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34)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34)화(34/180)
<34화>
제 부인이 보여 준 뜻밖의 유능함에, 알렉세이가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바로 그때.
마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공작님.”
“아, 고맙네.”
한참 서류에 푹 빠져 있다 보니, 황궁에 도착한 줄도 몰랐다.
서류를 챙겨 든 알렉세이가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와 동시에,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발루아 공작님 아니십니까!”
순간 알렉세이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사람은 바로…….
“작센 후작.”
안리체의 남동생인 작센 후작이었다.
제 누님과는 그리 닮지 않은 외양이었다.
약간 비열해 보이는 인상에, 탐욕으로 눈이 반질반질하다.
“웬일로 후작께서 귀족원 회의에 다 참석하러 오셨습니까?”
알렉세이는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작센 후작은 지금껏 귀족원 회의에 거의 참석한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황제가 직접 참석하는 대회의가 아닌 이상, 귀족원 회의에 참석하는 건 귀족들의 자율에 맡기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근 1년 동안 코끝조차 보이지 않은 건 좀 심하지 않나.’
작센 후작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고위 귀족이었다.
그 말은 즉,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작센 후작은 언제나 태만할 뿐, 제 위치에 대한 책임감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원리원칙을 중시했기에, 그런 작센 후작을 더더욱 혐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공작님을 뵐 겸, 겸사겸사 찾아온 거죠.”
그러나 알렉세이가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작센 후작은 넉살 좋은 얼굴로 달라붙을 따름이었다.
“날 왜 찾아옵니까?”
“아, 그게.”
작센 후작은 양손을 살살 비비며 입을 열었다.
마치 다리를 비비는 파리 같은 모습이었다.
“그…… 최근 누님께서 보내 주시던 돈이 끊겨서 말입니다.”
뭐?
그 말에, 알렉세이는 조금 놀랐다.
안리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만불손하게 굴었으나, 자기 친정만큼은 극진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내탕금을 끊었다고?
작센 후작은 뺀질뺀질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발루아 공작 가문 하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솔직히 제 누님께서 보내 주시는 돈은, 발루아 입장에서는 새 발의 피보다도 못한 금액일 텐데.”
작센 후작은 힐끔 알렉세이의 눈치를 살폈다.
조그만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는 그 모습이, 시궁쥐를 연상시켰다.
“공작님께서 제 누님을 잘 구슬려서, 다시 돈을 보내 주라고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기가 막힌 알렉세이가 작센 후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작센 후작은, 알렉세이의 그 침묵을 제멋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사업에 좀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요?”
“저를 믿으십시오, 공작님!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이윤이 날 겁니다!”
작센 후작은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알렉세이는 솔직히, 작센 후작의 저 자신만만함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알렉세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작센 후작은 투자를 다섯 번 이상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뭐, 제 사업이 잘되면 공작님과 누님께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 뻔뻔한 태도에, 알렉세이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저 작자가 저렇게 목을 뻣뻣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안리체 덕택이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꾸준히 돈을 보내 주었기에, 몇 번이나 투자에 실패하고서도 저렇게 떵떵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저런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다니…….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는 게 가족이지 않습니까?”
“지금, 가족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가족 말입니다. 와하하!”
작센 후작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때에만 가족 운운하는 건가.
알렉세이는 문득, 작센 후작이 제 누님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렸다.
작센 후작은 안리체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자신이 윗사람인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는 했다.
‘그래 봤자 넌 여자야, 남자이자 가주인 나를 떠받들고 살아야 해.’
마치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거만하게 굴던 안리체는, 남동생에게는 항상 쩔쩔매곤 했다.
알렉세이는 비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 후작께서는 단 한 번도 누님을 도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예?”
“그렇잖습니까? 내 아내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내탕금까지 후작에게 모두 털어 주곤 했죠.”
알렉세이는 노골적으로 날을 세웠다.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 작센 후작은, 애써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족이잖습니까, 누님이 동생을 보살피는 건 당연한…….”
