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2)화(12/180)
<12화>
“엘리엇은?”
“도련님께서는 주무십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알렉세이가 집무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남은 일거리를 마저 처리해야 하니, 집무실로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게. 그리고…….”
안리체의 안부를 물으려던 알렉세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삼켰다.
물어보나 마나, 폭신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잘 자고 있을 테니까.
세상에서 저 스스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이니, 제 몸만큼은 잘 챙기고 있을 테지.
“저, 가주님.”
그런데 그때, 알렉세이를 뒤따르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
알렉세이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지?”
“오늘 마님께서, 릴리아나 아가씨를 타운하우스로 모셔오셨습니다.”
“……릴리아나를?”
알렉세이의 걸음이 멈칫 멈췄다.
어째서 릴리아나를 데려온 거지?
분명히, 론디니 남작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 들었었는데.
‘설마…… 곁에 두고 괴롭히기라도 할 셈인가?’
푸른 눈동자에 바짝 날이 섰다.
“그것이…….”
집사가 조곤조곤 설명을 이었다.
릴리아나가 론디니 남작가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론디니 고아원에서 하녀처럼 부려 먹히고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안리체가 릴리아나를 데려왔다는 것.
릴리아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대해 주었다는 것까지 모두.
“……지금 마님께서는 릴리아나 아가씨와 함께 주무시고 계십니다.”
집사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순간, 알렉세이가 미간을 좁혔다.
“잠깐, 릴리아나가 하녀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했나?”
“예,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그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론디니 가문에 릴리아나를 맡기기로 결정한 그때.
알렉세이는 매그에게, 릴리아나가 잘 지내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살펴보라고 일렀었다.
본디라면 안주인인 안리체에게 릴리아나 문제를 맡겼어야 했지만…….
‘그녀는 릴리아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지.’
오히려 신분 낮은 계집애를 가문에 들여야 하냐며, 길길이 날뛰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인물이, 발루아 공작령에서부터 함께 했던 하녀장인 매그였다.
‘릴리아나 아가씨께서는 아주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게 매그의 평소 입버릇이었다.
알렉세이는 기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마님과 매그의 말이 워낙에 다르니, 진위 여부를 밝히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렉세이의 눈치를 살피던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알렉세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겠지.”
잠시 고민에 빠졌던 알렉세이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함구하도록 해.”
“하오면…….”
“다만, 그냥 묻어 두라는 소리는 아니야.”
알렉세이가 단호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집사가 따로 조사해 보도록.”
“제가 말입니까?”
“그래.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거야.”
“……명 받들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내어놓은 집사가, 힐끔 알렉세이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럼 마님과 매그에게는 직접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
알렉세이는 잠시 침묵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안리체를 붙들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그는 무척 충성스러운 하녀였으니까.
매그를 의심하기보다는, 안리체가 매그와 알렉세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녀가 릴리아나를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지 않은가.’
의외였다.
그가 알고 있던 안리체는, 제 아들조차 귀찮아하여 제 곁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었다.
물론,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시간이 맞는다고 했다.
안리체의 행동도 아마 그런 종류의 것이겠지만…….
“그녀는 발루아의 안주인이야.”
이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루아의 안주인은, 응당 그 지위에 어울리는 존중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그녀가 의심스럽다 한들, 아직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를 의심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사실 관계가 명확해진 이후에 판단을 내려도 늦지 않다.”
“예, 가주님.”
집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건 그렇고, 론디니 남작 일가가 감히 그따위로 행동하다니…….”
알렉세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릴리아나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친척인 저희가 좀 더 살뜰히 보살필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선량한 말들은 모조리 거짓이었던 건가.
고아원을 운영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소중한 친우가 남긴 하나뿐인 외동딸을 맡겼던 거였다.
그런데…… 뒤에서 릴리아나를 그따위로 대하고 있었을 줄이야.
알렉세이가 이를 갈아붙였다.
