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82)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82)화(82/180)
<82화>
* * *
“……후우.”
알렉세이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상했다.
최근 아내 앞에 서기만 하면, 자꾸 제멋대로 심장이 뛰고는 한다.
‘일단 자리를 피하기는 했는데…….’
그는 힐끔 시선을 들어 2층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저 위에서, 안리체와 아이들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
‘안리체.’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계속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알렉세이는 이마를 짚으며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일단 주문부터 하자.’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마주 보았다.
“저, 손님?”
“주문을…… 하러 왔습니다.”
“아하.”
직원이 난감하게 웃어 보였다.
“다음부터는 자리에서 종을 울려 주세요. 저희가 직접 주문을 받으러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에, 알렉세이의 목덜미가 살짝 붉어졌다.
그러고 보면, 그가 주문을 받겠답시고 내려올 때 안리체가 만류하려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리 아들, 뭔가 먹고 싶은 게 있니?”
뭐지?
분명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보았던 목소리인데.
알렉세이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일단 위층으로 올라가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살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드레스 자락이었다.
한 청년이 중년의 귀부인을 뒤따르고 있었다.
순간, 알렉세이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 * *
‘도대체 공작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 거람?’
안리체는 힐끔 계단 쪽을 내려다보았다.
알렉세이가 뜬금없이 주문을 더 하겠다며 아래로 내려간 후.
그는 계속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제 앞의 간식들을 모조리 먹어 치운 지 오래.
“엄마, 아빠가 간식 더 사 주시는 거예요?”
아쉬운 얼굴로 포크를 들어 텅 빈 브라우니 접시를 긁어 대던 엘리엇이, 은근슬쩍 안리체의 눈치를 살폈다.
안리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더 먹으면 안 돼.”
“네? 하지만 아빠가 새로 주문한댔으니까, 새 간식이 올 거 아니에요?”
“그거야 집으로 포장해 가면 되지.”
“…….”
그 철통같은 방어에 엘리엇은 불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리체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낼 따름이었다.
“엘리엇, 이리 오렴.”
안리체가 엘리엇을 손짓으로 불렀다.
“입술에 아이스크림이 묻었잖니.”
“우음.”
안리체가 그렇게, 손수건으로 꼼꼼하게 아이의 입술을 문질러 닦아 주던 차.
“안리체?”
응?
이 목소리는?
안리체는 미묘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작센 후작 대부인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서 있는 청년은…….
“어머니, 그리고…….”
데니스 작센.
안리체의 남동생이자, 현 작센 후작.
그러고 보면, 그녀가 빙의한 이후로 이번이 처음 만나 보는 것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데니스.”
“누님!”
작센 후작이 안리체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릴리아나를 힐끗 곁눈질로 내려다본다.
“이 애가 그, 엘리엇의 약혼녀라는 앱니까?”
“…….”
조금 겁을 먹었는지,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안리체를 올려다보았다.
괜찮다는 뜻으로, 안리체는 아이의 손등을 가만히 쓸어내려 주었다.
“엘리엇, 릴리아나. 인사드리렴.”
안리체는 다소 마땅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작센 후작 대부인과 후작님이란다. 엘리엇에게는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이 되지.”
“아, 안녕하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릴리아나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릴리아나를 따라 몸을 일으킨 엘리엇도, 양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흡족한 눈으로 두 아이를 내려다보던 작센 후작 대부인이, 다시 안리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건 그렇고, 안리체.”
“네, 어머니.”
“언제쯤 약혼식 초대장을 줄 거니?”
당연히 자신을 초대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말투였다.
그에, 안리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네? 제가 왜 초대장을 드려야 하죠?”
“……뭐?”
순간, 작센 후작 대부인은 제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 안리체!”
작센 후작 대부인이 기가 막힌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난 엘리엇의 외할머니고! 데니스는 엘리엇의 외삼촌 되는 사람이야!”
“맞아, 그런데도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단 말이야?”
