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54)
Chapter 54
토텐 부인의 품 안에 안긴 아이는 고작 여섯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아이였다. 척 봐도 병색이 완연한 게 저 아이가 아프다던 아들인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집사 할아버지가 가망이 없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사! 라이더를 돌려보내지 않고 뭘 한 건가?”
토텐 부인이 크게 호통치자 집사 할아버지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무라지 마세요. 제가 말리지 말라고 한걸요.”
“라이더….”
마치 깨지기 쉬운 걸 다루듯, 토텐 부인이 아이의 머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엄마가 없어서 찾으러 온 거니?”
“네. 그리고 손님이 오셨는데 저만 누워 있을 수 없어서요.”
토텐 부인, 집사 할아버지 그리고 아이의 눈이 전부 나에게 쏠렸다. 그래, 전부 나 때문이다. 이거지?
무안해서 헤나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근데 그러면 에반젤린이 수치도 모르고 하녀 뒤에 숨는다는 소문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아서 악으로 버텼다.
“콜록. 라이더 토텐이라고 합니다, 영애님.”
애가 기침할 힘도 없는지 소리가 무척 작았다. 라이더가 기침하면서 인사하니까 죄책감이 더 심해졌다. 그냥 토텐 부인보고 로한슨 저택에 오라 할걸!
토텐 부인이 빨리 나도 인사 안 하냐는 듯 보길래 나도 드레스를 잡으며 인사했다.
“에반젤린 로한슨이라 합니다. 토텐 영식, 몸도 안 좋으신데 맞이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나름대로 돌리네한테 배운 대로 겸손을 떨면서 인사했는데 토텐 모자가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어디, 뭐가 잘못됐나?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 한 건데!
토텐 부인이 내 눈을 피했다. 충격이다. 못 봐 줄 정도였나 보다. 인사가 왜 그 모양이냐고 비웃는 대신에 못 본 척해 주는 게 참으로 배려심 넘쳤다.
“이제 만족했니? 기침이 심하니까 어서 들어가자.”
“콜록, 콜록. 네, 어머니. 로한슨 영애님, 몸이 좋지 않아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나자 토텐 부인이 이제 객을 맞았으니 다시 방에 가서 쉬라며 라이더를 재촉했다.
“네. 푹 쉬세요.”
아이는 비틀거리는데도 안겨서 옮겨지는 대신에 부축을 받으며 제 발로 걸어갔다. 토텐 부인은 아들이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주 작아서 라이더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몇 살로 보이시나요?”
나이? 많이 쳐줘 봤자 여섯 살 정도인가?
“여섯 살 정도로요.”
“라이더는 여덟 살이에요. 그런데 몸이 아파 훨씬 어려 보이죠.”
애가 참 동안이네. 어쩐지 말을 어른스럽고 유창하게 하더라니. 토텐 부인의 말대로 몸이 아파 더 왜소해 보인 것 같았다.
토텐 부인은 라이더가 더는 보이지 않고 나서야 다시 자리로 와서 앉았다. 방금까지의 완벽하게 구사하던 예절은 어디 가고 의자에 기대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은 몹시 지쳐 보였다.
“…맞아요. 영애도 제게 솔직히 말해 주었으니, 저도 제 본심을 말할게요. 사실 로한슨 영애가 쾌차했다길래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요.”
토텐 부인이 이제야 본심을 인정했다.
“성수를 써도 낫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쾌유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토텐 부인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벽에 장식되어 있는 태양신의 심볼이 보였다. 간단한 기호로 만들어지지 않고 정교하고 세밀하게 조각된 심볼은 가브리엘의 정복에서도 봤던 문양이었다. 무슨 문양이 저렇게 화려하게 생겼을까. 도나우의 시신도 나방처럼 그렸던 가브리엘은 절대 못 따라 그리겠네.
“너무 뻔한 수작이었으니 당연히 알아차렸겠지요. 하지만 먼저 얘기할 줄 몰라 당황했어요.”
“후작가의 집사가 먼저 언질을 주길래요.”
“집사가…?”
“네. 참으로 충직하게 후작가를 모시더군요. 부인께서 모르게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면서요.”
집사 할아버지, 내가 잊지 않고 칭찬했어요! 나중에 보너스 받으면 그거 내 도움인 거 아시겠죠?
토텐 부인은 뒤에서 집사 할아버지가 그렇게 노력할 줄은 몰랐는지 계속 ‘집사, 집사가?’ 하고 재차 읊었다. 상여금을 줄지 고민하고 있나 보다. 아니면 보너스로 얼마 줄지 생각 중이신가?
금액을 정했는지 혼잣말을 끝낸 토텐 부인이 다시 원래 주제로 복귀했다.
“먼저 이야기하셨으니 감히 여쭐게요. 라이더를 치료할 방법이 있나요? 당신은 어떻게 해서 나았죠? 부디 말해 주세요. 우리 라이더에게 차도가 있다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니….”
드디어 대망의 시간이 왔다. 토텐 부인은 날 보면서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난 부인의 기대를 박살 내야 하고.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의 심리가 딱 이렇겠구나. 멱살 잡힐 준비나 하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방법은 없어요.”
“뭐?”
토텐 부인이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겠지, 하고 웃었다가 지금 상황에선 사이코패스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정색을 때렸다. 근데 이것도 좀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난 진짜 연기에 재능이 없나 보네….
