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5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58)화(58/180)
<58화>
“가족…… 이요?”
“그럼요. 그러니 저도 신경 써야지요.”
“……그렇군요.”
그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안리체는 괜히 심장이 간질거렸다.
가족이라.
그는 분명 별다른 생각 없이 ‘가족’이라고 말했을 테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역시 달랐다.
‘가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부터 따스하게 물드는 느낌이 든다.
때마침 알렉세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으십니까?”
“아, 공작님께서 가족을 아껴 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뭐,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알렉세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런 그의 목덜미가 조금 붉어져 있었기에, 안리체는 피식 웃어 버렸다.
‘누가 엘리엇의 아버지가 아니랄까 봐.’
저런 식으로 부끄러워하는 건, 아버지나 아들이나 똑 닮지 않았나.
잠깐. 그러고 보니…….
엘리엇?
“앗, 저 이제 가봐야 해요!”
“예? 갑자기 왜…….”
“저, 아이들이 제대로 양치질을 하는지 검사해야 해서요.”
“…….”
그러자 알렉세이는 묘하게 불퉁한 표정이 되어 안리체를 마주 보았다.
어라, 왜 저러신담?
안리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공작님?”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제 용건이 다 끝난 안리체는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알렉세이는 기묘하게 허전한 기분을 느끼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안리체가 아이들을 챙겨 주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예전처럼 아이들에게 매몰차게 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도…….
“……조금만 더 있다 가셨어도 됐을 텐데.”
채 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간을 구긴 알렉세이가 걸음을 옮겼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는 데에는, 역시 밀린 서류를 살펴보는 게 제일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잠깐.’
알렉세이의 발이 멎었다.
‘보통 부인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잠드시는 편이지?’
그러고 보면, 깨어 있는 아이들을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항상 늦게 퇴궁하는 바람에, 잠든 아이들의 얼굴만 간신히 보고 지나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리고,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 주신다고도 하셨고.’
그렇다면 그 동화책, 내가 읽어 줘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도 볼 겸, 겸사겸사 안리체의 얼굴도 한 번 더 볼 겸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알렉세이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 * *
깨끗하게 씻고 보송보송해진 아이들이,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 안리체를 올려다보았다.
안리체는 곤란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오늘도 엄마 방에서 자려고?”
“그, 그러면 안 되나요?”
“저는 제 방보다 엄마 방이 훨씬 더 좋은데.”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릴리아나와 엘리엇이, 입을 모아 병아리처럼 삐악거렸다.
안리체는 결국 입술 끝을 허물어뜨리고 말았다.
‘그래,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안리체는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럼 어떤 책을 읽고 싶니? 엄마가 가져다줄 테니까…….”
“아니에요, 제가 갖고 왔어요!”
이런 데에서는 준비성이 철저한 엘리엇이, 베개 밑에 숨겨 두었던 동화책을 꺼내 내밀었다.
책 제목을 읽은 안리체가 눈썹을 슬쩍 치켜 올렸다.
“이 책이 그렇게나 좋니?”
“네!”
엘리엇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와 요정님의 모험.」
예전에 정원에서 알렉세이가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던 동화책이었다.
그때 알렉세이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는 모습이, 상당히 웃기고 귀여웠었는데…….
‘……잠깐. 귀엽다니?’
순간 밀려드는 위화감에, 안리체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내가 언제부터 알렉세이를 이렇게 친근하게 느끼게 된 거지?
그런데 그때.
똑똑.
짧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안리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지금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방문을 연 안리체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치떴다.
“어머나, 공작님?”
“아, 부인.”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알렉세이였으니까.
“공작님께서는 여기는 어쩐 일로…….”
“그게, 아이들의 얼굴을 본 지 오래되어서 말입니다.”
알렉세이의 궁색한 변명에, 안리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들어오세요. 아이들도 아직 깨어 있어요.”
알렉세이를 발견한 아이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빠!”
“공작님?”
“다들 아직 안 자고 있었니?”
방 안으로 들어온 알렉세이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엘리엇이 헤헤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빠 얼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미안하구나. 좀 더 자주 너희들을 보러 와야 했는데…….”
“괜찮아요, 아빠는 바쁘시잖아요.”
엘리엇의 어른스러운 대답에, 알렉세이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서렸다.
알렉세이가 릴리아나를 돌아보았다.
“릴리아나도 훈련을 열심히 받고 있다지?”
“아니에요, 아직은 부족해요.”
“글쎄, 부족하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기사들 사이에서 네 칭찬이 자자하던걸?”
그 대답을 들은 릴리아나가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알렉세이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오늘도 ‘한스와 요정님의 모험’을 읽는 거니?”
“그렇기는 한데…….”
엘리엇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알렉세이를 올려다보았다.
“왜 아빠가 동화책을 펼치는 거예요?”
“그거야 책을 읽어 주려고…….”
“…….”
“…….”
순간, 싸한 침묵이 흘렀다.
엘리엇이 심각한 목소리로 알렉세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께서 동화책을 읽어 주시려고요?”
“왜, 싫으니?”
“네.”
엘리엇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게나?”
“네. 전 아빠를 사랑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엘리엇의 확인사살에, 알렉세이는 그만 상처 입은 표정이 되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당황한 안리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이번에는 잘 읽어 주실 거야. 그렇죠, 공작님?”
“…….”
하지만 안리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완고한 낯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따름이었다.
‘아, 이런.’
안리체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릴리아나를 바라봤지만…….
“…….”
……릴리아나마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알렉세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저렇게 원하니, 그냥 부인께서 읽어 주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 네…….”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안리체가,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아이들은 그제야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목을 가다듬은 안리체가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스는 검을 커다랗게 휘둘렀어요. 그랬더니 한스의 검에서…….”
“한스의 검에서 불길이 튀어나왔다! 맞죠?”
“엘리엇, 어머님께서 책을 읽어 주시는데 네가 자꾸 끼어들면 어떡해?”
그녀의 목소리 위로,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가 마치 합창처럼 뒤섞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듣기 좋은 목소리는, 역시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안리체의 다정한 목소리라고.
알렉세이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 * *
마침내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다.
동화책을 덮은 안리체가 아이들의 잠자리를 정돈해 주었다.
이불을 꼼꼼하게 목까지 덮어 주고, 아이들의 이마를 쓸어 주는 손길이 무척 상냥했다.
잠시 후, 안리체가 알렉세이를 돌아보았다.
“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세상에, 제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안리체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
아까 알렉세이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미묘했다.
“그러니까 제가 공작님께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엘리엇과 릴리아나를 신경 쓰는 것처럼…… 말입니까?”
“뭐, 그렇죠.”
안리체는 고개를 끄덕였고, 알렉세이는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기분은 뭘까.
그는 저도 모르게 비스듬히 눈썹을 꺾었다.
물론 안리체가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해 주는 건 기쁘다.
하지만, 그냥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대할 때와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 나를 의식해 줬으면 싶은데.’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그녀가 나를 전혀 이성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한심한 생각인지.
밀려드는 자괴감에 알렉세이는 한숨을 삼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안리체가 종종걸음으로 알렉세이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빤히 관찰하는가 싶더니, 와락 미간을 좁힌다.
“이것 봐요, 눈 밑에 그늘이 져 있잖아요.”
무심결에 손을 들어 올린 그녀가 알렉세이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알렉세이가 흠칫 어깨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