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3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38)화(38/180)
<38화>
* * *
……아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까지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득달같이 찾아오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야?
안리체는 피곤한 얼굴로, 제 앞에 앉아 있는 귀부인 두 명을 마주 보았다.
“여기는 어쩐 일로 방문하셨나요, 어머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중년의 귀부인은, 찻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며 우아하게 웃어 보였다.
“왜, 내가 딸아이 얼굴조차 마음대로 보지 못하니?”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허를 찌르는 대답에, 작센 후작 대부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안리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어머니의 딸이지만, 또한 발루아의 안주인인걸요.”
“……안리체.”
“작센 후작 대부인이 발루아 공작 부인을 방문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사전에 연락을 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물은 안리체가, 작센 후작 대부인 옆에 앉아 있는 귀부인에게 흘끗 시선을 주었다.
“이렇게 마음대로, 다른 귀부인까지 데리고 방문하시는 게 아니라요.”
그 귀부인은 바로, 아이반 자작 부인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 보려 함이었는지, 아이반 자작 부인은 부러 너스레를 떨며 말을 붙였다.
“안리체 아가씨, 오랜만에 뵈었는데 제가 반갑지도 않으신가요?”
“일단 호칭이 잘못되었네요. 전 ‘안리체 아가씨’가 아니라, ‘발루아 공작 부인’이랍니다.”
그 말에, 아이반 자작 부인이 흠칫 어깨를 굳혔다.
안리체는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미소였다.
“물론 반갑지요. 이렇게 느닷없이 저를 찾아오시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에요.”
“저, 공작 부인. 그게…….”
“그래서, 이렇게까지 급작스럽게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역시 릴리아나 때문일까요?”
네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안리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작 부인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작센 후작 대부인이 대화에 다시 끼어들었다.
“그래, 내가 같이 가자고 했다.”
“저는 이미 답신을 드렸을 텐데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안리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의 가정교사를 구하는 문제에요.”
“그러니, 네 고민을 덜어 주려고 이렇게 아이반 자작 부인을 데려온 것 아니니?”
“아니죠. 부모와 유모를 제외하면, 가정교사는 아이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걸요.”
고개를 가로저은 안리체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셔 봤자, 당장 마음을 정하기는 어려워요.”
“솔직히, 고심할 필요가 뭐가 있니?”
“어머니.”
“아이반 자작 부인 이상으로 레이디를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쯤, 너도 잘 알고 있잖니?”
그렇게 말하며, 작센 후작 대부인은 보란 듯이 쯧쯧 혀를 찼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괜히 뻗대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히려 아이반 자작 부인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애버릿 백작 영애에게는 기회에 가깝지.”
작센 후작 대부인은 부러 상체를 기울여, 안리체와 시선을 맞췄다.
맛 좋은 먹이를 앞에 둔 뱀 같은 눈빛이었다.
“생각해 보렴. 아이반 자작 부인이 길러낸 레이디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
“애버릿 백작 영애가, 아이반 자작 부인의 제자가 된다면…….”
나긋한 목소리가 안리체의 귓전을 두드렸다.
“이전에 자작 부인 밑에서 수학했던 다른 레이디들도, 애버릿 백작 영애를 눈여겨보지 않겠니?”
“저도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반 자작 부인이 가진 인맥은, 차후 백작 영애가 사교계에 데뷔할 때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란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말을 맺었다.
그 말 자체는 합리적이었기에, 안리체의 표정은 깊게 가라앉았다.
사실 그녀는, 작센 후작 대부인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릴리아나와의 약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과, 릴리아나의 가정교사에 대해 참견하려는 저 태도까지.
발루아의 안주인을 제 손안에 두고, 제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아이반 자작 부인의 인맥이 릴리아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녀 개인적으로는 아이반 자작 부인이 꺼려지지만, 릴리아나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아이반 자작 부인은 우수한 선생님이기는 했다.
‘현 사교계를 주름잡고 있는 레이디들 대부분은, 아이반 자작 부인이 길러 냈다는 말이 있을 정도지.’
