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36)
Chapter 36
메라이는 대부업자에게 아들이 담보를 멋대로 걸었다며 건물을 넘길 수 없다고 이야기했으나 뺨을 맞고 쫓겨났을 뿐이다.
돈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전부 팔아 치워서도 갚을 수 없는 거금이 필요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샀던 귀족들을 찾아갔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메라이는 도움을 청하려 신전에까지 발걸음 했다. 사제 한 명이 메라이의 우량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아름답고도 황홀한 그림을 마주한 순간 메라이는 전율했다. 마치 천사가 메라이의 손을 들어 준 것 같았다.
그림 속에는 과거에 원장이 단속을 피하려고 처분한 주술진이 그려져 있었다. 감사하게도 멍청한 신전 사람들은 저게 주술진이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메라이는 사제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뒤로하고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원장에게 주술의 과정은 모두 구술로 들은 적이 있었고, 다행히 전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팔을 그어 낸 피로 그림을 그린 후, 아이를 제물로 메라이는 악마를 소환해 냈다. 그 악마가 바로 메라이가 제공하는 수많은 유희를 거부하는 눈앞의 멍청이였다.
“그 악마는 자신을 멜렉이라고 이야기했어.”
과거의 악마를 다시 소환하는 건 성공했다. 메라이가 안도했으나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
악마가 과거를 부정한 탓이다. 같은 방식으로 소환해 낸 악마가 생긴 것도, 이름도, 하물며 목소리마저 같은데 자기가 아니라고?
“불쌍하게도 너는 아직 과거에 매여 있구나.”
악마가 메라이를 동정하기까지 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메라이는 기묘한 배신감에 휩싸여 선언했다.
“결국, 넌 과거처럼 아이들을 포식하게 될 거야.”
악마는 결점 없는 순백의 영혼을 사랑한다.
까닭은 모르겠으나 20년 만에 조우한 악마는 허기짐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가 고파 보이니 눈앞에 두면 더욱 구미가 당길 거라 생각했다.
메라이는 악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식사 거리를 전부 데리고 지하로 내려왔으나, 빌어먹게도 악마는 인내심이 대단했다.
결국, 악마의 인내심이 바닥나기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이 웬 손님들을 이끌고 고아원을 찾아오지 않았는가. 경비대? 아니면 20년 전처럼 사제들이 찾아온 걸까? 아니면 트로이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았다.
메라이는 조급해졌다.
악마가 스스로 사냥하기를 거부한다면, 방법은 또 있었다. 메라이는 편식쟁이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이려고 가끔 직접 밥을 떠먹여 주고는 했다.
그럼 지금도 잘 조리된 음식을 입에 직접 부어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메라이는 악마의 몸에 걸린 사슬을 잡아당겼다.
멜렉은 메라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아이들을 가둬 둔 고문실이었다.
***
곧이어 문이 열렸다.
율마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들었다. 라넌과 상의한 대로만 하면 된다. 어려울 건 없으니 잘할 수 있어.
그러나 율마의 호흡은 곧바로 깨졌다. 원장이 혼자가 아니라 사슬에 묶여 있는 남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왜 데려온 거지?’
남자가 원장의 뒤를 가로막고 서 있는 바람에 라넌이 뒤를 노리기 어려워졌다. 온몸이 구속당한 남자는 원장이 이끄는 데로 인형처럼 움직였다.
“율마를 누가 풀어 준 거니?”
원장은 안을 훑어보더니 다정하게 물었다.
“왜 아무도 답이 없니? 원장님이 돌아왔잖아. 다들 돌아서서 반겨 주렴.”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이들이 전부 다 귀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율마는 동생들에게 절대로 돌아보지도 말고 귀도 막고 벽에 웅크려 있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율마를 무서워했으니 말은 잘 들을 거다.
참을성 없는 아이들을 위해 백을 세고 난 후에야 돌아봐도 좋다고 이야기했고, 율마가 알기에는 백을 셀 수 있는 아이는 없었다.
“율마. 네가 대답하렴. 이게 무슨 상황이니?”
“그건 제가 묻고 싶어요. 원장님, 우리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전 당신이 우릴 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원장은 눈을 접으며 곱게 웃었다.
“팔아? 하하하, 그래 그거 유쾌한 착각이구나. 아니 원래 팔려고 했었으니 착각은 아닌가? 율마 너도 그래. 내 아들이 상품에 흠집만 내지 않았다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잘 보이는 곳에 보란 듯이 상처를 내다니 참 못된 아이지 않니?”
‘내가 상품이라고?’
율마는 원장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트로이에게 미약한 감사함을 느꼈다. 용도를 모르는 곳에 팔리는 것보다야 다치는 게 더 나았다. 율마에게 이따위 상처는 흠집도 흠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거든. 트로이가 고아원을 담보로 거금을 빌린 거 있지. 너희를 전부 사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갚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단다.”
방금 그 말 취소한다. 빌어먹을 개자식 같으니! 지금 이게 그 자식이 빌린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율마는 자신의 역할을 상기하며 질문을 이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요?”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나도 직접 보기 전까진 믿지 못했거든…. 그래, 너도 보면 알게 되겠지.”
