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35)
Chapter 35
메라이는 라넌과 메리를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데려갔다. 라넌도 지하실에 갇힌 이래로 처음 온 곳이었다. 당연히 침실로 갈 줄 알았던 라넌은 내부를 보고 나서 경악했다.
“착한 아이들, 내 말대로 조용히 잘 있었구나.”
아이들은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웅크려 있었다. 방 안의 풍경에 겁을 먹은 것이다. 음침한 구석이 있지만 나름대로 숙식은 가능할 정도인 지하실 풍경과는 다르게 이 방은 유독 두려웠다.
벽에 걸려 있는 흉기들은 그저 관상용이 아니라는 것처럼 날이 달아서 사용감이 엿보였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의자도 있었다. 방 전체에 녹슬고 오래 묵은 듯한 비릿한 향이 가득했다. 라넌은 헛구역질했다.
“율마….”
더욱 끔찍한 것은 율마가 묶여 있다는 거다. 그 왈가닥 같던 율마는 지쳤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저 구속만 한 것인지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너희가 사라져서 동생들을 잘 책임지지 못한 죄로 율마를 혼냈단다.”
원장이 라넌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그리곤 라넌과 메리를 방 안으로 밀었다.
“또 버릇없이 굴면 율마처럼 혼날 줄 알렴.”
원장님의 목소리는 악몽을 꾼 밤 평온한 잠을 기도하며 자장가를 불러 주는 다정함이 여전히 배어 있어 메리는 울음이 나왔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내가 너희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지? 나는 가져올 게 있으니 잠깐 다녀오마. 그동안 다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입 다물고 아주 죽은 듯이 조용히 있는 거야. 알겠지?”
원장은 아이들과 모두 한 번씩 눈을 맞추며 경고하고서는 문을 잠그고 방을 나갔다. 라넌은 소리가 작아져 원장이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 문고리를 돌려 봤지만 털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굳게 잠겨 있다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메리는 서둘러 율마에게 달려갔다.
“유, 율마, 어떻게 해….”
메리의 울음보가 터지려고 하자 고아원의 동생이 ‘쉿.’ 하고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주의하라고 했다. 메리는 저보다 어린 동생의 앞에서는 의젓한 연상이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앙다물었다.
그사이 라넌은 벽에서 거대한 가위처럼 생긴 집게를 잡아 들었다. 이건 무슨 용도로 쓰였던 걸까 하는 궁금증을 머리 한구석에 치우고 라넌은 집게로 줄을 끊었다. 입을 막고 있던 재갈도 풀고 나니 율마가 침을 토하며 숨을 거세게 내쉬었다.
“나 때문에… 많이 아프지, 미안해 율마….”
“하아… 네가 묶은 것도 아니면서 별것이 다 미안하대.”
원장은 별 이유를 다 들어 가며 아이들 대신 율마가 대표로 혼이 나는 거라며 지껄였지만 율마는 그걸 곧이곧대로 수용할 인물이 아니었다.
“다친 데는?”
“없어. 그냥 벌주신다며 묶은 게 끝이야.”
라넌이 율마를 부축해서 앉혔다. 율마의 곁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어 괜찮냐며 걱정하자 율마는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시끄럽다며 일축했다.
“근데 풀어도 괜찮을까?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더 혼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라넌은 방금 트로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어오는 발소리를 들었으며 그것 때문에 원장님이 무척 불안해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마 위로 올라가셨을 거야. 어쩌면… 트로이가 우리를 구해 줄지도 몰라.”
“말도 안 돼, 트로이가? 그 자식이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가고 원장님이 돌아오면?”
“그때는 내가 알아서 할게.”
율마는 라넌의 대답을 통해 만약 원장님이 돌아온다면 라넌이 벽에 걸린 도구들을 활용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미쳤나? 사람을 해치는 게 맨정신으로 어디 쉬운 일이야? 심지어 상대는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평생 부모처럼 따랐던 원장님이었다.
라넌은 그중에서도 가장 원장님을 잘 따랐다. 무심코 무기를 휘두르고 나서도 적지 않은 죄책감에 휘둘릴 거다.
신경질이 난 율마가 이죽거렸다.
“그럼 그 후엔 애들을 전부 데리고 어디로 가게? 다른 고아원이라도 가? 아니면 데이지 언니한테?”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여기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율마, 넌 똑똑하니까 잘 알고 있잖아. 여기 있는 도구들은 전부 사용된 적 있는 것들이야.”
율마와 라넌은 자신들이 팔릴 거로 생각했었다. 지하실에 감금된 이후로도 식사는 꾸준히 챙겼고 신체적 폭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에 데려온 걸 보면 어쩌면 앞으로는 체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입양 간다면서 사라진 고아원 아이 중 몇이 이미 당했을 수도 있지.
“그리고 트로이가 있잖아.”
라넌은 왜 저렇게 트로이를 신뢰하는 건지 모르겠다. 율마는 팔에 남은 흉터를 매만졌다. 이 상처는 트로이가 낸 거였다. 상처 때문에 예정됐던 입양은 취소됐고, 율마는 그 이후로 고아원에 주욱 남아 있었다.
입만 열면 고아 새끼에 이딴 고아원은 망해야 한다고 소리치던 트로이한테 의지하자고?
