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3)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3)화(13/180)
<13화>
“……아빠?”
“이런, 엘리엇. 아빠가 깨웠나 보구나.”
알렉세이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엘리엇은 연신 하품을 하며, 제 아빠에게 양팔을 벌렸다.
능숙하게 그런 아들을 받아 안던 알렉세이가, 문득 테이블에 놓여 있는 빈 컵을 발견했다.
갈색 액체가 말라붙은 흔적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코코아가 담겼던 컵 같았다.
“웬일로 매그가 잠들기 전에 코코아를 허락했나 보구나.”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알렉세이는 복잡한 심경으로 입을 열었다.
비록 론디니 가문에 관하여,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그나마 엘리엇에게는…… 매그라도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지.’
매사에 쌀쌀맞은 안리체와는 달리, 매그는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엘리엇을 대해 주었으니까.
매그마저 없었더라면, 엘리엇은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런데 바로 그때.
엘리엇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매그가 준 거 아니에요.”
“그럼?”
“어머니께서 갖다 주셨어요.”
……안리체가?
순간, 엘리엇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알렉세이의 손이 멈칫했다.
제 아들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그녀가, 어째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코아를 챙겨 준단 말인가?
잠시 후, 표정을 가다듬은 알렉세이가 빙그레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이는 잘 닦았고?”
“네, 그럼요.”
엘리엇은 앳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시간을 흘끗 살펴본 알렉세이가, 아들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래,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거라.”
어깨를 도닥여 주자, 엘리엇은 금세 다시 곤히 잠들었다.
알렉세이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뺨에 키스를 남긴 후, 몸을 일으켰다.
‘……안리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오늘 안리체가 보인 행보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릴리아나를 데려와 세심하게 보살펴 주던 모습도 그렇고, 엘리엇에게 코코아를 가져다준 것도 그렇고…….
‘조금…… 이전과는 다른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던 알렉세이는, 순간 환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봤자 ‘그’ 안리체 아닌가.
오만방자하고, 사치스러우며, 모든 사람을 제 발밑으로 보는 여자.
그 어떤 사람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지 않는 여자.
수없이 실망하고 또 실망했는데도, 이렇게 또 한 번 기대를 품고 마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후우.”
알렉세이의 입술 사이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리체에 대해 고민해 봤자 모조리 쓸데없는 짓이다.
그녀는 어차피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피로한 눈빛이 되어,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환한 햇살에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비몽사몽으로 눈꺼풀을 깜빡이던 안리체는, 문득 품에서 꼬물거리는 자그마한 온기를 느꼈다.
“……릴리아나?”
잠긴 목소리로 릴리아나를 부르자, 아이가 고개를 쏙 내밀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어머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릴리아나도 잘 잤니?”
안리체도 아이를 향해 마주 웃어 주었다.
릴리아나의 보드라운 뺨을 살짝 쓸어내리자, 아이가 어린 동물처럼 손에 뺨을 비벼왔다.
“아침 먹어야지?”
“아, 괜찮아요. 어제 저녁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가 안 고파요.”
“흠, 그래?”
하기야, 어제 저녁 식사를 늦게 하기는 했지.
게다가 자기 전에 코코아까지 한 잔 마시지 않았나.
안리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릴리아나는 오늘 무엇을 하고 싶니?”
“저요?”
릴리아나는 연둣빛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라.
그 물음이 생경했다.
왜냐하면 릴리아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봐 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으므로.
한참을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저는…… 어머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네. 어머님과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그다지 상관없어요.”
릴리아나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던 안리체가, 릴리아나의 정수리를 두어 번 토닥거렸다.
“그럼, 오늘은 나랑 같이 쿠키라도 구워 볼까?”
어제 릴리아나가 디저트로 나온 쿠키를 잘 먹는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 제안을 들은 릴리아나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쿠키를 구워요? 제가, 어머님과 같이요?”
“응. 혹시 내키지 않는다면…….”
“아니요,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릴리아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와락 높였다.