원장은 벽으로 걸어가 무기들을 손으로 훑었다. 순간 율마가 잔뜩 긴장했다. 무기 하나가 사라진 걸 알아차리는 건 아니겠지? 천만다행으로 원장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빈자리를 지나쳤다.
그다음 순간 율마는 욕설을 내뱉지 않으려 혀를 씹었다.
원장이 날붙이를 집어 들었다.
젠장, 이런 미친. 라넌의 말이 맞았다. 원장님은 정말로 우리에게 저 흉기를 쓸 셈이었던 거다.
“율마 너도 나중엔 날 이해할 거야.”
이해는 개뿔! 생때같은 애새끼들을 팔아서 내 배를 불릴 바에야 굶어 죽는 게 나았다.
“넌 착한 아이지?”
이런 상황에서마저 착하고 자시고가 중요한가? 저 주옥같은 말은 원장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저 착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귀염을 떨어 댔다.
“난 착한 아이가 좋더라. 그래야 악마가 만족할 수 있거든.”
원장이 율마에게 날을 겨눴다. 온전히 문을 등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원장의 등 너머 경악한 듯한 라넌의 모습이 보였다.
원장이 날붙이를 잡은 거만 빼면 둘의 예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율마가 미끼가 되고, 라넌이 원장을 뒤에서 치기로 한 약속 말이다.
원장이 손을 치켜들었다.
“라넌!”
율마는 부디 성공을 기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에반젤린 영애가 부순 서랍은 원장님이 중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데이지는 그 서랍 열쇠를 원장님이 늘 소지하고 다닌다는 것도 잘 알았다.
‘8실버 30쿠퍼, 12실버 150쿠퍼, 10실버 200쿠퍼, 7실버, 13실버 32쿠퍼….’
데이지는 트로이가 찾아낸 서류를 읽고 또 읽었다. 수십 번을 되뇌어 봐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서류에는 원장님이 아이들을 매매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나도 이런 종이가 있다는 건 얼마 전에야 알았어.”
트로이는 잔뜩 굽은 상태로 겨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데이지는 트로이가 저토록 의기소침해하는 장면을 처음 봤다.
“네가 한 걸 원장님한테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고?”
“몇 년도부터인지 안 보여? 다섯 살짜리가 잘도 했겠어.”
데이지도 잘 알았다. 다만 그토록 다정하고 헌신적이던 원장님이 아이들을 팔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원장님, 애들은 원장님이 보고 싶지도 않을까요. 왜 다시 찾아오지도 않고….”
“그만큼 행복하게 지낸다는 거 아니겠니.”
언젠가 어렸던 데이지가 입양 간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토로하자 돌아왔던 답변이 떠올랐다.
행복하다고? 아니, 그저 돌아올 수가 없던 거였다.
“트로이, 너 원래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율마에게 상처를 낸 거고?”
트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는 트로이가 유독 입양 직전의 아이들에게 못살게 굴었던 게 떠올랐다. 율마는 팔에 난 흉한 상처 때문에 입양도 취소됐다. 그게 그냥 괴롭히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언제부터 알았는데?”
“처음 안 건 열 살 때야.”
트로이가 지금 열일곱이었으니 불과 칠 년 전이다.
“그 이야기를 왜 이제 해? 진작 알았으면….”
“말했어! 말했다고. 내가 얘기했잖아. 엄마가 애들을 팔아 치우는 거라고. 너희는 그 돈으로 먹고사는 거라고! 그때 뭐라고 했어? 괜히, 괜히 부잣집에 입양 가는 아이들 질투하지 말라며!”
트로이에 악에 받쳐 소리쳤다. 데이지는 트로이가 미워서 그렇게 구박했던 게 기억나 입을 다물었다.
트로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입양이라고 이름 붙여진 매매를 못 하게 저지했고 엄마에게 대들기도 몇 번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친모를 신고까지 했으나 증거는 없었고, 경비대는 1년에 고아 한둘쯤 사라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며 수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산 사람들이라면 돈 많은 귀족일 게 뻔하니 엮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한 거였다.
“나도 알아! 우리 엄마 미친 거! 그래서 내가 이 망할 고아원을 없애 버리려고 그런 거야!”
그래서 트로이는 차선책을 택했다.
“고아원에 남은 애들이 열세 명이야. 열세 명을 다 가져다 팔아도 못 채우게 건물을 담보로 15골드를 빌렸어. 그러면 애들을 파는 짓을 그만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원장님은 아이들과 함께 사라졌다.
트로이는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원장님이 아이들을 전부 팔아 치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든 게 자신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술을 마셔 기억을 휘발시키려고 했다고.
“나 때문이야….”
데이지는 눈물범벅이 된 트로이를 끌어안았다.
아마도 아이들은 팔리지 않았을 거다. 트로이의 말대로 전부를 팔아도 구하지 못할 거금이었으니까. 대신 트로이가 그러하듯 원장님 역시 다른 방법을 찾아냈겠지.
바닥에 그려진 저 그림으로 악마를 불러내어 소원을 빈 것이다. 데이지는 그림이 원장실에 그려져 있는 까닭을 알고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