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4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48)화(48/180)
<48화>
그 단호한 말에, 작센 후작 대부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벌어졌다.
“장모님께서는 지금, 제 아내가 투자자금을 회수했다는 이유로 ‘악랄하다’며 매도하고 계시지만.”
알렉세이는 웃었다.
잘 벼린 칼끝처럼 날카로운 미소였다.
“그건 제가 제안한 겁니다.”
뭐라고?
작센 후작 대부인은 경악한 낯으로, 알렉세이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발루아 공작가는, 지금껏 아이반 자작가의 사업체에 투자자로서 참여하고 있었지요.”
알렉세이는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온화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투자할 자금의 규모와, 투자를 진행할 때와,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시기를 결정할 권리는…….”
새파란 눈동자가 작센 후작 대부인을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저와 제 아내가 가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바, 발루아 공작님. 하지만…….”
“저와 제 아내는 적법한 권리를 행사했을 따름인데.”
알렉세이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작센 후작 대부인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장모님께 제 아내가 ‘악랄하다’고 매도당해야 합니까?”
말문이 턱 막혀서, 작센 후작 대부인은 입술만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알렉세이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애초에 아이반 자작 부인이 제 아내를 가르쳤던 선생이 아니었더라면, 전 처음부터 그 사업에 투자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이었다.
실제로 알렉세이는 몇 번이나 투자를 고사했었다.
안리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여, 결국 투자를 진행했을 뿐.
“발루아의 투자금을 기초로 하여, 아이반의 사업체는 어마어마하게 규모를 키웠죠.”
“…….”
“하지만 규모를 키우는 것만큼, 내실을 단단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정곡을 찔렸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하지만 알렉세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투자자 한 명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정도로는 사업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그래도. 그건…….”
“글쎄요. 이 정도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린다는 것은.”
알렉세이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 사업체 자체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뜻이지요.”
알렉세이는 그렇게, 아이반 자작가의 사업체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렸다.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선택은 역시 옳았던 것 같습니다.”
“공작님!”
작센 후작 대부인은 비명처럼 알렉세이를 불렀다.
“제, 제 얼굴을 봐서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장모님의 얼굴이요?”
“네, 이건 안리체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아무리 그래도 사교계의 평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녀는 절박하게 말을 이었다.
“아이반 자작 부인은 귀부인들과 사이가 무척 좋아요. 그러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이번 일을 해결해 주겠노라며, 아이반 자작 부인에게 잔뜩 큰소리를 쳐 뒀는데…….
하지만 알렉세이는 매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을 따름이었다.
“아니요, 저는 제 아내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 그래도……!”
“제 아내는 그런 잡스러운 소문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세이가 힐끔 안리체를 돌아보았다.
안리체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 아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저도 마찬가지로 신경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장모님께서 제 아내를 걱정해 주시는 것은,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알렉세이는 냉정하게 말을 덧붙였다.
“제 아내는 발루아의 안주인이자, 제국에서도 유일한 공작 부인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파리한 얼굴로 제 사위를 올려다보았다.
“제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남편인 저까지 함부로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렉세이는 그렇게 못을 박았다.
안리체는 물끄러미 작센 후작 대부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대할 때는 상전처럼 언성을 높이던 그녀는, 알렉세이를 앞에 두고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알렉세이가 제 편을 들어주는 건 정말 기뻤다.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네.’
제 딸은 당연하게 무시했으면서, 알렉세이의 심기는 어떻게든 거스르려 하지 않는 저 모습이.
어쩐지…… 조금 서글펐다.
* * *
작센 후작 대부인이 돌아간 후.
안리체와 알렉세이는 나란히 응접실에 남았다.
침묵이 흘렀다.
안리체는 내내 무언가를 고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 눈빛이었다.
평소라면 그런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부인.”
“네, 공작님.”
제 남편을 돌아보며, 안리체는 버릇처럼 입술 위로 환한 미소를 걸었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그 질문에, 안리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요, 괜찮아요.”
“그런데 왜…….”
알렉세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분명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하지만 제가 느끼는 위화감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알렉세이는 결국, 모호한 질문만을 던져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표정이십니까?”
“네? 제 표정이 왜…….”
“그러니까.”
알렉세이는 지그시 입술을 당겨 물었다.
제 눈앞에 앉아 있는 안리체는, 햇살보다도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눈에는, 그녀가 큰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걸까.
제비꽃빛 눈동자는 그저 건조하기만 한데.
어쩐지 지금의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여서…….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알렉세이는 처음으로, 언제나 과묵하기만 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화술을 닦아 뒀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매끄럽게 말할 수 있었을까.
“지금 부인께서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십니다.”
지금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말은, 고작해야 이런 것뿐이었다.
“괜찮은 사람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요.”
그 말에, 안리체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녀는 농담처럼 그에게 되물었다.
“제 표정이 어떤데요?”
“……억지로 웃고 계십니다.”
“…….”
순간, 안리체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당겨 물었다.
‘바보 같아.’
‘원작의 안리체’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했다.
가족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요구받았던 것과, 작센의 명예를 드높일 도구로써 이용당했던 것.
그건 모두, 그녀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인데.
저 일들은 다, ‘원작의 안리체’가 겪었던 일일 뿐인데…….
안리체는 크게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매끄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본의 아니게 신경 쓰시게 했네요. 죄송해요.”
“저, 부인?”
“공작님께 죄송하고, 또 어머니에게 화가 나기도 해서……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나 봐요.”
알렉세이는 물끄러미 안리체를 바라보았다.
안리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제 어머니께서 이렇게 난입하신 것 자체가, 발루아에 대한 예의를 전혀 갖추지 않으신 거잖아요?”
“…….”
“이런 흉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말 부끄럽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떠들어대던 바로 그때.
알렉세이의 손가락 끝이 안리체의 얼굴 위로 와 닿았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알렉세이를 마주 보았다.
“……저, 공작님?”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그녀의 눈가를 보드랍게 어루만졌다.
귀족적인 겉모양과는 달리, 그의 손가락은 검을 오래 쥔 자 특유의 딱딱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 따뜻했다.
“괜찮습니다.”
“…….”
“저희는 가족이지 않습니까.”
간결하지만 다정한 말이었다.
순간, 감정이 왈칵 치받아 올랐다.
알렉세이는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억지로 그렇게 웃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정말.”
순간, 알렉세이의 손끝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 위로 눈물이 가득 고였기 때문이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안리체가 옷소매로 눈가를 슥슥 닦아냈다.
“이런 바보 같은 표정을 보여 드리게 되다니…… 이건 모두 공작님 때문이에요.”
밉지 않게 자신을 타박하는 안리체에게, 알렉세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아뇨, 전혀 바보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뜻밖의 말에, 안리체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눈물 젖은 눈으로 밝게 미소 지었다.
아주 예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