릴리아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몰랐으나, 막상 듣고 보니 수상한 점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최근 론디니 남작 가에서 고아원을 증축했다지?”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증축에 사용된 금액은 어디서 나온 거지?”
……론디니 남작 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자금의 출처 같은 것.
“그것이…….”
집사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어물거렸다.
그도 모르는 것이다.
알렉세이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자네도 모르나?”
“……죄송합니다. 매그가 워낙에 ‘괜찮다’고 말해 왔기에.”
집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알렉세이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너무 안이했군.’
알렉세이는 속으로 깊이 반성했다.
물론 그가 미처 릴리아나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있다.
그는 제국 유일의 공작이었고, 황제의 신뢰받는 벗이었으니까.
나랏일과 공작가의 일만으로도 바빠서, 그쪽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지.’
적어도 집사에게는, 릴리아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라고 명령해 뒀어야 했다.
덮어놓고 매그와 론디니 남작가를 믿어서는 안 됐다.
“……아닐세. 여태껏 나도 매그를 믿어 왔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솔직히, 이 문제는 집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주인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임의대로 움직이는 건, 굳이 따지면 월권행위에 가까우니까.
게다가 집사는, 태만한 안주인 대신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항상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론디니 남작가를 신경 쓸 여유 자체가 없었을 터.
두 눈을 꾹 감았다 뜬 알렉세이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론디니 남작가에서, 릴리아나의 생활비 명목으로 가져간 돈이 얼마지?”
“약 천 그로센 정도 될 겁니다.”
그 대답에, 알렉세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천 그로센이면 거의, 평민 가정집의 3년 치 생활비 정도는 되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큰 금액을 받아 냈으면서도, 릴리아나를 하녀보다도 못하게 키우고 있었다니.
아마, 그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앞으로는 절대로, 론디니 남작가 사람들이 애버릿의 재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알렉세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릴리아나가 성년이 되면, 그 애에게 돌아가야 할 소중한 재산이니 말일세.”
“명 받들겠습니다.”
집사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렉세이가 삐딱하게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또한, 황궁의 세무 부처에 진정을 넣도록 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론디니 남작가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세무조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야.”
“예? 세무조사를요?”
집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하게 커졌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단호했다.
“그래. 이왕 진행할 거라면 확실하게 해야지.”
“알겠습니다. 공작가에서 직접 진정을 넣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게.”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집무실로 바로 커피를 올려보낼까요?”
“아니, 삼십 분 뒤로 부탁하지. 엘리엇이 자는 얼굴을 보고 올라갈까 해.”
집안에 엘리엇의 약혼녀가 들어와서일까, 어쩐지 엘리엇이 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방에 그렇게 말을 전해 놓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알렉세이가, 발걸음을 돌려 엘리엇의 방으로 향했다.
* * *
알렉세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방문을 열었다.
하얀 커튼 너머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기에, 방은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알렉세이는 발소리를 죽여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엘리엇은 이불을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채,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귀엽군.’
알렉세이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리엇이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알렉세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알렉세이에게서 물려받은 분위기와, 발루아 특유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더해져 그렇게 느껴질 뿐.
사실 엘리엇은 안리체를 많이 닮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제비꽃빛 눈동자 빛깔, 사슴처럼 우아한 목덜미까지 모두.
“…….”
알렉세이는 손을 뻗어, 엘리엇의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 안리체를 만났을 때에는…….
‘그럭저럭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명망 높은 작센 후작가의 아가씨.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는, 귀족적이고, 기품 있고, 아름다웠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였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괜찮다고 여겼다.
비록 불길처럼 타오르는 연정은 아닐지라도, 상대방을 향한 신뢰가 있었으니까.
그 신뢰감이, 안정적인 결혼 생활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그 믿음은 안리체의 실체를 알고부터 싸늘한 잿더미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알렉세이가 고개를 가로젓던 그때.
엘리엇이 부스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까맣고 풍성한 속눈썹 아래, 영롱한 제비꽃빛 눈동자가 알렉세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리체를 꼭 닮은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