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77)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77)화(176/180)
<177화>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밤.
“벨라, 자는 거 맞죠?”
안리체가 잠든 막내딸을 살피며 질문을 던졌다.
알렉세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는 것 같군요.”
“어휴.”
안리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광란의 파자마 파티가 막 끝난 참이었다.
그 흔적으로, 먹다 남은 간식들이며 게임 도구들 따위가 방구석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델피나는 먼저 자겠다고 방으로 들어가고, 엘리엇과 릴리아나도 베아트리스를 사이에 두고 곤히 잠에 빠진 상태.
“리체는 안 주무십니까?”
“음…… 애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잠이 잘 안 오네요.”
안리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시겠습니까?”
“좋지요.”
알렉세이의 권유에, 안리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방에 딸린 발코니로 나섰다.
완연한 봄이었다. 정원에 무리 지어 피어난 꽃송이에는 한껏 물이 올라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밀려들어 귀밑머리를 흩뜨려 놓는다. 그 바람을 만끽하던 안리체가 불쑥 입을 열었다.
“……기분이 조금 묘하네요.”
“리체도 그렇습니까?”
그 되물음에 그녀가 제 남편을 돌아보았다.
“알렉세이는 기분이 어떤데요?”
“글쎄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리엇과 릴리아나가 성년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리고?”
“정말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도…… 놀랍게 느껴집니다.”
알렉세이는 오묘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
“제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들 같은데요.”
“이런, 저랑 너무 비슷한 감상인데요?”
안리체가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알렉세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결혼한 이후에도 당분간은 두 아이들과 함께 살긴 할 거지만…….”
“언젠가는 독립시켜야겠죠.”
“그렇죠.”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래도 뭐, 괜찮아요.”
안리체가 난간을 짚은 알렉세이의 손등에 제 손을 포갰다.
따스한 체온이 번져 왔다.
“아이들은 독립할지라도 당신은 평생 제 곁에 있을 거잖아요?”
“……리체.”
“이제 와서 싫다고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안리체가 짓궂은 눈빛으로 알렉세이를 올려다보았다.
“딱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글쎄요, 그 말은 그대로 돌려드려야겠는걸요.”
피식 웃음을 터뜨린 알렉세이가 양손으로 안리체의 뺨을 감쌌다.
안리체는 당연하게 눈을 감으며, 양팔로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꿀처럼 다디단 입맞춤이었다.
* * *
그리하여 결혼식 당일.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라도 하듯이, 날씨는 무척 쾌청했다.
릴리아나와 엘리엇은 야외 결혼식을 선택했다.
소수의 친한 사람들만을 하객으로 불렀기에 결혼식 분위기는 시종일관 편안했다.
활짝 핀 장미들이 화려하게 정원을 수놓았다.
하객들은 곳곳에 배치된 우아한 의자에 앉아,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붉은 주단이 길게 깔린 끝에는 주례를 설 사제가 서 있었다.
축가가 연주되었다.
먼저 제단 앞으로 나아간 엘리엇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 표정은,
‘와.’
뒤이어 등장한 릴리아나의 자태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바람결에 부드럽게 흩날리는 레이스 베일과 그 아래로 반짝이는 연둣빛 눈동자.
허리에서부터 풍성하게 펼쳐지는 드레스 자락이 활짝 핀 장미를 연상시켰다.
흡사 봄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자태였다.
“…….”
엘리엇은 혼이 나간 얼굴로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쟤는 릴리아나가 웨딩드레스를 가봉할 때도 저러더니, 또 저렇게 넋이 나갔네.’
안리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지그시 억눌렀다.
한편, 하객들의 눈동자 또한 어느새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머나.”
귀부인들이 제각기 부채를 펴들어 입가를 가렸다.
“소공작의 표정 좀 보세요.”
“소공작께서 부인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놀랍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 소공작은 꽤 냉정하신 분으로 아는데.”
“아내 앞에서는 그런 것도 다 소용없나 봐요.”
그도 그럴 것이, 엘리엇은 어딜 보아도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으니까.
하객들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수가, 릴리와 엘리엇이 정말로 결혼을 한다니…….”
한편 델피나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이런, 어머님.”
안리체는 델피나의 손등을 가볍게 도닥거려 주었다.
“좋은 날에 눈물을 보이시면 어떡해요?”
“하지만…….”
델피나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어냈다.
안리체도 코끝이 찡해 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이들이 결혼하는구나.’
이미 마음 정리는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사제 앞에 선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가슴 깊은 곳이 술렁거린다.
사제가 엘리엇에게 질문을 던졌다.
“엘리엇 폰 발루아는 릴리아나 애버릿을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예, 맹세합니다.”
멍하니 릴리아나를 바라보고 있던 엘리엇이 파드득 정신을 차리며 맹세했다.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 모습에, 사제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릴리아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릴리아나 애버릿은 엘리엇 폰 발루아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평생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릴리아나 또한 또렷한 목소리로 맹세했다.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짝짝짝!
군데군데에서 축복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랑과 신부는 사제에게 예를 갖춘 후, 나란히 손을 잡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부모인 발루아 공작 부부, 그리고 공작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하객들이 조그맣게 탄성을 올렸다.
“세상에, 공녀님께서 직접 화동으로 서시는 거예요?”
“너무 귀여워요.”
꼬마 요정처럼 깜찍하게 차려입은 베아트리스가 두 신랑신부가 걷는 길 위로 꽃송이를 뿌려 주었다.
새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분홍색 수레국화였다.
“할머님, 그리고 부모님.”
혼주석 앞에 선 엘리엇이 먼저 감사 인사를 꺼냈다.
“세 분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장성하여 일가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받아서 릴리아나가 말을 이었다.
“세 분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화목하게 사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그리고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처럼 잠시 말을 멈춘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아트리스가 냉큼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요?”
그 뜬금없는 질문에, 다소 가라앉을 뻔했던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릴리아나가 젖은 눈가를 곱게 휘었다.
“당연히 우리 벨라도 고맙지.”
그제야 베아트리스는 만족했다는 것처럼 씩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델피나가 먼저 축복의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리체가 릴리아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보렴, 릴리.”
“어머님?”
릴리아나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한 걸음 다가왔다.
안리체는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뽑아 릴리아나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릴리아나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이건.”
그건 바로, 공작가의 안주인이 쓰는 인장 반지였다.
공작 부인의 이름으로 나가는 서류들은 모두 저 인장이 찍혀야 한다.
그 말은 즉, 안리체가 릴리아나를 발루아의 안주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안리체는 인장 반지를 릴리아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받으렴.”
“어, 어머님…….”
릴리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안리체를 불렀다.
주변을 돌아보니 알렉세이와 델피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이라는 뜻이었다.
연녹색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가, 감사합니다…….”
“무조건 주는 건 아니야. 릴리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시 회수할 테니까.”
안리체가 찡긋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그러니까 잘해 봐, 응?”
“네!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릴리아나가 울먹이며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후 피로연이 이어졌다.
결혼식의 두 주인공, 엘리엇과 릴리아나가 첫 춤을 추었다.
흥겹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속에서, 흩날리는 꽃잎들을 맞으며.
두 사람은 서로를 품에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곳곳에서 명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행복해 보이네.’
두 아이가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어쩐지 안리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리체.”
누군가가 안리체의 손을 잡아 왔다.
알렉세이였다. 그가 다정하게 소곤거렸다.
“제가 평생 곁에 있을 테니까, 괜찮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요, 그랬었죠.”
그래,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으니까.
안리체는 눈물 고인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행복한 미소였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