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69)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첫 왈츠가 시작됐다. 황태자비의 자리가 비어 있기에 황태자의 상대는 그의 쌍둥이 딸 중 하나였다. 사실 한 명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황태자는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항상 예레미아를 지목했고, 이번에도 예외 없이 녹색 보석을 단 딸의 손을 이끌었다.
흑옥 목걸이를 한 소녀가 아버지와 자매의 춤을 무료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수려한 외모와 푸른 눈이 꼭 닮은 부녀는 우아하게 춤을 이어 나갔다. 몇 겹으로 부풀린 드레스가 둥글게 퍼졌다. 젊은 미혼의 귀족 영식들은 황홀하다는 듯 빙글 돌아 가라앉는 드레스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예레미아 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시지.”
“생긴 건 테네브레이 님과 똑같으시잖아요.”
“어허, 속이 다르지 않은가. 얼굴이 같은데도 테네브레이 님은 무언가 음침하시단 말이지.”
외형만큼은 거푸집으로 주조한 듯 똑 닮았으나 자매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예레미아는 밝고 명랑하며 사랑스럽지만 테네브레이는 음침하며 항상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황태자도 둘을 차별하는 것이리라. 쌍생이 불길하다는 이야기는 둘 모두에게 해당돼야 하는 말이건만 꼭 테네브레이를 염두에 두고 전해지던 이야기 같았다. 황태자가 미래를 예언하고 불길한 징조인 쌍생이 태어난 순간 테네브레이를 직접 죽이려고 했다는 말도 있었다.
연주가 익숙한 흐름에 접어들었다. 첫 번째 춤이 곧 끝나리라는 걸 짐작한 사람들은 춤 상대와 함께 두 번째 곡을 출 준비를 시작했다. 연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던 순간 찬란하던 샹들리에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불이 왜 꺼졌지?”
조명은 황태자가 춤을 추는 정중앙에만 집중되듯 마지막으로 머물렀다가 곧 그것마저도 사그라들었다. 화려한 연회장이 어둠에 뒤덮였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코앞에 있는 사물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누구야! 젠장, 밀지 마!”
“꺅! 누가 내 발을 밟았어!”
“앞이 안 보여…! 난, 나는 그만 나가야겠어!”
이 정도 혼란이 일어나면 음악이 멈출 법했으나, 황태자의 연회에서 멋대로 연주를 멈췄다며 죄를 물을까 겁난 오케스트라는 한창 절정에 다다른 반주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일전에 황제의 연회에서 실수로 현을 끊은 첼로 연주자가 효수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싹 트기 시작하는 공포와 혼란이 섞인 웅성거림이 감미로운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섞이며 기이한 화음을 이루어 냈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꼭 잘 짜인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이 재현되는 듯했다.
더 큰 소란이 일기 전 다행히 금방 다시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언제 꺼졌냐는 듯 일제히 다시 빛을 내뿜기 시작한 샹들리에의 불빛에 겨우 진정한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적응시키느라 바빴다.
“이게 무슨….”
그리고 다시 빛에 적응하여 연회장의 화려한 장식들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나서야 하나둘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했다.
어둠에 시야가 먹히기 전 군중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연회장의 중심에 서 있던 부녀였다. 그러니 다시 주변이 밝아졌을 때도 그들을 먼저 찾아서 보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함께 왈츠를 나누던 부녀는 온데간데없고 홀로 남은 녹색 목걸이를 한 소녀만이 떨어지는 붉은 액체를 맞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아해하며 슬며시 그 시선을 따라가자 믿을 수 없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는 비명을 내질렀고, 누군가는 실성했으며, 바닥에 주저앉고, 구역질하기도 했다. 차라리 시야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음악이 늘어졌다.
연주에 집중하느라 웅성거림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이어지는 반주는 연주자들이 하나둘 이상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화음이 한둘씩 이탈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피아노만이 홀로 장엄한 후반부를 이어나가다가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한 피아노 줄이 끊어지며 단말마를 울리는 걸 끝으로 모든 음악이 멈췄다.
남은 건 규칙적으로 울리는 박자 소리뿐이다. 심장을 따라서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낙하했다. 바닥에 고인 작은 웅덩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했다.
심장에 고풍스러운 단검이 꽂혀 살해당한 황태자가 샹들리에에 매달려 있었다. 시체의 무게만큼 기울어진 샹들리에가 끼익 소리와 함께 흔들리자 크리스털 유리들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렸다. 아주 작은 만큼 스산하며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아버지!”
황태자의 쌍둥이 딸 중 하나가 절규했다. 흑색 목걸이를 차고 있으니 분명 테네브레이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심장에 꽂힌 검을 보며 이어 소리쳤다.
“저, 저건 로, 로한슨 영애가 선물한 검이야!”
사람들의 시선은 검의 손잡이에 닿았다. 입장과 동시에 주목을 받아, 에반젤린 로한슨이 황태자에게 단검을 진상한 것을 적지 않은 사람이 목격했다. 검 손잡이가 똑같다는 걸 깨달은 시선들이 일제히 옮겨 갔다.
“로한슨 영애가 황태자 전하를 시해했다!”
모두가 거리를 둔 탓에 에반젤린의 주위에는 둥글게 여유 공간이 있어 그녀의 붉게 물든 드레스 자락이 유독 잘 보였다. 에반젤린은 입을 틀어막고 있으나 손을 치운다면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가 나올 것 같았다.
“로한슨 영애….”
킨더가 에반젤린을 부르며 입술을 짓씹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시야를 돌려받은 킨더는 오로지 에반젤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한슨 영애가 황태자를 죽일 리가, 그것도 이렇게 범인임을 자백하듯이 살해할 리가 없었다. 이건 함정임이 분명했다. 괜히 가브리엘 경이 괜히 불안하다면서 주의를 주고 간 게 아니었는데! 그러나 킨더의 옹호를 누가 믿어 줄까.
에반젤린의 흰 드레스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호사퀸 공작과 다툼이 여간 소란스럽지 않았는가. 그 덕에 와인에 푹 젖을 뻔했으나 가브리엘이 에반젤린을 대신 감싼 덕분에 흰 드레스에는 와인 몇 방울 튀긴 게 고작이었다. 불이 꺼지기 직전에는 옷이 물들어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방심했네.”
에반젤린은 눈을 번뜩이며 호기롭게 감상을 내뱉었다. 섬뜩할 정도로 흥겨워하는 어투였다.
뒤늦게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언제부터 닫혀 있었던 건지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몇 사람은 가브리엘이 옷을 갈아입으러 나갈 때만 하더라도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며 기억을 되새길 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황태자가 죽을 동안 본분을 망각하고 자리를 비워 주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황태자의 호위 기사인 무제타였다.
“전, 전하!”
무제타는 황태자의 시체를 수습하고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황제에게 황태자의 사망을 보고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황손들을 보호하며 돌려보냈다. 녹옥을 단 소녀는 샹들리에에 매달린 황태자가 흘리는 피를 맞으며 한참을 넋을 놓은 듯 서 있다가 쌍둥이의 손에 이끌려 처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