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0)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0)화(10/180)
<10화>
“응, 릴리아나 몫으로 한 잔 가져오는 김에 네 것도 함께 가져왔어.”
그렇게 대답하며, 안리체는 엘리엇에게 코코아 컵을 내밀었다.
컵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엘리엇은, 힐끔 매그의 눈치를 살폈다.
매그는 받아도 된다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후에야, 엘리엇은 냉큼 코코아 컵을 양손으로 붙들고는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
안리체는 미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이건 마치…….
‘엘리엇은 내가 아닌 매그를 친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잖아.’
빙의 전 안리체가 엘리엇을 매몰차게 대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앞에 두고 유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지금 상황도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막연히, ‘아들을 귀찮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안리체는, 애써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내가 너무 억측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매그는 지금껏 안리체 대신, 엘리엇을 정성스럽게 돌봐 준 사람이지 않은가.
괜한 의심은 하지 말자.
아까 하녀들과 있었던 일 때문에, 너무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다.
안리체는 웃는 얼굴로 엘리엇에게 말을 붙였다.
“그, 엘리엇.”
“네?”
“엄마는 오늘 릴리아나랑 같이 잘 생각인데, 엘리엇도 같이 자는 건…….”
“싫어요.”
단박에 튀어나온 대답에, 안리체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저런 반응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네가 싫다면 할 수 없지.”
……응?
순간, 엘리엇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신다고?
하지만 안리체는 방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좋은 꿈 꾸렴, 엘리엇.”
“아, 네…….”
엘리엇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씩 눈웃음을 지은 안리체는, 깔끔하게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달칵, 문이 닫혔다.
엘리엇은 멍한 얼굴로, 방금 있었던 일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어머니, 내게 화를 내지 않으셨어.’
안리체는 평소, 제 말이 공작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바랐다.
거절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성미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은 엘리엇이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어머니는 계속 온화한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계속 그러셨어. 언성을 높이거나 눈을 부라리시지도 않았지.’
한참을 고민하던 엘리엇은,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있던 매그를 돌아보았다.
“있잖아, 매그.”
“네?”
“오늘 어머니 말이야…… 굉장히 상냥하신 것 같지 않아?”
그 질문을 듣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매그의 손짓이 문득 멈췄다.
엘리엇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아까 낮에 마주쳤을 때도, 화를 안 내셨어. 게다가 이렇게 코코아도 갖다 주시고…….”
“도련님.”
“응?”
엘리엇이 두 눈을 깜빡였다.
매그는 엘리엇 바로 옆에 주저앉으며, 아이의 어깨를 보드랍게 다독여 주었다.
“물론 오늘 마님께서 굉장히 다정하셨던 건 맞아요.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렇지? 매그도 그렇게 느꼈지?”
엘리엇이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동시에, 매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도련님, 마님께서 평소 도련님을 대하셨던 태도를 생각해 보세요.”
“……날 대했던 태도?”
“네. 마님께서는 언제나 도련님을 귀찮아하셨잖아요?”
엘리엇의 얼굴이 구름 낀 하늘처럼 흐려졌다.
그런 엘리엇을 향해, 매그는 서글픈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지금은 웬일로 도련님을 다정하게 대해 주시지만, 저 다정함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 그런 거야?”
“적어도 제 생각은 그래요.”
매그는 엘리엇의 손을 꼭 붙들었다.
엘리엇을 바라보는 매그의 눈동자는, 그야말로 선량함 그 자체였다.
“저는 뭐, 도련님께서 상처를 받으실까 봐…… 그게 걱정스러워서 그런 거죠.”
“……매그.”
“그래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전 언제나 도련님 곁에 있을 테니까요.”
“으응, 고마워.”
엘리엇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매그의 입술 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건 그렇고 매그, 아까 그 애 있잖아.”
“그 애요?”
“응, 그…… 릴리아나 애버릿이라고 했던가?”
