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4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42)화(42/180)
<42화>
릴리아나의 코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지 유심히 살펴보면서, 안리체가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수업은 앞으로 반으로 줄이도록 하자. 어때?”
“……네, 그럴게요.”
그제야 릴리아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리체는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 * *
다음 날은 아이반 자작 부인이 방문하는 날이었다.
릴리아나를 먼저 공부방 안으로 들여보낸 후, 안리체는 아이반 자작 부인을 불러 세웠다.
“저, 아이반 자작 부인.”
“아, 네. 공작 부인, 부르셨어요?”
평소 릴리아나를 대할 때의 엄격한 표정은 간데없이, 아이반 자작 부인은 무척 살가운 얼굴이었다.
“릴리아나의 수업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싶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쉬고 노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 말에, 아이반 자작 부인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릴리아나 아가씨께서는, 동년배의 레이디들에 비해 교육수준이 많이 모자라십니다.”
“그거야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세상에, 공작 부인께서는 릴리아나 아가씨께 너무 무르세요.”
아이반 자작 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전 공부량을 지금보다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뇨, 릴리아나에게는 릴리아나의 속도가 있는 법이에요.”
안리체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또한, 전 그 속도에 맞춰 주고 싶고요. 릴리아나가 무리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공작 부인께서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몇 번이나 설득한 후에야, 아이반 자작 부인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도 릴리아나를 잘 부탁드려요.”
“예, 공작 부인.”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아이반 자작 부인이 공부방에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리체는, 주방으로 향했다.
공부하며 먹을 간식이라도 준비해 줄 요량이었다.
* * *
안리체는 쟁반 위에 간식과 음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공부방으로 향했다.
물론 하녀에게 시켜도 되지만, 직접 갖다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방문 앞에 선 안리체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반 자작 부인은 수업 시간에 부모가 들락거리는 것을 엄금했었는데?’
하지만 뭐, 간식만 갖다 주고 나오는 거니까.
안리체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을 노크하려 했다.
“아이반 자작 부인, 간식도 좀 드시면서 수업을…….”
동시에, 그녀가 멈칫 손을 멈췄다.
두터운 문을 뚫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고작해야 엘반테의 시 하나조차 제대로 평론하지 못하다니요.”
“죄, 죄송해요. 아이반 선생님.”
“정말, 이래서야 공작 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어요?”
안리체는 와락 미간을 좁혔다.
시인 엘반테는 난해한 시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명한 석학들이나 해석하는 시를, 고작해야 일곱 살 소녀에게 평론하라고 하다니?
‘게다가, 내 기대에 부응하다니? 난 왜 팔아먹는데?’
안리체는 방문 쪽으로 바짝 귀를 기울였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공작 부인께서 릴리아나 아가씨의 수업 시간을 반으로 줄이라고 말씀하신 건 아시나요?”
“아, 네. 그건 알고는 있지만…….”
“세상에, 아가씨께서는 참 염치도 없으시네요. 그만한 실력으로 수업을 줄일 마음이 나세요?”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공작 부인께 공부가 힘들다는 둥, 어리광을 부리시거나 그러신 건 아니죠?”
“아니에요! 절대 그런 게 아니고……!”
“그런데 어째서 학습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계시는 건가요?”
아이반 자작 부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마치 릴리아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만약 릴리아나 아가씨께서, 다른 귀부인과 레이디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신다면.”
아이반 자작 부인은 극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가씨뿐 아니라, 공작 부인의 명예까지 실추된다는 건 잘 알고 계시지요?”
“……네, 알아요.”
“릴리아나 아가씨께서는, 공작 부인께서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는 숙녀가 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안리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 열심히 할 거예요. 어머님께서 절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말이에요.’
릴리아나가 힘을 주어 말하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아이의 기특한 마음을, 아이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일에 이용하다니.
“아무래도 공작 부인께서는 아가씨를 지나치게 아끼시는 것 같으니, 저라도 아가씨를 엄격하게 가르쳐야겠죠.”
아이반 자작 부인은 엄중하게 릴리아나에게 명령했다.
“발바닥 내미세요.”
“바, 발바닥이요?”
