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possessed it, it became a ghost story RAW novel - Chapter (97)
“폐하. 황태자 전하의 호위셨던 무제타 경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그래. 무슨 중요한 증거를 찾았나 보군.”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자들을 물렸다. 아무리 귀족들의 식솔이 죽어 간다고 해도 황태자의 시해 사건 만큼 중요한 안건은 아니었기에, 귀족들은 속으로는 불평하면서도 군말 없이 물러갔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게나.”
무제타는 황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었다.
“그래, 수사에 무슨 진척이 있는 모양이지?”
무제타는 곧바로 편지를 보고했다. 테네브레이의 방에서 비밀 공간을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 주술서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는 것, 편지를 쓴 사람이 테네브레이를 충동질하여 모든 사건을 꾸몄으며 그 편지의 필체가 에반젤린 로한슨의 글씨와 같다는 것까지, 전부.
무제타의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편지를 전부 읽고 나서는 잔뜩 미간을 구겼다.
‘역시 폐하께서도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군.’
그러나 이어지는 황제의 반응은 무제타가 기대했던 것과는 상이했다. 황제가 못마땅해하는 것은 에반젤린이 아니라 무제타였다. 황제가 단호히 선언했다.
“이건 그저 연서일 뿐이라네 경.”
“예? 폐하…!”
“경. 방금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건 연서일 뿐이라고.”
황제의 입에서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나오게 했다. 무제타를 응시하는 눈이 매우 차가웠다. 무제타는 순간 자신이 황제가 그어 놓은 선을 넘었다는 걸 인식했다. 황제는 무제타를 꾸짖었다.
“무제타 경. 내 말하지 않았는가? 로한슨 영애에 대한 의문은 접어 두라고.”
무제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로한슨은 테네브레이를 속여 죽게 만든 원흉이다. 테네브레이를 잡은 것도 로한슨의 기사인 가브리엘이 아닌가. 그 두 사람이 테네브레이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는데 침묵하고 있으라니?
“…폐하. 어찌하여 에반젤린 로한슨을 감싸시는 겁니까?”
무제타의 질문에도 황제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 황제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었으나 무제타는 인식하지 못하였다. 테네브레이와 황태자가 죽기 전, 아니… 하다못해 테네브레이가 죽지만 않았어도 무제타는 황제에게 이토록 방자하게 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무제타는 제 역할을 했음에도 황족을 두 명이나 떠내 보냈고, 그에 상당히 자책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짐작 가는 구석은 있었다. 테네브레이의 시신을 가져온 가브리엘과 황제는 독대한 채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황제는 그 이후 미적지근한 태도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무슨 거래라 오고 간 것이 분명했다.
황제는 무제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말을 돌렸다.
“이건 못 본 거로 하지. 안 그래도 수많은 험담을 듣는데 테네브레이가 뒤에서 몰래 연통을 주고받았다는 추문을 하나 더 얹을 수는 없지. 무제타 경, 경 이외에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있는가?”
무제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연서를 발견한 수하와 로한슨 저택과 백작저에 편지를 받으러 보낸 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답하자 황제는 말 한마디로 그들의 처우를 결정하였다.
“입을 다물게 하게. 그 어떤 방식으로든 이 일이 밖으로 퍼져 나가선 안 될 게야.”
그들을 모두 죽여 살인 멸구 하라는 뜻이었다. 황제는 삶의 중심을 잃은 것처럼 허망해하는 무제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네도. 이젠 더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좋겠네. 사건을 마무리하는 건 다른 자에게 맡기지. 그동안 아들의 호위를 서느라 고생이 많았네.”
황제는 아들인 황태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제타의 목을 날리기는커녕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 폐하에게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옳지 못했다. 원망스럽다니….
“그만 나가 보게.”
황제의 축객령에 무제타는 비척비척 알현실을 벗어났다. 앞으로 무제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미친 척 감옥에 쳐들어가 에반젤린 로한슨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무제타는 검집을 매만졌다. 황제의 궁을 벗어나 걸어 나가다가 익숙한 신형을 발견했다.
“테네브레이 황녀님?”
무제타의 부름에 상대가 멈칫했다. 가까이 다가간 무제타는 화려한 옷을 보고 상대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테네브레이라면 입지 않을 옷이다.
“…예레미아 님.”
눈앞의 곱디고운 소녀는 테네브레이가 아니라 예레미아였다.
“어머, 무제타 경. 장례식 때 뵌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요?”
황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두지 않은 천연한 모습에 무제타는 눈을 돌렸다. 같은 쌍둥이인데도 불구하고 처지가 어쩜 이렇게 다를까.
물론 그것이 무제타가 모셨던 황태자 때문임을 모르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는 늘 테네브레이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까 두려워 그녀를 가혹하게 훈육하며 매질했다. 정작 그 때문에 테네브레이가 원한을 품고 친부를 죽이게 되었으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었다.
“예…. 테네브레이 님을 조사하느라 말입니다.”
