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41)
Chapter 41
게다가 이제는 칸나도 알아. 푸딩은 일단 뒤로 넘기고. 아 진짜 이런 이야기일 줄 알았으면 칸나는 못 듣게 미리 보냈지!
안 되겠다. 가브리엘한테 엑소시즘 당하기 전에 미리 좀 데여 봐야겠다. 면역을 길러 놔야겠어.
“칸나. 어떻게 생각해. 배신감이 드니?”
“저한테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칸나가 태연하게 소신을 밝혔다. 뭐?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빙의자라는데?
“저를 구해 준 건 다른 분이 아니라 아가씨세요.”
그건 맞지…. 원래 에반젤린이라면 칸나를 구해 주기는커녕 납치를 사주한 당사자였을 테니까.
“당신은요? 아가씨가 도움 주신 걸 모른 척할 생각이에요?”
칸나가 데이지한테 바통을 넘겼다. 아니, 그거는 그냥 대가였잖아. 그런데 칸나의 박력에 차마 나도 데이지도 반박하지 못했다.
우리 칸나가 가스라이팅를 너무 잘하는데? 요즘 피폐 로판에서 여주로 살아남으려면 가스라이팅은 기본 소양인가요?
“당신이 알던 에반젤린 로한슨은 이미 죽었어요.”
아니, 칸나야…. 내 안에 잠들어 있을 수도 있잖아? 내가 장례식에서 깨어났던 걸 보면 아마 죽은 게 맞긴 하겠지만. 너무 팩폭이잖아. 그리고 막 죽은 사람을 그렇게 마음에서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데이지는 칸나의 언변에 이미 다 넘어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제일 곤란한 사람은 나 아니야? 왜 너희가 더 심란해하는 건데.
마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아직도 로한슨 저택에 가려면 멀었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젤리, 나 좀 구하러 와.
***
젤리는 에반젤린을 두고 저택으로 먼저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었던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자 입을 떡 벌리며 놀란 메리가 겁도 없이 달려와 젤리의 근처에서 방방 뛰었다.
“우와, 우와!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어! 이것도 방금처럼 한 거예요?”
좀 전에 순간 이동으로 옮겨 줬을 때도 호들갑을 떨더니 다시 봐도 신기한 모양이다. 젤리가 손을 휘휘 내젓자 율마와 라넌이 경계심을 드러내며 메리를 뒤로 숨겼다. 그래도 머리가 큰 아이들은 분별력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나는 젤리가 동생과 에반젤린이 아니라 이상한 남자만 하나 데려온 걸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칸나와 영애님은요?”
“평범하게 마차 타고 오신단다.”
보아하니 데이지랑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걔도 저택에 들어오겠지? 티는 안 내시는데 은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더라. 젤리는 조금 흥겨워졌다. 데이지가 들어오면 칸나도 좀 덜 기고만장해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분은 왜 데려오셨어요?”
“내가 멋대로 데려왔겠어? 너희 영애님이 거두시려나 보던데? 배고프다고 하니까 밥도 먹여주신다더라.”
“아….”
젤리의 설명을 듣고 헤나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나와 칸나를 들인 것도 그렇고, 영애님은 의외로 흔쾌히 군식구를 받아주시는 편이었다.
“밥?”
그때 젤리의 설명 도중 나온 밥이라는 소리에 여태 정신을 놓은 듯 멍하게 굴던 멜렉이 반응했다. 배고픔에 괴로워하느라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고 눈이 반쯤 돌았다.
이 정도로 굶주렸으면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코앞에 있는 먹이에게 달려들었을 텐데 그건 용케 참고 있었다. 젤리는 정신 좀 차리라며 멜렉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멜렉이 배고픈가 봐요. 그러니까 내가 준 빵 좀 먹지!”
메리가 멜렉의 가까이 가려고 하자 헤나가 아이의 관심을 돌렸다.
“이분의 식사는 이따가 영애님이 챙겨주실 거야. 메리, 너는 배가 고프지 않니?”
“배고파요….”
“그럼 우리는 영애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요깃거리라도 먹고 있자.”
눈치 좋은 헤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이렇게 보면 자기 동생이랑 참 다르다니까. 칸나는 에반젤린의 비호를 받으며 남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젤리를 애완용 개 취급하던데, 헤나는 알아서 눈치를 보며 행동했다.
