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45)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45)화(45/180)
<45화>
안리체가 그렇게 한참 고뇌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똑똑.
짧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안리체는 부스스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문이 열리고, 집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부인.”
……알렉세이였다.
알렉세이가 웬일로 여기까지 찾아왔지?
안리체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알렉세이는 단정한 걸음으로 그녀 곁에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아, 공작님. 그게…….”
“조금 우울해 보이셔서 말입니다.”
안리체는 입술만 달싹일 뿐,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렉세이에게 설명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내 안이한 판단 때문에…… 릴리아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만 거야.’
고아원에서 릴리아나를 데려오면서, 잘 해 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매일 웃게 해 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어찌나 이렇게 생각이 짧았는지…….
안리체가 다시 한번 자기혐오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
“이거, 받으십시오.”
알렉세이가 그녀의 책상 위로 사탕과 초콜릿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안리체는 의아한 얼굴로 그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익숙한 주전부리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사탕과 초콜릿은, 안리체가 릴리아나와 엘리엇에게 나누어 주었던 간식이었으니까.
알렉세이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요.”
“……네?”
“그래서, 릴리아나와 엘리엇이 제게 부탁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안리체의 귓전에 와 닿았다.
“부인께 이 사탕과 초콜릿을 전해 달라고요.”
“아…….”
“부인께서 기운을 차리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전해 달라고도 말하더군요.”
알렉세이는 두 아이와 마주쳤던 때를 떠올렸다.
타운하우스에 발을 들이던 알렉세이가 문득 발을 멈췄다.
릴리아나와 엘리엇이 정원 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두 아이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이들의 표정이 등불을 켠 것처럼 환해진다.
마치 지금까지 알렉세이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아빠!’
릴리아나의 손을 꼭 맞잡은 채, 엘리엇이 쪼르르 알렉세이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아빠, 아빠께 부탁드릴 게 있어요.’
심지어는 릴리아나까지도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알렉세이를 마주 보고 있었다.
평소 알렉세이만 마주치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아이였는데…….
두 아이는, 손안에 소중하게 움켜쥐고 있던 간식거리를 건넸다.
알렉세이는 얼떨결에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저, 공작님.’
그와 동시에,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저에 관한 일 때문에 조금 우울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부인께서 우울해하신다니? 게다가 너와 연관되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알렉세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릴리아나에게 되물었다.
엘리엇이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아빠,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두 아이는 나란히 입을 모아서,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알렉세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런 일이 있었군.’
고개를 끄덕인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 그러니까. 공작님께서 어머님께 이 간식들을 좀 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네. 달콤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 말을 들은 알렉세이는 문득, 안리체가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왔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녀가 내려놓고 간 쿠키가 무척 달콤했다는 것도.
알렉세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간식 정도는 네가 직접 전해 주면 되잖니?’
‘음, 물론 그래도 되기는 하지만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던 릴리아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저보다는 공작님께서 직접 위로를 해 주시는 편이, 어머님께서 더 기운이 나실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음…… 공작님과 어머님께서는 서로 부부이시니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릴리아나가, 이윽고 생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신경을 써 준다면, 어머님의 마음도 더욱 편안해질 것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
그 단어를 들은 알렉세이는,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깃털로 문지르는 양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안리체와 알렉세이는 법적 부부였고, 사람들은 부부라면 보통 서로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이라.’
조금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알렉세이는 손안의 간식거리를 살펴보았다.
금색 포장지로 감싸여 있는 초콜릿은, 엘리엇이 가장 좋아하는 주전부리였다.
분홍색 사탕 또한, 평소 릴리아나가 매번 입에 물고 다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얘들아, 이건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들이잖니?’
‘어차피 엄마가 주신 건데요, 뭐. 한 개쯤은 엄마께 양보할 수 있어요.’
엘리엇은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릴리아나도 열렬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엘리엇의 말에 동조했다.
픽 웃음을 터뜨린 알렉세이가, 간식을 품 안에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잊지 않고 전해 드리도록 하마.’
별처럼 초롱초롱하게 눈동자를 빛내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알렉세이는 말을 맺었다.
“……그랬던 겁니다.”
사정을 들은 안리체는 묵묵히 간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랬던 거구나.
내가 이렇게 안이하게 굴었는데도, 아이들은 날 걱정해 줬던 거구나.
가슴 깊은 곳이 찡해져 왔다.
물끄러미 간식들을 내려다보던 안리체가, 이윽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이제 기운이 조금 나십니까?”
“그럼요.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저를 신경 써 줬는데, 계속 축 처져 있을 수만은 없죠.”
그렇게 대답한 안리체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비꽃빛 눈동자는 이제, 평소의 생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저, 아이반 자작가에게 직접 책임을 묻고 싶은데요.”
“항의서한을 보내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감히 릴리아나를 건드렸으니, 마땅히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해야죠.”
안리체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알렉세이가 살짝 고개를 기울여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응? 뭐지?
안리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때.
“부인.”
“네, 네?”
“고작 항의서한으로는 조금 약하지 않겠습니까?”
알렉세이가 입술 끝을 비스듬히 밀어 올렸다.
안리체는 조금 얼떨떨해졌다.
언제나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알렉세이였기에, 지금의 그는 어쩐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알렉세이가 저렇게 사악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던 거야?’
하지만 저 비뚜름한 미소까지, 알렉세이에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이, 이건 마치 흑막 남주 같잖아?
온미남과 냉미남에 이어 사악한 미남까지 섭렵하는 건가……?
……가 아니잖아!
안리체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알렉세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발루아 공작가는 여러 사업체에 자금을 투자하고 있죠.”
“아, 그렇죠.”
안리체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알렉세이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리고 그 사업체 중, 아이반 자작 가문에서 운영하는 것도 있고요.”
“아!”
안리체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제 그 자금을 회수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부인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물론 찬성이죠.”
안리체는 알렉세이를 따라 씨익 눈웃음을 지었다.
부부의 미소는 서로를 똑 닮아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아이반 자작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제 아내를 향해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여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네?”
아이반 자작 부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덜컥 굳어 버렸다.
편지의 발신인은 바로, ‘안리체 폰 발루아’였기 때문이었다.
“공작 부인께서 내게 왜……?”
편지를 붙든 아이반 자작 부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날 잘라낸 것으로도 모자라, 정말로 가문 차원에서 내게 항의라도 하실 생각인 건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황급히 편지를 읽어 내렸다.
잠시 후, 그녀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무슨……!”
아이반 자작 부인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아한 필치로 적혀 있는 문장은, 아이반의 사업체에 대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발루아에서는 이번 일로 크게 유감을 느끼는바, 더 이상 아이반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자금을 투자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투자했던 자금은 일주일 내로 모두 회수할 생각이에요.
그러니 아이반 자작가에서도, 문제없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온건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으나, 만약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시에는…….>
“……가, 강제적인 방향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목소리로 편지의 말미를 읽어 내렸다.
덜덜 떨리는 손끝이 편지를 와락 움켜쥐었다.
구겨진 편지를 바닥으로 내던지며, 아이반 자작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아니야!”
“당신,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아이반 자작이 제 아내의 어깨를 와락 틀어쥐었다.
“발루아에서 왜 갑자기 자금을 회수한다는 거요!”
“여, 여보.”
“자금을 회수당하면 우리는 끝장이야! 사업은 완전히 접어야 한다고!”
아이반 자작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제 아내를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