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7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72)화(171/180)
<172화>
외전 3.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안리체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예술 잡지를 읽고 있었다.
<천재 소년,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선보이다.>
‘오, 제목이 거창한걸.’
안리체는 두 눈을 깜빡이며 평론 작성자를 확인했다.
제국에서도 저명한 예술 평론가였다.
예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안리체조차도,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들어봤을 정도였다.
‘이 사람이 우리 엘리엇을 이렇게나 고평가해 준다고?’
안리체의 입술 위로, 흡족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이번 개인 전시회의 주인공은, 올해 14세가 된 발루아 소공작이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제국 유수의 대회를 휩쓸며, 천재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혹자는 소공작을 두고, 발루아 공작가의 위명 때문에 후광을 입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발루아 소공작은 오히려, 가문이 워낙에 강력하여 독이 된 상황이다.
발루아라는 이름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무척 많은 것으로 안다.
허나 소공작이 지닌 재능은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것으로 단언할 수 있으며…….>
“엄마!”
때마침 안리체를 부르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리체가 반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멀리 조그만 여자아이가 도도도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엄마아, 나 왔어요!”
아이는 그대로 안리체의 무릎에 와락 매달렸다.
춤추듯 반짝이는 파란 눈동자가 안리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안리체는 아이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우리 벨라, 엄마 보려고 온 거야?”
“웅!”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리체는 일단 아이를 제 옆에 앉혔다.
베아트리스 폰 발루아.
애칭은 벨라.
엘리엇의 여동생이자, 발루아 공작가의 단 한 명뿐인 공녀였다.
“그런데 말이야, 벨라.”
“네?”
안리체는 아이의 헝클어진 다갈색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면서 말을 이었다.
“엄마를 만나러 오는 건 물론 기쁘지만, 집 안에서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
베아트리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안리체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넘어지면 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 그건…….”
어머니의 타이르는 목소리에, 베아트리스는 살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때.
“벨라,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고 했잖아!”
베아트리스의 등 뒤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릴리아나였다.
“저번에도 그러다가 무릎에 멍이 들었으면서, 이번에도 또 그러려고……!”
잔소리를 퍼붓던 릴리아나가 그 자리에 멈칫 멈춰 섰다.
“아, 어머님.”
“어서 오렴, 릴리.”
안리체가 생긋 웃어 보였다.
눈앞의 릴리아나를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감회가 밀려들었다.
‘시간 참 빠르지.’
어느새 릴리아나는 훌쩍 자라 있었었다.
군살 없이 날씬한 몸매와 사슴 같은 목, 영민하게 반짝이는 연녹색 눈동자.
그리고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봄꽃 같은 금발까지.
처음 만났던 날의 앳된 외양은 사라지고, 사춘기 소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기야, 릴리도 이제 열네 살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안리체가, 힐끔 제 곁에 얌전히 앉아 있던 딸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벨라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갓난아기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섯 살이 되었지 않은가?
릴리도 그렇고, 벨라도 벌써 이렇게 쑥쑥 자랄 줄은 몰랐다.
때마침 베아트리스가, 소파에서 깡충 뛰어내리더니 릴리아나에게 매달렸다.
“릴리 언니!”
어머니의 엄중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언니, 오늘도 얍얍 하고 온 거야?”
베아트리스가 양손으로 무언가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나름대로 릴리아나가 검술 훈련을 하는 모습을 따라 한 것이었다.
‘저 녀석, 아무래도 릴리가 혼을 낼까 봐 선수를 친 것 같은데?’
안리체는 도끼눈을 떴다.
하지만 문제는, 릴리아나는 저런 모습에 번번이 넘어가고는 했다는 점이었다.
베아트리스를 워낙에 귀여워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피식 웃어 버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릴리아나가 베아트리스를 타이르는 건 요원해 보였다.
“응, 얍얍 하고 왔어.”
그러자 베아트리스가 양 뺨을 커다랗게 부풀렸다.
“뭐야, 얍얍 하는 거 나한테도 보여 준다고 했으면서!”
“글쎄, 벨라도 잘 알겠지만 언니가 검술 훈련을 하는 건 아침이잖니?”
