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0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08)화(108/180)
<108화>
“……릴리.”
“그러려면 어머님처럼 훌륭한 공작 부인이 되어야 하는데, 공작 부인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하니까…….”
릴리아나가 그렇게, 기특한 말을 늘어놓고 있던 그때.
“그러려면 검술 훈련만 열심히 하면 안 될걸?”
언제 밖으로 빠져나온 건지, 엘리엇이 고개를 쏙 내밀며 얄밉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발끈한 릴리아나가 엘리엇을 노려보았다.
“엘리엇, 너 진짜!”
“왜, 사실이잖아?”
두 아이가 아웅다웅하기 시작했다.
안리체는 흐뭇한 시선으로 그런 두 아이를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은 것이 변했구나.’
처음 릴리아나가 발루아 공작저에 발을 들였을 때가 떠오른다.
잔뜩 주눅이 든 채, 모두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던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지만…… 지금의 릴리아나는 그때와는 달라.’
싫고 좋음을 확실하게 표현할뿐더러, 엘리엇과 입씨름을 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확고해졌다.
아마, 그만큼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된 거겠지.
‘다행이야, 정말로.’
그때, 누군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합니까?”
알렉세이였다.
깜짝 놀란 안리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언제 오셨어요?”
“글쎄요, 최소 5분은 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
그래요, 제가 이렇게 눈썰미가 없어요…….
민망한 표정을 감추려 애를 쓰면서, 안리체가 대답했다.
“그게, 릴리가 애버릿 고아원도 축일을 챙길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알렉세이는 기특한 눈빛으로 릴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릴리는 참 사려 깊구나. 우리 엘리엇도 릴리를 좀 본받아야 할 텐데…….”
“아니, 아빠께서는 왜 또 저를 걸고넘어지세요?”
엘리엇이 불퉁한 표정으로 알렉세이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맞아, 왜 우리 애 기를 죽이니?”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온 델피나가, 제 손주를 감싸며 알렉세이를 흘겨보았다.
엘리엇은 덥석 델피나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할머니밖에 없어요!”
“그렇지?”
흐뭇하게 웃어 보인 델피나가 알렉세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제 공작성으로 돌아가는 게야?”
“아닙니다.”
응?
뜻밖의 대답에, 델피나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알렉세이가 빙그레 눈웃음을 지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나왔으니,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러 갈 생각입니다.”
“뭐?”
아버지.
그 단어에, 델피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알렉세이는 지금, 작고한 전대 공작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엘리엇과 릴리도 아버지께 소개시켜 드릴 겸 해서요.”
“……알렉세이.”
“어머니께서도 당연히 같이 가시겠지요?”
델피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남편과 금슬이 무척 좋았던 그녀는, 남편을 잃은 이후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해야만 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을 정도로.
그런 그녀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날 배려해 주는 건가.’
그 마음이 조금 고맙기도 하고, 어쩐지 코끝이 찡하기도 해서.
“지, 진작 좀 말해 주지.”
델피나는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에이든을 보러 갈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예쁘게 치장하고 올 것을.”
그리고는 새침하게 감사 인사를 남긴다.
“뭐, 고맙구나.”
그때, 알렉세이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 인사는 제가 아니라 부인에게 하셔야지요.”
“……으응?”
순간, 델피나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알렉세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네. 처음 제안을 한 사람은 바로 부인이니까요.”
세상에!
델피나가 기겁하여 안리체를 홱 돌아보았다.
안리체는 움찔하며 그 시선을 맞받았다.
‘아, 눈 마주쳤다.’
뭐,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까.
안리체는 애써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
델피나는 한참 동안 어찌할 바 몰라 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몇 번이고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고,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안리체를 흘끗거린다.
그리고는 마침내.
“……구나.”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다만 문제는, 그 목소리가 모깃소리보다도 작았다는 것이었다.
안리체는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네?”
“고, 고맙다고!”
델피나가 얼굴을 붉히며 와락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는 냉큼 몸을 돌려 버린다.
