 하지만 여기는 로판 세계관이고, 데이지는 악녀의 걸림돌 같은 역할이라 자주 등장하게 설정되어 있을 테니까 상관없지. 조금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