그치. 이게 원래 내가 받아야 했을 정당한 취급이지. 흡족해하던 젤리는 곧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정신이 들어? 좀 버틸 만해?”
“아마도.”
아마도는 무슨. 고작 어린애가 찌른 상처를 치료한 기운도 없는 걸 보면 곧 굶어 죽게 생겼구먼. 찌른 놈은 또 멜렉이 골골대는 꼴을 보며 미안해 죽으려 하더라.
“내가 누군지 알아?”
“젤리?”
젤리는 돌아오는 대답으로 확신했다. 안드라스가 아니라 젤리라니.
“너 멜렉 놈이 아니구나.”
멜렉이 희미하게 웃었다.
“들러붙은 상태라서.”
저택 사람들은 에반젤린이 되살아났네, 시체를 움직이네 하더니 진짜가 여기 있었다. 이놈은 진짜 멜렉이 아니라 죽은 멜렉에 기생하는 다른 놈이었다.
영애는 그 점이 비슷해서 거두신 건가?
“죽은 껍데기에 씌어 있어서 이렇게 악취가 진동했구나. 몸을 회복할 양분도 부족한 거고. 애초에 사람 영혼을 먹은 적이 없지?”
“응.”
이거 진짜 곧 죽을 놈이었네. 보아하니 여태까지는 멜렉의 몸에 있던 양분으로 버티다가 슬슬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회복도 안 되는 걸 보면 심각하네. 하… 참.”
인간도 안 먹는다고 고집부리는데 이걸 어떻게 배 불리게 먹이지?
몰라. 대단하신 에반젤린 영애님께서는 다 방법이 있으시겠지. 거짓말하시는 분은 아니니까 뭔가 해결책이 있긴 할 텐데. 설마 회복시키겠다고 성수를 입에 쳐넣지는 않겠지. 젤리는 순간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혀가 얼얼해졌다.
“인간은 왜 안 먹는데?”
“내가 원래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원래 멜렉은 인간 출신한테 뒈져서 몸도 뺏긴 거야? 꼴좋다. 지옥이라도 따라가서 비웃어 주고 싶었다.
“얼마나 됐는데?”
“한 20년?”
푸하학, 20년이래. 젤리는 폭소했다. 갑자기 젤리가 웃음보가 터진 영문을 모르는 멜렉만이 멀뚱히 있었다. 어린애들 괴롭히고 공양받으면서 그렇게 으스대더니 진짜 어린애한테 당했네. 이따 플라우로스한테도 말해 줘야지.
젤리는 이 새로운 멜렉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죽였는데?”
“난 메라이랑 같은 고아원에 있었는데 지하실에 갇혀 죽었거든. 정신 차리고 나니까 이 몸이 돼 있었어. 그래서 미안하지만, 내가 멜렉 몸을 어떻게 차지했는지 기억이 안 나.”
멜렉이 아직 사람이던 시절, 소년은 당시 악마가 가지고 놀던 아이 중 하나였다. 원장이 신전의 검문을 피해 지하실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 소년은 그 지하실에서 홀로 살아 있었다.
지하실에 갇혀 소년은 날로 앙상해져 가며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죽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소년은 무척 배가 고팠다.
그 앞에 멜렉이 우연히 나타났다. 아마 가끔 지하실에 나타나 아이들을 괴롭히고 놀았던 것처럼, 그날도 그런 목적으로 찾아왔을 것이다. 멜렉은 평소와는 다른 지하의 풍경에 의아해했고, 거기서 유일하게 펄떡거리며 뛰는 영혼을 발견했다.
그 순간 ‘공복’은 멜렉을 먹어 치웠다. 몇 날 며칠이 지난 이후로 ‘멜렉’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멜렉의 몸이 된 후였다.
목소리며 얼굴이며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러나 멜렉의 몸이 된 이후에도 소년은 늘 공복에 시달렸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멜렉은 어린 시절의 친구와 조우했다. 원장이 된 메라이가 ‘멜렉’을 불러들였다.
대충 사연을 들은 젤리가 멜렉을 구박했다.
“차라리 먹지 그랬어? 애들 말고 그 원장. 어차피 사형이라니까? 그냥 죽는 것보단 일용할 양식으로 쓰이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냐?”
나 같았으면 배가 불러서 터지는 한이 있어도 원한 때문에 먹어 치웠겠다. 이래서 인간 출신들은 마음이 약하다니까?
