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3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32)화(132/180)
<132화>
“……리체.”
알렉세이는 막막한 낯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바짝 어깨를 움츠린 안리체가 너무나도 작고, 너무나도 가냘파 보여서.
“잘 모르겠어요.”
도저히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안리체의 눈에서 툭 눈물이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황급히 눈가를 닦아냈다.
“죄, 죄송해요. 제가 좀 과음을 했나 봐요.”
손은 물론이고, 옷소매까지 동원해 눈가를 꾹꾹 찍어내기를 수차례.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후두둑 쏟아지는 눈물이 옷깃과 옷소매를 마구 적셨다.
‘왜,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안 되는데.
여태까지 무척 즐거웠었는데.
이러다가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기라도 하면…….
안리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손이 안리체의 양 뺨을 부드럽게 감싸 올렸다.
‘응?’
당황한 안리체가 젖은 속눈썹을 깜빡였다.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다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보면 되지 않습니까.”
“……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많으니까요.”
그 상냥한 말에, 안리체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취미를 찾고 싶다면 그러면 됩니다.”
그의 손가락이 달아오른 눈가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오랫동안 검을 쥐어 단단한 손가락.
그러나 무척 따뜻한…….
“혹은 쉬고 싶다면, 내킬 때까지 푹 쉬어도 돼요.”
“……알렉세이.”
“당신이 그 모든 것을 하는 동안, 저는…….”
천천히, 경건하게.
알렉세이는 제 아내의 젖은 눈가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나긋한 속삭임이 울렸다.
“계속 당신 곁에 있을 테니까요.”
“…….”
안리체의 눈가가 와락 일그러졌다.
완벽한 안주인, 기품 있는 귀부인.
소중한 남동생을 위해 당연히 희생하는 누나.
모두가 그녀에게 정해진 역할만을 바랐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도 된다고 이야기해 줘.’
그를 깨달은 순간.
안리체는 저도 모르게 알렉세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저, 어리광 좀 부려도 돼요?”
“그럼요.”
알렉세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의 손은 어느새, 가늘게 떨고 있는 아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지 않게 되더라도.”
순간 그의 손이 멈칫 멈췄다.
“그래서…… 제가 더 이상 알렉세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안리체는 어린 동물처럼 그의 품 안에 고개를 파묻었다.
“……저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
알렉세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리체.”
알렉세이가 제 품 안에서 부드럽게 안리체를 떼어냈다.
안리체가 절박하게 말을 이었다.
“저,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글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겁에 질린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내를 향해, 알렉세이는 차분하게 입술을 열었다.
그가 건넬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서.
“가족이란, 상대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할 관계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저 상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웃음이 나니까.”
조곤조곤 말을 잇는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진다고 말하듯.
그야말로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서 함께하게 된 거죠.”
알렉세이가 부드럽게 눈매를 휘었다.
봄볕처럼 따스한 미소였다.
“그리고 리체는 제게 있어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
안리체가 멍하니 그 말을 곱씹었다.
알렉세이가 다시 그녀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그럼요. 리체는 제 부인인걸요.”
……아, 어쩌지.
안리체는 입술을 당겨 물었다.
간신히 눈물을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툭.
그녀의 뺨 아래로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안리체가 짓눌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알렉세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해 주었다.
“……윽.”
울먹거리던 안리체가, 다시 한번 알렉세이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따뜻했다.
* * *
새근새근 숨소리가 울렸다.
알렉세이는 제 팔 안에서 곤히 잠든 안리체를 내려다보았다.
“……리체.”
알렉세이는 안리체의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았다.
이제 그녀도 괜찮은 줄 알았다.
작센 후작가의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자유로워진 줄 알았는데.
“취미조차 없었다고…….”
입 안이 썼다.
소리 없이 뚝뚝 눈물만 떨어뜨리던 안리체의 얼굴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다.
지그시 입술을 당겨 물던 알렉세이가, 팔을 뻗어 안리체를 꼭 끌어안았다.
“도대체, 당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지금쯤 다 괜찮아졌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서.
알렉세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만물이 잠든 늦은 밤.
아직 빛이 꺼지지 않은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황후궁의 응접실이었다.
“어마마마,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고요.”
레널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컷 무도회를 즐기다 별안간 어머니에게 소환당한 상태였으니까.
‘한창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레널드가 속으로 투덜거리던 그때.
황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발루아 공작 부인 말이다.”
“……공작 부인은 왜 갑자기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계집, 영 만만치 않더구나.”
그렇게 운을 뗀 황후가, 마땅찮은 눈초리로 제 아들을 흘겨보았다.
“네가 발루아 공작령에서 왜 그렇게 당하고 왔는지도 조금은 알 것도 같고.”
“아니, 어마마마. 제가 당하기만 한 건 아니고…….”
발끈한 레널드가 무어라 항변하려 했다.
황후는 대충 손을 휘저어 아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제 어미를 언급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어.”
안리체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선했다.
‘제 어머니를 가교로 삼기보다는, 황후 폐하와 직접 친교를 나누고 싶네요.’
황후가 미간을 와락 구겼다.
“건방진 것.”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안리체를 향한 뚜렷한 적개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잠시 후.
황후가 제 아들을 홱 돌아보았다.
“너는 오늘 어땠느냐?”
“예?”
“발루아 일가와 마주쳤다고 들었다.”
황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이번에도 괜히 자존심만 세우고 온 건 아니겠지?”
“정중히 사과하고 왔으니, 어마마마께서는 너무 걱정 마시지요.”
레널드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황후가 재차 질문했다.
“뭐 다른 문제는 없었고?”
“없었습니다.”
레널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아까 전, 발루아 일가 앞에서 프레데릭을 대놓고 무시한 건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천것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 따위, 레널드에게는 숨을 쉬는 것보다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므로.
“그래, 알겠다.”
황후는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황후의 미간은 여전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영 느낌이 안 좋아.”
“왜 그러십니까?”
“황제 폐하께서 다인승 마차 사업에 꽤 관심을 보이시더구나.”
황후가 골똘히 고민에 잠긴 채, 말끝을 흐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발루아에게 지금보다도 더 힘이 실릴 여지가 있는데…….”
“어마마마께서 막으실 수는 없으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고개를 가로저은 황후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제 아들을 응시했다.
“명분이 없잖아.”
“아니, 그렇기는 해도…….”
“황제께서 민생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신 건, 너도 알잖니?”
황후가 짧게 혀를 찼다.
“그래서 점수 좀 따 보라고 발루아 공작령에 내려보냈더니, 그새 사고나 치지를 않나.”
“…….”
그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므로, 레널드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버렸다.
동시에 황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너 말이다.”
“예, 예?”
“사고를 쳤으면 자중하고 있을 것이지, 요새 왜 이렇게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