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27)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27)화(127/180)
<127화>
“공작님께서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셨는데…….”
알렉세이는 그저, 안리체를 되찾은 것에 기분이 좋아진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남들이 보기엔 그랬다.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와 제국의 달이신 황후 폐하, 그리고 두 분 황자께서 드십니다!”
때마침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황실 가족을 향해 예를 표했다.
‘……그러고 보면, 황실 가족을 이렇게 만나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지.’
안리체는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황제와 황후 부부 뒤에 서 있는 1황자 레널드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와락 미간을 구겼다.
‘에이, 눈 버렸어.’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아, 저 사람이 2황자인가?’
어딘가 자신만만한 느낌의 레널드와는 달리, 2황자는 학구적인 인상이었다.
다른 황실 가족들보다 한 걸음 뒤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유난히도 시야에 박혔다.
‘마치…… 따돌림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 같잖아.’
그런 2황자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자신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안리체의 친정인 작센 후작 가문. 그리고 전생의 가족들.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등바등하던 자신까지.
“…….”
안리체는 씁쓸한 기분을 애써 정리했다.
그 사이, 황실 가족은 무도회장 중앙에 섰다.
시종이 황제에게 샴페인 한 잔을 바쳤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액체를 들여다보던 황제가, 손에 든 샴페인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새로운 해가 도래했지만, 황가와 그대들의 친교는 영원할 것이오.”
황제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부디 모두들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신사와 레이디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렉세이가, 제 아내에게 은근슬쩍 말을 붙였다.
“리체, 우리도 한 곡 추는 건…….”
“오, 발루아 공작!”
“…….”
알렉세이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바로 황제였으니까.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몸을 돌린 알렉세이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안리체도 드레스 자락을 잡아 올리며 무릎을 굽혔다.
황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공작 부인은 여태껏 잘 지내셨소?”
“황제 폐하의 은덕에 힘입어 잘 지냈습니다.”
안리체도 황제를 따라 빙그레 눈매를 휘어 보였다.
황제가 슬쩍 델피나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번에는 공작 대부인도 신년무도회에 참석하였더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제 폐하.”
델피나가 황제를 향해 알은체를 했다.
“어째 공작 대부인께서는 늙지를 않으시는군.”
“감사합니다. 슬프게도 황제께서는 정무가 무척 힘드셨나 봅니다.”
“그거, 짐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오?”
“차마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요.”
델피나의 뼈 있는 농담에, 두 사람이 나란히 웃음을 터뜨렸다.
전대 발루아 공작과 델피나 모두, 황제의 절친한 친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마디를 거들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이렇게 발루아 일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무척 반갑네요.”
그 사람은 바로 황후였다.
“공작 대부인께서는 몸 건강히 계셨나요?”
“저야 뭐, 딱히 불편한 곳은 없답니다. 황후께서는 어떠신가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황후가 부채로 입술을 가리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동시에, 황제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발루아 공작 부인이 굉장한 일을 해냈더군.”
그리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안리체를 바라보았다.
“그, 다인승 마차 사업 말일세.”
“과찬이십니다.”
안리체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편 그 칭찬이 떨어진 순간, 황후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뭐지?’
안리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황후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금세 물로 씻은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황후의 낯에는 어느새, 가면 같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잠시 미심쩍은 눈빛을 하던 안리체는 다시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는 안리체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 이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맞네.”
“감사합니다.”
“칭찬할 일을 칭찬한 건데, 감사는 무슨 감사요?”
황제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듣자 하니 공작령에서 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던데. 현 상황은 어떻소?”
“사업을 흑자로 전환하고, 영지 곳곳에 노선을 만들 정도는 됩니다.”
“좋군! 장차 그를 제국 전체로 확대하면, 제국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소.”
……제국 전체로 확대한다니?
어리둥절해진 안리체를 향해, 황제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연통을 넣을 테니, 한 번 입궁하도록 하시오.”
“예? 저, 실례지만 설명을 좀…….”
“다인승 마차 사업 말이오.”
황제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사업을 진행한 당사자인 공작 부인에게 도움을 얻는 게, 가장 낫지 않겠소?”
그 제안에, 안리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국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였다.
그런 나라의 군주가, 안리체에게 저런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거야.’
비록 지금은 공작 부인으로서 제안을 받은 거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이번 일을 잘 끝낸다면, 여성이 황제에게 인정받으며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선례가 생길지도.
안리체는 양 뺨을 붉히며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 기쁘게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황후가 부드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폐하께서도 참, 여긴 신년무도회 자리가 아닙니까.”
그렇게 운을 뗀 황후가, 제 남편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그리 일 얘기만 하며 공작 부인을 잡아 두시면 어떡합니까?”
“이런, 짐이 그랬소?”
“네, 그러셨습니다. 공작 부인께도 무도회를 즐길 시간을 주셔야지요.”
“그렇군, 짐의 생각이 짧았어.”
황제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황후가 안리체를 돌아보았다.
눈매를 한껏 휘며 권유한다.
“가서 무도회를 즐기도록 하세요.”
……음, 하지만 말이지.
어쩐지 아리송한 기분에, 안리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행동 자체는 그녀를 배려해 주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껄끄러운 느낌이 든다.
‘어쩐지, 일부러 대화를 차단한 것 같단 말이야.’
마치, 황제가 다인승 마차 사업을 칭찬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냐,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은 안리체가 생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배려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가시죠, 리체.”
대화가 끝나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리던 알렉세이가 제 아내에게 냉큼 말을 붙였다.
델피나는 도끼눈을 떴다.
‘저 녀석은 정말, 이 어미한테는 말 한마디도 안 걸고!’
체면이 뭐라고.
황실 가족들 앞인지라, 차마 타박하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아들 키워 봤자 며느리나 빼앗아 가고, 다 소용없네!’
그렇게 알렉세이와 안리체, 델피나가 자리를 뜨려던 그때.
“아 참, 발루아 공작 부인.”
등 뒤에서 황후가 안리체를 불렀다.
응?
안리체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말씀하시지요, 황후 폐하.”
“공작 부인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작센 후작 대부인과 무척 친밀하답니다.”
……작센 후작 대부인?
순간 안리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낯이 굳어지는 만큼, 황후의 입술에 걸린 미소는 더더욱 해사해졌다.
“그러니…… 공작 부인과 저도 친해질 수 있겠죠?”
그 미소에서는 악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리체는 황후가 영 거북했다.
“글쎄요, 제가 만약에 황후 폐하와 우정을 쌓게 된다면.”
잠시 고민하던 안리체가 부드럽게 입술을 열었다.
“제 어머니를 가교로 삼기보다는, 황후 폐하와 직접 친교를 나누고 싶네요.”
“…….”
비록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황후는 그 말의 속뜻을 금방 알아챘다.
‘제 어머니를 빌미로 삼지 마세요.’
그런 뜻이었다.
우아하게 예를 갖춘 안리체가, 저를 기다리는 발루아 일가에게로 향했다.
황후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버릇없기는.’
황후의 눈빛은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