순간 율마는 ‘트로이가 일부러 그렇게 군 건가?’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굳이 비어 있는 고아원에 돌아온 데다 다른 사람들까지 데려온 거라면 그동안의 행패도 고의로 부린 걸 수도 있다. 너무 희망찬 바람일까?
“그래… 좋아. 네 말대로 여기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니까.”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 율마의 설득에 성공하자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율마는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구석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돼.”
동생들에게까지 연대 책임을 지게 할 필요는 없다.
“율마, 소리가 들려. 돌아오시는 것 같아.”
라넌은 무기를 들고 문 바로 옆에 섰다. 율마는 침을 삼켰다. 곧이어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
***
아이들은 원장이 위로 향했을 거로 생각했으나, 정작 원장은 쇠사슬에 얽힌 남자의 앞에 서 있었다. 팔을 계속 긁어 댄 끝에 핏방울이 맺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벌써 열흘이야. 배가 고프지 않니?”
“배는 늘 고프지.”
특히 지금처럼 코앞에서 피 향기가 술술 나는데 식욕이 당기지 않을 리가 있나. 멜렉은 침을 삼켰다.
“그런데 왜 먹지를 않지?”
원장이 무척이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사람은, 더욱이 애들은 절대 안 먹는다니까.”
“안 먹는다고?”
원장의 입매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곧 원장은 그 우스갯소리에 폭소했다.
“하하하하하핫! 정말 내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우스운 소리였어.”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고였다.
“악마야. 20년 전에 아이를 산 채로 씹고, 불에 태우던 모습을 즐기던 주제에 왜 이제 와서 제물을 거절하는 거지?”
아직 원장이 메라이라고 불리던 시절, 20년 전에 메라이는 아이노아 고아원의 고아였다.
메라이는 유독 영악한 아이였고, 당시의 원장은 입안의 혀처럼 구는 메라이를 무척 기특하게 여겼다.
어느 정도냐면 당신이 하시던 그 불결한 짓거리를 메라이에게 공유할 정도로 말이다.
이틀 전에 부유한 노부부에게 입양을 간다고 으스대던 얄미운 아이가 지하의 고문실에서 거의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본 게 지하로 내려간 첫날이었다. 그 말고도 고아원을 나갔다고 알려진 아이들이 지하에서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다.
온갖 비명과 신음과 헐떡임을 다 뒤덮는 것은 한 웃음소리였다. 원장이 지극히 모시던 그 악마는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희극이라도 보는 양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원장은 메라이가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고개를 잡고서 말했다.
“메라이, 저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악마란다. 악마를 즐겁게 해 주면 대가를 받을 수 있어. 네가 먹는 음식, 입는 옷들은 전부 악마가 준 돈으로 구한 거야.”
그리고 악마만을 위한 단막극이 종영되면 악마는 극장의 주인에게 팁을 주는 것이다.
“내가 너를 특별히 생각하는 걸 잘 알지? 메라이 너도 앞으로 원장님을 도와주렴.”
그 후로 메라이는 원장을 도와 악마의 수발을 들었다. 자그마치 2년씩이나. 그쯤 되니 고아원에서 메라이보다 연상인 아이는 없었다.
영원토록 계속될 것 같은 치하가 끝난 것은 대신전에서 주술사들을 잡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에는 수많은 자들이 주술사라고, 혹은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아이노아 고아원 역시 단속에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원장은 지하실로 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온갖 자료들을 급하게 폐기했다.
“메라이, 네가 신고했니? 넌 아니지?”
그런데도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혹여 누군가 누명을 씌울 생각이었는지 원장은 주술사라며 판결 내려져 화형당했다.
메라이가 고아원과 쓸모없는 아이들을 물려받았다. 법적으로 원장의 양녀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메라이는 그 건물에 또다시 고아원을 운영했다.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이 가장 연상인 메라이에게 매달려서 어쩔 수 없었다.
“배고파, 누나.”
“언니,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
초반은 원장이 남긴 돈으로 그럭저럭 그럴듯한 고아원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이 점점 떨어지고, 트로이를 낳으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아이들은 굶주렸고, 추워했다. 돈이 부족했다.
메라이는 머리를 싸매다가 원장의 생각이 난 어느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실의 문을 열어 봤다. 악마는 없었다. 지루한 걸 못 참는 모양이니 남아 있을 리가 없긴 했다.
악마가 없으니 메라이는 차선책을 택했다. 아이들을 노예 상인에게 판 것이다.
누군가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아주 은밀하게, 아이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원장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전의 사제까지 돈으로 매수해 끌어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중개인이 아니라 입소문을 통해 주 고객층이 생기기도 했다.
메라이는 아이를 판 돈으로 남은 아이들을 먹여 키웠다. 그러나 고작 한 명의 몸값으로는 반년을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트로이가 번번이 방해해 거래도 몇 번 어그러졌다. 트로이에게 진실을 말해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눈치챈 건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그 정도에서 그쳤지만, 트로이는 점점 반항이 심해지더니 얼마 전에는 고아원을 담보로 거금을 빌렸다면서 건물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렸다. 당장 이딴 고아원은 그만하라면서.
못된 아들 같으니, 메라이가 없으면 당장 굶어 죽을 아이들이 걱정되지도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