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29)
Chapter 29
오랜만에 집사를 찾아갔다. 집사에게 뭘 보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하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들며 숨죽여 사라졌다. 그나마 이 반응이 호전된 거라니 너무 씁쓸하다.
“영애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필요한 게 있어서.”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요.”
“여기에 데이지라고 하는 하녀가 일했었다고 하던데?”
집사는 말이 없었다.
“수도원으로 들어간 그 데이지 말이야.”
아, 다 아는 사람이 왜 이러실까. 나도 다 알고 온 건데 이거 참. 뭔가 이렇게 말하니까 범죄자를 심문하러 온 형사가 된 기분이다.
“데이지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알고 싶어서. 설마 없는 건 아니지?”
막 그만둔 사람의 정보는 바로 폐기한다거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미 그만둔 하인의 개인 정보가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 게다가 상부에서 멋대로 뒷조사해서 집 주소 알아내는 중.
“수도원에 들어간다며 집을 팔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집이라고 할 만한 건 수도원이겠지요.”
아니, 데이지가 수도원에 없으니까 문제라고. 그쪽 수도원장이 악행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데이지가 도망쳐 나와 그걸 수도원에 정의롭게 알린 거잖아. 그 김에 내 악행들도 말하고.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그 못된 수도원장이랑 동급 같네? 데이지가 훨씬 정의로워 보이고.
“데이지가 살만한 다른 곳은 없어?”
집사는 뭔가 더 알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외 알 안경을 써서 그런가 막, 사실 정보 길드의 수장이라거나 암살자를 부업으로 삼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끝까지 질척거리면서 물고 늘어지자 정보가 하나 더 튀어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알면서 숨기는 거였어.
“아이노아 고아원?”
“고아원 출신이라고 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나와 잠시 머무른다면 그쪽이겠지요.”
고아원? 그럼 데이지는 고아원에 있다가 하필 악녀의 하녀가 돼서 괴롭힘당하다가, 수도원으로 도망쳤는데 거기선 미친 수도원장 때문에 트라우마까지 심어진 거구나.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노예상한테 잡혔다가 거기에 같이 잡힌 젤리랑 무사히 도망친 거고.
어째…. 칸나보다 데이지 쪽이 서사가 더 깊지 않나? 사실 여주는 칸나가 아니라 데이지였던 거 아니야? 악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원작의 억지력이 심어 놓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건가?
몰라. 가서 보면 알게 되겠지. 집사를 찾아오기 전에 미리 검소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금화도 많이 챙겨 놨다.
밖에는 마차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 로한슨 백작가 마차도 아니고 따로 부른 마차인 것 같았다. 언제 부른 거래?
“젤리 씨가 불러 주셨어요.”
방금 욕했던 게 미안해지네. 그래. 젤리가 조금 껄렁대기는 하는데 말은 또 잘 듣고 배려도 있지.
“잘했죠?”
젤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얼굴에 발톱 자국을 매달고서 자랑이다 진짜.
“푸딩은?”
“여기.”
젤리가 푸딩을 넘겨줬다. 아니 애를 데려오면 어떻게 해? 마차 타고 가야 하는데 마차가 얼마나 흔들리는데.
“푸딩, 같이 갈래?”
푸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얘를 데려다 놓고 올 수도 없고. 푸딩도 같이 가고 싶은 모양이니 어쩔 수 없이 데려가야지 뭐.
“어디로 모실까요?”
젤리가 부른 마차라서 그런지 마부도 몹시 예의가 넘쳤다. 조금 안 좋은 습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마부 아저씨가 목을 긁는 습관이 있나 보다. 살짝 보이는 목 부분이 빨갰다.
“아이노아 고아원으로.”
뭐. 그건 마차 모는 실력이랑 상관없으니까.
***
오늘 데이지는 몇 년 전까지 신세를 졌던 고아원을 찾아간 참이었다. 신전을 도망치듯 벗어난 후 저렴한 여관에서 방을 잡아 머물렀다. 하는 일은 없고 먹고 자기만 하니 돈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남은 돈을 계산하다가 평소에 비해 많이 남아 있는 잔액을 보고 자신이 최근에 고아원에 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들릴 때가 됐구나.’
데이지는 원장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일한 돈의 일부를 떼어서 고아원에 매번 기부했다. 가끔은 아이들이 먹을 빵과 과일을 사 들고 들리기도 했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들렸었지. 왠지 오늘따라 유독 동생들이 보고 싶었다. 데이지는 그런 생각으로 선물을 한 아름 사 들고 고아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갔기 때문인지 고아원은 무척 낯설어 보였다. 유독 인기척도 없는 것 같고. 데이지는 의아해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고아원 내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과 원장님을 부르며 방문을 하나씩 열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여행이라도 간 건가? 그리고 원장실의 문을 연 순간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아주 익숙한 문양을 보았다.