그래도 기왕 같은 분을 모시고 살게 된 거, 동지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지. 젤리는 최선을 다해 사교적으로 굴기로 했다.
“네 이름은?”
“멜렉.”
“그거 말고 원래 이름 말이야. 난 멜렉 놈이 싫어서 그렇게 부르기 싫거든.”
“원래 이름? 글쎄….”
***
“이름?”
이름을 지어 달라고? 내가?
침묵을 견디며 겨우 마차에서 내렸는데 이제 젤리가 문제였다.
상처 치료부터 해 주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급한 게 있다면서 젤리가 자기 친구한테 이름을 지어 주란다. 아니 멜렉이라고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왜?
“젤리 같은 이름이 갖고 싶습니다.”
취향이 좀 깜찍하시네. 젤리는 자기 이름을 극히 혐오하기 때문에 부르는 재미가 있는 건데 젤리 친구는 나서서 지어 달라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그러기 싫어졌다.
그런데 또 안 지어 주면 차별이겠지? 어차피 본인 이름도 있고 그냥 닉네임을 지어 준다고 생각하자.
뭐라고 하지?
푸딩은 처음에 그냥 고양인 줄 알았고, 젤리는 약간의 보복 심리와 말랑한 핑크 젤리에 홀려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이쪽은 멀쩡한 성인 남자 같지만…, 젤리 같은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안 되겠다. 지금 생각나는 디저트 이름이 머랭밖에 없다. 머랭과 멜렉. 발음도 비슷하니까 그냥 이걸로 하자.
“머랭.”
절대 비꼬려고 하는 거 아니다. 젤리 친구…, 아니 멜렉… 아니 머랭은 이딴 걸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고민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디저트 이름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런데 멜렉이란 이름을 두고 왜 지어 달라는 거야?”
“사실 제가 멜렉이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
“저는 이 몸을 그냥 빌려 쓰는 것뿐이라서….”
빌려 써? 잠깐. 혹시 너도 빙의자니?
멜렉은 제목도 알고 에반젤린도 아는 걸 보니까 역시 원작을 전부 아는 거겠지?
궁금한 건 전부 멜렉한테 물어봐야겠다.
“로한슨 저택에 대해 아는 것 좀 얘기해 줄래?”
“네? 네…. 우선 건물이 참 고풍스러워요. 정원도 넓어서 산책하기 좋아 보이고, 주변도 조용하고 일하는 분들도 침묵을 지켜 주셔서 지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잠깐.
말이 뭔가 서로 안 통하는 것 같은데? 원작에 관해 설명해 달라니까 왜 갑자기 저택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는 거지? 싸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뭔가 수상한데. 한번 떠볼까?
“너 말이야 죽었다 깨어났다고 했지. 그럼 원래는 어디서 살았어?”
“아. 말씀을 안 드렸나요? 메라이랑 같은 아이노아 고아원 출신입니다.”
뭐?
슬쩍 돌려서 물어봤더니 상상을 초월한 답변이 나왔다.
“메라이면 그 원장?”
“네. 맞습니다.”
왜 같은 세계관인 건데?
뭔가 미심쩍기는 했다. 아무리 로판 장르에서 빙의가 성행해도 보통 빙의자는 한 작품에 한 명씩만 나오잖아. 물론 둘인 경우도 있다. 빙의물에 빙의했거나, 아니면 원래 악연이던 사람이랑 같이 빙의해서 복수극을 찍거나.
그리고 난 아주 큰 착각을 해 버렸다. 소설 읽는 사람들이야 빙의라고 하면 책 빙의부터 떠올리는 거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귀신이 빙의하는 게 더 유명하잖아?
멜렉은 귀신인가 보다.
잠깐 도망치고 싶어졌다. 난 스릴러 장르는 잘 봐도 유독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에는 약하단 말이야.
“원래 몸 주인은?”
“아. 젤리가 죽은 것 같다던데요.”
“젤리도 네가 빙의한 걸 알아?”
“네. 젤리는 원래 멜렉보단 제가 낫대요.”
멜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네. 친구한테 귀신이 빙의했다고 어떻게 말해 줘야 하나 고심하고 있었다. 근데 저런 소리를 할 정도면 애초에 그렇게 친분이 깊진 않았나 보다. 그냥 같은 수인이라서 이름만 아는 사이였던 건가.
그리고 멜렉은 짤막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