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93)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93)화(93/180)
<93화>
어린 며느리에게 생긋 눈웃음을 지어 준 안리체는, 다시 한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 발루아 공작성이다.’
그렇다는 건,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공작 대부인과 집사장을 만나게 된다는 건데.
‘역시, 조금 긴장돼.’
안리체가 마른침을 삼키던 바로 그때.
“부인.”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안리체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알렉세이였다.
“괜찮습니다.”
“공작님.”
“부인께서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오셨잖습니까.”
마치 그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말이었다.
“공작성 사람들도, 그리고 제 어머니께서도.”
알렉세이가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분명 부인의 노력을 알아주실 겁니다.”
“……하지만.”
“만약에 모르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설득할 테니까.”
알렉세이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안리체가 피식 눈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정말.”
그녀는 밉지 않게 그를 타박했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 것을 눈치챘다.
잠시 후.
그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알렉세이는 그로 만족했다.
* * *
발루아 공작령을 가로질러 한참을 달린 마차는, 마침내 공작성 앞에 부드럽게 멈추었다.
‘정말 아름답네.’
햇빛을 받아 옅은 크림색으로 부드럽게 빛나는 공작성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공작성을 바라보며, 안리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기야, 저 공작성 자체만으로도 제국 건축사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지.’
아마 몇백 년 전, 굉장히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어쩐지 조금 압도당하는 기분인걸.’
황실과 더불어, 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발루아 공작가.
그런 공작가가 대를 이어 살아온 고색창연한 고성.
이 건물 하나로, 새삼스럽게 발루아 공작가가 얼마나 강대한 가문인지 실감이 났다.
‘아냐, 벌써부터 기가 죽으면 어떡해?’
안리체는 애써 태연한 척 정면을 응시했다.
공작 일가를 마중하기 위해, 사용인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 가운데.
중앙에 선 집사장 그레고르가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공작님과 작은 마님, 그리고 소공작님과 릴리아나 아가씨께 인사 올립니다.”
그와 함께, 다른 사용인들도 허리를 굽혔다.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고개를 들게.”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
고개를 들어 올린 집사장이 환한 미소로 재차 말을 붙였다.
“큰 마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안으로 들어가지.”
그렇게 답한 알렉세이가 안리체를 돌아보았다.
“들어가시죠, 부인.”
“…….”
순간 안리체가 흠칫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뺨을 찌르는 듯한 적대적인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의 주인은 분명…….
‘집사장이었던 것 같은데.’
한편 안리체의 갑작스러운 침묵에, 알렉세이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부인?”
“아, 네.”
내가 다소 예민했던 건가?
안리체는 미묘한 기분으로 알렉세이의 손을 잡았다.
한 발 뒤로 물러난 집사장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모시겠습니다.”
그 태도 자체는 흠잡을 데 없이 정중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심해야겠는걸.’
안리체는 미심쩍은 기분을 영 털어낼 수가 없었다.
* * *
공작성 안으로 들어가자, 고아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귀부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발루아 공작 대부인, 델피나였다.
“어머니, 잘 계셨습니까?”
알렉세이가 먼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어머님,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그 뒤를 이어 안리체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순간, 델피나의 눈동자가 가느스름해졌다.
‘쟤가 웬일이람?’
알렉세이와 결혼식을 올렸던 해를 제외하면, 안리체는 단 한 번도 발루아 공작령에 발을 들인 적 없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가족들과 함께 공작령으로 내려온다고 전해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웬일로 저렇게 정중하게 굴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원.’
델피나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그때, 엘리엇이 쪼르르 델피나에게로 달려갔다.
“할머니!”
“어이구, 우리 강아지.”
델피나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그 뒤로, 릴리아나가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 나는 언제쯤 인사를 올려야 하는 거지?’
그렇게, 릴리아나가 격렬한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안리체는 주눅이 든 릴리아나의 어깨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릴리도 시할머니께 인사드려야지.”
“아, 네!”
파드득 정신을 차린 릴리아나가, 양 치맛자락을 잡아 올리며 무릎을 굽혀 보였다.
“안녕하세요, 시할머니. 릴리아나 애버릿이에요.”
