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5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52)화(52/180)
<52화>
“엘리엇을 꾸준히 가르쳐 본 결과, 그 아이는 검술 자체에는 그리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거였군요.”
“예. 재능 자체는 출중하지만, 사람이 재능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알렉세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것 같아서, 안리체는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엘리엇은 차후 발루아의 가주가 될 아이였다.
그러니, 발루아의 가전 검술을 물려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의 적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겠지.’
알렉세이는 가주이기에 앞서,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도 했으니까.
“그에 반해, 릴리아나는 어떻게든 이기려 합니다.”
“그 말씀은 즉, 릴리아나는 호승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뜻인가요?”
“맞습니다. 이번에 훈련할 때만 해도, 그 아이는 어떻게든 끝까지 완수하려 애를 썼죠.”
알렉세이는 훈련을 받던 릴리아나를 떠올렸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몰아붙여 졌으면서도, 릴리아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 위로 옅은 미소가 서렸다.
안리체는 그런 알렉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공작님, 즐거워 보이시네.’
하기야, 알렉세이는 검술이라는 영역에서 대가가 된 사람이었으니까.
출중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있는데, 심지어 그 아이가 엘리엇의 반려가 될 아이라면…….
‘……나라도 기분이 좋을 것 같기는 해.’
무엇보다도 릴리아나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엘리엇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때마침 알렉세이가 은근슬쩍 안리체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말인데…… 릴리아나를 제가 직접 맡아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이 소식을 전해 주면, 릴리아나가 무척 기뻐하겠는걸요?”
안리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릴리아나는 엘리엇과 함께 검술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에 들어가자마자, 릴리아나는 놀라우리만치 압도적인 성취를 보였다.
목검을 쥔 릴리아나에게서는, 평소의 온순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리 어린 맹수처럼 그 자리에 도사린 채,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알렉세이는 그런 릴리아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하구나, 릴리아나.”
“아, 감사합니다!”
엘리엇은 환하게 미소 짓는 릴리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릴리아나는 정말…… 천재인가 봐.’
릴리아나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심지어 그 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니.
분명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난 어째서…….’
엘리엇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엘리엇이 몇 날 며칠을 훈련한 후에야 해낼 수 있었던 일을, 릴리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천재와 범재란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는 발루아의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인데.
발루아의 가주들은 대대로, 뛰어난 기사들이었는데…….
“…….”
커다란 얼음 조각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 한구석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엘리엇은 슬쩍 고개를 돌려, 기뻐하는 아버지와 릴리아나를 외면했다.
* * *
안리체는 창문에 기대선 채,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빨빨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러던 중.
똑똑.
짧은 노크 소리에, 안리체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중년의 남자 한 명이 주춤주춤 응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엘리엇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발루아 공작 부인을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자리에 앉으세요.”
안리체는 살가운 어조로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선생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공작 부인께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다니?’
저 오만한 공작 부인이, 고작해야 도련님의 선생인 나를 직접 불러들인다고?
하지만 안리체는 그에 더하여 차까지 권해 왔다.
“차를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선생은 슬그머니 안리체의 눈치를 살폈다.
소문에 따르자면, 공작 부인께서는 저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는 겸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하지만 안리체의 표정은 그저 평온해 보였다.
‘공작 부인께서 요새 좀 바뀌셨다고 하시던데, 진짜인가……?’
하긴 그러고 보면, 엘리엇 도련님께서 요새 공작 부인과 잘 지내시는 것 같기는 하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선생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이반 자작 부인을 직접 무릎 꿇리셨다지 않은가.’
저 우아하고 선량해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다가,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선생은 단단하게 마음을 다져 먹었다.
동시에, 안리체가 입술을 열었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일정이 있으셨을 텐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생님을 불러들이게 되어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선생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 공작 부인이, 일개 선생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는 건가?
안리체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제가 빼앗은 시간에 대해서는, 엘리엇의 수업에 준하여 두 배의 시급으로 보상해 드리려고 합니다.”
“두, 두 배요?”
“네. 혹은 다른 원하시는 보상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닙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얼떨떨한 표정이 된 선생이 황급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사실 대부분의 고위 귀족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고용인들을 철저히 아랫사람으로만 대했다.
그리고 발루아 공작 부인은, 그런 ‘고위 귀족’들의 전형이었다.
그랬던 공작 부인이 빼앗은 시간에 대해 먼저 사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금전적으로 보상하겠다고 이야기하다니…….
“엘리엇의 그림 실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결례를 저지르게 되었답니다.”
안리체는 우아한 동작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실 제가 우연히 엘리엇이 그린 그림을 봤는데, 실력이 꽤 뛰어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말에, 선생은 놀란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공작 부인께서 도련님의 그림을 직접 살펴보셨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도련님께서 어떤 교육을 받으시든지 아무런 관심도 없으셨는데?
“다만 제가 아이의 어머니이기에, 엘리엇의 실력을 너무 고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안리체의 시선에는, 엘리엇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가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니, 아이를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답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선생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엘리엇 도련님께서는 그림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확언에, 안리체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역시 그녀의 눈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도련님께서는 그림을 그릴 때 꽤나 즐거워하시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예. 항상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셨습니다. 수업을 듣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시거나, 지루해하신 적도 없고요.”
찻물로 입술을 적시며, 선생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보통 그 나이대의 도련님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시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엘리엇이 그림 수업을 받을 때에는 단 한 번도 잡음이 생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반면, 검술 훈련을 할 때에는…….
‘하도 뺀질거리는 바람에, 기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
그나마 알렉세이가 직접 나선 후에야, 수업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군요. 엘리엇이 그림에 취미가 있을 줄이야…… 제가 더 신경 쓸 것을 그랬어요.”
“글쎄요, 굳이 그렇게까지 자책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리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선생은 한참을 말을 고른 후에야,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실은 엘리엇 도련님께서는, 도련님께서 그림에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 밝히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어째서죠?”
“사실 그림이란 게, 신사들에게 있어서는 배워도 그만 배우지 않아도 그만인 소양 아니겠습니까.”
선생의 얼굴 위로 씁쓸함이 서렸다.
“적어도 한 가문을 물려받을 소가주에게 있어서는, 그리 중요한 과목이 아니지요.”
“……그,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언제나 발루아의 소가주라는 위치를 잊지 않고 계시니까요.”
……발루아의 소가주.
엘리엇은 항상, 자신의 위치를 되새기며 살고 있었던 건가.
그 책임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직, 고작해야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잖아.’
벌써부터 그런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취향마저 억누르고 살 필요는 없는데.
분명 부담스러울 텐데…….
안리체는 입술을 당겨 물었다.
“실은 제가 도련님께, 황실 공모전에 나가 보는 건 어떠하시냐고 제안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엇의 대답은 어땠나요?”
“……거절하셨습니다.”
선생은 한숨을 섞어 말을 맺었다.
“차후 훌륭한 가주가 되려면, 취미 활동에 너무 신경을 쏟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
안리체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돌덩이를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 깊은 곳이 묵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