오죽하면 아이반 자작 부인의 별명이, ‘상류사회로 인도하는 가장 훌륭한 책략가’일까.
수많은 레이디들이 아이반 자작 부인의 교육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마당이니, 아무래도 안리체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어머니의 체면도 있으니까.’
안리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그래, 잘 생각했다!”
“다만 제 눈에 적합하지 않은 교사라고 생각된다면, 당장에 잘라낼 거예요.”
그렇게 말을 덧붙이자, 작센 후작 대부인이 눈썹을 꿈틀 굳혔다.
“예전에는 순종적이었던 것 같은데, 참 많이 변했구나.”
“그렇죠? 저는 이편이 훨씬 더 마음에 들어요.”
안리체는 우아한 미소와 함께 맞받아쳤다.
뜻밖의 반응에, 작센 후작 대부인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뭐지? 평소라면 이 정도로 겁을 주면, 금방 꼬리를 내리고는 했는데…….’
그러나 안리체는 어머니의 혼란스러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일 따름이었다.
“또한, 릴리아나가 수업을 할 때에는 제가 항상 참관할 생각이에요.”
“네? 하지만, 발루아 공작 부인.”
순간, 발끈한 아이반 자작 부인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공작 부인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보통 수업은 면 대 면으로 진행합니다. 이 부분은 저를 존중해 주셔야…….”
“물론 제 행동이 다소 유난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어요.”
안리체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아이반 자작 부인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공작 부인, 그건…….”
“릴리아나는 여러모로 상처가 많은 아이인 데다가, 아직 단 한 번도 정식 교육을 받아 본 경험도 없어서요.”
안리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이를 낯선 선생님과 단둘이 두기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껄끄럽답니다.”
아이반 자작 부인의 입장에서는 분명, 안리체의 말이 교권 침해라고 느껴질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진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안리체에게는 릴리아나가 가장 중요했고, 그러니 릴리아나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싶었다.
“제 말,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지금 공작 부인께서는, 저를 믿지 못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기보다는, 릴리아나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달라는 말씀이에요.”
릴리아나는 과거, 론디니 남작가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라 왔었다.
아직 그 마음의 상처가 모두 아물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이가 무리할 수도 있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할 생각이었다.
릴리아나에게는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난 어차피 악녀이니까 말이야.’
제멋대로 군다고 한들,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안리체의 입술 끝이 비스듬히 치켜 올라갔다.
“물론, 제가 자작 부인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셔도…… 전 크게 개의치는 않는답니다.”
그 말에, 아이반 자작 부인은 찔끔하는 표정이 되었다.
안리체는 여상하게 선언했다.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이반 자작 부인을 고용하는 일은 없던 일로 하죠.”
“고, 공작 부인……!”
“아이반 자작 부인이 훌륭한 선생님인 것은 잘 알지만, 세상에 가정교사가 자작 부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반 자작 부인은 한참을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으나, 어차피 주도권은 안리체가 쥐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요.”
안리체는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기묘한 기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안리체는 지금껏, 언제나 다루기 쉬운 딸이었다.
‘안리체, 넌 내 딸이잖니.’
‘설마…… 이 어미와 동생을 실망시킬 건 아니지?’
몇 마디 달콤한 말, 그리고 ‘가족’을 들먹이는 협박.
그 두 가지만 적절하게 사용하면, 안리체는 언제나 말 잘 듣는 딸이 되어 주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호락호락하게 넘어올 것 같지가 않다.
그랬기에, 작센 후작 대부인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안리체의 동정심을 자극해 보기로.
“그보다, 안리체. 요새 너무 네 동생에게 매몰차진 게 아니니?”
갑자기 이건 웬 뜬금없는 소리야?
시큰둥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안리체가, 뚱하니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가 발루아의 안주인 노릇을 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건 나도 물론 기쁘지만.”
잠시 말을 고르는 것 같던 작센 후작 대부인이, 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릇,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도 있잖니?”
와, 저런 말을 실제로 내 귀로 듣게 될 줄이야.
안리체는 뜨악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