“글쎄요, 세간에서는 그걸 ‘착취’라고 하지요.”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작센 후작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하지만 알렉세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작께서는 지금껏 내 아내에게 무엇을 해 주셨습니까?”
허를 찔렸다.
작센 후작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알렉세이는 매몰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그만 장신구 하나, 책 한 권…… 아니, 손수건 한 장조차 선물해 준 적 없지 않습니까?”
그가 안리체와 결혼 생활을 한 지도 무려 8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알렉세이는 안리체가 제 친정에서 무언가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후작께서 가족 운운하시다니, 조금 우습군요.”
“고, 공작님!”
“발루아 공작 부인에게 주어진 내탕금은, 온전히 내 아내의 소유입니다.”
알렉세이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아내가 결정해야 하죠.”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제 누님의 남편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알렉세이는 비스듬히 시선을 기울였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겨울 하늘보다도 시렸다.
“제게 이렇게 매달릴 시간에, 제 아내의 치맛자락이라도 붙들며 애원해 보라는 소립니다.”
알렉세이의 입술 위로 미소가 서렸다.
선명한 비웃음이었다.
“말 못하는 짐승도, 호의를 베풀면 그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뭐, 뭐요! 어떻게 제게 그런 말을!”
작센 후작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알렉세이는 지금, 작센 후작이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었으므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더니, 그 말을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공작님, 잠깐……!”
“더 할 말 없으시면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맺은 알렉세이는, 뚜벅뚜벅 작센 후작을 스쳐 지났다.
“이번 회의에서는 부디, 회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졸지 말고요.”
희미한 비웃음이 서린 목소리를 끝으로, 알렉세이는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작센 후작은, 빠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젠장, 돈이 썩어나는 것쯤 다 알고 있는데…… 저렇게 쩨쩨하게 굴기는!’
작센 후작은 입 안으로 욕설을 씹어뱉었다.
‘안 되겠어, 어머니께 말씀드려서라도 돈을 뜯어내야겠군.’
후작의 눈동자가 비열하게 빛났다.
그가 알고 있는 누님은, 언제나 가족의 애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발루아 공작가에서 자금을 융통해 오는 것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어머니까지 나서 주시면…… 분명 돈을 내어 줄 것이다.
어느새 작센 후작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 * *
혐오스러운 작센 후작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알렉세이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그는 덜컥 자리에 멈춰 섰다.
종이가 팔락이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차에서 급하게 내리느라, 손에 서류를 그대로 들고나오고 말았다.
알렉세이는 물끄러미 서류들을 내려다보았다.
서류들 위로 꼼꼼히 남겨진 메모와, 붉고 푸른 잉크로 그어진 밑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
알렉세이는 안리체를 떠올렸다.
발루아의 일에는 무관심했지만, 제 친정 일에는 발 벗고 나서던 그녀를.
그렇게 친정에 희생해 봐야, 남동생은 자신의 누님을 물주 이상으로 보지 않고 있는데…….
아마, 보답받을 수 없는 외사랑이 저런 거겠지.
“…….”
알렉세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처음으로…… 아내가 조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릴리아나와 엘리엇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이는 정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밀려드는 봄바람에, 올망졸망하게 피어난 붉고 노란 팬지꽃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엘리엇은 귀여운 팬지꽃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저 팬지꽃들보다도 훨씬 더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가 제 곁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쟨 어쩜 저렇게 예쁘지?’
엘리엇은 쉴 새 없이, 제 곁에 앉은 릴리아나의 옆얼굴을 흘끔거리는 중이었다.
릴리아나의 금빛 귀밑머리가 보드랍게 흩날리고 있었다.
길게 내리뜬 속눈썹 아래, 예쁜 초록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 어머님 보고 싶다.”
“…….”
불쑥 튀어나온 그 말에,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릴리아나, 너 그 말 스무 번째 하고 있는 거 알아?”
……릴리아나와 정원에 나온 내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어머님 보고 싶다’는 말만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