“어머나, 네가…….”
한참 엘리엇을 어르고 달래던 델피나가, 슬쩍 고개를 들어 릴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온기가 서렸다.
“반갑다, 얘야. 델피나 폰 발루아란다.”
“저, 저도 만나 뵈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릴리아나는 다소 긴장한 듯했으나, 그래도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델피나가 방긋 미소 지었다.
“그래, 다들 어서 오렴.”
그 미소를 응시하던 안리체는, 힐끔 알렉세이를 곁눈질로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알렉세이의 미모가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아.’
검은 머리카락을 빈틈없이 틀어 올리고, 연회색 눈동자를 영민하게 반짝이는 델피나.
그녀는 젊었을 적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법한 고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모는 아들과 손주에게로 고스란히 물려 내려온 것이다.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허리를 쭉 편 델피나가 발루아 일가를 돌아보았다.
“일단 방에서 쉬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가족끼리 식사나 함께 하자꾸나.”
“예, 그러겠습니다.”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마침내 델피나가 안리체를 시야에 담았다.
“하녀가 방 안내를 도와줄 것이야.”
뾰로통한 목소리로 입을 연 델피나는, 그대로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네, 어머님.”
겉으로는 얌전하게 대답하면서도, 안리체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느라 무진 애를 썼다.
아무래도 델피나와의 관계 개선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 * *
안리체는 내심, 델피나가 제게 공작 부인의 방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듣기로, 현재 어머님께서 공작 부인의 방을 쓰고 계신다고 했으니까.’
사실 그 편이 합리적이기는 했다.
아무리 알렉세이의 어머니이자 가주의 대리인으로 있다지만, 공작 대부인은 가주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발루아 공작의 방과 집무실은 ‘가주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알렉세이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공작의 개인 장소는 사용하지 않는 게 옳아.’
하지만 공작 부인의 방은 다르다.
공작 대부인은 한때 발루아 공작 부인이었고, 서열 배분으로도 엄연히 안리체의 위에 있는 상황.
그러니 공작 부인의 방을 양보하지 않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편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히 말씀해 주시지요.”
하녀는 안리체를 공작 부인의 방 앞으로 안내한 후, 깊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안리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그만 물러가도 좋아.”
“예, 작은 마님.”
그렇게 하녀가 물러난 후.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안리체가 방 안에 발을 들였다.
제비꽃빛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예쁘다.”
공작 부인의 방은 화려하거나 웅장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가꿔 온 공간 특유의 아늑함을 품고 있었다.
군데군데 장식된 오밀조밀한 장식품들은 델피나 특유의 소녀 감성을 훤히 드러냈다.
바닥에 깔린 러그 또한 발이 푹 파묻힐 정도로 폭신폭신했다.
“정말 귀엽네.”
안리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지그시 참으며, 일단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보이는 앙증맞은 꽃무늬 스툴을 끌어다 앉았다.
‘어머님께서는 날 싫어하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까 전, 그녀를 마주할 때의 싸늘한 눈빛만 봐도 그랬다.
하지만…….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적어도 꽤 공정한 성품이신 것 같네.’
분명, 공작 대부인 정도 되는 위치라면 사소한 심술을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인은 그러기는커녕, 안리체를 철저히 공작 부인으로서 대우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공간에 싫어하는 사람을 들이는 건, 그리 내키는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똑똑.
짧은 노크 소리에, 안리체가 살짝 시선을 들어 올렸다.
“네, 들어오세요.”
하녀겠거니 생각했는데,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뜻밖에도 알렉세이였다.
“공작님?”
“오시는 길에 많이 피로가 쌓이셨을까 봐, 걱정이 돼서 들렀습니다.”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대답한 안리체가, 짓궂은 눈빛으로 알렉세이를 마주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어마어마한 마차를 타고 왔는걸요?”
“…….”
알렉세이는 다소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번 여행을 위해 거금을 들여 여행용 마차를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흔들림이 최대한 적도록 설계하고, 내부 부자재를 상당히 신경 쓴 그 마차의 가격은…….
“집사 말로는 저택 한 채 값이 들어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크흐음, 흠!”
알렉세이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