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4)
Chapter 4
나는 이제 글씨도 읽을 수 있는 개쩌는 빙의자다.
글자를 읽을 수 있으니 에반젤린의 일기를 털어 볼 차례다. 겸사겸사 소환 주문도 찾고 나도 정령이나 드래곤 소환해서 먼치킨 한 번 찍어 보자!
자세를 잡았는데 푸딩이 무릎 위에 냉큼 앉았다. 푸딩과 함께 정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일기를 펼쳤다.
370년 3월 9일.
로한슨 백작을 만났다.
1월 1일에 시작 안 하는 일기는 오랜만이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몇 년도지?
“올해가 몇 년도야?”
“제국령으로 392년이에요.”
요즘 나랑 부쩍 친해진 헤나에게 연도를 물어봤다. 자기 고용주가 한심할 법도 한데 헤나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392년? 다시 날짜를 봤다. 이십 년도 더 전이네. 그렇다면 이건 에반젤린의 일기가 아니었다. 잘못 짚었다.
370년 8월 9일.
그 남자가 결혼하자고 했다.
아무래도 일기의 주인은 에반젤린의 엄마인 것 같았다. 막 로한슨 백작이랑 결혼하게 됐다는 말도 있고. 글을 길게 쓰는 타입은 아닌지 내용도 길지 않고 날짜도 훅훅 뛰어넘어 갔다.
370년 8월 19일.
아버지가 금족령을 내렸다. 그 남자가 공작가를 노리고 청혼한 게 분명하다고. 아빠는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그는 날 정말 사랑한다 했다고.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한걸.
에반젤린의 엄마는 공작가의 셋째였나 보다. 아쉽게도 정확한 가문은 안 적혀 있었다. 하여튼 잘사는 공작가의 딸이 우연히 만난 백작과 사랑에 빠져 가문의 반대에도 불가하고 결혼해서 가문으로부터 의절 당하는 내용이었다.
371년 4월 2일.
아빠 말을 들었어야 했어. 공작가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로한슨 백작의 목적은 돈이었고 에반젤린네 엄마가 들고 온 지참금을 꿀꺽하고 나서는 사이가 요원해졌다는 이야기다. 보자마자 아, 이거 클리셰다 싶었다.
이제 로한슨 백작 대신 절연한 외가에 들러붙으라는 그 말이지. 외할아버지는 사실 딸을 사랑해서 손녀한테 죽은 딸을 겹쳐 보는 그런 거 있잖아.
근데 … 그거는 육아물 아닌가? 에반젤린은 육아물 하기엔 너무 컸는데. 아무래도 육아물 루트로 빠질 시기는 늦은 것 같다. 젠장, 몇 년만 빨리 빙의했어도!
일기는 날이 지날수록 더욱 길어졌다. 딱히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니 일기에 속마음을 써 놓은 것 같았다. 갈수록 필체가 이상해지고 그 탓인지 이상하게도 못 읽는 글자들도 있었다. 글 내용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한 건 소환 주문인데….
[□□를 소환하는 방법] [□에 선 □여□□□ 자의 □□로 땅을 더럽혀라
너의 □ □린 손으로 원을 그려라
감읍하여 □을 앙망하라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영글게 하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맺게 할지니
□□하며 □□하라
땅을 돌아 지상에 강림할 □□의 □□를 맞이하라]
저기요? 번역기 오류 났는데요? 번역 패치 오래 걸릴 때부터 알아봤다!
아무래도 패치가 덜 된 모양이다. 그나마 글자가 보이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대충 보이는 것만 읽어 보자. 그러니까…. 땅을 더럽히고 내 손으로 원을 그리라고? 가시나무랑 포도는 무슨 소리지? 콩을 심은 데 콩 대신 팥 난다는 소린가? 이게 뭔 소리야!