“그래요. 엇나가는 학생을 바로잡는 것도 선생님이 할 일이니까요.”
자작 부인의 목소리에는 채 숨기지 못한 즐거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사실 전 체벌까지는 안 하고 싶었는데, 요새 아가씨께서 너무 해이해지신 바람에 어쩔 수가 없네요.”
뭐라고?
안리체는 두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설마 우리 릴리아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릴리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반 자작 부인을 불렀다.
“서, 선생님…….”
“이것도 다, 아가씨가 잘되라고 하는 일인 것 아시죠?”
그 당당한 목소리에, 릴리아나는 잠시 침묵했다.
안리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릴리아나, 설마 너…….
“네…… 알고 있습니다.”
이윽고, 잔뜩 겁에 질린 대답이 되돌아왔다.
……알고 있다고?
안리체는 분노로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아니면 그녀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있노라고 매달리기라도 하지!
저 순하고 착한 아이는, 이번에도 또 참고만 있고……!
“다만 공작 부인께서 쓸데없이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자작 부인이 나직하게 속살거렸다.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요.”
“……!”
안리체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안리체를 향한 릴리아나의 애정을 이용하여 교활하게 입막음하는 것이나, 체벌할 부위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발바닥을 선택한 것까지.
아이반 자작 부인의 악독함에 치가 떨렸다.
“릴리아나!”
쾅!!
간식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은 안리체가, 당장에 거세게 문을 밀어 열었다.
동시에, 그녀는 그 자리에 바짝 얼어붙었다.
“이, 이게 무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벽에 기대서서 발바닥을 내민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릴리아나였다.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머님?”
하지만 안리체는 너무 기가 막혀서, 그 부름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이반 자작 부인.”
잠시 후, 안리체는 이를 악물며 아이반 자작 부인을 쏘아보았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지?”
“고, 공작 부인?!”
“설마, 정말로 아이를 체벌할 생각이었나?”
아이반 자작 부인은 그 자리에 바짝 얼어붙었다.
릴리아나를 대할 때의 의기양양함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성큼성큼 걸어온 안리체가 회초리를 빼앗아 던져 버렸다.
“도나텔라 아이반.”
“고, 공작 부인. 저, 저는……!”
“쓸데없는 변명을 할 거라면 집어치워.”
깨진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그 눈동자에, 아이반 자작 부인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이반 자작 부인이 알고 있는 안리체는, 언제나 어머니인 작센 후작 대부인에게 기가 눌려 사는 여자였다.
어머니와 남동생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여자.
그런 공작 부인이, 작센 후작 대부인께서 직접 추천한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 없는데…….
“자, 작센 후작 대부인께서, 릴리아나 아가씨를 엄히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아이반 부인은 애써 당당한 낯을 꾸며내며, 허리를 곧게 폈다.
그 뻔뻔한 항변에, 안리체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작센 후작 대부인께서, 공작 부인이 수업에 끼어드셨다는 사실을 아시면 어쩌려고요?”
“……뭐라고?”
“저를 함부로 대하시면, 작센 후작 대부인께서 분명 분노하실 겁니다!”
아이반 후작 부인은 부러 가슴을 쭉 폈다.
아하, 그랬지.
안리체는 차게 조소했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제 딸을 손바닥 안에 두고 쥐락펴락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선생이 바로, 눈앞의 아이반 자작 부인이었다.
안리체는 대답 대신, 아이반 자작 부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빠작.
안리체의 구두 굽 아래로 회초리가 부러졌다.
날카롭게 날이 선 제비꽃빛 눈동자가, 아이반 자작 부인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아이반 자작 부인이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때.
짝!!
안리체는 아이반 자작 부인의 뺨을 거세게 후려갈겼다.
“…….”
“…….”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맞은 뺨을 감싸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통증보다도 놀라움이 훨씬 더 컸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아이반 자작 부인을 향해, 안리체가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
“이, 이게 무슨…….”
“사실 난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안리체는 뻐근하게 아파 오는 손을 주무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 관한 일에는, 그 말에 충실하게 따를 생각이야.”
“공작 부인, 하지만……!”
“감히 릴리아나를 협박하고, 체벌까지 가하려 했으니…… 나도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안리체의 목소리는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