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87)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87)화(87/180)
<87화>
그 외침에, 알렉세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안리체였다.
“그만하세요.”
“……부인.”
“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그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알렉세이의 손끝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그랬다.
아이들이 있었다.
“콜록, 콜록! 케헥…….”
바닥에 주저앉은 작센 후작이 거센 기침을 토해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는 모습이 꼴사나웠다.
알렉세이가 안리체를 돌아보았다.
“부인께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시죠.”
“하, 하지만.”
“여기는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말한 알렉세이가 손을 뻗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새파란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얼굴…… 꼭 치료받으십시오.”
“……네.”
더 말을 붙이려던 안리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알렉세이가 작센 후작 대부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작센 후작 대부인께서도 이만 나가 주시지요.”
“제, 제가 제 아들을 두고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진심이십니까?”
그 평온한 되물음에, 작센 후작 대부인은 덜컥 굳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저는 시종들을 불러서, 후작 대부인을 강제로 모시고 나가게 할 수밖에 없겠군요.”
“바, 발루아 공.”
“그러시겠습니까? 아니면.”
알렉세이가 딱 끊어지는 말투로 말을 맺었다.
“제 발로 나가시겠습니까?”
“…….”
순간, 작센 후작 대부인은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발루아 공은…… 진심이야.’
이대로 아들을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녀가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내,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게요?”
“발루아는 은원을 확실히 합니다.”
붉은 입술이 서늘한 호선을 그렸다.
“그러니, 마땅히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요.”
“그, 그게 무슨!”
“거기 누구 없나!”
순간 알렉세이의 입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튀어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우르르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공작님.”
“그래.”
고개를 끄덕인 알렉세이가, 눈짓으로 작센 후작 대부인을 가리켰다.
“작센 후작 대부인을 정중히 밖으로 모셔라.”
“예!”
시종들이 작센 후작 대부인의 양팔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후작 대부인의 눈동자에 경악이 서렸다.
“이것 놓아라! 데니스, 내 아들아!”
“어머니, 어머니!”
후작 대부인은 마구 발버둥을 쳤으나, 성인 장정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쿵!
방문이 닫혔다.
후작 대부인이 황급히 방문에 달라붙었다.
“데니스! 데니스!!”
그러나, 굳건히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알렉세이는 느릿한 동작으로 뒤돌아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작센 후작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허억, 허억, 공작님……?”
좁쌀만 한 눈이 마구 흔들렸다.
밀려드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작센 후작이 마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제가 공작님께는 험한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
“제 누이가 워낙에 개념 없이 굴어서 말이죠, 그게…… 컥!”
하지만, 작센 후작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알렉세이의 거센 발길질이 명치에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커억, 헉!”
후작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토해졌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렉세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발을 들어 올렸다.
퍽!!
조용하고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져 내렸다.
작센 후작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알렉세이가 집요하게 그를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결국, 작센 후작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알렉세이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피와 멍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알렉세이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설마 제가 작센 후작을 죽일 리가 있겠습니까?”
“고, 공작님……!”
“제 아내의 남동생분이신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세이가 느릿하게 발을 떼어냈다.
“그 말은 즉, 뒤집어 말하자면.”
“억, 허억, 헉……!”
“제 아내와의 혈연관계가 아니었더라면, 전 정말로 작센 후작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그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덤덤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을 두렵게 했다.
‘이대로 이 작자를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지만.’
알렉세이는 입술을 짓씹었다.
‘안리체.’
제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비록, 눈앞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이 작자가 아무리 혐오스럽다 한들.
‘작센 후작은 내 아내의 남동생이니까.’
그러니 경고는 해 주되, 이번 일 자체는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리고 알렉세이에게는,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있었다.
제 친누나의 뺨까지 갈길 정도로 작센 후작이 갈구했던 것.
‘돈.’
알렉세이의 입술 위로 비스듬한 미소가 걸렸다.
차가운 조소였다.
그는 그대로,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자, 받으시지요.”
종이 두어 장이 팔랑거리며 작센 후작의 몸에 떨어졌다.
그 종이는 바로, 발루아의 서명이 담긴 수표였다.
수표 한 장에 각각, 제도의 타운하우스를 다섯 채는 구매할 만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작센 후작께서 그렇게나 좋아하시는 돈 아닙니까?”
조롱 섞인 목소리가 작센 후작의 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작센 후작은 그 조롱에 분노하지도, 바닥에 구르는 수표를 주워들지 못했다.
흡사 온몸을 씹어 먹는 것 같은 통증에, 부들부들 떠는 것만이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오늘 같은 일이 또 한 번 일어난다면…….”
알렉세이는 천천히 몸을 내려, 작센 후작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심해처럼 차갑고 묵직한 눈동자였다.
“그때는 알아서 하시지요.”
“공작, 공작님…….”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저도 제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잘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그게 끝이었다.
경멸에 찬 시선으로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작센 후작을 내려다본 알렉세이는, 그대로 방문을 열었다.
달칵.
“데니스!!”
그와 동시에, 작센 후작 대부인이 허겁지겁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세상에, 우리 아들!!”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렉세이는 걸음을 빨리했다.
한시바삐 부인을 만나 보러 가야만 했다.
* * *
한편, 그 시각.
안리체는 얼음주머니로 부어오른 뺨을 식히고 있었다.
릴리아나와 엘리엇은 울상이 되어 제 어머니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안리체의 뺨을 살피던 제인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떡해요, 뺨이 많이 부었어요…….”
“난 괜찮아.”
안리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엄마 볼이 두 배가 됐다고요.”
“엘리엇의 말이 맞아요.”
“으응…… 그러니?”
저 순한 릴리아나까지 두 눈에 불을 켠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녀의 꼴이 꽤 엉망이기는 한가 보다.
난감한 얼굴을 하던 안리체가, 제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약혼식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마님께서는 이런 때조차 약혼식 걱정부터 먼저 하세요?”
제인이 울상이 되어 안리체를 타박했다.
안리체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니.”
“……집사님께서 뒷정리를 해 주신다고 했어요.”
“그래?”
안리체는 반색을 했다.
그나마 집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똑똑.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알렉세이가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빠!”
“공작님!”
두 아이가 쪼르르 알렉세이에게로 달려갔다.
잠시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이던 알렉세이가, 안리체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아, 네.”
안리체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알렉세이는 제인에게서 얼음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제인은 이만 물러가도 좋네.”
“예, 공작님.”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제인이 방 밖으로 물러났다.
안리체 곁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알렉세이가, 얼음주머니를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에 가져다 댔다.
“턱을 조금만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 네…….”
안리체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묵직한 침묵이 흐르기를 한참 후.
알렉세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그런 겁니까?”
“네?”
“……작센 후작 말입니다.”
순간, 알렉세이의 손안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언제부터…… 부인께 폭력을 휘둘렀습니까?”
알렉세이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전 그는, 안리체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 위화감은 바로, 그녀는 자신이 얻어맞은 것에 분노할지언정 놀라지는 않았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는 소리지.’
그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분노로 새하얗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