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179)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179)화(178/180)
<179화>
* * *
그날 저녁.
“왔어요, 알렉세이?”
안리체는 귀가한 알렉세이를 다정하게 포옹했다.
피식 웃은 알렉세이가 안리체의 뺨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했습니까?”
“아…….”
그 질문에, 안리체의 얼굴에 급격하게 피로함이 서렸다.
‘응?’
알렉세이가 의아한 얼굴로 제 아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벨라가…… 데뷔탕트 파트너 문제로 떼를 썼어요.”
“그랬군요…….”
아내가 느끼는 피로감에 대해 완전히 납득한 알렉세이가,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하기야 며칠이나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데뷔탕트 파티까지…… 2주일 남았지요?”
“…….”
“…….”
두 부부는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앞으로 2주 동안이나 베아스티스의 투정을 견뎌야만 한다니.
잠시 후.
안리체가 애써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 그보다. 이번에 어머님께서 제도에 올라오기로 하셨어요.”
“……어머니께서 또 오신다고요?”
알렉세이는 저도 모르게 질색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델피나는 제도에 마치 제집이라도 된 마냥 들락날락했으니까.
계절이 바뀌니 싱숭생숭해서, 손자손녀와 손자며느리가 보고 싶어서, 며느리와 데이트를 한 지도 오래 된 것 같아서…….
이유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참고로 그 수많은 이유들 중, 알렉세이에 관련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벨라가 이번에 사교계에 데뷔하잖아요.”
안리체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드레스도 새로 맞춰 줘야 하고, 장신구랑 구두도 사야 하니까요. 어머님과 릴리와 함께 가기로 했어요.”
“……그랬군요.”
알렉세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 델피나가 제도로 올라오면, 또 안리체를 얼마나 빼앗겨야 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지는데…….
“알렉세이.”
안리체가 부드럽게 알렉세이의 목에 제 팔을 감았다.
제비꽃을 닮은 보랏빛 눈동자가 지그시 알렉세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나긋하게 속삭인다.
“어머님께서 도착하시면 제가 많이 바빠질 것 같아요.”
“리체.”
“그러니까…….”
안리체는 새가 쪼듯 짧게 알렉세이의 입술에 키스를 남겼다.
그러고는 생긋 눈웃음을 짓는다.
“지금이라도 부부끼리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안 될까요?”
그 속삭임에, 푸른 눈동자가 새카맣게 가라앉았다.
긴 밤의 시작이었다.
* * *
며칠 후.
델피나가 제도에 도착했다.
“할머니!”
쪼르르 달려간 베아트리스가 델피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델피나가 눈매를 가느스름하게 좁히며 핀잔을 주었다.
“이제 데뷔탕트를 치르는 레이디가, 이렇게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면 어떡해?”
하지만 그 타박과는 달리, 베아트리스의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무척 부드러웠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안리체가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넸고,
“몸 건강히 잘 계셨지요?”
릴리아나도 환한 얼굴로 델피나를 맞아들였다.
델피나는 밝은 미소로 그 인사들을 받았다.
“그럼, 난 잘 있었지. 너희들은 어땠니?”
“저희도 별일은 없었어요.”
다만, 베아트리스의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안리체와 릴리아나는 나란히 피곤한 얼굴이 되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델피나가 질문을 던졌다.
“바로 르 모건 거리로 출발할까?”
“지금 막 도착하셨는데, 조금 쉬시다 가시는 게 낫지 않아요?”
“괜찮다. 벨라의 드레스 차림을 빨리 보고 싶구나.”
“그렇다면…….”
그렇게 일행은 르 모건 거리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릴리아나는 추억에 젖어들었다.
“어머님, 기억나세요?”
“응?”
“예전에 어머님을 처음 뵈었을 때, 어머님이 여기서 저한테 새 옷을 사 주셨잖아요.”
“맞아, 그랬었지.”
안리체도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릴리가 엄청 귀여웠었어.”
“에이, 어머님도 참.”
“왜 그런 반응이니? 나는 진심이란다.”
갓 피어난 봄꽃처럼 화사한 금발과, 새순 같은 연둣빛 눈동자.
등 뒤에 천사의 날개가 숨겨져 있지 않은지 의심케 하던, 일곱 살의 릴리아나.
그 귀여움은 가히, 주변의 귀부인들에게 ‘우리 릴리아나 엄청 귀엽지?’라며 주접을 떨게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성인 아가씨가 되었네.’
안리체가 내심 흐뭇해하던 그때.
고급 의상점 앞에 마차가 멈췄다.
안리체가 베아트리스를 돌아보았다.
“일단은 드레스부터 맞추러 갈까?”
“네!”
그렇게 가족들은 의상점 안으로 향했다.
* * *
사실 베아트리스의 드레스를 맞추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드레스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옷걸이였으므로.
안리체를 쏙 빼닮은 베아트리스는, 단연 제도에서 가장 어여쁜 소녀였고.
당연히 그 어떤 옷감이며 레이스를 붙여 놓아도, 마치 베아트리스를 위해 탄생한 것처럼 어울렸다.
다만 발루아 가족은 다른 피로함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피로함의 원인은 바로, 베아트리스의 로맨스에 대한 끝없는 환상이었다…….
“있지, 있지! 릴리아나 언니!”
시작은 대충 이랬다.
“무슨 일이니, 벨라?”
릴리아나가 베아트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아트리스가 자리에서 빙글 돌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드레스는 등 뒤로 로브를 길게 늘어뜨리는 디자인이잖아?”
“그렇…… 지?”
뭔가 싸한 기분에, 릴리아나가 애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베아트리스가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어떤 신사분이 실수로 내 로브를 밟으시는 거야!”
……그럼 드레스가 찢어지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릴리아나는 일단 참았다.
벨라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신사분은 엄청나게 잘생겨야 해. 언니처럼 반짝거리는 금발에, 눈동자는 우수에 찬 검은색이었으면 좋겠어.”
손가락 하나.
“그리고 당연히 대부호여야 하고.”
손가락 둘.
“신분은 외국의 왕자님 정도면 좋을 것 같아. 음, 아니면 나랑 비슷한 귀족이어도 상관없고.”
손가락 셋.
릴리아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베아트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발루아 공녀이자 작센 후작인 베아트리스와 비슷한 귀족이라니.
비슷한 급으로 따지려면 거의 황족을 끌고 와야 할 것 같은데?
게다가 이번 데뷔탕트 파티에, 해외의 귀빈들은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한편 베아트리스는 계속해서 종알종알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 더더욱 좋아! 신비스러운 남자, 정말 멋있지 않아?”
손가락 넷.
“제일 중요한 건 운명적인 만남이야! ……언니, 내 말 듣고 있어?”
손가락 다섯 개를 꼽던 와중.
베아트리스가 샐쭉한 얼굴로 릴리아나를 흘겨보았다.
“으, 응…….”
“아이참, 들어봐. 그래서 그 신사분이 비틀거리는 나를 붙들어 주는 거야!”
아, 그 얘기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였어?
“그리고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지.”
흠흠, 목을 가다듬은 벨라가 느끼하게 입을 열었다.
“레이디, 혹시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
“그대의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고일 줄이야. 제 가슴이 찢어지는군요.”
“…….”
릴리아나는 저 얼토당토않은 대사가, 간밤 베아트리스가 읽다 잠들었던 로맨스 소설 속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나온다는 데에.
안리체가 물려준 인장 반지까지 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