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5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58)화(157/180)
<158화>
* * *
약 삼십 분 후.
알렉세이가 숨을 헐떡이며 타운하우스로 달려 들어왔다.
“리체!”
“알렉세이.”
무심결에 제 아들을 돌아본 델피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렉세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정말로 처음 봤다.
언제나 무덤덤한 얼굴이었던 알렉세이는, 지금 이 순간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머니, 리체는 좀 어떻습니까?!”
알렉세이가 재차 언성을 높였다.
델피나는 입술에 검지를 세우고는 눈총을 주었다.
“침착하렴, 아이들 놀란다.”
“하지만……!”
“리체의 입장을 생각하렴.”
델피나가 미간을 좁히며 알렉세이를 타일렀다.
“리체가 아이들이 놀라고 겁먹어 하는 걸 원할 리 없잖니.”
“…….”
그제야 알렉세이의 살벌한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제 아내가, 아이들이 놀라는 상황을 바랄 리 없었다.
“……그래서.”
그가 억눌린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리체의 상태는 정확히 어떤 겁니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의사들에게 설명을 듣는 게 좋겠지.”
짧게 한숨을 내쉰 델피나가 몸을 돌렸다.
“따라오렴. 마침 의사들이 리체의 치료를 막 끝냈으니까.”
“…….”
알렉세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제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 * *
알렉세이는 서늘한 시선으로 의사들을 마주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불러온 독극물 전문 의사들, 그리고 발루아 공작가의 주치의였다.
그리고 그 의사들은 모두, 커다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양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그 표정 자체가, 안리체의 상태가 무척 좋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이대로 리체를 잃게 되면 어떡하지?’
얼음송곳이 틀어박힌 것처럼 섬뜩한 의문이 들었다.
알렉세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알렉세이가 잔뜩 쉰 목소리로 입술을 떼었다.
“리체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게…….”
의사들의 대표로 주치의가 입을 열었으나, 쉽사리 말을 잇지는 못했다.
알렉세이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게.”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으십니다.”
그 대답에, 알렉세이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가 의사들을 채근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일단 독은 해독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주치의가 힘겹게 대답했다.
“어떤 독인지를 찾아내는 데 시간이 소요되어서, 체력 자체가 너무 소모되셨습니다.”
“그 말은…….”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입니다.”
고비.
그 단어에, 알렉세이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주치의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몸을 보하며 증세에 따라 그를 완화하는 치료에 들어갈 것입니다.”
“적어도 독 자체는 해독이 되었으니, 당장 위험하지는 않은 것 아닌가?”
알렉세이가 성마른 어조로 되물었다.
주치의는 침중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작은 마님을 치료한 방식은, 독으로 독을 제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말은.”
“독을 해독하는 과정 자체가, 몸에 굉장한 무리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주치의는 침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앞으로 회복하시느냐 마느냐는 작은 마님의 체력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
순간 알렉세이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말은 즉, 안리체가 버텨내지 못한다면 이대로 죽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당신들도…….’
그러한 협박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안 돼.’
알렉세이는 애써 감정을 다스렸다.
그렇게 의사들을 닦달하려는 것 자체가, 스스로가 이성적이지 않다는 증거였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런 건 그녀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
잠시 후.
“알겠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지독하게 갈라져 있었다.
“명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의사들은 다시 안리체에게로 돌아갔다.
알렉세이는 망연히 그 자리에 선 채, 멀어지는 의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그를 보다 못한 델피나가 제 아들에게 말을 붙였다.
“알렉세이.”
“…….”
“너, 손 말이다.”
“…….”
지독하게 메마른 푸른 눈동자가 델피나를 응시했다.
델피나가 턱짓으로 알렉세이의 움켜쥔 손을 가리켰다.
“괜찮은 게야?”
“…….”
알렉세이는 그제야 자신이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음을 인지했다.
손에서 스르륵 힘이 풀렸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알렉세이가 불쑥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알렉세이.”
“……괜찮, 습니다.”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듯, 알렉세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목소리 끝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리체는…… 저보다도 훨씬 더 아팠을 테니까요.”
“알렉세이, 그건…….”
델피나가 어찌할 바 몰라 제 아들을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지.’
평생을 발루아의 완벽한 공작으로써 살아온 아들이었다.
그런 알렉세이를, 처음으로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이가 안리체였다.
하지만 안리체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어떤 말도 알렉세이를 위로하지 못할 것이다.
……먼 과거, 델피나가 에이든을 잃었던 그때처럼.
“후우.”
알렉세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발루아 공작으로서 오랫동안 갈고 닦은 침착함이, 그의 이성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이만 리체를 보러 가보겠습니다.”
“그러렴.”
델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제 아내의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제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델피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제발, 리체…….”
어미로써 알 수밖에 없었다.
알렉세이는 지금 천천히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런 알렉세이를 원래대로 돌리려면, 안리체가 곁에 있어 줘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를 잃고 어찌 살 수 있겠니.”
델피나는 양손을 꼭 붙들고, 평소 찾지도 않던 신을 찾았다.
“신이시여. 제발 리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 * *
달칵.
침실 문이 열렸다.
알렉세이는 거의 뛰다시피 제 아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발루아 공작으로써 체화했던 평연함은 이미, 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리체.”
알렉세이는 절박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파리한 얼굴, 곱게 닫힌 두 눈꺼풀.
바싹 마른 입술까지 모두.
생명력이라고는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이대로 공기 중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서.
알렉세이는 반사적으로 안리체의 호흡부터 확인했다.
안리체의 가슴이 미약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렉세이는 아주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당신은…… 어째서.’
알렉세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시감이 들었다.
예전, 그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자각했던 그 날.
안리체가 엘리엇을 구하다 물에 빠졌던 그때 말이다.
그녀는 언제나 타인을 위해 단 한 점의 망설임조차 없이 제 몸을 던진다.
마치 그들을 살려내면, 자기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양.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기분일지도 모르고…….
“당신은 언제나…… 언제나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이렇게 되는군요.”
사막의 모래처럼 버석거리는 목소리였다.
“제발, 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