아가씨의 탈을 쓴 그것이 그렸고, 데이지가 소환해 낸 것과 같은 그림이 피로 그려져 있었다.
‘저게 왜 여기 있지?’
데이지는 순간적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왜 고아원에 저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는 아무도 없는 걸까? 무언가 불길한 상상이 온몸을 휘감았다. 털끝이 곤두섰고 목이 죄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무릎으로 기어서 다가갔다. 바닥에 그려진 그건 정말 악마를 불러내는 소환 진이 맞았다. 그리고 저 질척한 색채는 데이지의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감돌았다.
‘이게 뭐야….’
이 정도 되면 저 그림이 데이지를 뒤쫓아 오는 것 같았다.
원장님은 어떻게 된 거지? 고아원의 아이들은? 데이지를 부르며 천진난만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설마 이 주술 진의 제물로….
데이지는 혹시나 싶어 다시 고아원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인기척은커녕 시체조차 나오지 않았다. 피로 그려진 그림만이 남아 있는 전부였다.
데이지는 한참을 거기에 앉아 있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고아원을 나섰다. 더는 그곳에 있을 수 없어 도망쳐 나왔다. 지금 당장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정신이 반쯤 빠진 채 걸어가는 데이지의 코앞으로 마차가 쓱 지나갔다. 데이지의 몸만 한 바퀴가 바로 앞에서 굴러갔고 데이지는 놀라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미친 자식!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마부가 마차를 멈춰 세우지도 않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저 안에 어떤 귀한 분이 타고 계실지는 모르나 대부분 마차는 한 번 달리면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멈춰 설 줄을 몰랐다.
데이지는 날 선 욕설을 들으면서도 머리가 멍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걸 보던 한 행인이 데이지를 일으켜줬다.
“어휴. 누가 미친 건지 모르겠네. 아가씨 괜찮아?”
그것도 모자라서 데이지의 옷에 묻은 흙도 털어 주었다. 데이지는 그 친절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거야? 그럼 어서 돌아가서 쉬어….”
행인은 데이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인 후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그 말을 곱씹다가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돌아가라고? 어디로?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면 어디로 가야 좋을까.
‘원장님. 얘들아….’
“경비병을 찾아가야….”
아니다. 안 돼. 시체가 나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경비병을 불러서 뭘 하겠다고. 게다가 그 주술 진이 나온 이상 평범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거다.
지금은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다. 데이지가 바라는 대로 당장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데이지는 마차를 하나 잡았다.
“로한슨, 로한슨 저택까지요.”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불러. 다음에는 제값 받을 거지만.”
“내게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찾아와. 들어줄 테니까.”
그 악마와 에반젤린의 말을 떠올렸다.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했던 말. 정말일까?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에반젤린이 아니라 신전을 찾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신전이 데이지가 들어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던가? 저번에도 대신전의 출입까지는 3일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건 너무 늦다.
게다가 가 봤자 아직 한창 베르가 사제를 조사하고 있을 거다. 그러면 더욱 고아원의 사람들을 찾는 것이 늦춰지겠지.
반면에 에반젤린이라면…. 분명히 그 주술 진에 대해 잘 알 테니까.
“5쿠퍼일세.”
데이지는 돈을 내려고 주머니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품 안을 뒤져 봐도 돈이 든 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어디에서 흘린 거지? 그러다가 마차에 치일 뻔할 때 데이지를 도와주던 행인이 떠올랐다. 그때 훔쳐 간 거구나.
“돈이 없으면 내리시게.”
“지금 급해서 그래요. 제발 돈은 나중에 드릴게요.”
“이보게 젊은이. 내가 그런 수법에 한두 번 당한 줄 아나? 당신네 같은 족속은 내려서 돈을 가져다준다고 하고 도망간단 말이지. 나도 몇 번 당한 전적이 있어 안 되겠네. 미안하지만 다른 마차를 잡게.”
데이지는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을 떼던 데이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이제는 뜀박질이 되었다.
로한슨 저택에 가면 방법이 있을 거다.
데이지는 뛰었다. 폐가 터질듯할 땐 잠시 걸었다. 종아리가 땅기고 발이 무거워질 즘 한참을 달려 로한슨 저택에 당도했다.
“무슨 볼일로 왔습니까?”
문지기가 데이지를 막아섰다. 데이지가 그만둔 후 새로 고용된 사람인가? 낯선 얼굴이었다. 아는 사람이었다면 들여보내 달라고 말하기 수월했을 텐데.
데이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 이름을 꺼냈다.
“에반젤린…, 에반젤린 영애를 만나러 왔어요.”
데이지는 그날, 처음으로 죽은 아가씨의 몸을 강탈한 그것이 세간에는 ‘에반젤린 영애’라 불리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데이지 역시 그렇게 호칭했다.
그건 한 번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는 기분이었다.
“영애님께서는 출타 중이신데.”
하필 지금? 소원이 있다면 찾아오라고 했으면서! 데이지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