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55)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55)화(154/180)
<155화>
「반지에 힘을 가하면, 네가 이 반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게 될 거다.
다만 반지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본의 아니게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쪽지의 설명에 따라, 제니트는 반지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았다.
그러자, 반지 아랫부분에서 뾰족한 침이 튀어나왔다.
새끼손톱 정도의 길이밖에 안 되는 짧은 침은,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할 정도로 약해 보였다.
하지만.
‘매사 완벽을 기하는 폐황후가, 직접 내게 이 반지를 보낸 거라면…….’
제니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독이구나.’
저 침 끝에 분명 독이 묻어 있을 것이다.
「쪽지는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알아서 잘 처리해라.」
쪽지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잠시 침묵하던 제니트가, 쪽지를 입에 밀어 넣었다.
한참을 씹은 후에야 종이 특유의 질깃함이 사라졌다.
“……후.”
쪽지를 삼킨 제니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가 인질로 잡힌 이상, 이제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폐황후의 명령에 따르는 것.
“어차피 죽어야만 한다면.”
제니트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절대로…… 혼자서 죽지는 않아.”
릴리아나.
그 계집애만큼은, 무조건 지옥으로 함께 끌고 갈 생각이었다.
* * *
“뭐? 누구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뜻밖의 소식에, 안리체가 미간을 좁히며 집사를 돌아보았다.
“제니트라면…… 론디니 가문의 그 아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집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하겠다고 합니다.”
안리체는 미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이제 와서?”
“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번 일의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집사는 이번에 만나 본 제니트의 모습을 상기했다.
소년교도소에서 만난 제니트는 상당히 초췌한 낯이었다.
‘제 처벌은 겸허히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창백한 얼굴 위로 눈물이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릴리아나, 아니, 애버릿 백작 영애께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
보는 사람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 눈물 때문에 집사의 마음이 흔들린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사죄하려는 마음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집사는 다소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일단 증언 자체는 받아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 조언에 안리체는 미간을 좁혔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 애버릿 백작이 남겨 놨던 일지 덕택에, 애버릿가가 썼던 누명은 거의 벗겨진 상태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백한 진실보다는 음모론에 더 흥미를 가지는 법이지.’
그 증거로, 아직 세간에 애버릿 백작가에 대한 온갖 소문이 퍼져 있는 상태였다.
물론, 애버릿 백작가의 누명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의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그런 식으로 삐딱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니트가 여태까지 입도 벙긋하지 않은 것 또한, 그 의심에 힘을 보탰다.
‘발루아 공작가에서 협박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이런 논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든 소문을 종식시키려면…….
‘제니트가 직접 ‘그건 내 잘못이었다’고 증언해 주는 편이 가장 확실할 테지.’
아마 집사도 그 부분을 고려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일 터.
다만.
“글쎄,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안리체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일단 릴리의 의견부터 들어 봐야겠어.”
* * *
“만나고 싶어요.”
안리체의 제안을 듣자마자, 릴리아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심이니?”
“네.”
릴리아나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리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 만나는 건 릴리의 자유야. 다만 난…….”
잠시 말끝을 흐리던 안리체가 작심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혹시 릴리가 그 만남에서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조금 걱정스럽단다.”
상대는 법정에서 위증을 하고, 애버릿과 발루아에 누명을 씌운 장본인이지 않은가.
물론 제니트가 아직 미성년자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리 분별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폐황후가 증언하기로는.
‘제니트 양이 애버릿 영애에게 복수하기를 원했기에, 그를 조금 이용해 줬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었다.
물론 폐황후의 증언이니, 한 번 걸러서 들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당시, 제니트가 릴리아나에게 악의를 갖고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정말로 괜찮겠니?”
안리체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릴리아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도 만나 보고 싶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건…….”
말을 고르던 릴리아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야만 제 감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제니트, 더 나아가 론디니 가문과의 오래된 악연을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그런 거라면.”
결국 안리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가 원하는 대로 하렴.”
* * *
며칠 후.
안리체와 릴리아나는 제니트가 수감되어 있는 소년교도소에 방문했다.
“괜찮니, 릴리?”
“네, 괜찮아요.”
안리체는 릴리아나를 향한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릴리아나가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교도관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면회실은 조그만 테이블과 의자만이 놓여 있는 삭막한 공간이었다.
“죄수를 데리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를 갖춘 교도관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철컹!
문이 열렸다.
면회실 문 너머로, 창백한 얼굴의 제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도관의 손에 단단히 붙들린 채, 비틀비틀 걸음을 옮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니트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릴리아나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제니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릴리아나 대신, 안리체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제니트 양.”
“…….”
제니트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제니트 양.
그 호칭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안리체는 더 이상 제니트를 두고 론디니 영애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호칭 자체가…….
론디니 남작가는 완벽하게 몰락했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저는 문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불러 주십시오.”
교도관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내밀한 이야기가 오갈 테니, 그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털썩!
제니트가 갑자기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어, 어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릴리아나가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안리체가 미간을 좁히며 제니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죠?”
“제가……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툭툭 떨어지는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발루아 공작가에도 누명을 씌웠지요.”
제니트가 가느다랗게 어깨를 떨었다.
“이 죄를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그 모습 자체는 정말 애처로웠다.
명백한 피해자인 릴리아나까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안 돼.’
릴리아나는 단단히 마음을 다져 먹었다.
‘제니트 한 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는데?’
릴리아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용서할 줄 알아요?”
그러나 애써 단호해지려고 노력했음에도,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를 하녀처럼 부려먹었던 건 괜찮아요. 하지만.”
“…….”
“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위조화폐를 제작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발루아 공작가에도…….”
“…….”
릴리아나의 감정이 격해지는 그만큼.
제니트의 침묵은 길어졌다.
고개를 숙인 제니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안리체와 릴리아나 모두 알지 못했다.
“……됐어요, 이렇게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릴리아나는 두 눈을 꽉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냉랭한 눈빛으로 제니트를 내려다보았다.
“이번 일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해 주신다고 하셨지요.”
“…….”
“말씀해 주세요.”
릴리아나는 몸을 낮추며 제니트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저, 그 정도는 요구할 자격이 되잖아요?”
“…….”
하지만 제니트는 여전히 입술을 열지 않고 있었다.
도리어 자신의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수그릴 뿐.
‘뭐지?’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제니트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던 소녀는 간데없었다.
제니트가 독기 서린 눈동자로 릴리아나를 쏘아보았다.
“자격? 웃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