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70)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70)화(169/180)
<170화>
그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
“…….”
안리체의 건강을 걱정하며 시끄럽게 떠들던 릴리아나와 엘리엇은 물론이고.
델피나까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안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동공은 어느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단연 안리체였다.
“무, 뭐?”
안리체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주치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은 마님께서 느끼셨다는 그 체기는, 아마도.”
주치의가 신중하게 말을 맺었다.
“입덧의 초기 증상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입덧이라고?!”
안리체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한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안리체와는 달리, 델피나는 무척 감격한 얼굴이었다.
델피나가 가슴에 양손을 모아 쥐며 말했다.
“그, 그 말은 즉.”
응?
안리체가 제 시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델피나는 이제, 거의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내가 드디어 둘째 손주를 볼 수 있게 된 거야?”
그 떨리는 목소리에, 주치의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 소견은 그렇습니다.”
“세상에!”
델피나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바로 그때.
안리체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어머님!”
“으, 응?”
안리체의 다급한 부름에, 델피나가 두 눈을 깜빡였다.
안리체가 신신당부를 했다.
“알렉세이는 지금 국정을 보고 있는 것, 어머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죠?”
“그…… 그렇지?”
안리체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알렉세이가 돌아온 후에 말하는 거예요.”
“하지만!”
델피나가 발끈했다.
“네가 지금 내 둘째 손주를 품고 있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오늘 밤, 알렉세이가 돌아오면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안리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조금 늦게 듣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 얜 무슨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어?”
델피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시바삐 돌아와서 네 수발을 들게 해도 모자랄 판에……!”
델피나는 어떻게든 아들을 부려먹을 생각이 만만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다른 속셈도 있었으니.
“내가 먼저, 리체가 내 손주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았지 않니?”
델피나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니까 마땅히 이 부분을 알렉세이에게 자랑을 해 둬야 한다, 이거야!”
“…….”
“…….”
다시 한번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도 아빠 닮아가는 것 같아, 유치해…….”
시큰둥한 얼굴로 제 할머니를 바라보던 엘리엇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릴리아나는 그냥 델피나의 주책에 관심 자체를 주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어머님, 그럼 저…… 시동생이 생기는 거예요?”
티가 나도록 델피나를 외면하며, 안리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모습이 그러했다.
“글쎄, 아직 낳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안리체가 옅은 미소와 함께 되물었다.
“릴리는 여자아이가 좋니, 남자아이가 좋니?”
“저, 저는.”
릴리아나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대답했다.
“성별은 상관없어요.”
“어머나, 그래?”
“네. 저는 어머님을 닮은 아이라면 다 좋아요.”
그렇게 대답한 릴리아나가 양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웃었다.
때마침 엘리엇이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저 동생한테 엄청 잘해 줄 거예요!”
“저도요!”
“그래, 고마워.”
안리체는 아이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 나도.”
델피나 또한 헛기침을 하며 한 마디를 보탰다.
“새로운 손주도 최선을 다해 귀여워하도록 하마.”
……정말, 우리 어머님도 참.
안리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지그시 억눌렀다.
어쨌든, 그녀는 지금 무척 행복했다.
* * *
그렇게 안리체의 임신 소식이 밝혀진 후.
“후후후.”
델피나는 남몰래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리체가 임신한 것을 먼저 알았다 이거야.”
물론 안리체가 알렉세이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는 했지만…….
“이걸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그러한 마음으로, 델피나는 결연하게 편지지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물론 안리체도 자신의 회임 소식을 직접 남편에게 알리고 싶을 테니, 그를 훼방 놓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타운하우스로 돌아오면, 좋은 소식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란다.」
유려한 필체로 그렇게 써 내려간 델피나가 만족스러운 눈빛을 했다.
‘이 정도 언질은 해도 되겠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녀의 귀한 며느리가 배 속에 열 달이나 손주를 품는다는데.
당연히 당장 달려와서 시중을 들어 줘도 모자라지 않은가?
델피나는 흡족한 기분으로 편지를 봉한 후, 시종에게 맡겼다.
* * *
똑똑똑.
짧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한창 서류들에 집중하던 알렉세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인가?”
“공작 대부인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도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알렉세이는 미심쩍은 얼굴로 델피나에게서 온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드득!
알렉세이의 손에서 서류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서신을 건넨 행정관이 화들짝 놀라 알렉세이를 응시했다.
“고, 공작님?!”
“……지금 당장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네.”
그렇게 선언한 알렉세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행정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렉세이는 의자에 걸쳐 둔 겉옷을 황급히 집어 들었다.
“그렇게 됐으니, 일은 알아서 잘 마무리하게.”
“고, 공작님!”
행정관이 처절하게 알렉세이를 외쳐 불렀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 * *
주치의는 안리체가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다고 권유했다.
그리하여 침실에 홀로 남은 안리체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임신했다니.’
안리체는 아직 판판한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여기에 아이가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안리체의 양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알렉세이에게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런데 그때.
“리체!”
알렉세이가 허겁지겁 침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안리체는 그만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알렉세이,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아직 황궁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닌…….”
“리체, 혹시……!”
단말마처럼 그 말부터 토해놓은 알렉세이가, 거친 숨을 헐떡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렉세이의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안리체는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눈치챘다.
“이런.”
안리체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어머님이죠?”
“그, 몸은 좀 어떻…… 예?”
“국정을 돌보느라 바쁜 당신에게, 제가 임신했다고 연락을 하신 분 말이에요.”
“……정말로 임신하신 겁니까?”
알렉세이가 입을 딱 벌렸다.
‘좋은 소식’이라고 델피나가 언급할 정도니, 혹여나 그러지는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그게 정말일 줄이야!
안리체가 새침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임신을 진짜로 하지, 가짜로 해요?”
“아, 아니, 그게…….”
알렉세이는 어찌할 바 몰라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나도 기쁜데, 평소 무뚝뚝했던 성격이 겹쳐지자 도저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안리체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세이, 당신은 이미 일곱 살 난 아이의 아빠라고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아이를 가졌다고,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면 어떡해요?”
알렉세이가 슬그머니 제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제가 실수한 겁니까?”
“국정을 수행하는 발루아 공작으로서는, 실수한 것 맞죠.”
그와 동시에, 안리체가 알렉세이와 눈을 맞추며 짓궂게 웃어 보였다.
“다만 제 남편으로는…….”
알렉세이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안리체의 미소가 짙어졌다.
“합격이에요.”
“리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알렉세이는 제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말, 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의 등이 감격에 겨워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안리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당신의 아이를 임신해서…… 기쁜가요?”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알렉세이가 발끈했다.
그 대답에, 안리체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됐어요.”
“설마, 리체.”
알렉세이가 눈매를 좁히며 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도 쓸모라거나, 뭐 그런 말씀을 하시려는 거라면…….”
“아, 뭐…….”
안리체가 난감한 낯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닌데요.”
“당신은 정말…….”
“그래도 알렉세이가 언제나 한결같다는 것을 아니까.”
안리체가 행복하게 웃었다.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