뭘 소환하는데? 안 그래도 글자도 깨지는데 내용도 쓸데없이 어려워서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래서 일타강사들이 돈을 잘 버는 거다. 숫자로 딱 일목요연하게 정렬해서 1.원을 그린다 2. 소환한다. 이렇게 딱 해 주면 얼마나 좋아.
머리가 아프다. 잠깐 타임. 이건 번역이 패치될 때까지 묵혀 두는 거로 해야겠다. 종이는 도망 안 가잖아.
‘어디 갔어?’
도망갔다.
책상 위에 둔 종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일기는 멀쩡히 있는데 종이만 없어졌다. 방 안을 전부 뒤졌는데도 안 보였다.
“헤나, 혹시 책상 위에 있던 종이 봤어?”
“아니요….”
온종일 방에만 있었는데 언제 사라진 거지? 내가 방을 비운 건 어제 산책할 때뿐인데. 설마 내가 방에 없을 때 누가 청소하다가 쓰레기인 줄 알고 치웠나?
아직 해석도 못 했는데! 소환도 안 해 봤는데! 이래서 게으르게 살면 안 된다니까!
일단 누가 청소했는지부터 알아야겠다. 그래야 종이 행방을 물어보지. 지나가던 하인을 붙잡았다.
“어제 내 방에 들어온 게 누구지.”
“어, 어제요? 어제라면 도, 도나우일 겁니다.”
“지금 어디 있는데?”
“그게에… 도나우가 오늘 나오지 않아서….”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먹튀?
생각해 보니 번역기 오류 때문에 나한테만 이상하게 보인 거고 다른 사람 눈에는 정상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내 방을 청소하다가 개쩌는 소환 방법을 보고 냅다 훔쳐서 가져간 거지. 쓰레긴 줄 알고 치운 거였으면 오늘 무단결근할 이유가 없잖아!
“…혹시 도나우가 무슨 짓이라도 했습니까?”
“했지. 내 걸 훔친 것 같거든.”
에반젤린은 악녀인데 은근히 괴롭힘당하는 설정이었다. 남 뺨 때리고 신분 내세우기 싫어서 그냥 있었는데 뺨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작에 해고는 해야 했나 보다. 아니 훔칠 게 없어서 이세계 먼치킨 루트를 훔쳐 가?
“앞으로 내 물건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목을 자른다고 전해.”
다 모가지야! 아주 그냥 인사권을 남발해 주마.
그 길로 집사한테 가서 도나우의 집 주소를 받아 왔다. 빙의 후 첫 외출을 이런 안타까운 이유로 할 줄은 몰랐는데.
지리를 잘 모르는 나 때문에 근처에서 산다는 헤나가 동행했다. 우리가 산책가는 줄 알았는지 푸딩도 달라붙었다.
마부한테 주소를 말해 주니 저택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서 내려 줬다. 그때부턴 헤나가 길 안내를 했다.
“여기에요.”
드디어 다 왔다! 도둑놈아, 기다려라. 내 이세계 먼치킨 루트를 되찾고 말 거다.
노크는 개뿔 냅다 문을 발로 찼다.
***
“…읍…윽!”
여자애가 몸을 비틀어 댔다. 지치지도 않나?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글을 읽던 도나우가 독서를 방해하는 신음에 혀를 찼다.
입이 틀어막혀 있었으나 전부 해석이 가능했다. 어차피 할 이야기야 뻔했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이런 비굴한 말일 테니까. 하하 웃겨라, 자기가 뭘 잘못한 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빌고 보는 꼴이라니.
소녀를 벌레 보듯 보던 도나우는 곧 시선을 돌렸다.
커튼 따위 달리지 않아 혹여라도 창문은 안이 들여다보일까 급하게 나무판자로 덧대고 못질을 한 상태였다. 조그마한 틈새 사이로 붉은빛이 새어 들어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붉음이 가시고 이제 곧 어둠이 도래할 거다.
도나우가 읽고 있던 종이를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봤다.