“얼른 가자! 에이든이 기다리겠어!!”
저만치 앞서가던 델피나가, 뒤를 돌아보며 괜히 성질을 냈다.
“다들 얼른 오지 않고 뭘 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리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아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도 정말, 은근히 귀여우신 부분이 있다니까?’
슬며시 곁을 돌아보니, 알렉세이 또한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실까요, 부인.”
알렉세이가 그녀에게 권유했다.
“네, 그래요. 얘들아, 가자.”
안리체는 아이들을 챙겼고,
“엘리엇은 아빠 손 꼭 잡아야 한다.”
알렉세이는 얼른 엘리엇의 손부터 붙들었다.
그렇게 네 가족은 델피나의 뒤를 따랐다.
* * *
발루아 공작가의 가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석조 건물이었다.
“아, 이런.”
막 가묘 안으로 들어서려던 델피나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묘비에 놓아둘 꽃 한 송이도 못 들고 왔네.”
그런데 그때.
가묘를 지키는 관리인이, 델피나의 품에 새하얀 백합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이건?”
“작은 마님께 미리 연락을 받았습니다.”
관리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큰 마님께서 가묘에 방문하실 테니, 참배에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미리 신경을 쓰라고 말입니다.”
“그랬구나…….”
델피나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흠, 흠. 들어가자꾸나.”
그렇게 발루아 가족은 가묘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대리석 묘비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공기 중에는 옅은 향내가 떠돌았다.
“얘들아, 가묘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 알았지?”
“네, 엄마.”
“그럴게요, 어머님.”
안리체의 주의에, 두 아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델피나는 전대 공작의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몸을 굽힌 그녀가, 다정한 손길로 비석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이에요, 여보.”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애틋했다.
“잘 지냈어요? 요새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그쪽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흡사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조곤조곤 말을 걸던 델피나가, 엘리엇과 릴리아나를 흘끗 돌아보았다.
“당신은 우리 손주랑 손주 며느리는 처음 보죠?”
그리고는 손짓으로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와서 할아버지께 인사하렴.”
아이들이 쪼르르 제 할머니 곁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엘리엇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릴리아나 애버릿이라고 합니다.”
그 똘망똘망한 목소리를 듣던 안리체는, 문득 곁에 서 있는 알렉세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전대 공작님께서는…… 제 아들의 결혼식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했지.’
알렉세이와 안리체가 결혼하기 일 년 전.
전대 발루아 공작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말은 즉, 알렉세이는 갓 성인이 되자마자 발루아를 물려받아 불철주야 일해야 했다는 소리다.
‘사실 몸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당장 어른스러워지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쩐지 안쓰러운 기분에, 그녀는 알렉세이의 옆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인?”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알렉세이가 안리체를 돌아보았다.
“혹시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은 안리체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저희도 헌화해야죠?”
때마침 델피나와 아이들이 헌화를 끝내고 돌아 나오고 있었다.
알렉세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발루아 공작 부부는 묘비 앞에 나란히 섰다.
알렉세이는 바닥에 놓인 화병에서 백합 한 송이를 집어 안리체에게 건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백합을 받아 든 안리체가, 그를 정중하게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
알렉세이 또한, 꽃 한 송이를 바쳤다.
두 사람 모두 양손을 모으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알렉세이와 엘리엇을, 그리고 릴리아나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진심을 담아 묵념한 후.
안리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델피나가 냉큼 질문을 던졌다.
“내 남편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그리 오래 묵념을 하는 게냐?”
“아, 그게.”
안리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감사하다고?”
“네. 아버님 덕택에, 공작님과 엘리엇을 만날 수 있게 된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 대답에, 알렉세이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 대답만으로는 델피나는 만족할 수 없었나 보다.
새초롬하게 되묻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난?”
“네?”
“나한테는 안 고맙니?”
델피나는 두 눈에 불을 켜며 외쳤다.
“알렉세이를 열 달이나 배 속에 품어서 키워 낸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야!”
“…….”
“…….”
싸한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