작센 후작이 얄밉게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에 힘입어, 작센 후작 대부인이 안리체에게 다다다 말을 쏘아붙였다.
“네가 론디니에게 정나미 없이 행동했다는 것은 전해 들었다!”
론디니 남작가.
아픈 곳을 찌르는 그 단어에, 릴리아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안리체의 얼굴은 급격하게 굳어졌다.
“허나, 피를 나눈 우리에게까지 이럴 줄이야……!”
“어머니.”
“그래도 말이지, 네가 정말로 우리를 초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작센 후작 대부인은 승리감에 가득 찬 미소로 안리체를 마주 보았다.
“너도 잘 알 텐데?”
“무엇을요?”
“네가 그리 애지중지하는 애버릿 백작 영애 말이다.”
갑자기 화제가 릴리아나로 전환되었다.
릴리아나는 채찍에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흠칫 어깨를 굳혔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냉엄한 시선으로 릴리아나를 응시했다.
“아직 그 입지가 완전하지 못하잖니?”
어, 어머님…….
릴리아나가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작센 후작 대부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상황에서, 작센 후작가가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어라고 생각하겠니?”
“어머니.”
“작센 후작가가 애버릿 백작 영애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겠니?”
릴리아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녀린 손등 위로, 뼈마디가 새하얗게 도드라졌다.
“그렇다면 장차, 사교계에 데뷔할 때도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테고 말이야.”
“아하.”
그때,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걸 아시는 분께서,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쩌렁쩌렁하게 말씀하고 계시나요?”
비록 가벽을 세워서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 두기는 했으나, 그래도 목소리는 다 들렸다.
또한 상대방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 증거로, 작센 모자도 곧바로 안리체 일행을 알아보지 않았나.
안리체는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선언했다.
“신경 끄세요.”
“뭐라고?”
“우리 릴리아나가 왜 작센과의 관계를 신경 써야 하나요?”
뜻밖의 대답에, 작센 후작 대부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필요조차 없을 만큼, 발루아에서 릴리아나를 아껴 줄 텐데.”
안리체가 턱을 치켜들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어머니든, 데니스든. 참견은 이제 그만둬 주시겠어요?”
“안리체, 이게 무슨 무례한 대답이니!”
“먼저 무례하게 행동한 쪽은 어머니와 데니스예요.”
하지만 안리체는 이미, 작심한 것처럼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애초에 말이죠, 왜 릴리아나가 작센 후작가를 포함한 다른 가문에게 인정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연한 일 아니니? 사교계에서 주변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데……!”
“글쎄요, 어머니께서 중요한 사실을 잊고 계신 것 같은데.”
안리체가 서늘한 눈동자로 작센 후작 대부인을 바라보았다.
“릴리아나는 발루아의 차기 안주인이에요.”
그 차가운 어조에, 작센 후작 대부인은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굳혔다.
안리체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그 말은 즉, 릴리아나는 발루아의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면 그만이라는 말이죠.”
“안리체……!”
“그리고, 우리는 이미 릴리아나를 인정하고 있고요.”
우리가 이미 릴리아나를 인정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인정 따위 필요 없다.
지극히 오만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안리체와 지독하리만치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황가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가문, 발루아 공작가.
그리고 그 발루아 공작가의 단 한 명뿐인 안주인.
그 사람이 바로 안리체였으니까.
“그 누구도 릴리아나에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아요. 또한.”
딱 부러지게 말을 끊어낸 안리체가, 차가운 시선으로 제 어머니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릴리아나를 적대하는 사람은 곧, 발루아의 차기 안주인을 적대하는 사람인 바.”
어느새, 작센 후작 대부인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제 어머니를 향해, 안리체는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작태를 두고도, 발루아가 가만히 있으리라고 여기시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죠.”
“지, 지금 우리를 협박하는 게야?”
“어째서 협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그때.
여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제 부인께서는 명확한 사실만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알렉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