그건 도나우가 일하는 로한슨 백작가에서 주워 온 한 장의 쪽지였다. 어젯밤 에반젤린 로한슨의 방을 정리하던 중 이 보물을 발견했다.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평범한 사람이라면 애들 장난 정도로 치부했을 내용이었다. 하지만 로한슨 백작가에서 일하는 도나우는 탁월한 안목으로 이것이 진짜라는 걸 알아봤다.
목을 매달고 뒈진 에반젤린 로한슨이 되살아났다. 그런 걸 악마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멍청한 동료는 귀신에 씌었네! 마귀가 되었네 하며 고작 여자애한테 겁을 먹고 호들갑을 떨어 댔다. 수준 낮은 것들! 중요한 건 에반젤린 로한슨을 어떻게 살려냈을까지!
그리고 누가 악마를 불렀을까!
오직 도나우만이 그 까닭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에반젤린 로한슨의 외가는 호사퀸 공작가다. 로한슨 백작은 에반젤린이 어릴 때부터 병약하다는 핑계로 공작가로부터 막대한 치료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도나우는 백작의 집무실을 청소하다가 그 아찔할정도로 길게 늘어졌던 숫자의 향연을 목격했다. 서류를 훔쳐봤다고 처맞은 덕분인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에반젤린이 죽으면 그 돈은 전부 사라지는 거다. 그러니까 로한슨 백작이 악마와 계약해 자기 딸을 되살린 거겠지!
그 빌어먹을 백작! 사람 좋은 척 굴어 봤자 어차피 돈 밝히는 귀족 나부랭이지! 도나우는 백작의 더러운 속내를 훨씬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나우는 로한슨 백작 같은 것보다 훨씬 그럴듯한 귀족이 될 것이다.
҉끝҉에҉ ҉선҉ ҉자҉여҉ ҉무҉죄҉한҉ ҉자҉의҉ ҉순҉교҉로҉ ҉땅҉을҉ ҉더҉럽҉혀҉라҉.҉ ҉너҉의҉ ҉피҉ ҉흘҉린҉ ҉손҉으҉로҉ ҉원҉을҉ ҉그҉려҉라҉.҉ ҉감҉읍҉하҉여҉ ҉구҉원҉을҉ ҉앙҉망҉하҉라҉.҉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영҉글҉게҉ ҉하҉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맺҉게҉ ҉할҉지҉니҉ ҉경҉외҉하҉며҉ ҉경҉배҉하҉라҉.҉ ҉땅҉을҉ ҉돌҉아҉ ҉지҉상҉에҉ ҉강҉림҉할҉ ҉광҉명҉의҉ ҉천҉사҉를҉ ҉맞҉이҉하҉라҉
준비는 끝났다.
밖에 알짱거리던 여자애 하나를 납치했다. 도나우의 피로 바닥에 악마를 소환할 문양도 그려 넣었다. 그 커다란 문양을 그리느라 도나우의 양팔과 손가락에는 칼자국이 난자했다.
이제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 여자애의 목숨을 대가로 악마를 소환하면 된다….
도나우는 절차를 몇 번이고 반복해 외우고 나서는 종이를 잘게 찢어 삼켰다. 퍽퍽한 종이를 먹는데 꼭 잘 익은 과실을 먹는 듯 단 것 같았다.
이런 특별한 정보를 개나 소나 보게 할 수는 없지. 특별해질 기회는 자신에게만 있으면 되니까.
“드디어!”
그리고 드디어 날이 저물었다. 도나우는 성냥을 긁어 양초에 불을 붙을 붙였다.
테이블 위에서 잘 갈린 나이프를 집어 든 도나우는 헐떡이는 숨소리를 반주 삼아 춤을 췄다. 신사나 출 법한 왈츠였다. 도나우의 움직임에 따라 촛불이 일렁이며 벽에 비친 그림자가 요동쳤다.
도나우는 그림자를 파트너 삼아 춤을 추면서 악마를 소환한 미래를 상상했다. 이런 낡은 집이 아니라 찬란한 샹들리에 아래 있을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