“테네브레이의 죽음에 이상한 게 있나요?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가다 벌을 받은 것뿐인데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예레미아 님의 자매이지 않습니까.”
“내 자매라고요? 폐하께서 이미 황녀의 지위를 박탈시켰는데 그게 어떻게 내 자매가 되겠어요?”
테네브레이를 욕하는 모습에 무제타가 발끈하였다. 상대가 모셔야 마땅할 황족만 아니었다면 칼을 빼 들었을 것이다. 차마 검을 뽑지도 못하는 무제타를 황녀가 가차 없이 비웃었다. 순진하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입꼬리가 비쭉였다.
무제타는 그 얼굴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치솟았던 분노가 한순간에 푹 가라앉았다.
“…테네브레이 님?”
말도 안 된다. 눈앞에 있는 소녀가 테네브레이일 리가 없다. 테네브레이는 죽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시신을 살폈고, 무제타는 장례까지 참여하지 않았는가.
“자꾸 저를 테네브레이라고 부르시네요.”
소녀는 무제타를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소녀가 무제타를 바라보는 혐오 섞인 눈빛은 결단코 예레미아에게선 볼 수 없던 것이다. 무제타는 그만 혀를 씹을 뻔했다.
“누구랑 헷갈리는 건지 참으로 불쾌해요.”
무제타의 시선이 홀린 듯이 ‘예레미아’의 목에 닿았다. 소녀는 목덜미를 긁어댔다. 긁적거렸다는 수준이 아니라 손으로 살을 파내듯이 손톱을 세워 목에 자국이 그어졌다.
목에 피가 베어져 나오는데도 스스로 목을 상하게 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원래 입던 목까지 길게 올라오는 의복이 아니라 목덜미를 훤히 드러내는 예레미아의 드레스라서 붉어진 목이 더욱 잘 들어왔다.
“목을…, 긁으시는군요.”
“아, 이런.”
무제타가 꼬집자 소녀는 낭패를 봤다는 시늉을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무제타가 그 습관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소녀는 굳은 얼굴로 손을 내렸다. 늘 그랬듯이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꾹 주먹을 말아쥔 채였다.
“아버지가 죽어서 말릴 사람이 없어졌으니 나도 모르게 제어가 안 되네.”
들켰다는 걸 깨달은 소녀는, 아니. 테네브레이는 비죽이며 웃었다.
“예레미아는 목에 상처가 나면 너무 잘 보이니까 문제에요. 그래도 마음껏 성수를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죠?”
소녀는 무제타를 노려보았다. 저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는 증오 섞인 눈빛은 황태자의 매질을 견디며 자신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의 눈빛과 겹쳐 보였다. 이 시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버지께 매질을 당할 때는 그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더니 죽었다니까 그제야 죄책감이 드나요? 하, 우습지도 않아. 무제타 경이 내게 연고 하나라도 쥐여 준 적 있나요? 아니면 아버지를 말려 주신 적은 있나요? 그래 놓고 죽고 나니 동정을 해? 방금 뭐라고 했지, 자매이지 않습니까?”
테네브레이의 날 선 시선이 무제타를 마구 난도질하였다. 무제타는 숨이 막혀 왔다. 죽은 자보다 살아 있는 테네브레이를 앞에 두었을 때 더욱 죄악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테네브레이 님이라고?’
아직 테네브레이의 시신이 선명했다. 진정 테네브레이가 살아 있는 거라면, 그럼 대체 그 시신은, 누구의…. 그 순간 무제타는 방금까지 자신이 눈앞의 소녀를 어떻게 불렀는지 깨달았다.
죽은 것은 예레미아였고, 테네브레이는 자매의 이름을 빼앗아 살아남았다.
테네브레이는 내려온 전설대로 정말 혈육을 죽이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친부를 죽여 복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쌍둥이 자매를 죽였다. 그래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구는 게 섬뜩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았으니 다시 폐하에게 가서 테네브레이가 살아 있다 고할 건가요? 그럼 난 이제 정말 죽겠네요.”
테네브레이는 당장이라도 무제타가 황제에게 달려갈 거라고 했으나 무제타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섬뜩하고 소름이 끼쳤다. 테네브레이가 혈육을 죽인 괴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제타는 진실을 고할 수 없었다. 결국, 테네브레이를 이 지경까지 내몬 것에는 무제타가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보고하지 않을 겁니다.”
“나한테 미안해요? 이제 와서?”
그 저의를 알아본 테네브레이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무제타 경. 내게 미안하다면 그 목숨 나를 위해 써요.”
무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적으로 테네브레이를 위해 고생하는 만큼 죄책감이 줄어들 거라는 걸 깨달았다.
“폐하께 당신을 달라 말씀드릴게요. 마침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호위 하나 가져가는 건 이상하지 않죠.”
테네브레이가 무제타의 뺨을 톡톡 쳤다. 모멸적이었으나 한 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다. 어째서일까? 마음의 짐이 줄어든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