그리고는 제 커다란 목소리에 되레 놀랐는지, 파드득 안리체의 눈치를 살핀다.
안리체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눈매를 곱게 접어 보였다.
“좋아. 그럼 우선 일어나자. 언제까지 침대에 누워 있을 수는 없잖니?”
“네, 네!”
릴리아나가 침대에서 팔짝 뛰어내렸다.
아이를 뒤따라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딛던 안리체가, 릴리아나를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주방으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세수부터 해야지?”
“네, 어머님!”
릴리아나가 쪼르르 안리체에게로 달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 같아서, 안리체는 그만 큰 소리로 웃어 버리고 말았다.
* * *
막 침실 밖으로 빠져나오던 중, 안리체는 릴리아나의 품에 인형이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상점에서 릴리아나의 드레스를 맞추던 때, 안리체가 덤으로 하나 사 준 인형이었다.
안리체가 의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인형은 왜 들고 나왔니?”
“네? 그거야, 어머님께서 제게 선물해 주신 소중한 인형이니까요.”
릴리아나는 해사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는, 웬만하면 이 인형도 같이 데리고 다니려고 해요.”
“어째서?”
“그러면 말이죠, 이 인형을 볼 때마다 어머님과 보냈던 즐거운 시간이 떠오를 것 아니에요?”
그 사랑스러운 말에, 안리체는 양 뺨을 붉히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특해! 우리 릴리아나, 너무 귀엽고 기특하다고!
그렇게 내적 비명을 지르고 있던 그때.
안리체는 엘리엇이 방문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나, 엘리엇?”
안리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그녀의 침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아이가, 웬일로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였다.
엘리엇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감사 인사를 하러 왔어요.”
“감사 인사? 웬?”
어리둥절한 안리체를 향해, 엘리엇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제 코코아를 갖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고작해야 저 인사를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안리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릴리아나가 엘리엇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발루아 소공작님.”
“……안녕.”
엘리엇은 부러 릴리아나에 관심이 없는 척, 괜히 제 발끝을 내려다보며 마주 인사했다.
하지만 엘리엇의 목덜미는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하.’
순간, 안리체의 입술 위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서렸다.
그러고 보면, 엘리엇은 릴리아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코코아에 대한 감사 인사는 그냥, 내 침실로 찾아올 핑계인 거구나.’
아무래도 엘리엇은, 릴리아나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았다.
뭐, 원작 속에서도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인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안리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았다.
엘리엇은 두 눈에 힘을 주고 릴리아나의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릴리아나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부끄럽고,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저러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 열렬한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엘리엇에게 제 인형을 내밀었다.
“저, 소공작님. 인형 한 번 안아 보실래요?”
“돼, 됐어. 난 남자애인걸.”
“네에?”
“남자는 말이지, 원래 목검이나 장난감 마차를 갖고 노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엘리엇은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두 아이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안리체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어머나, 엘리엇. 왜 그런 말을 하니?”
“네?”
“법적으로 ‘남자아이는 목검과 장난감 마차만을 갖고 놀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니?”
허를 찔렸는지, 엘리엇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안리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여자아이가 목검이나 장난감 마차를 갖고 놀아도 되고, 남자아이가 인형을 갖고 놀아도 돼.”
“……그, 그렇지만.”
“릴리아나가 모처럼 제안해 줬으니, 원한다면 한번 안아 보렴.”
그와 동시에, 릴리아나가 제 인형을 엘리엇의 품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는 엘리엇과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는다.
봄꽃 같은 그 미소에, 엘리엇의 표정이 사르르 풀어졌다.
“어…… 어?”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엘리엇은 그제야, 제가 상당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엘리엇이, 황급히 인형을 릴리아나에게로 되돌려 주었다.
“돼,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아무렇게나 중얼거린 엘리엇이, 그대로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릴리아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발루아 소공작께서는 왜 저러시는 걸까요?”
“글쎄, 왜 그럴까?”
능글맞게 대답한 안리체가, 릴리아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