릴리아나 애버릿.
그 이름이 사탕처럼 달콤하게 혀끝에 와 닿았다.
구름처럼 폭신해 보이는 금발과 새싹처럼 말간 연둣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
엘리엇의 양 뺨이 잘 익은 사과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나…… 그렇게 예쁜 애는 처음 본 것 같아.”
“아, 네…….”
매그의 눈동자 위로, 희미한 경계심이 서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엇이 ‘아빠’와 ‘매그’ 외로 새로이 호감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므로.
한참을 주저하던 엘리엇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애는 내 약혼녀라고 하던데.”
“뭐, 그렇기야 하죠.”
그래 봤자, 몰락한 백작 가문의 볼품없는 영애이기는 하지만요.
매그는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 심술궂은 대답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엘리엇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매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나, 나중에 그 애랑 결혼하는 거야?”
“글쎄요, 뭐…….”
대충 말끝을 흐리던 매그가, 슬며시 엘리엇의 눈치를 살폈다.
“그보다, 도련님께서는 릴리아나 아가씨가 그렇게나 마음에 드세요?”
“응, 좋아.”
망설임 없는 대답에, 매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좀 위험하다.
엘리엇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친절한 유모’가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 테니까.
‘이럴까 봐, 일부러 저 계집애가 공작가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었는데.’
매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약혼녀랍시고 쓸데없이 엘리엇의 관심을 끌게 되면, 하등 좋을 것이 없지 않은가.
‘아니, 론디니 남작 부부는 도대체 뭘 한 거야?’
마님이 릴리아나를 데리고 오지 못하도록, 알아서 잘 막았어야 할 거 아냐?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꾹 억누른 매그가, 엘리엇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말도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착해 보였어. 그리고, 그리고…….”
말끝을 흐리던 엘리엇은, 수줍어하는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나, 그렇게 예쁜 애는 처음 봐.”
“…….”
매그는 엘리엇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형편없이 일그러진 표정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잠시 후, 매그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도련님께서 많이 상심하셨을까 봐 걱정했어요.”
“상심? 왜?”
“그렇잖아요? 이런 말씀은 좀 그렇지만, 마님께서는 지금껏 도련님을 홀대해 오셨는걸요.”
매그가 힐끔 엘리엇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에 반해, 마님께서 저 아가씨는 싸고도시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그래서, 도련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혹여나 마음이 아프시지 않았을까 해서…….”
하지만 엘리엇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매그를 마주 볼 따름이었다.
“응? 내 마음이 왜 아파?”
“그, 그거야. 마님의 애정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음,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미간을 좁힌 엘리엇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게 매몰차게 구셨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래도요, 서운하지 않으세요?”
“물론 서운하기야 하지. 어머니께서 내게도 잘해 주신다면 더욱 좋겠지만…….”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던 엘리엇은, 이내 방긋 미소 지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릴리아나에게 못되게 구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그렇군요.”
매그는 간신히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다.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인 엘리엇이, 해맑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응! 그래서 말인데, 아까 릴리아나가 말이야…….”
그렇게 한참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후.
매그는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그만 주무세요. 그 코코아도 저 주시고요.”
“코코아는 왜?”
“버려야죠. 어차피 지금은 다 식어서 맛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매그는 은근슬쩍 엘리엇이 들고 있는 코코아 컵을 받아들려 했다.
“대신, 제가 내일 새로 코코아를 만들어 드릴게요.”
하지만 엘리엇은 정색을 했다.
“아냐, 마실 거야.”
“……네?”
“그래도……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갖다 주신 코코아잖아.”
“도련님.”
매그가 다시 한번 엘리엇을 불렀으나, 엘리엇은 완고하기만 했다.
“이 코코아, 아직 따뜻한걸.”
“하지만…….”
매그는 마땅찮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엇은 손에 쥐고 있는 코코아 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셔 본다.
따뜻하고,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