“거짓말, 거짓말이죠? 나에게 숨기는 것뿐이죠? 왜, 내가 제시한 대가가 모자랐나요? 나는 후작저라도 넘길 수 있어요. 로한슨 영애, 제발. 제발 말해 주세요.”
토텐 부인은 내가 진실을 숨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심지어 거래 목록에 후작저도 추가해 줬다. 말할수록 몸이 점점 내 쪽으로 기울었다.
“정말로 부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부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말해 주지 않나요? 내가 가브리엘 경을 이용해서 접근한 것 때문에? 속셈이 있긴 했지만, 영애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부디 당신과 비슷한 처지인 라이더를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
토텐 부인은 이제 울 것 같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이 선명히 느껴졌다.
아니…. 진짜 없는데 어떻게 해. 에반젤린도 그냥 죽고 타이밍 좋게 내가 빙의한 것뿐이지. 진짜 안 믿으시네. 이래서 집사 할아버지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미리 말해 줬나 보다. 근데 집사 할아버지, 당신이 내려 준 특명은 절찬리에 실패 중입니다.
안 되겠다. 다른 방법으로 우회해야지. 알려 줄 게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겠다. 아, 그래.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이용하자!
“제가 진짜 ‘에반젤린’이 아니라는 소문은 혹시 못 들어 보셨나요?”
“설마 그 소문이 진짜라고요? 절 놀리지 마세요. 영애의 몸가짐은 하루 이틀 배워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걸요.”
실패했다. 이건 다 돌리네가 날 너무 잘 가르친 탓이다.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고작 이 주 배웠거든요? 내 재능이 이렇게나 무섭다.
토텐 부인이 바로 납득하고 물러날 만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근데 딱히 생각이 안 나는데? 도움을 청하려 헤나를 간절히 바라보자 헤나가 힌트를 줬다.
우리 헤나 천잰가 봐!
그래. 토텐 부인은 엄청난 태양신 신자니까 이 방법이 잘 먹히겠다. 나는 아주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몸을 숙여서 토텐 부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악마를 불러냈거든요.”
“네?”
“악마에게 에반젤린 로한슨을 살려 달라 빌었어요.”
헤나가 날 보면서 입 모양으로 속삭인 단어는 ‘악마’ 였다. 말하고 나서 흠칫하면서 입을 막던데, 자기가 낸 엄청난 아이디어에 감탄한 건가?
소싯적 도나우도 겁먹었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연기는 못하는데 악녀 흉내는 잘 낸다. 아니면 그냥 에반젤린이 악녀라서 무슨 짓을 해도 나쁘게 필터링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부인은 그렇게 사랑하는 라헬을 버리고 악마에게 기댈 수 있나요?”
이건 당연히 안 되겠지. 토텐 부인은 엄청난 태양교 신자니까. 활자 세계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남다른 법이다. 괜히 성녀가 핫한 게 아니지. 예상대로 토텐 부인은 말을 잃었다.
그래도 혹시나 유혹에 솔깃할까 봐 말을 덧붙였다.
“대가로 후작저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게 죄 없는 다른 사람이어도?”
참고로 이건 에반젤린이 어린애들을 사들여서 무엇을 할까 하는 토론에서 나온 말 중 하나였다. 미샤가 나보고 사람 가죽은 못 만진다고 대뜸 외치게 했던 그 괴소문 맞다.
나중에 미샤를 통해 들어 보니까 가장 유행하는 가설이 에반젤린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사람 목숨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 가설을 이용해 토텐 부인의 헛된 희망을 꺾긴 했지만… 그래도 퍼진 헛소문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꼭 사교계에 진출은 해야겠네.
***
후작 부인의 재촉에 다시 방으로 돌아가던 라이더는 몹시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내가 방해가 된 걸까?”
“전혀요. 아주 의젓하셨습니다.”
라크는 아이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주인 된 도리를 다하고자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장했다. 심지어 당장 쓰러질 법한데 아무런 부축도 받지 않고 혼자 걸으며 방에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집사가 보기엔 어땠어? 내가 토텐 소후작다웠어?”
“예. 무척이나요. 돌아가신 후작님이 보셨다면 몹시 흡족해하셨을 겁니다.”
라크가 작고하신 후작을 들먹여 칭찬을 하고 나서야 라이더가 만족한 듯 몸에 힘을 뺐다. 순간 휘청하는 몸에 라크가 서둘러 손을 뻗었으나, 아이는 벽을 짚고서 혼자 다시 중심을 잡았다.
“미안, 잠깐만 쉴게….”
라크는 아이의 정신력에 감탄했다. 몸은 곧 죽을 것처럼 쇠약해져 있는데 그걸 절대 티를 내는 법이 없다.
정말 저주받은 몸만 아니었어도 토텐가의 가주에 완벽하게 어울릴 만한 아이였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분명 라크가 이렇게 뒤에서 수작을 벌일 일도 없었겠지.
“더 무리하시지 말고 제게 기대세요. 보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라이더는 같은 귀족들뿐만 아니라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의 눈마저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그들의 앞에선 병약한 도련님이 아니라 소후작처럼 보이길 원했다.
집사의 말대로 지금 저택의 사람들은 오랜만에 맞는 손님을 접대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 그 덕에 위층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설득에 넘어간 라이더는 집사의 품에 안겼다. 라크는 자신에게 안긴 아이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 놀랐으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