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54)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54)화(153/180)
<154화>
멋쩍은 침묵이 흘렀다.
“…….”
“…….”
그 후.
애써 표정을 정돈한 알렉세이가 안리체를 응시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안리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알렉세이를 마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제 리체가 작센 후작위를 물려받게 되면…….”
알렉세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아마, 후작 대부인께서 그리 기꺼워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아.
허를 찔렸다.
안리체가 두 눈을 깜빡였다.
알렉세이는 그런 안리체가 못내 안쓰러웠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해도, 안리체는 가족의 정에 굶주린 사람이었으니까.
이번 일로 어머니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면, 그녀의 속이 어떨지…….
“이번에 릴리와 함께 재판장에 가셨을 때도, 후작 대부인께서 리체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그때.
안리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음, 저 이제 그런 건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예?”
알렉세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안리체는 경쾌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냥, 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렇게 대답한 안리체가, 알렉세이와 시선을 맞추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또한 제 가족은 발루아의 사람들이고요.”
“리체.”
“그러니까 알렉세이.”
안리체가 양팔을 크게 벌렸다.
“저 좀 안아 줄래요?”
“…….”
어쩐지 먹먹한 얼굴이 된 알렉세이가, 안리체를 와락 끌어안았다.
안리체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가만히 고개를 기댔다.
‘알렉세이가 내 곁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녀는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알렉세이가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더 이상 가슴 아플 일은 없을 것 같아.’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건, 안리체 자신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 시각, 황후궁.
온통 엉망이 된 방 가운데에서, 폐황후가 비스듬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래.”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외추방이라고?”
“그렇다고 합니다, 황후 폐하.”
평생 황후를 모셔 왔던 최측근인 시녀장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황후 폐하’라는 호칭은 틀린 말이었다.
국외추방형이 내려진 그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신분은 ‘황후’가 아니라 ‘폐황후’였으므로.
하지만 시녀장은 끝끝내 폐황후를 황후 폐하라고 불렀다.
“내 아들은?”
“1황자 전하께서는…… 1황자궁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사실상 감금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하, 우습군.”
폐황후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선명한 비웃음이었다.
“국외추방이라. 황제께서는 끝까지 저만 선량한 위치에 남고 싶으시다, 이거군.”
부부, 그리고 아비와 자식의 정을 생각하여 목숨만은 거두지 않는다.
그렇게 말했다고 들었다.
‘졸렬하기는.’
폐황후의 조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돌이켜 보면 황제는 항상 그랬었다.
그녀가 2황자인 프레데릭을 박대할 때마다, 언제나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언제까지 프레데릭을 눈엣가시처럼 미워할 거요?’
먼저 시녀를 건드려 아이를 낳아 온 건.
그래서 그녀가 프레데릭을 증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황제였는데도 말이다.
‘애초에 황제께서 결혼생활에 충실하셨더라면, 나도, 나도…….’
폐황후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황제가 애초에 처신을 잘했더라면, 그녀가 이런 극단적인 일까지 벌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제 자식을 지극히 사랑했을 뿐인데.
그래서, 어떻게든 레널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됐어.’
폐황후는 들끓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켰다.
어차피 이렇게 서러워해 봤자 전혀 소용없다.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으니까.
때마침 시녀장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
폐황후는 물끄러미 시녀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직 앤더슨 후작가의 레이디였을 시절부터, 황후가 되고.
제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쥐여 주기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그녀 곁을 떠난 적 없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시녀장.”
“예, 황후 폐하.”
시녀장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폐황후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시녀장 앞에 섰다.
잘그락.
깨진 화병 조각이 발밑에서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자네는 평생을 나를 모셨지.”
“……황후 폐하.”
“정말 고맙네.”
처음 듣는 감사 인사에, 시녀장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이미 나의 패배는 확정됐어.”
“그건……!”
“발루아가 이겼네. 이 패배 자체는 뒤집을 수 없어.”
그리고는 불쑥 시녀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자네가 여태껏 봐 왔던 나는 어떠했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패배를 앞두고,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해서 말일세.”
폐황후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여태껏 나를 지켜봐 왔던 자네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소리야.”
시녀장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표정을 정돈한 시녀장이 폐황후를 마주 보았다.
“제가 모셨던 황후 폐하께서는, 패배를 인정하실지언정.”
시녀장의 목소리에 희미한 힘이 실렸다.
“그 패배 속에서도 스스로 하실 일을 찾아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 자네도 날 그렇게 봐 왔단 말이지.”
폐황후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러는 편이 나답다고 생각해.”
폐황후는 손을 뻗어, 시녀장의 양어깨를 가만히 붙들었다.
어깨를 쥔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비록 패배했지만,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개처럼 순순히 승복할 생각은 없네.”
“그렇다면…….”
“……최소한 이 치욕의 일부라도 갚아 주어야 하지 않겠나.”
폐황후의 얼굴 위로 스산한 미소가 번졌다.
그를 바라보던 시녀장이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폐하.”
* * *
소년교도소의 아침은 이르게 시작했다.
탕탕탕!
쇠창살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니트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배식이다!”
교도관이 배식구 안에 쟁반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초라한 쟁반 위로는, 멀건 수프와 검고 딱딱한 빵 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
제니트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새삼스럽게 코끝이 맵싸해졌다.
한때 론디니의 영애였을 적에는, 아니, 론디니가 몰락하고 홀로 남았을 때에도.
‘……이런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
그리 먼 과거도 아닌데,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아냐, 그래도 먹어야 해.’
제니트는 이를 악물며 빵을 반으로 갈라냈다.
그나마 이런 부실한 음식이라도 꼬박꼬박 먹어 주지 않으면, 소년교도소의 험한 생활을 버틸 수 없다.
제니트가 여태껏 몸소 체험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때.
‘응?’
제니트의 눈이 조금 커졌다.
빵조각 가운데에, 돌돌 말린 종이 꾸러미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제니트는 일단,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크게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에야.
제니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종이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꾸러미를 펼친다.
‘반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물건은, 투명한 보석이 박힌 가느다란 반지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제니트가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 쓰여 있는 짤막한 글은 무척 신랄했다.
「내 손에 네 부모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부모의 시체를 만나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가 당한 치욕을 대신 갚도록 하렴.」
그 순간, 제니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폐황후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