그 대답에, 베아트리스가 찔끔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언니는 오늘 아침에도 벨라를 깨우러 갔었는걸.”
“우으…….”
“좀 더 늦잠을 자겠다고 한 사람은 벨라였잖니?”
릴리아나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검술 훈련을 안 보여 줬다고 언니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하니?”
“치이…….”
할 말이 없었는지, 베아트리스는 뚱한 얼굴로 릴리아나를 외면했다.
“그, 그래도.”
“그래도?”
“……심심하단 말이야.”
베아트리스는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투덜거렸다.
“오빠랑 언니랑 둘 다, 매일매일 바쁜걸.”
“으음.”
그 말에, 릴리아나는 다소 난처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요새 릴리아나가 검술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엘리엇도 코앞으로 다가온 전시회 때문에 여러모로 바쁜 상황이었다.
평소 오빠, 언니와 시간을 많이 보냈던 베아트리스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만도 했다.
릴리아나가 무릎을 굽혀 베아트리스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 미안해 벨라.”
“…….”
“언니가 일부러 벨라랑 놀아 주지 않으려는 건 아니고, 응?”
“…….”
베아트리스는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릴리아나는 어떻게든 베아트리스를 달래기 위해 열심이었다.
“오빠도 마찬가지야.”
릴리아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바빠서 그런 거지, 우리 벨라랑 일부러 놀아 주지 않은 건 절대 아니…….”
“흥!”
릴리아나의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낀 베아트리스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버릴 따름이었다.
‘저 녀석이?’
한편, 상황을 지켜보던 안리체는 도끼눈을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속이 빤했으니까.
릴리아나가 평소 자신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토라진 척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안리체가 입을 열었다.
“벨라, 자꾸 언니한테 그렇게 떼를 쓸 거니?”
“그치마안!”
“벨라도 알잖니. 언니와 오빠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
안리체가 조곤조곤 베아트리스를 타일렀다.
“그럼 벨라는, 언니랑 오빠가 자기 일도 안 하고 벨라랑 놀기만 하는 게 좋아?”
“우음…….”
베아트리스가 두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솔직히 언니랑 오빠가 나랑 놀아 주기만 하는 건 좋은데…….’
그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였기에, 안리체는 그저 기가 찼다.
‘요 녀석이?’
그래서 안리체는 조금 더 강하게 말을 이었다.
“언니랑 오빠가 매일 벨라랑 놀기만 하면, 두 사람이 슬퍼할 텐데도?”
“왜 슬퍼해요?!”
깜짝 놀란 베아트리스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안리체는 들으란 듯이 말을 이었다.
“그야, 언니랑 오빠는 두 사람의 일을 좋아하니까.”
“어…….”
베아트리스는 그만 고뇌에 빠져들고 말았다.
안리체는 재차 쐐기를 박았다.
“벨라도 인형 놀이 하는 거 좋아하지?”
“……네에.”
“그런데 엄마가 벨라한테 놀아 달라고 하면서, 벨라가 인형 놀이도 못 하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
“그건 싫어요…….”
베아트리스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릴리 언니한테 사과해야지.”
“잘못했어, 언니…….”
아이가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릴리아나에게 사과했다.
한편, 릴리아나는…….
‘어떡해, 너무 귀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시동생의 시무룩한 표정을 바라보며, 내적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휴, 릴리에게 벨라를 맡기는 건 글렀다니까.’
안리체는 속으로 푹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 정도면 따끔하게 혼내 주었으니까.’
이쯤에서 당근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좋아, 벨라가 언니에게 사과도 했으니까.”
안리체가 빙긋 눈웃음을 지었다.
“언니랑 엄마랑 같이, 오빠 보러 갈까?”
그 제안에 베아트리스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도 돼요? 엄마가 오빠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끼니를 챙겨 주는 건 방해가 아니잖니?”
“네?”
“분명 네 오빠, 끼니조차 거르고 작업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안리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리엇은 가끔, 수면과 식사조차 잊고 작업에 몰두할 때가 있었으니까.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럴 터.
“그러니까, 오빠가 좋아하는 간식 챙겨서 보러 가자.”
“네!”
베아트리스가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